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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청년 Oct 20. 2024

예술은 논리 밖에서 나온다

위대한 고독의 순간들 - 이진숙

시 평론에 신형철 작가가 있다면,

미술사에는 이진숙 작가가 있는 것 같다.


그림의 역사에도 역시 인간에 대한 통찰이 있다.

작가는 그림을 통해

예술이 왜 인간에게 필요한 건지

그 의미를 찾아주는 듯하다.


글은 말보다 강력하고

그림은 글보다 더 깊은 무의식을

형성한다고 말한다.

인간 행동의 90퍼센트 이상이 무의식에서 나온다.


사실 이런 인식은 결정론에 빠질 수 있는데

작가는 오히려 진정한 자유를 준다고 역설한다.

아니 예술이 진정한 자유를 준다고 말하는 것 같다.


“지금의 내가 시대적인 경험으로

구성된 나라는 깨달음은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를 준다.

내가 구성되어진 나라면,

나는 재구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림의 역사는

사실 기존 형식에 대한 반란의 역사다.

라파엘전파가 진실을 그리자 사람들은 궁상이라며 싫어했다고 한다.

그러자 프랑스혁명 이후에 ‘귀스타브 쿠르베’ 같은 쾌락적 세속주의가 등장했다.


예술은 사람들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는

진부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진부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예술가들은 보헤미안이 됐고,

충격을 주기 위해

아방가르드(전위예술)가 됐다고 한다.

이렇게 기존 질서를 다시 짜는 것이

역사가 전개되는 방식이라고 말한다.


한 시대의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졌던 것들이

그 후손의 시대에 이르면 무의미해지면서

의미의 그물망 혹은 상상의 질서를

다시 짜는 것이 역사가 전개되는 방식이다.


기존 질서를 깨뜨리는 방법 중에 ‘반복'의 힘을 작가는 가장 강조하는 것 같다.


“모네는 20년 넘게 수련 그림을 그린다.

그리는 화가에게는 매번이 절실하게

다른 순간의 포착이었다.

이 경우에 우리는 악무한이 아니라

선무한, 즉 행복한 무한을 느낄 수 있다.”


반복을 통해 우리는 차이를 느낄 수 있고,

그 차이를 느껴야 즐길 수 있게 된다.

그래야 선무한, 행복한 무한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렇게 되니 지금까지 예술은

자연과 인생을 모방했었는데

반복을 통해 차이를 발견하니

인생이 예술을 모방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것이 탐미주의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작가가 가장 극찬한 폴 세잔이 등장한다.

계속해서 사과를 그린 작가.


고독 속에 있는 그대로 사물을 바로 보는 것.

이것이 위대한 세잔식 혁명의 시작이었다.”


이게 왜 위대한 고독인지 난 감이 잘 안 왔다.

아마 예술은 고독 속에서 반복되는

바라봄 속에서 창조된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것은 감각이니까.

그에게는 그만의 감각이 있는 것이니까.

불완전한 이해는

서로가 견뎌야 하는 간격인 동시에

새로운 해석을 위한 미완성의 가능성이니까.

그래야만 이해받지 못한 고독은 위대함과 동의어가 될 수 있으니까.”


아무튼 그림은 우리에게

감각을 통해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감정은 논리가 아니다.


기존 질서를 깨뜨리는 두 번째 힘은

“세상을 도덕적으로 보지 않는 것"이라고 작가는 말하는 것 같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에로스와 타나토스(죽음충동)는 공존하기 때문에 같이 온다고 한다.

클림트나 에곤 실레의 작품에는 이 두 가지가 함께 표현된다고 한다.


예술의 힘은 도덕, 편견, 관념, 사랑, 욕망, 죽음을 비트는 데서 오는 것 같다.

난 툴루즈 로트레크의 건강검진과 수잔 발라동의 버려진 인형이라는 그림이 기억에 남는다.



툴루즈 로트레크의 그림에서

검사를 받는 여자들은 매춘부이고,

쉬잔 발라동 그림에서

엄마가 몸을 닦아주는 소녀는

더이상 소녀가 아니다.


니체는 “진정한 시대적 고찰은 반시대적”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예술은 자기 시대의 위선과 모순을 통찰할 때 나오는 것 같다.


예술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 세상에 통용되는 기존 프레임을

깨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면서 역사는 나아간다.

프레임을 깨기 위해서는

그 프레임 밖에서 봐야 한다.


그 프레임 밖에서 보기 위해서는

철저한 고독 속에 반복해서

그 모습 그대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하고,

기존 도덕의 관점에서 보지 않아야 가능하다고

작가는 말하는 것 같다.


기존 도덕의 관점에서 보지 않기 위해서는

장자의 말이 생각났다.

자연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인간의 눈에서 벗어나 밖에서 볼 수 있다.

그것이 도를 얻는 길이고

예술과도 맞닿아 있는 것 같다.


세상에 통용되는 논리의 프레임을 깨는 힘은 철저히 논리 밖에서 나온다.


예술은 논리 밖에서 나온다.

그래서 예술은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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