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 죽이기 - 하퍼리
사회 통념에 맞서는 것보다 어려운 것은 없는 것 같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앞에 무릎 꿇고 좌절했을까? 대부분 맞설 생각은커녕 미리 자체 검열했을 것 같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좋은 게 좋은 거다.
정말 많은 순간 듣는 말이고, 되뇌는 말이다.
세상과 맞서야 할 때마다 타협하고 마는 자신을 보며 절망한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타협이 아니다. 굴복이다.
타협은 ‘서로 양보해 합의해 이르는 것’이라고 책에서는 말한다. 서로 양보해야 하는데 나만 일방적으로 하니 타협이 아니다. 세상과 맞서기 위해서는 두려움을 떨쳐내야 하고 굴복해서는 안된다.
"너 타협이란게 무엇인지 알고 있지?
법을 융통성 있게 적용하는 것 말이에요?
아니 서로 양보해 합의에 이르는 것 말이다."
왜 맞서냐고 묻는다면
“수백 년 동안 졌다고 해서 시작하기도 전에
이기려는 노력도 하지 말아야 할 까닭은 없으니까”
이렇게 답할 수 있어야 한다.(멋있다)
해보지도 않고 처음부터 접고 들어갈 하등의 이유는 없다.
세상은 다수고 나는 소수다.
세상은 다수결로 돌아가는 세상이다.
하지만 단 한 가지 다수결에 따르지 않는 것이 있다고 말해주는 장면은 감동이었다.(뭉클했다)
“하지만 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기 전에 나 자신과 같이 살아야만 해. 다수결에 따르지 않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건 바로 한 인간의 양심이다.”
나 자신과 잘 살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양심이다.
내 양심을 언제 생각했는지 기억도 안 나니 새삼 부끄럽다. 그동안 나를 잊고 산 것이다.
진정한 용기란 두려움 없는 상태가 아니라
두려움 속에서도, 질 줄 알면서도
내 양심에 따라 끝까지 하는 것이다.
“손에 총을 쥐고 있는 사람이 용기 있다는 생각 말고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 말이다.
시작도 하기 전에 패배한 것을 깨닫고 있으면서도 어쨌든 시작하고,
그것이 무엇이든 끝까지 해내는 것이 바로 용기 있는 모습이란다.”
하지만 이런 용기도 내 의지로 나온다기보다는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나오기 마련이다.
“젬과 스카웃은 나를 믿지 않는다면 다른 누구도 믿지 않을 걸세. 읍내에서는 이런 식으로 살고, 집에서 와서는 저런 식으로 살 순 없단 말일세.”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내 양심에 따라 세상에 맞설 용기를 가지고 있는가?
다시 한번 말하지만
세상과 맞서지는 못하고 타협하고 있다고 생각했다면 잘못 생각한 것이다.
타협은 서로가 양보하는 것이다.
나만 양보하는 것은 타협이 아니다.
“옳은 일을 하고 있을 때는 그 일에 대해 조금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 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