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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라도 알기 어렵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 수 클리볼드

by 푸른청년

이 책은 콜럼바인 고교 총기 사건 가해자의 어머니가 사건 발생 17년 후 쓴 글이다.

그동안 가해자 어머니라는 이유로 주위의 엄청난 시선과 고통을 감내해야 했을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그 고통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걸 극복해 가는 과정이 놀라웠다.

작가는 아마도 아들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객관적인 근거들을 찾으려고 했던 거 같고,

그렇게 알게 된 지식들을 나누려 한 것 같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하려 했던 것 같다.


작가는 이 책을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썼다고 했지만

아들을 위한 변명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본인도 그걸 인지하고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이런 참사가 발생했을 때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가해자의 가정문제 또는 교육에 가장 큰 원인이 있을 거라는 추측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작가는 자기 가정에 문제가 거의 없었다고 주장한다.

지극히 평범한 미국 중산층 가족이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이런 참사를 저지를 줄은 꿈에도 몰랐으며

다만 흔한 사춘기 시절의 짜증 정도로만 생각했다는 것이다.

문제가 있다는 건 어느 정도 알았지만

이게 자살을 할 정도인지

다른 사람을 살해할 정도인지 몰랐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자신의 아들에게 자살충동이 있었다는 것이다.

자살충동이 있던 아들이 사이코패스 친구를 만나면서 살해충동으로 나아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자살충동은 우울증이나 양극성장애 같은 뇌의 병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참상이 다시 발생하지 않게 하려면

우울증이 정신문제가 아니라 뇌의 병이며

이를 치료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정신문제는 뇌의 병이며 치료가 가능하다고 한다.


자살을 한 친구나 가족들에게 물어보면

가장 흔한 대답은 전혀 그럴 줄 몰랐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자살하기 며칠 전에 여행 계획을 세웠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것이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일수도 있고, 양가적인 감정이 공존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주위에서 어떻게 모를 수 있냐는 점이다. 하지만 모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 보고 이런 것들이 있었는데 그때 알아차리지 못했구나 하는 후회가 밀려오는 것 같다.


작가는 그런 전조 증세로 두 가지를 들었다.

첫째로는 게임할 때 너무 경쟁적이었다. 승부에 집착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걸 승복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끝까지 게임을 계속했다는 것이다.


둘째는 완벽주의 성향을 타고났다는 것이다.

완벽주의 성향을 타고나게 되면 자기에 대한 기준이 너무 높아서 자존감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이 한 둘인가?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스위치가 켜지는 것일까?

여러 변수들이 우연히 합쳐지면 그런 것일까?

강한 의문이 들었다.


아마도 작가는 이건 아무리 가족이라도 알기 어렵다. 타고난 성향에 뇌의 병까지 와서 그런 것이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뇌의 병이라는 것을 빨리 알아차리고 치료할 수 있게 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걸 말하고 싶은 것 같다.


그러면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된다.

나는 내 아이들을 얼마나 잘 알고 있나?

나도 마찬가지로 사춘기 시절의 반항이나

철없음으로 치부해버리고 있지는 않나?

뇌의 병이 왔을 때 나는 알아차릴 수 있나?


하지만 많은 것이 그렇듯이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니다. 자살로 이어지기 전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


자살은 대부분 고장 난 사고와 오랫동안 고통스럽게 싸워오다가 마침내 그 싸움에서 패배했을 때 일어난다.

자살하려는 사람은 자기 고통을 더 이상 감내할 수가 없는 사람이다.

죽고 싶지는 않더라도, 죽으면 이 고통이 끝나리라는 걸 알기 때문에 그 길을 택한다.”


자살로 이어지는 단계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나는 혼자야

내가 없으면 세상이 더 나아질 거야

나는 죽는 게 두렵지 않아.


여기에 어느 정도 답이 있는 것 같다.

너는 혼자가 아니야.

네가 없으면 우리는 더 불행해질 거야.

사람이면 두려운 게 당연한 거야.


힘들어하는 친구나 가족에게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솔직히 이렇게 말한다고 어떤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에서 리바이 병장이 했던 말이 떠 오른다.

결과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네가 무슨 선택을 하던 결과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어떤 결과가 나오든

원하는 선택을 하는 게 맞다.

이런 뜻으로 나는 이해했다.


내 도움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모른다.

하지만 나는 너를 어떤 식으로든 돕겠다.


세상에 진정으로 용기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고통과 아픔을 도움으로 승화시키는 사람들이다.

내 가족과 친구는 막지 못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막을 수 있다는 신념으로 돕는 이들이다.


이런 참사가 아주 평범한 가정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누구도 내 주위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가족이니까 가장 잘 안다고 할 수 없다.

혹시 알아차려도 애써 무시할 수도 있다.

항상 주의 깊게 내 가족과 주위를 잘 살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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