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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에 대한 두려움

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 - 캐롤라인 냅

by 푸른청년

사실 난 술을 잘 마시지 못해서 알코올 중독에 대해 감정 이입이 잘 안 됐다.

왜 그렇게 취할 정도로 마시지? 뭔가 안 좋은 감정들이 많나 보다. 이 정도였다.

하지만 중독의 단계에 들어서면 이 수준을 뛰어넘는 것 같다.


작가는 20년 가까이 유능한 저널리스트로 살면서 자신이 알코올 중독이라는 걸 부정했던 것 같다.

자신은 거의 완벽히 공과 사를 구분하며 능력을 인정받고 살아왔고, 오히려 술이 주는 장점을 찬양하며 살았던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며 처음 들었던 감정은 오히려 술을 옹호하는 책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작가는 중독에 빠지는 가장 큰 이유를 ‘공허’라고 말하는 것 같다.

공허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안도감과 위로, 평안을 전해줄 어떤 것을 갈망한다는 것이다.


공허해지는 이유로는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진실은 누구도 자신이 누구인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삶의 의미도 비슷하다. 누구나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고민하지만 정해진 삶의 의미는 없다.

삶이란 그냥 선물처럼 주어진 것이다.

다만 살아가면서 우리가 의미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법륜스님은 삶이 무엇인지 묻지 말고,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하라고 했다.


내가 보기에 공허 그 자체보다 공허에 대한 두려움이 원인인 것 같다.

누구나 공허함을 느끼지만 거기에 과잉반응하게 되면 두려움이 생기고,

그 두려움 때문에 집착이나 중독이 나오는 것이 아닐까?


술에 취하면 보통 내성적인 사람들도 외향적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중독 상태에 이르면

내적으로는 '자기 마음속 골방으로 들어가서 차양을 내린다'라고 한다.

알코올 중독자들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술을 마실 때도 혼자 마신다'라고 한다.

그리고 기억을 못 한다고 한다.

기억을 못 하는 게 핵심이라고 말한다.


알코올 중독은 심리적 현상이 아니라 신경학적 현상이라는 것이다.

알코올의 기본적인 기능은 중앙신경계의 활동을 저하하는 것이고, 유전적인 요소도 있다고 한다.


두뇌가 지속적으로 과다한 약물에 노출되면

그 안의 분자 구조가 변형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통적인 상담 위주의 치료가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효과가 있는 것은 다른 알코올 중독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라고 한다.

정확히 왜 효과가 있는지 과학적으로 검증을 할 수는 없지만 집단적 희망과 자발적 지원이 관련 있을 거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중독은 극복되는 것이 아니라 대체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찰스 두히그는 <습관의 힘>이라는 책에서

습관은 없애는 것이 아니라 바꾸는 것’이라고 했다.

중독도 습관과 비슷한 기제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중독됐다는 것은 이미 뇌의 신경학적 구조가 바뀌었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뇌의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소용없을 것 같다.


중독이 깊어지면 인생은 공허한 동일성의 반복으로 재편된다. 어제와 오늘이 구별되지 않는다


논리적 모순이다.

공허함을 없애기 위해 중독에 빠지는데,

그 효과가 오래가지 못해서 반복된다.

결국 공허에 대한 두려움이 핵심 같다.

그냥 공허를 인정해야 된다.


현실 부정은 알코올 중독의 주요 증상이 아니라 그 본질”이라고 말한다.

현실을 인정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현실부정이 반복을 만든다.


"내가 술을 마실 때마다 나쁜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나쁜 일이 일어났을 때는 언제나 술이 관련되어 있었어요"


현실을 인식하려면 통찰이 필요하다.

대부분은 ‘내가 술을 마실 때마다 나쁜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라고

현실을 부정하며 변명한다.

하지만 ‘나쁜 일이 일어났을 때는 언제나 술이 관련되어 있었다’는 걸

깨닫는 순간 현실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이 된다.


통찰이란 사실을 재배열하는 일이지”


“나는 언제나 생각했다.

불행하기 때문에 술을 마신다고,

어쩌면 나는 술을 마셔서 불행한지도 몰라


삶의 진실은 이렇게 이중적이다.

말의 배열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진실을 깨달을 수 있다.

이게 이 책에서 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 같다.


결국 삶의 공허도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내부로부터 오는 것이다.

따라서 공허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외부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수많은 시도와 실패라는 과정을 통해 얻어야 한다.

그게 성장이고 성숙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내 경험으론 공허를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극복해야 할 무언가라 생각하지 말고

어쩔 수 없이 함께 평생 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좀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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