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각의 계절 - 권여선
네 명의 친구가 있다.
20년 전에 그 친구 중 한 명이 자살했다.
추모 모임에 친구들을 초대했지만 모두 외면한다.
어릴 때 그렇게 애틋했던 관계가
친구의 죽음 앞에서도 차갑게 변해버린 이유는 뭘까?
작가 권여선은 그 이유가 대화의 단절을 불러오는
<사슴벌레식 문답>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인간은 무엇으로든 살아.
사슴벌레는 어디로 들어와? 어디로든 들어와.
어떻게든 미안하지가 않아? 어떻게든 미안하지가 않아."
사슴벌레식 답변은 어떤 질문이 와도 그 질문으로 답을 한다.
답을 하지만 답을 안 한 것과 마찬가지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회피하는 것이고,
덮어두는 것이다.
사람은 문제를 회피하고 자기 합리화를 한다.
“인간의 자기 합리화는 타인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비합리적인 경로로 끝없이 뻗어나가기 마련이므로 결국 자기 합리화는 모순이다. 자기 합리화는 자기가 도저히 합리화될 수 없는 경우에만 작동하는 기제이니까.”
작가는 인간의 자기 합리화가 자기모순이라는 점을 깨우쳐 준다.
작가의 통찰력에 너무 동감했다.
인간은 자기 합리화를 계속한다.
그것도 끝없이 죽을 때까지.
<하늘 높이 아름답게>에서는 파독간호사로 일하다
귀국하여 성당사람들 가사도우미 일을 하며
어렵게 살다가 죽어버린 마리아 이야기다.
아무리 종교적으로 포장해도 그 관계 속에는 알게 모르게 신분적 차이가 존재한다.
우리는 문득문득 자신이 얼마나 겉모습과 다르게 세속적이고 고귀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베르타는 가을 저녁의 찬 기운에 오싹함을 느꼈다.
자신이 왜 그들과 계속 만남을 이어왔는지가 분명히 이해되었다.
참 고귀하지를 않다. 전혀 고귀하지를 않구나 우리는…”
이런 사람들에게 작가는 마리아를 통해 말한다.
“몸이란 게 움직이자 달래면 움직여져요. 사모님”
“각각의 계절을 나려면 각각의 힘이 들지요. 사모님”
각자의 자기 합리화로 서로가 단절된 세상에서는
각자도생 할 수밖에 없다.
상대적으로 약자인 사람들은 자기 몸을 잘 달래서
새로운 계절이 올 때마다 살아남으려면 정신 차리라고 다짐해야 한다.
그래야 고단한 삶을 살아낼 수 있다.
<무구>에서는 이십 년 만에 페이스북을 통해 만난 친구 현수에게 부동산 사기를 당한 소미 이야기다.
각자도생의 사회에서는 옛 인연이 굉장히 소중해 보인다.
하지만 너무 각박해진 세상 속에서 그런 인연도 돈벌이 수단이 되어버린다.
그걸 이겨 내려면 함께 버티는 수밖에 없다.
“내 곁에서 함께 두려움을 이겨냈어야 했어. 그런데 그러기는커녕 비열하게 도망쳤지.”
결국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은
대화와 소통의 단절이 자기 합리화를 부추기고
각자도생의 각박한 사회를 불러오지만
방법은 함께 버티고 이겨내는 것 밖에 없다고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내 생각에 작가는 어떤 희망보다는
우리의 무지를 질타하는 것 같다.
우리는 무지하여 변명도 못한다.
우리는 무지하여 답을 회피하고, 도망쳐 버리고, 자기합리화 해버린다.
“무지는 가장 공격받기 쉬운 대상이지만,
무지한 자는 공격 앞에서 두려워 떨 뿐
무지하여 자기 죄를 알지 못하므로 제대로 변명조차 할 수 없다.”
작가는 이런 무지 때문에 대화와 소통이 단절되고
관계가 틀어졌다는 것을
기억이라는 장치를 통해 우리에게 다시 불러오고,
그리고 그 기억을 통해
나를 지금의 자리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기억이 나를 타인처럼, 관객처럼 만든 게 아니라
비로소 나를 제자리에 돌려놓았다는 걸 아니까.”
하지만 기억만으론 우리는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날 수 없다.
무지했다는 것이 변명이 될 수 없다.
반드시 반성과 사과와 애도의 과정을 거쳐야
그제야 우리는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