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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청년 Jul 06. 2019

개인주의자 선언

판사 문유석의 일상 유감

우리나라에서 개인주의자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게 사실이다. 자기만 아는 이기주의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문유석 판사가 합리적 개인주의는 이기주의와 다르다고 커밍아웃해주니 항상 와이프와 애들로부터 이기주의자라고 구박받던 나는 동지를 얻은 기분이다. 회사나 바깥에서는 항상 싫은 건 싫다고 못하고 타협하며 연기하면서 살다가 집에서는 나의 본모습이 나왔는지도 모른다. 아니 가장이라는 권위를 강요했는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의 경제적인 여건이 세계 10위권임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더 불행한 이유를 작가는 전 근대적인 집단주의 문화와 수직적 가치관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동감한다. 거의 항상 개인의 이익보다는 집단의 이익이 우선이고 학벌, 직장, 나이, 가진 돈 등으로 줄 세워서 위로부터 아래로의 권위를 강조한다.


아마 이런 문화가 지금까지의 경제 발전에 일정 정도 긍정적인 역할을 했는지도 모른다. 우리나라는 서구와 같은 개인주의 문화 자체가 안 맞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좋은 점은 인정하고 나쁜 점은 바꿔나가야 하는데 우리나라에 중간은 설자리가 별로 없다. 회색분자라고 양쪽으로부터 욕먹는다.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개인에 대한 거고, 2부는 타인에 대한 거, 3부는 세상에 대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릴 때부터 작가는 천재였나 보다 속독 학원에서 3분에 300쪽 자리 책을 읽고 내용을 줄줄 말하는 시범을 보이며 돈도 벌었으니, 물론 개뻥이고 구라여서 사기 공범이 아니었나 하며 그 시절의 가면을 비판하고 있다. 또한 인문계 전국 수석한 것을 전두환 대통령의 과외와 사교육 금지의 전국 단위 시험 한방 때문이라고, 29만 원을 무이자로 빌려 드릴 용의가 있다는 농담까지.


이런 에피소드가 자기 자랑처럼 느껴지지 않는 건, 너무 뻔뻔하게 대놓고 해서인지 이 분 특유의 발랄함과 솔직함 때문인지 모르겠다.


2부에서는 1인 1표의 민주주의가 우리의 마지막 밑천이라고 주장한다. 유발 하라리가 주장했듯이 과학기술이 발전하면 무용 계급이 등장할 수 있다. 이런 때에 민주주의가 없으면 더욱더 곤란해질게 뻔하다. 마지막 보루 일지 모른다는 거에 동감한다. 하지만 1인 1표의 맹점도 있다. 노인이 다수인 사회에서는 노인을 위한 정책이 우선이 될 확률이 높다.


민주주의가 중요한 이유는 다수결이 아니라 다양성이  표출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조너선 하이트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사회집단의 도덕적 판단을 따르는 경향이 있는데 비슷한 집단에서 균열이 생기면 전체 집단의 견해가 바뀌는 경우가 생긴다. 대표적인 게 미국 연방대법원의 동성결혼 합법화 결정이라고 한다.


3부에서는 이상적인 모습으로 보이는 서유럽 국가들이 과연 우리가 참조할 만한 사회인지 살펴본다. 스티븐 핑커에 따르면 인류 역사상 지금이 가장 평화로운 시기라고 한다. 물론 아직도 종교와 민족이라는 이름 아래 많은 이들이 고통받고 있다. 서구사회의 모습도 장단점이 있다. 하지만 지금 같은 모습을 갖추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들이 있었고 단점을 보완해 왔다. 그 근본은 합리적 개인주의가 바탕일 것이다.


합리적 개인주의는 사실 개인보다는 타인과의 협력과 연대가 중요하다고 작가는 말한다. 이유는 나의 행복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남의 행복도 보장해 줘야 한다는 논리다. 우리나라 사회도 점점 개인주의화되는 느낌이다. 가끔 꼰대 소리를 들으며 이해 못하는 경우도 많다. 아마 지금이 과도기 인지도 모른다. 나는 낀 세대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권위주의와 개인주의. 혼란스럽다.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이리저리 치이다 끝난다.


요새 와이프도 바쁘고, 애들도 안놀아준다고 갱년기인지 우울하다는 얘기를 많이 하고 다녔다. 이제 혼자 노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조금 내려놓으니  마음은 편해졌다.


수평적 관계에서 타인과 연대하는 우리나라에 맞는 합리적 개인주의가 정착되었으면 좋겠다. 


p27

현대의 합리적 개인은 자신의 비합리성까지도 자각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합리적 태도가 뒷받침되지 않은 개인주의는 각자도생의 이기주의로 전락하여 결국 자기 자신의 이익마저 저해할 뿐이다. 자기 이익을 지속적으로 지키기 위해서라도 양보하고 타협해야 함을 깨닫는 것이 합리성이다.


p45 자기 계발의 함정

가장 위험하고도 어리석은 건 ‘노력해야 성공한다'를 넘어서 ‘성공한 이들은 다 처절하게 노력했기에 그 자리에 오른 것이다.’, ‘그만큼 노력하여 성공한 이들이니까 괴팍하고 못되게 굴 만한다' ‘강한 것은 아름답다' 등으로 끊임없이 가지를 치는 스톡홀름 증후군이다.

- 영화 위플래시를 보고


p114 변한 건 세대가 아니라 시대다

결국 취업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하는 자기 통제형 자기 계발에 매진하는 이십 대는 상상을 초월하는 박탈감과 불안감 속에서 사회적 약자의 고난을 ‘개인의 노력 부족'으로 돌리며 자신은 그래도 노력하고 있기에 그들보다는 낫다고 구분 짓기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 독서토론 모임 대학생들의 용산 참사에 대한 반응을 보고


p248 나는 샤를리가 아니다, 나는 아메드다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인간은 합리적 추론보다 도덕적 직관에 의존하는데, 미국 진보 세력은 인간이 진화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발달시킨 도덕성 중 자유와 배려에만 치중하고 정당한 권위, 고결함, 소속 집단에 대한 충성심은 무시해 지지 세력을 확대하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상대의 도덕 감정을 모욕하는 것보다 상대도 공감할 만한 부분을 넓혀가는 것이 현명하다.

-시사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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