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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청년 Sep 08. 2019

체호프 단편선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김학수 옮김

작가들의 작가라는 극찬을 들은 터라 너무 기대를 했나 보다. 책을 덮은 후 '왜 이리 유명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글을 써보려고 정리하다 보니 좀 다르다. 이런 경우가 전에도 많았을 것이다. 한 번 쓱 보고 ‘왜 명작이라고 사람들이 이 난리를 피지?'하고 덮어 버린 책이. 아직 내공이 부족한 탓이다.


총 11편의 단편이 들어있다. 그중에 <골짜기>가 좀 길고 나머지는 무척 짧다.


첫 번째는 무심한 남편과 자신에게 추파를 던지는 남자들 사이에서 갈등하는 여자들의 심리를 그린다.


<정조>에서 공증인의 부인 소피아는 변호사 일리인의 끈질긴 구애에 갈등하며, 남편에게 같이 여행을 가자고 하지만 가려면 혼자가라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 거 같다고, 마지막으로 산책을 같이 가자고 했는데도 무심한 남편은 잔다.


<약제사 부인>에서는 약제사인 남편이 자고 있는 사이 두 장교가 약을 사러 와서 미모의 부인에게 희롱을 하는데도 남편은 아무 생각 없이 잠만 잔다.


이 책에서 남편들은 잠만 잔다. 와이프가 무슨 일을 하건, 무슨 생각은 하건, 세상모르고 잠만 잔다.


남편은 아니지만  <약혼녀>에서 나쟈는 부자라서 편한 미래가 약속되어 있는 약혼자가 있음에도 일하지 않는 귀족을 비판하는 사샤를 따라 공부하러 모스크바로 떠난다.


이들의 공통점은 현재 생활이 문제가 있어서라기보다 아무 문제가 없지만 외부의 강렬한 자극에 어쩔 수 없이 끌린다는 거다. 여자들 내부에서는 폭풍이 휘몰아치고 있지만 외부는 너무 평온하다. 이 상황 자체가 희극인 거다.


두 번째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추구하는 여성들에 관한 얘기다.


<귀여운 여인>은 사랑 없이는 못 사는 여자 올렌카에 대한 얘기다. 야외극장 지배인인 남편을 너무 사랑하지만 돌연 사망하게 되고, 목재상인 다른 남자를 만나지만 또 죽고, 유부남인 수의관을 만나지만 떠나고, 다시 가족과 돌아오니 그 아들을 자기 아들처럼 사랑한다.


올렌카는 사랑을 하지 않으면 아무 일에도 자기 의견을 가질 수 없다고 말한다. 자기 의견이 없기 때문에 그걸 채우려는 욕망으로 사랑을 갈구하는 것이다.


<아뉴타>도 약간 비슷한데 가난한 의과대학 3학년생인 스체판과 동거하는 여자 얘기다. 가난한 의대생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데 이게 여섯 번 째다. 모두 의사, 미술가, 대학교수가 되어 자기를 떠났다. 그런데도 아뉴타는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다. 스체판도 이제는 헤어지자고 말해놓고 아쉬움에 조금만 더 같이 지내자고 한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남자에게 희생하지만 사랑받지 못하는 이런 상황은 아이러니인가? 아니면 일반적인 상황인가? 부모의 사랑처럼 받는 걸 기대하지 않는 사랑이 위대하다고 하는데, 일방적인 사랑은 비극으로 끝나기 마련 아닌가 싶다.


세 번째는 유부남이나 약혼자가 있는 몸이지만 갈등하는 남자의 심리를 그린다.


<함정>에서는 결혼 자금 때문에 사촌 형 크류코프가 빌려준 돈을 대신 받으러 간 중위 소콜리스키는 매력적인 유대인 여자 수산나에게 빠져 돈을 받기는커녕 수표도 빼앗기고 집에 온다. 사촌 형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약혼자도 있는 놈이 미쳤냐고 자기가 받으러 간다. 하지만 유부남인 형도 마찬가지다.


<복수자>에서는 불륜을 저지른 와이프와 정부를 쏴 죽이고 자기는 자살하기 위해 총을 사러 가지만, 마음에 드는 총이 너무 비싸다. 일단 와이프는 살려두고, '재판을 해서 이 사실을 세상에 알리자'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재판을 하면 자기는 유배를 갈 것이고, 와이프는 재혼을 할 거라는 생각이 들자, 그것도 포기하고 결국 메추라기 잡는 줄만 사 가지고 나온다.


내가 남자라서 그런지 이 두 에피소드가 가장 재밌다. 남자들의 단순한 속성이 잘 드러나 있다. 이성적인 사고는 매혹적인 여자 앞에서 한순간에 무너지고, '그런 놈이 나만은 아니다'라는 걸 확인하는 순간, 다 같은 동지가 된다. 한편으론 순간 욱해서 별 생각을 다하지만 현실적인 문제 앞에 하나하나 핑계를 만든다.


네 번째는 의도치 않은 상황에 대한 얘기다.


<골짜기>에서는 구두쇠 상인 츠이부킨 노인의 몰락을 그리고 있다. 노인은 형사인 첫째 아들 아니심과 귀머거리인 둘째 아들 스체판에게 시집온 아크시니야를 사랑한다. 오랜 외지 생활을 하던 첫째 아들이 고향에 돌아와 리파라는 옆동네 처녀와 결혼하고 손주를 낳는다. 그런데 아들은 은화를 위조한 혐의로 시베리아로 유배를 가게 되고, 아비 없는 불쌍한 손주를 위해 땅을 주는데 이에 불만을 품은 둘째 며느리가 뜨거운 물을 아기에게 부어 죽게 된다.


노인은 가장 사랑했던 사람들 때문에 몰락한다. 노인이 믿었던 사랑은 일방적인 권력관계에 따른 가면이었던 거다.


<상자 속에 든 사나이>는 무엇을 금지하는 걸 좋아하는 그리스어 교사인 베리코프의 얘기다. 마을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이 남자의 영향을 받고 있었는데 코발렌코라는 소러시아인 선생이 누이와 함께 전근 오게 되면서 상황이 달라진다. 코발렌코와 사소한 다툼이 있은 후 누이에게 실망한 베리코프는 앓다가 한 달 만에 죽는다.


마을 사람들은 베리코프가 죽으면 편해질 줄 알았는데 변한 게 없다. 이미 마을 사람들도 상자 속에 살고 있었던 거다.


<사모님>은 교육감인 표도르가 정년퇴직해서 공석인 서기 자리에 그동안 고생한 교원인 브레멘스키를 앉히려고 하는데 자기 부인, 시장 부인, 관리부장 부인이 차례차례로 폴주힌이라는 청년을 채용해달라고 요청한다는 얘기다. 자기 뜻대로 아무 일도 할 수 없어 화가 나지만 어쩔 수 없다.


<우수>는 마부인 요나가 자기 아들이 죽었다는 걸 손님들에게 말해 보지만 아무도 관심조차 없다. 결국 자기가 키우는 말에게 하소연한다. 마부는 아들이 죽은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자신의 말을 들어줄 무언가가 필요한 거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체호프 단편은 욕망을 비튼다. 내가 욕망하던 게 이루어지면 행복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상황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는다. 반복일 뿐이다. 사람들이 체호프 단편을 희극이라고 느낀다면 자신은 이런 상황에서 이런 바보 같은 짓을 안하리라는 생각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극인 것은 자신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거다.




p105, 골짜기

“어떤 새건 날개가 두 개씩 달렸지, 네 개씩 달린 것은 없거든, 그건 두 개의 날개로서 날게 되었기 때문이오. 그와 마찬가지로 인간도 전부를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절반이나 사 분의 일 정도밖에 모르게 돼 있는 거요. 그러나 사람이 살아가는 데 알아야 될 것만은 알게 마련이라오"


p134, 귀여운 여인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의 모든 존재, 자기의 이성과 영혼을 독점하고 생각할 수 있는 힘과 생활의 방향을 제시해주며, 식어가는 피를 다시 따뜻하게 해 줄 수 있는 그러한 사랑이었다.


p204, 상자 속에 든 사나이

무엇이든지 금지만 하면 그것으로 만족한단 말입니다. 그는 해방이라든가, 허가라든가 하는 그 말부터가 도대체 의아스럽고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모호한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p262, 우수

말은 먹이를 씹으며, 귀를 기울이기도 하고, 주인의 손에 입김을 불기도 한다. 요나는 흥분한 어조로 자초지종을 말에게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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