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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하 Apr 15. 2022

백과전서에 웬 파?

어린 시절 우리집에서 가장 크고 두꺼운 책은 백과사전이었습니다. 제 기억으론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서가에서 빼기도, 들기도, 그리고 펼치기도 만만치 않을 정도로 큰 책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백과사전이었지만 정확히 그 책의 이름은 <가정 대백과사전>이었습니다. 어린 제 눈엔 세상의 모든 궁금한 내용들이 들어있던 책으로 보였습니다. 그렇지만 그 책을 제가 읽을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제 눈높이에 맞게 쓰인 책이 아니었으니까요. 그 책 다음으로 기억되는 큰 책은 저의 성씨(姓氏) 가계의 역사가 들어있던 족보였습니다. 역시 이 책도 볼 일은 거의 없었지만 결혼해 분가한 지금 제가 보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백과사전은 어느 순간 자취를 감추어 어느 집에서도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당시 이 두 책은 우리 가족이 반드시 필요해서 구매했다기보다는 다소 연고에 의한 강매성으로 집안에 들어온 책이었습니다. 서적 유통이 외판원에 의한 인적 판매가 성행했던 시절이라 친지나 지인의 부탁을 외면하기 어려워 생긴 책이었으니까요. 물론 그런 책들이라 해서 효용성이 떨어지거나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당시 그 백과사전은 다른 전집류를 사면서 보너스로 받은 책이었습니다. 대개 그 책은 그렇게 취급되었습니다. 단독으로 한 권만 팔기엔 애매하지만 보너스 가치는 있다고 판단해서 그랬었겠지요. 아무튼 그렇게 우리집엔 세계문학전집과 한국문학전집에 끼어서 커다란 백과사전이 들어왔습니다. 백과사전과는 달리 그 국내외 문학전집은 제가 자라면서 읽게 될 책이었습니다.


성장해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Encyclopedia Britannica)>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말로 하면 <대영 백과사전> 정도로 해석될 것입니다. 이 백과사전은 어린 시절 제 기억 속에 있는 우리집의 백과사전과는 달랐습니다. 일단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고급스러운 양장제본으로 외관을 뽐낸 그 책은 무려 30여 권에 달했으니까요. 그 백과사전은 소유자의 독서 여부와 상관없이 부잣집의 근사한 서재나 응접실 서가에 장식용으로 꽂혀있는 것만으로도 그 값을 다 한다고 할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었습니다.


250여 년간 백과사전의 지존이었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브리태니커 백과사전>하면 한 기업인이 떠오릅니다. 웅진그룹을 세운 윤석금 회장입니다. 그분은 1971년 대학 졸업 후 그의 첫 사회생활을 한국브리태니커에서 외판사원으로 시작하였는데 1년 만에 전 세계의 판매왕으로 올랐습니다. 그분과 함께 신화처럼 따라다니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그분의 뛰어난 능력에도 기인했겠지만 그만큼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인기도가 우리나라에서 높았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윤석금 회장은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식 출판을 전문으로 하는 웅진씽크빅과, 외판에 혁신을 일으킨 방문판매 정수기 회사인 웅진코웨이를 세워 그룹을 일구었습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판매하던 그분의 사회 첫 경험이 그의 인생과 사업 방향을 결정한 것입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18세기 말인 1771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3명의 출판 인쇄업자에 의해 3권의 백과사전으로 세상에 처음 나왔습니다. 그 후 주인이 바뀌어 가며 지식과 정보의 업데이트로 권 수를 32권까지 늘려가며 250여 년 가까이 전 세계의 영어 백과사전 중 최고의 사전으로 군림해왔습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이 정의하는 백과사전(百科事典)은 그 단어에 나타나 있듯 "지식 전반에 관한 정보를 담고 있거나 특정 분야의 지식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는 참고서"입니다. 보듯이 백과사전의 키워드는 '지식'인데 그 지식의 객관성과 주관성을 다 담고 있는 책이라 하겠습니다.


사실 백과사전 편찬은 철학을 비롯한 여러 학문이 성행했던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시도한 작업이었습니다. 이어서 종이가 발명되고 활자와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인류는 백과사전의 필요성을 더 크게 느끼게 되었을 것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역사적 사실은 늘어나고 인간이 습득한 지식과 정보는 많아지는데 그것을 한 곳에 모아서 기록하지 않으면 먼지처럼 흩어지고 날아갈 테니 말입니다.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고 공부하는 동물인 호모 아카데미쿠스라 어느 시대든 그런 생각을 하는 지식인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면서 백과사전은 점점 근대적 의미의 백과사전으로서의 틀을 갖춰가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 식자, 또는 현자들은 그 사실과 지식, 그리고 정보를 끌어모아 기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들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깨우치게 되기를 희망하게 됩니다. 소수에게만 허용되었던 닫힌 지식의 시대에서 열린 지식의 시대로 나아가는 데에 앞장선 것입니다. 우리는 서구 역사에서 이 시기를 계몽주의의 시대라 부릅니다. 그리고 그때 그들이 주도하는 '백과전서파(百科全書派)'가 출현하게 됩니다. 인류 역사의 시계가 그렇게 절묘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백과전서파에 의해 만들어진 <백과전서>의 표지, 1772(추정)


백과전서파, 과거 이들의 존재를 처음 알았을 때 가장 먼저 든 저의 생각은 "아니, 백과전서에 웬 파(派)?"라는 것이었습니다. 위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 보았듯, 그리고 요즘에도 그렇듯 이런 일은 출판과 인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것인데 거기에 무슨 문예사조나 예술집단처럼 '파'가 붙어있기에 들었던 생각이었습니다. 무슨 고전파, 낭만파처럼 말입니다. 제가 그 파를 더 들여다볼 수밖에 없던 이유였습니다.


백과전서파는 말 그대로 18세기인 1751년에서 1772년까지 20여 년에 걸쳐 <백과전서>를 만든 프랑스의 지식인 그룹을 말합니다. 이 지식인 그룹은 당시 지식 사회를 주도했던 계몽사상가들을 지칭합니다. 역사상 모든 것에 쌍벽인 영국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이 프랑스인들보다 17년 늦은 1768년 그 작업에 착수해서 3년 후에 3권의 분량으로 출간되었는데 이 백과전서파의 영향을 받아서 작업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다른 점은 영국의 그 백과사전은 학자나 사상가 등 지식인 그룹이 주도한 것이 아닌 위에서 설명했듯 출판과 인쇄업자들이 주도해서 만들었다는 사실입니다. 프랑스의 백과전서파만큼의 역사적인 의미가 없는 이유입니다.


그래도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역사적인 유물로 남은 프랑스의 백과전서파가 만든 <백과전서>와는 달리 이후 현대까지 롱런 브랜드가 되어 지구촌 곳곳의 서가를 장악하였습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을 깨우치자는 계몽사상가들의 철학이 들어간 백과전서파의 그 역할을 실제에서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이 한 것입니다. 프랑스의 <백과전서>를 모방해서 만든 후발주자지만 영어를 세계 공통어로 만든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힘이라 할 것입니다. 물론 계몽주의의 성경으로 불린 프랑스의 <백과전서>도 당대인 18세기엔 그 지명도로 인해 유럽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해적판을 포함해서 약 4만 질이 판매되었다고 하니까요.


진리의 신전을 배경으로 한 <백과전서>의 1권 권두화. 뮤즈들은 각각의 학문을 상징함. 이성이 진리의 뮤즈 베일을 벗기고 있음. 동시에 진리의 빛이 뻗어나가고 있음.


백과전서파가 만든 <백과전서>의 풀 네임은 <백과전서, 또는 과학.예술.직업의 합리적 사전(Encyclopédie, ou Dictionnaire raisonné des sciences, des arts et des métiers)>입니다. 디드로와 달랑베르, 이 두 사람이 주축이 되어 루소, 볼테르, 몽테스키외, 콩디악, 케네 등 당대 프랑스의 저명한 학자와 사상가 150여 명을 동원하여 <백과전서>라는 방대한 지식 사업을 펼친 것입니다. 루소는 400여 편, 볼테르는 40여 편에 달하는 글을 무보수로 썼다고 합니다. 이들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본인의 주종목인 지식과 학문 영역의 내용을 분담해서 작성해 디드로와 달랑베르에게 원고를 넘겼을 것입니다. 이름값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다 보니 중도에 잡음이 생겨 이탈자도 많았지만 그래도 이들은 본문 17권, 도표 11권 등 28권의 방대한 백과전서를 1772년에 완성하게 됩니다. 인류의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이들이 편찬한 <백과전서>는 단순히 지식을 나열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이성과 합리성을 중시하는 계몽주의자들답게 당시 부조리한 권력인 왕정과 비과학적인 신학과 기독교에 대한 비판적 시각으로 내용을 채워갔습니다. 그래서 중도에 정부로부터 발행금지 처분을 받기도 했습니다. 시대에 맞서서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들이 모여 이렇게 지난한 과정을 거쳤기에 역사는 이 저술자 그룹을 백과전서파라 부르는 것입니다. 스코틀랜드의 신사회 모임에서 출발한 영국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백과전서>였습니다. 백과전서파가 <백과전서>를 완성하고 17년 후인 1789년 구체제(ancien régime)를 타도하자는 프랑스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시대를 변화시킨 사람들과 그 작업물이 만든 위대한 결과였습니다.


평생 <백과전서> 편찬에 매달린 계몽주의 사상가 드니 디드로, Denis Diderot, 1713~1784


하지만 그렇게 큰 영향력을 끼친 백과전서이든, 백과사전이든 그것의 수명이 다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것들의 사전적 정의는 '그런 그런 지식들이 담긴 책'일진대 그 정의 중 '책'이 사라진 것입니다. 우리의 사고 속에 책은 종이로 만들어져야 하는데 그 종이 백과사전이 사라졌습니다. 세계를 휩쓴 백과사전의 대명사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2012년 244년간 쉬지 않고 돌아가던 인쇄기를 세웠습니다. 온라인 세상이 열리면서 수익성이 악화되어 시대의 종말을 고한 것입니다. 지금 그 백과사전을 포탈에 검색하면 중고 판매 시장에 쌓여있는 매물만 잔뜩 올라옵니다.


2000년대 초반 저는 당시 NHN이라 불리던 회사의 패밀리 브랜드인 네이버의 새로운 서비스, '지식인' 광고 론칭을 위해 강남구 파이낸스 빌딩에 위치한 그 회사의 회의에 참석하고 있었습니다. 제 앞엔 그 회사의 설립자인 이해진 당시 CEO가 금테 안경을 만지작 거리고 눈 바로 위까지 내려온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지식인' 서비스에 대해 예의 찬찬히 조용하게 설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광고주의 대장이었고 저는 당시 네이버의 광고대행사인 오리콤의 책임자였습니다.


2002년 그렇게 대대적인 광고와 함께 론칭한 네이버의 '지식인' 서비스는 회사에 대박을 안겨주어 포탈 서비스의 키 팩터를 검색 서비스로 못 박아 당시 경쟁사였던 다음에 앞서 나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식인(人)'이 '지식인(iN)'으로 화려하게 변신하여 '검색' 하면 네이버라는 등식을 만든 것입니다. 당시 저희가 제시했던 슬로건은 '지식까지 찾아주는 검색'이었습니다. 이 서비스는 이후 저도 지금 노트북 자판을 두들기며 번갈아 검색을 하는 '지식백과'와 '지식인'으로 분화된 듯합니다. 서가에 꽂혀있던 종이 백과사전이 이렇게 온라인 세상으로 진화되어 들어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의 키워드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지식'입니다.


이윤지를 모델로 한 네이버 지식인 론칭 인쇄 광고(2002), 이후 한가인, 봉태규, 이완 등의 모델이 출연하며  캠페인을 이어감.


방대하고 무거운 종이 백과사전은 사라졌거나, 사라져 가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백과사전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우리는 컴퓨터의 인터넷 속으로 들어간 백과사전을 펼쳐보고 있습니다. 과거엔 모르는 내용을 확인하고, 특정한 자료를 찾으려면 책을 구입하거나 도서관을 가야 했습니다. 그렇게 흩어져있는 지식을 따로따로 찾는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그것들을 한데 모은 백과사전이 만들어지고 필요도 했는데 이젠 그것에 편리함과 신속성이 크게 배가된 것입니다. 두드려라, 그러면 바로 찾아지니 말입니다. 기계와도 같은 검색 엔진이 그 작업을 해주고 있습니다.


사실 더 이상 종이 백과사전이 불가능한 또 하나의 이유는 그만큼 지식과 정보의 양이 늘어서도일 것입니다. 프랑스의 백과전서나 영국의 백과사전이 그 시대에는 가능했던 30여 권 안에 담을 수 있었던 지식과 정보를 지금은 권 수를 더 늘려도 감당할 수 없을 테니까요. 시간이 흘러갈수록 역사는 더 만들어지고, 세계는 구석구석 밝혀져 지식과 정보는 더 많이 쏟아지며, 인류의 영역은 지구를 떠나 우주와 예측 가능한 미래로까지 확장되고 있으니까요. 계속해서 내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차세대의 백과사전은 어떻게 진화될지 궁금합니다. 세상의 모든 지식이 들어있다니 백과사전에 물어보면 답해주려나요?



과거엔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호모 엔사이클로피디아쿠스(Homo Encyclopediacus)족입니다. 그때 그들은 백과사전과 경쟁 관계를 유지하며 존재감을 과시하며 생존을 이어갔습니다. 사람들은 크고 무거운 백과사전을 들고 다닐 수 없으니 궁금한 사항이 발생할 경우 곁에 있는 그들에게 의존을 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딜 가든 나름 환영받는 존재였습니다. 물론 잘못된 지식을 제공하거나, 잘 알지 못하면서 아는 척을 할 경우 그 신뢰관계는 여지없이 깨지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 백과사전족이 어느 순간 우리 주변에서 사라졌습니다. 종이 백과사전과 운명을 같이 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그들을 찾지 않습니다. 손에 쥔 스마트폰만 열면 그들이 얻고자 하는 지식과 정보가 깨알 같이 쏟아지니까요. 그래서 호모 엔사이클로피디아쿠스족은 침묵 속에 살고 있습니다. 존재감 제로를 향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백과사전과의 경쟁은 나름 되었어도 네이버와 같은 검색 포탈과는 경쟁이 안 되니 말입니다. 더구나 인공지능까지 출현하니 그들의 생존은 더욱 힘들기만 한 현실입니다. 백과사전과 함께 멸족 위기에 있는 그들의 운명 또한 앞으어떻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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