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지도 보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종이 위에 펼쳐진 세상을 보며 각 대륙과 대양, 산과 강, 국가와 도시 등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 흥미로워서 그랬습니다. 제가 본 지도 위 주요 목록엔 세계 각국의 수도를 비롯하여 당시 배우고 독서했던 역사적 유적지와 위인들의 행적이 있는 곳들도 포함되었습니다. 어린 마음에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컸지만 당장 갈 수 없는 곳들이기에 지도로나마 그 가고픈 마음을 해소했나 봅니다. 그때 지도를 보고 있노라면 다른 책에서 본 그 지역의 실제 모습이 마치 영화 <해리 포터>에 나오는 신문 속 사진 영상처럼 스르르 생성되곤 했습니다. 화려한 빌딩 숲의 도시가 보이고, 고색창연한 유적지가 모래 바람 속에 나타나곤 했습니다. 그리고 이내 저는 그곳을 여행하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곤 했습니다. 지도 위 행복한 여행자가 된 것입니다.
이렇게 전 지도로 상상여행의 기술을 개발하고 실행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 퍼뜩 깬 저는 현실로 돌아오게 됩니다. 부엌에 계신 엄마가 밥 먹으라고 방 안 책상에 앉아 상상여행 중인 저를 불렀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깨면서 그때 전 결심을 하곤 했습니다. 이다음에 커서 어른이 되면 지도 위 제 눈에 밟힌 그곳들을 꼭 가보겠노라고 말입니다.
상상여행의 도구인 중학교 교과서 지리부도, 유럽편
그때 제가 보던 지도는 지리부도라 불리며 처음부터 끝까지 지도만 있는 교과서였습니다. 그 책은 다른 교과서들과는 달리 책의 사이즈도 크고 전 페이지가 다 총천연색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래서 값으로 치면 교과서 중에 가장 비쌌을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위치의 정교함도 떨어지고 그래픽도 촌스러웠는데 이상하게도 그땐 그 책 속의 지도가 벽에 붙은 커다란 세계 전도보다도, 그리고 한 단계 진화하여 둥근 지구본 위에 떠있는 지도보다 더 손에 잘 맞고 눈에 익숙하게 들어왔습니다. 각 페이지마다 한눈에 보기 쉽게 지역별로다양한 지도가 놓여 있어서 그랬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리부도는 상상여행의 기술을 발휘하기에도 편리했습니다. 책을 펴면 누워있던 상상여행의 도시가벌떡 일어나는 팝업북처럼 되곤 했으니 말입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지도 보는 것을 여전히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와 같은 목적으로 보는 것이 한 가지가 더 생겼습니다. 바로 신문이나 각종 인쇄물에 나오는 여행사 광고입니다. 여행사 광고는 어느 여행사이든 일정한 포맷과 레이아웃으로 광고를 내서 사실 광고적으로는 별 시선을 끌지 못하는 정보 전달형 광고가 주류를 이룹니다. 명색이 광고를 하는 사람이라 크리에이티브한 인쇄 광고에 눈이 가야 하는데 천편일률적으로 똑같은 여행사 광고에도 시선을 빼앗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여행사 광고 중 제가 가고 싶은 지역의 상품이 보이면 그 아래 간략 일정표에 적힌 도시들을 따라 저도 함께 따라가곤 합니다. 그러면 제 머릿속엔 가보진 않았지만 과거 어린 시절 접한 지도부터 내공을 쌓아 업그레이드된 그 도시들의 모습이 살아나 마치 제가 그곳을 여행하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지도와는 다른 상상여행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제겐 두 가지 상상여행의 기술이 있습니다. 하나는 어린 시절 지도 위에서 발휘했던 기술이고, 또 하나는 어른 시절 여행사 광고에서 발휘하고 있는 기술입니다. 어른 시절이 지속되고 있는 최근 2년 간은 코로나로 인해 그런 여행사 광고들이 사라져 상상여행의 기술을 발휘할 기회가 별로 없었습니다. 또한 그간 정기적으로 저의 집에 배달되던 저의 최애 여행 정보지도 끊겨 이런저런 상상여행의 소스가 많이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일상의 가벼운 즐거움이 그간 사라졌던 것입니다.
최근 들어 코로나의 터널이 끝나가서인가 신문이나 TV에 여행사 광고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하여 반갑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반가움도 그렇지만 그간 심하게 어려움을 겪었던 여행업계와 관광업계가 다시 기지개를 켜는 것 같아 그 반가움이 더욱 큽니다. 코로나로 인해 얼마나 많은 여행사와 인력들이 사라지고 이탈을 하였을까요? 부디 모두 정상으로 회복되어 과거처럼 다시 돌아오기를 기원합니다. 우리나라 국가적으로도 중요한 여행 산업이고 관광 산업입니다. 이렇게 겨우 빠져나오고 있는데 부디 우리 앞에 길고 어두운 코로나 터널이 또 나오지 않게 되길 바랍니다. 가나 했더니 다시 또 오는 듯해서 매우 염려스럽습니다.
상상여행을 가능하게 하는 여행사 신문광고
우리나라는 1989년이 돼서야 해외여행이 자유화되었습니다. 물론 그 전에도 해외여행이 안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여행을 가려면 자유스럽지 않은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만 했습니다. 개인이 하는 여행에도 요즘으로 치면 국정원이 개입했으니까요. 그랬던 나라가 여행의 빗장이 한 번에 풀린 것입니다. 1988년 치뤘던 서울올림픽의 힘입니다. 그리고 1993년 문민정부가 들어서며 우리 국민의 해외여행은 가히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그 정부가 내세운 기치의 No. 1이 '세계화(Globalization)'였으니까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세계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반인의 여행은 물론 기업의 해외 연수가 붐을 이루던 시절이었습니다.
이렇게 외화를 써대어서 외환 부족으로 1997년 IMF라는 초유의 국가 부도 사태를 맞이했지만 당시 이루어졌던 젊은 세대의 기업 연수와 배낭여행, 그리고 일반인의 해외여행으로 우물 안에만 살던 우리는 세계 속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글로벌한 세계시민(Cosmopolitan)으로 탈바꿈한 것입니다. 그간 우린 외화를 써댄 당시의 연수와 여행을 IMF를 오게 한 원인 중의 하나라고 비난했지만 그것에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다는 것을 부정하기 힘들 것입니다. 당장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부터도 그것의 수혜자라고 생각을 합니다. 물론 우리가 IMF를 신속하게 잘 극복하였기에 오늘에 와서 이렇게 긍정적인 측면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듯 그땐 절대적으로 맞았지만 지금은 틀린, 또는 그땐 절대적으로 틀렸지만 지금은 맞는, 그러한 절대적 단정에서 비롯되는 역사의 오류나 아이러니를 우린 종종 목도하곤 합니다.
그런데 상상여행을 통해 제가 눈으로 밟은 도시들 중 전 지금 얼마나 많은 곳들을 실제로 여행했을까요? 글쎄요..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제 또래로 볼 때 그렇게 많지도 적지도 않은 곳들을 다녀온 듯합니다. 물론 아직도 안 가본 곳들이 훨씬 많기에 기회가 되는 대로 더 많은 곳들을 가게 되길 희망합니다. 물론 이것은 비단 저뿐만 아니라 여행을 좋아하는 모든 사람들의 희망일 것입니다. 문명화된 지역이라면 전 세계 어디든 구석구석 다 가고픈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 그런데 오지여행은 모험심이 부족해서인가 저의 흥미와는 거리가 좀 있습니다. 비위가 약한 것도 이유가 되려나요? 물론 그 사이사이 저의 상상여행도 계속될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전 신문의 여행사 광고를 보며 그런 여행의 기술을 발휘했으니까요. 일본 홋카이도였습니다. 무더운 여름 날씨의 영향을 받은 듯합니다.
국내에도 많은 팬을 보유한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이라는 책엔 제가 이 글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상상여행과도 같은 에피소드가 등장합니다. 이 책은 그가 여행에 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여행 단계별로 그다운 난해함과 현학적인 스타일로 풀어간 수필집입니다. 제가 이곳에서 전에 쓴 <공항의 미아>에서도 소개하고 다른 목적으로 인용도 했던 책입니다. 지금 제 글의 제목인 <상상여행의 기술>은 그의 <여행의 기술>을 패러디했음이 눈에 보일 것입니다. 사실 전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The Art of Travel)>에서 Art의 번역을 기술이 아닌 예술로 하는 것이 더 맞지 않나라는 의견을 그 글에서 피력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발휘하는 여행의 기술과는 전적으로 다른 여행의 예술을 그는 책에서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여행의 기술>에서 알랭 드 보통은 1884년에 출간된 J. K. 위스망스의 소설 <거꾸로>에 등장하는 데제생트 공작의 이야기를 인용합니다. 파리 근교에 사는 그 공작은 일전에 네덜란드 여행 시 대단한 실망을 하고 돌아온 염세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여행 간 네덜란드가 테니르스, 얀 스텐, 렘브란트, 오스타데 등 17세기 네덜란드와 플랑드르의 화가들이 묘사한 모습과 같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아서 실망을 한 것입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아침 찰스 디킨스의 소설을 읽다가 갑자기 런던을 여행하고 싶어 하인들과 짐을 바리바리 꾸려 파리로 갔습니다. 공작의 외유니 꽤나 많은 짐이 그와 함께 따라갔습니다. 파리 역에 도착한 그는 런던 방향의 기차 시간이 남아 시내에서 런던 분위기가 물씬 나는 와인바와 선술집을 차례로 들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본 런던스러운 여러가지를 목격하며 그는 여행을 가기도 전에 권태에 빠지게 됩니다. 이렇게 안락하게 의자에 앉아서 런던을 경험할 수 있는데 실제로 여행을 하면 얼마나 피곤할까라는 생각이 그를 엄습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 많은 런던 여행 보따리를 다시 챙겨 뒤도 안 돌아보고 반대편 선로의 기차를 타고 그의 별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곤 이후 두 번 다시 집을 떠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내용은 다르지만 네덜란드에 이어 연타로 여행 실패를 경험한 그였습니다. 대신 그는 그의 방에 여행에 대한 기대감을 최대한 주는 물건과 소품으로 실내를 장식했습니다. 그 안엔 주요 선박회사의 항해 일정표도 포함되어 있어 그는 그것을 액자에 넣어 침실에 한 줄로 걸어놨습니다. 그리고 그는 "상상력은 실제 경험이라는 천박한 현실보다 훨씬 나은 대체물을 제공할 수 있다"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데제생트 공작은 이런 방법과 신념으로 안락한 방 안에서 실제 여행보다 효용성이 더 큰 그만의 상상여행을 즐긴 것이었습니다. (출처 : <여행의 기술> / 알랭 드 보통 지음 / 정영목 옮김 / 청미래 출간)
데제생트 공작의 상상여행 룸에 늘 세팅되어 있을 것만 같은 여행 도구들 (출처, pixabay)
아, 상상여행이라는 말은 알랭 드 보통이 사용한 용어는 아닙니다. 제가 그저 이 글에서 상상해서 쓰고 있는 용어입니다. 사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데제생트 공작처럼 우리도 기대감을 잔뜩 품고 간 여행지에서 때론 실망감을 느끼곤 하니까요. 어렵게 시간을 내고 비용을 들여서 기껏 간 여행지가 출발 전 상상여행에서 보이던 것보다 못 해서 그랬을 것입니다. 그래도, 그렇다 하더라도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여행은 직접 가서 보고 체험해야 제 맛일 것입니다. 상상여행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실제 여행과는 비교가 될 수 없을 테니까요. 그래서 우린 여행을 떠나곤 합니다. 늘 설렘과 즐거운 마음을 갖고 말입니다.
<여행의 기술> 책에서도 알랭 드 보통은 그가 호출한 데제생트 공작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떠납니다. 그를 인용은 했지만 그의 생각과 행동에 동의까지 한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런던의 12월 어느 날 오후 그에게 날아온 광고 전단지 속 사진 한 장을 보고 그는 여행을 결심합니다. 사진 속 바람에 살짝 기울어진 야자나무가 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에 신기해하며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그가 간 여행지는 겨울 태양이 빛나는 카리브해의 아름다운 섬 바베이도스였습니다.
알랭 드 보통에게 날아온 광고 전단지 속에 있을 것만 같은 야자수 나무 (출처, pixabay)
"세계는 한 권의 책이다. 여행하지 않는 사람은 그 책의 한 페이지만 읽는 것과 같다" 이 격언은 초대 교회의 철학자인 성 아우구스티누스(354~430)가 한 말로 알려져 있습니다. 세계를 책에 비유했으니 세계를 여행하는 것은 공부를 하는 것과 같다는 말일 것입니다. 그러니 아우구스티누스 가라사대 부지런히 여행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살았던 4, 5세기의 세계는 오늘날보다 훨씬 협소했습니다. 그 시대엔 아메리카 대륙은 존재조차 몰랐고 아시아나 아프리카도 지금과는 달리 지엽적으로 알고 있었을 테니까요. 그러니 세계가 훨씬 더 넓어진 현대에 살며 여행하지 않는 사람은 그와 같은 셈법으로 계산하면 그나마 그 책을 한 페이지도 다 안 읽게 되는 것입니다. 그 옛날보다 더 시대에 뒤처지는 무지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아, 그런데 세계가 그때보다 넓어는 졌지만 지금은 여러 소스와 미디어를 통해 여행을 안 가도 상상여행이 가능하니 꼭 그런 것만도 아니겠네요.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살던 시대엔 안 가본 곳의 모습이나 풍경은 거의 상상이 안 되었을 테니까요. 즉, 세계가 넓어진 만큼 상상여행의 기술로 가보지 못한 곳도 어느 정도는 커버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의 말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등가적으로 유효하다 할 것입니다. 세계는 한 권의 책이고 여행하지 않는 사람은 여전히 그 책의 한 페이지만 읽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 let's tour the 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