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14일 밤, 대학로에서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모를 기억이 가물가물한 그곳의 연극을 보고 집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부터 바삐 폰을 열고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방금 전 이음아트홀에서 본 연극의 감흥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도이지만 주말 원고 마감 시간이 촉박해서도 그렇습니다. 아마도 집 노트북에 써놓은 원고는 지금 이 원고에 밀려 다음 주말에 나가게 될 것입니다. 이 글이 시점을 요하므로 제 머릿속엔 이미 그렇게 정리가 되었습니다. 위의 연극 대사와도 같은 인용 글은 오늘 연극 무대에서 들었지만 연극 대사는 아닙니다.
조금 전에제가 본 연극은 상업 연극이 아니었습니다. 약 2개월 전인 지난 5월 20일 타계한 비영리 법인 '행복공장'의 설립자인 고 권용석 변호사를 추모하는 연극 행사로 그의 가족과 지인들이 연극의 관객들이었습니다. 저는 그의 고교 친구로 다른 동기들과 함께 참석을 하였습니다. 추모 방법으로 연극을 선택한 것은 연극이 현장에 가까이 와있는 관객에게 전달되는 메시지의 힘이 스크린이나 모니터 등의 미디어를 통해서 전달되는 것보다 압도적으로 커서이기도 하지만 추모 대상자인 권용석 변호사의 아내인 노지향 씨가 '연극공간 해'의 대표이기도 해서일 것입니다. 그녀는 그간 치유 연극이라 불리는 연극의 지도와 연출을 통해 낮은 곳에서 고립되고 억압받는 사회 약자들을 치유해왔습니다. 그녀가 그렇게 해 온 방식으로 떠나간 남편의 추모식을 거행한 것으로 보입니다.
행복공장 설립자 권용석 변호사의 생전의 모습
강원도 홍천에 있는 행복공장은 권용석 변호사가 검사 시절 인간의 근원적인 행복에 대해 고민하며 변호사로 전업한 후, 그가 생각하는 행복을 생산하기 위해 긴 시간 각고의 노력 끝에 건립한 수련원입니다. 그곳에선 오픈 후부터 성찰과 나눔을 주제로 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특히 그가 행복을 주고픈 사람들은 자라나는 청소년들과 사회 약자들이었습니다. 이렇듯 행복공장이든 치유 연극이든 이들 부부의 키워드는 언제나 인간의 행복이었습니다. 아, 지금도 그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이렇게 행복이 결핍된 계층의 행복을 위해서 부창부수(夫唱婦隨)와 부창부수(婦唱夫隨)로 살아온 그들 부부였습니다.
행복공장과 권용석 설립자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는 제가1년 전 그곳을 방문한 후 작성해 이곳 브런치에 올린 <행복을 만드는 공장>이라는 글에 들어 있습니다. 지금 쓰는 글이 <행복을 만드는 공장 2>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당시 썼던 글을 아래 파일로 소개합니다.
행복을 만드는 공장 https://brunch.co.kr/@kay68/74
추모 행사의 메인 이벤트인 연극은 매우 독특했습니다. 행복공장 권용석 설립자를 기억하며 <나의 이야기 극장>이라는 타이틀로 무대에 올린 연극이었는데 그것은 제가 생전 처음 보는 형식의 연극이었습니다. 흔히 연극의 3요소라 하면 희곡, 배우, 관객을 이야기하고 하나 더 덧붙이면 무대까지 들어가는데 이 연극엔 대본인 희곡이 없었습니다. 말 그대로 배우들이 즉흥으로 펼친 연극이었습니다. 나의 이야기라는 제목도 주인공인 권용석 변호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온 관객을 이르는 말이었습니다. 연극은 권용석 변호사를 잘 아는 지인이 나와 그에 대한 추억을 구술로 회고하면 그 내용을 경청한 4명의 배우가 스토리를 구성해 연극을 꾸미는 형식입니다. 즉 관객의 참여 하에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희곡으로 자동 전환되어 연극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권용석 변호사의 추모 연극 무대인 <나의 이야기 극장>, 2022. 7. 14, 대학로 이음아트홀
놀라운 것은 배우들이 사전 미팅없이 그 지인의 권용석 변호사에 대한 에피소드를 듣자마자 바로 연극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믿을 수 없이 정교해 사전에 맞추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기승전결이 완벽하게 짜인 연극을 보여줬습니다. 게다가 거기에 소품과 소도구도 활용하며 실제보다 과장된 연극적인 화법과 몸짓으로 연극만이 줄 수 있는 참 맛을 구현해주었습니다. 이날 1시간 반에 걸친 연극에서 4명의 지인 관객이 권용석 변호사와 얽힌 그의 추억담을 들려주었으니 저를 포함한 관객들은 4편의 옴니버스 연극을 본 것입니다.
에피소드를 구술한 지인의 슬픈 추억의 연극에선 눈물을 쏙 빼고, 재미있는 추억의 연극에선 웃음을 지어 추모 행사는 순간 축제와 같기도 했습니다. 어쩜 4명의 여배우들은 따로 순서와 배역을 정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 완벽한 순간 연극을 만들어내는지 그저 놀랍기만 했습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합을 맞추어 눈빛만 봐도 아는 것이 아니라, 눈빛을 안 봐도 알 수 있는 경지에 오른 그녀들로 보였습니다. 실제로 그녀들은 관객석을 보고 한 일자로 앉아서 경청을 하고 연기를 바로 시작하기에 서로 간에 눈빛을 볼 수도 없습니다. 행복공장 권용석 설립자의 추모 행사를 완벽하게 만들어준 배우들의 열정과 연기력에 감사를 드립니다.
권용석 변호사의 지인이 그와의 추억을 회고하면(상) 그것을 즉석에서 연극으로 만들어내는 배우들(하)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이라는 유형의 스스로의 것을 남기지만 사람은 그렇게 남기는 것이 한 톨도 없습니다. 그를 지칭했던 동격인 이름 석자만이 남을 뿐이지요. 그대신 사람은 그가 생전에 그의 신체 외부에 이룩한 업적과 유의미한 흔적을 남기곤 합니다. 그렇게 유산이 된 것들에 그 사람 이름이 찍히는 것이지요. 물론 호랑이는 모두 가죽을 남기지만 사람은 모두 그런 유산을 남기는 것은 아닙니다. 권용석, 그는 사후 이렇게 행복공장이라는 유산과 이 사회에 나눔과 성찰이라는 유지를 남겼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지는 얼마 안 됐지만 오늘밤 추모식에서 저는 생전보다 더 커진 그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그 자리에 참석한 다른 모든 분들도 느꼈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의 이름이 커졌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그가 남긴 행복공장도 말입니다. 우리 사회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입니다.
"꽃그늘 아래 생판 남인 사람 아무도 없네" 연극 대사와도 같은 이 글 제목 아래 이 문장은 그가 올봄이 오기 전 아내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집 앞 산책 길에서 아내에게 들려준 시입니다. 추모 연극이 끝난 후 모인 추모객들은 영상을 통해 권용석 변호사의 생전 모습과 육성을 보고 들었는데 그 영상에 이 시를 읊는 그의 모습이 나왔습니다. 마쓰오 바쇼, 요사 부손과 함께 일본 막부 시대 3대 하이쿠 작가로 꼽히는 고바야시 잇사(1763~1827)의 시를 그가 인용한 것입니다. 하이쿠는 한 줄도 길다고 할 정도로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로 불리는 일본 고유의 시 양식을 가리킵니다. 세상을 떠나가는 날까지도 그가 없는 세상에 꽃그늘을 만들고 싶어 그는 남겨진 아내에게 이 시를 들려줬나 봅니다. 그 그늘 아래에 있으면 전혀 모르는 사람조차도 친구가 되고 동지가 되니까요. 그가 꿈꾸던 행복한 세상입니다.
추모행사 영상에 등장한 권용석 변호사와 노지향 대표 부부 모습
아래 <천사가 된 검사>는 지난 5월 20일 친구 권용석의 부고를 듣고, 문상을 하고 돌아와, 오늘밤 제가 이 글을 쓰듯이 쓴 추모사입니다. 역시 이곳 브런치에도 올린 글입니다. 그 글을 오늘 그의 추모식을 기해 이 글에 덧붙입니다.
<천사가 된 검사>
그렇게 가지 않았으면 좋았을 친구가 천사가 되어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이곳에서도 소개한 제 글인 <행복을 만드는 공장>에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친구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그를 추모하는 글도 올립니다. 여전히 할 일이 많은 친구인데 너무 빨리 갔네요. 그의 머릿속에 차있는 많은 일들 중 절반도 못 하고 갔을 테니 말입니다. 잘은 몰라도 제가 아는 한 그 일들은 모두 세상을 밝히는 선한 일들이었습니다. 선한 싸움을 마치고 달려갈 길을 다 간 후에 갔어야 할 그가 이렇게 허망하게 일찍 간 것입니다. 더 행했어야 할 그의 선한 일들이 그가 죽음으로 인해 그만큼 세상에 행해지지 못한다니 그 점 또한 매우 아쉽습니다. 그는 그것을 안타까워하며 마지막까지 삶의 끈을 놓으려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잘났음에도 세상의 권세와 물욕에 초연했던 친구.. 그는 행복이 필요하나 행복해지기 힘든 사람들에게 행복을 만들어주는 사단법인 <행복공장> 공장장이었습니다. 불우하게 자라나는 청소년들과 세상에서 소외된 약자들이 그가 행복을 주고 싶어 한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느 날 홀연히 뜻한 바 있어 검은 검사복과 함께 높은 세상 것을 벗어던지고 낮은 자들에게 다가간 그.. 그렇게 천사표 변호사가 된 검사였는데 이젠 날개까지 달은 그는 진짜 천사가 되었습니다. 그를 집요하게 괴롭혔던 암세포는 사라지고 대신 그 자리에 날개가 돋아났습니다. 이 땅에서 그러했듯 그는 하늘에 가서도 그가 못 이룬 행복을 위해, 그리고 그의 분신 <행복공장>을 위해 계속해서열일하겠지요. 그래도 그곳에선 좀 평안히 쉬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