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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하 Jul 09. 2022

공항의 미아

바람과 함께, 스칼렛 & 여행의 기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아니고 <바람과 함께, 스칼렛>이란 책이 있습니다. 스칼렛이 바람과 함께 책 제목에 올라와있는 것으로 봐선 보는 순간 누구라도 떠올리듯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연관성이 있어 보입니다. 맞습니다. 이 책은 현재 유력 일간지에서 Books 팀장을 맡고 있는 G 기자(G 작가)가 쓴 아메리카 문학 기행 저서입니다. 당연히 비비안 리가 열연했던 그 소설의 여주인공 스칼렛 오하라가 살던 타라 농장과 작가인 마가렛 미첼이 살던 애틀랜타가 등장할 것입니다. 그렇게 G 작가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배경 지역들을 여행하며 소설 속 여주인공들을 만난 그녀의 감상과 소회를 원작의 원문과 비교하며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메리카 문학 기행이라지만 G 작가가 선정한 소설들은 거의 모두 서부 개척 전 올드 아메리카 지도에 위치한 동부와 남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서부의 경계선이었던 미시시피 강변 우측에 살던 여주인공들을 주로 찾아서 순례한 것입니다. 21세기 초 그녀는 그곳들을 비행기와 버스 등을 타고 다녀왔지만 그녀의 책을 읽은 저는 마치 흙길 위를 마차를 타고 마부 뒤에 다소곳이 앉아 과거의 아메리카여행하고 온 듯했습니다. <에반젤린>, <작은 아씨들>, <빨간 머리 앤>, <마지막 잎새>, <에밀리를 위한 장미>, <톰 소여의 모험>, <주홍글씨>.. 이 작품들의 고향을 말입니다.


G 작가가 그 책의 1번 타자로 선정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도시인 조지아주 애틀랜타엔 저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녀와는 달리 저는 책 속의 올드 아메리카가 아닌 모던 아메리카인 그곳을 갔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가며 제 머릿속엔 Cocacola, CNN, Braves가 먼저 떠올랐으니까요. 아, 올림픽도 있었네요. 1996년 그 해에 애틀랜타에선 올림픽이 열렸습니다. 전 대회가 열리기 바로 전 봄에 갔었습니다. 


불멸의 소설이 낳은 불멸의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포스터, 1939


마가렛 미첼의 생가까지 컬러 화보로 친절하게 보여주는 G 작가의 책을 당시에 읽었다면 저도 경각심을 가지고 그곳 그녀의 집을 방문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책에 등장하는 애틀랜타 주변의 찰스턴, 서배너, 존즈버러 등의 유서 깊은 남부의 도시들까지도 말입니다. 저도 어렸을 때부터 그런 트래디셔널하고 고풍스러운 역사가 스민 곳들을 꽤나 좋아하고 가고 싶어 하는 부류였으니까요. 하지만 공항을 나와서 제가 가장 먼저 갔던 곳은 애틀랜타 시내 한국 식당인 김치찌개집과 그때 미국에 갓 상륙해 교포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당시로는 최첨단 시설인 한국 노래방이었습니다.


제가 이 글에 고상한 G 작가의 문학적 소녀 감성 가득한 작품을 끌어들인 이유는 1년 전 4월 G 작가가 쓴 책 중 제목에 끌려 이 책을 손에 넣으며 동시에 저의 과거 전혀 고상하지 않았던 애틀랜타 에피소드를 떠올렸었는데, 그간 잊고 지냈던 노란 이 책이 오늘 아침 책꽂이에서 갑자기 보여서입니다. 동시에 그때의 기억이 살아나면서 다시 책을 손에 넣고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에 인과 관계가 없는 일은 없나 봅니다. G 작가의 이 책이 아무 이유 없이 보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제 저는 그때 애틀랜타에서 노래방에 저를 끌고 간, 지금도 미국에 사는 제 친구로부터 7월 중순에 서울에 들어온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평소엔 매직 아이의 이미지처럼 책꽂이에서 주변의 여러 책들과 함께 흐릿하게 묻혀 있던 이 책의 측면 제목이 오늘 아침엔 불쑥 선명하고 볼록하게 솟아오른 것입니다. 여기에 그간 글감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저의 심리적 압박감까지 합체되어 노트북이 스르륵 열리며 제 손은 지금 이렇게 자판 위를 부지런히 달리고 있습니다.


G 작가의 올드 아메리카 문학 기행 <바람과 함께, 스칼렛>


막상 이렇게 시작은 되었지만 이 글이 어디로 가서 어떻게 끝날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결말이든 결론이든 그것을 생각하고 시작한 글이 아니니까요. 인공지능(AI)이 발달한 시대라 음악, 미술 분야에선 기계가 그림도 그리고 작곡도 한다는데 문학 쪽에서 AI가 글까지 자동으로 쓰는 것이 가능한지는 모르겠네요. 검색해보니 작년에 AI가 장편 소설을 한 권 냈다지만 그 뒷얘기가 없는 것으로 보아 성과는 미진한 듯합니다. 현장에서 순간 판단 능력을 동적으보여주는 바둑의 AI 알파고와는 달리 인간의 살아있는 지능이 대필 작가처럼 개입해서 이미 만들어진 정적인 결과물이라서 그런가 봅니다. 요즘 메타 휴먼이 광고 CF에 모델로 출연하고 비주얼 가수로도 활동해서 돈까지 버는 시대가 되었으니 언젠가는 완벽한 AI 작가가 소설가나 에세이스트로도 활동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1996년 봄 제가 착륙한 애틀랜타 공항의 이륙지는 멜버른이었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대도시가 아니고 조지아주 아래 플로리다주 동부 해안가에 있는 소도시입니다. 우리나라 한반도를 얼핏 닮은 3면이 바다인 플로리다의 속초나 강릉 정도에 위치하고, 1시간 거리 내륙에 대도시인 올랜도가 있습니다. 당시 저는 그곳의 F 공대에서 연수 중이었고 애틀랜타 공항에서 만나기로 한 친구는 조지아주 위 테네시주의 녹스빌에 있는  T 주립대에서 유학 중이었습니다. 친구가 한국에서 왔으니 연수 중간 휴가 기간 중 만나기로 한 것인데 제가 있던 멜버른에서는 테네시주로 운항하는 비행기가 없어 그곳에서 가까운 중간 주인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만나기로 한 것입니다.


조지아주 애틀랜타 주변 남부 지도 (출처, 구글)


애틀랜타는 남부의 대도시답게 미국 남부의 하늘을 장악하고 있는 허브 공항입니다. 국제선은 델타 항공이, 국내선은 사우스웨스트 항공이 책임지고 있습니다. 미국 남부의 중소 도시들을 가려면 그 공항에서 로컬 비행기를 갈아타고 가는 시스템입니다. 동부는 뉴욕의 JFK, 중부는 시카고의 오헤어, 서부는 로스앤젤레스의 LAX, 중서부는 댈러스의 DFW가 그 역할을 하는 주요 허브 공항들입니다. 그런데 제가 도착한 애틀랜타 공항에서 위기가 닥쳤습니다. 제가 살면서 공항에서 겪은 가장 가장 난감한 일이 터진 것입니다. 공한 안에서 나홀로 미아가 되었습니다.


처음  그 공항에서 내려 친구를 만나기로 했는데 친구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공항이 너무 크고 복잡했습니다. 케네디, 레이건 등 한 사람의 닉네임을 가진 다른 미국의 주요 공항들과는 달리 하츠필드-잭슨 공항이라 불리며 두 명의 애틀랜타 시장이 개입한 공항이라선가 마치 두 개의 공항이 합체된 듯 그 공항의 크기는 제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착륙하자마자 지하철을 타고 출국장으로 이동하는 것도 당시로선 매우 신기하게 여겨졌습니다.


지금에야 영종도에 지어진 세계 최고 공항인 우리 인천공항에 익숙해서 세계 어느 공항을 가도 눈이 휘둥그레 해질 일이 없지만 당시엔 김포 공항 하나로 국제선도 처리하던 시절이라 애틀랜타의 그 공항은 마치 촌놈이 서울에 온 듯한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미국 입국 시 이용했던 뉴욕의 JFK 공항이 미국에서 가장 큰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애틀랜타의 그 공항은 그때나 지금에나 여객수와 운항편수 등에서 미국을 벗어나 세계에서 가장 큰 공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바람과 함께, 스칼렛>을 쓴 G 작가는 제가 미아가 됐던  공항에서 정확히 20년 후 친구와 무사고로 순조롭게 만나 남부 문학 여행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녀는 연수를 받던 뉴욕에서 출발했고 그녀의 친구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출발했다고 책에 쓰여 있습니다. 그때의 만남 소회를 그녀는 서울 "광화문과 서대문 일대를 무대 삼아 누비던 우리가 애틀랜타에서 만나다니!"라고 하며 격하게 감격해합니다. 저도 고교 시절 짝이었던 그 친구를 그곳에서 보면 인천 "신포동과 동인천을 무대 삼아 누비던 우리가 애틀랜타에서 만나다니!" 하며 감격을 누리려고 했는데 그가 그곳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테네시에서 유학하던 친구도 그 공항의 사정을 정확히 모르고 출국장에서 보자고 쉽게 약속을 한 것이 이런 위기를 초래한 것입니다. 공항이 커서 출국장이 하나가 아니었던 것이지요. 시간이 흐를수록 앞은 점점 더 캄캄해졌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로지 친구만 믿고 조지아나 테네시에 대해 아무 준비나 정보 없이 그곳에 간 것인데 그 친구가 없으니 말입니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1시간 가까이쯤 기다렸을까 이제 전 오지 않는 친구를 찾기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 했습니다. 친구도 공항 오는 길에 교통 체증이나 사고가 나지 않았다면 저를 찾기 위해 무엇인가를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제가 탄 비행기가 도착한 것을 그는 알고 있었을 테니까요.    


방송을 할 생각을 했습니다. 놀이동산이나 유원지에서 잃어버린 아이를 찾는 방송을 하듯 애틀랜타 공항의 방송 시설을 이용해서 친구를 제가 있는 위치로 오게 하는 것이 당시 처한 상황에서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을 한 것입니다. 다행히 공항 내 방송실은 쉽게 찾았습니다. 그곳에서 손짓 발짓을 곁들인 짧은 영어로 제 상황을 급하게 설명했는데, 생각해보니 제가 우리말로 친구를 찾는 방송을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란 생각이 들어 제가 직접 한국어로 하면 안 되겠냐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런데 저의 우려와는 달리 제복을 입은 금발의 공항 아나운서 여성은 쿨하게 그렇게 하라며 제게 마이크를 넘겨주었습니다.


졸지에 저의 음성과 한국말이 그 큰 애틀랜타 공항 구석구석에 울려 퍼졌습니다. 아마 듣고서 놀란 외국인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물론 그 공항에 다른 한국인이 있었다면 그들도 놀랐었겠죠. 무엇보다도 가장 놀란 사람은 그 공항 어딘가에서 저를 찾고 있던 제 친구였을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방송한 지 10분 여가 지났을까 친구가 제가 있는 곳으로 부리나케 왔습니다. 작전 성공입니다. 방송이라는 미디어의 힘입니다. 우리는 마침내 남북 이산가족이 만나듯 미국에서 반갑게 조우를 하였습니다.


오고 가는 여행객들로 늘 분주한 공항 대합실 (출처, pixabay)


사실 지금 생각하면 전 아찔한 방송을 한 것입니다. 그 공항의 아나운서야 좋은 마음으로 제게 마이크를 넘겨주었겠지만 신원이 확실치 않은 외국인이 그들이 모르는 그의 모국어로 방송을 한다는 것은 많은 위험성이 내포된 행동일 수도 있기에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영화 <다이하드 2>에서 처럼 공항을 장악하려는 악당들이 방송으로 그들만의 언어로 메시지를 전달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한 미국을 위협하는 반미 테러범들이 그들만의 암호를 방송을 통해 전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 공항에서 했던 외국인의 모국어 방송은 911 테러가 일어난 후 공항 경비와 보안이 강화된 다음부터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되었을 것입니다. 물론 당시에도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공항의 아나운서가 보기엔  상황이 하도 딱하고 표정도 절박해 보여 마이크를 내주었을 것입니다. 오래전 일이라 어렴풋이 떠오르는 그녀의 모습이지만 이 글을 통해 또 감사를 드립니다. 그만큼 당시 공항의 미아 사건은 저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든 위기였습니다.


철학자이면서 수필가이자 소설가이기도 한 현존하는 베스트셀러 작가 알랭 드 보통은 그의 저서 <여행의 기술>에서 여행의 출발부터 귀환에 이르는 모든 여정에서 그만이 느끼는 독특하고도 다양한 감흥들을 기술하며 그에게 그런 영감을 준 작가나 작품들을 매칭 시킨 에세이집을 출간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의 책에서 그를 따라다니며 위의 G 작가의 책과는 다른 독특한 여행을 하였는데 가면 갈수록 영어 원제인 <The Art of Travel>에서 Art의 해석을 기술이 아닌 예술(여행의 예술)로 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할 정도로 이 책은 예술적인 터치로 가득했습니다.


여행 시설인 공항도 보통의 눈엔 그런 예술성 가득한 장소로 보였습니다. 공항을 기술하며 그가 떠올린 작가는 보들레르와 T.S. 엘리엇이었습니다. 참으로 보통 사람과는 다른 복잡하고 현학적인 두뇌를 지닌 보통의 생각입니다. 일단 전 공항을 그렇게 갔어도 단 한 번도 어떤 유명한 작가를 떠올린 적이 없기에 그렇습니다. 이제야 한 명, 그의 책을 읽은 후엔 알랭 드 보통이라 불리는 작가를 떠올립니다.


여행의 예술이란 제목이 더 어울림직한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 2002 (국내, 2011)


<여행의 기술>에서 T.S. 엘리엇은 여행과 여행을 돕는 장소와 기계를 찬미한 보들레르를 낭만적 노스탤지어를 발명한 19세기의 예술가라 칭하며 그에 대한 에세이를 썼는데 작품에서 그는 항구, 부두, 역, 기차, 배 등에 끌린 보들레르의 시를 가리켜 '플랫폼의 시', '대합실의 시'라 지칭했습니다. 보통은 이런 T.S. 엘리엇의 표현에 격하게 동의하며 거기에 한술 더 떠 '휴게소의 시'와 '공항의 시'라고까지 덧붙였습니다. 그래서인가 그는 우울할 때면 기차나 버스를 타고 히드로 공항으로 가서 끊임없이 이착륙하는 비행기들을 보며 마음을 달래곤 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그 장소에서 그는 세상의 이기적인 편안함이나 습관, 그리고 제약과는 다른 어떤 것을 기대할 수 있어서라고 하였습니다. 공항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집착을 보여준 그였습니다.


결국 보통은 7년 후인 2009년 그가 가곤 했던 히드로 공항 대합실에 아예 보따리를 풀고 일주일 간 머물며 <공항에서 일주일을>이란 에세이집을 냈습니다. <여행의 기술>에서 공항만을 끄집어내어 공항 집중 탐구 에세이를 쓴 것입니다. 과연 진정한 공항 덕후인 보통입니다. 그는 그 책에서 공항에 관한 다양한 내용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역시 또 보통스럽게 특별하게 묘사했는데 만약 제가 애틀랜타 공항에서 했던 별스러운 방송을 그가 히드로 공항에서 들었다면 그것도 틀림없이 책에서 소개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정도로 그렇게 공항을 좋아하고 그곳에 정통했으니 그는 세계 어느 공항을 가든 저처럼 그곳에서 미아가 되거나 위기에 빠질 일은 절대로 없을 것입니다.


애틀랜타 공항에서 극적으로 만난 친구와 시내에 가서 늦은 점심을 먹고, 신상 노래방에 가고, 자동차로 달려 간 테네시주의 녹스빌 그의 집에서 3일 휴가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올 때와는 반대로 녹스빌에서 다시 애틀랜타 공항으로 가서 이번엔 입국장이 아닌 출국장을 통해 저의 연수지였던 멜버른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했습니다. 그곳 출국장 높은 대합실에서 전 눈 아래로 펼쳐진 드넓은 활주로를 바라보며 제가 탈 비행기를 기다렸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공항답게 활주로엔 빼곡한 비행기들이 분주하게 이착륙 중이었습니다.


그중 제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이륙하는 십여 대 이상의 비행기들이 활주로에 일렬종대로 줄을 맞추어 서서 대기하다가 순서대로 발진하며 쌔앵~ 하고 날아오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들 뒤로는 계속해서 다른 비행기들이 오리 새끼들이 앞 오리를 따라가듯 그 직선의 이륙 활주로를 향해 곡면의 활주로를 천천히 이동을 해 일렬종대의 꼬리에 가서 달라붙었습니다. 모두 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비행기들이라 다 같은 유니폼을 입은 군인들이 제식 훈련을 하듯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매우 장관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같은 공항이지만 도착했을 때의 불안했던 기분은 싹 사라지며 기분이 유쾌해졌습니다. 미국 남부의 파란 창공을 향해 쉴 새 없이 솟아오르는 비행기들입니다. 지금 생각하니 그때 그런 저의 기분은 알랭 드 보통이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끊임없이 이착륙하는 비행기를 바라보며 느낀 그의 기분과 동일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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