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인 멘델스존은 6개월에 걸쳐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햇살 좋은 그곳의 풍경과 예술, 그리고 사람들에게 흠뻑 빠져 회화적인 그 인상을 음악으로 남겼습니다. 그의 교향곡 중 트레이드 마크가 된 4번 <이탈리아>입니다. 3번 교향곡도 여행 후기인 <스코틀랜드>로 그는 이탈리아를 가기 1년 전 영국을 여행했습니다. 그에겐 메인 여행지였던 잉글랜드보다 북부 스코틀랜드가 음악적인 영감을 더 강하게 주었나 봅니다. 아, 그리고 그는 음악의 화가답게 여행지의 모습을 그림으로도 남겼습니다. 멘델스존은 니체가 본업인 철학으로 인해 그의 피아노 연주와 작곡 실력을 사람들이 덜 알아주듯 만만찮은 그림 실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그것은 요즘 말로 그저 부캐로 회자되던 르네상스맨이었습니다.
멘델스존 전에 그와 같은 어떤 독일인도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이번엔 그 감상을 그의 본업인 글로 남겼는데 그는 <파우스트>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잘 알려진 대문호 괴테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쓴 작품의 제목도 역시 그 여행지를 그대로 드러낸 <이탈리아 기행>이었습니다. 괴테는 1786년 9월부터 1788년 4월까지 그 나라를 여행하고 그 기록을 모아 1816년 순차적으로 그 책을 출간하였는데 최종 3부인 완결본은 1829년 발간되었습니다. 여행지의 기억이 남아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오래 걸려 완성한 책입니다. 과연 장고의 작가답게 그는 그의 대작 <파우스트> 완성에는 50년 이상이 걸려 죽기 1년 전인 1832년이 되서야탈고를 하였습니다.
멘델스존은 이탈리아 여행 전 친밀하게 지내던 노년의 이 대가를 방문하곤 하였는데 그로부터 이탈리아의 이곳저곳에 대한 설명을 충분히 들었을 것입니다. 사람은 대개 그가 직접 체험한 사실에 대해선 그것을 모르는 타인에게 열심히 전달하고픈 성향을 보이니까요. 하물며 박식한 작가는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윽고 1830년 멘델스존은 이탈리아 여행을 결행하는데 당시 그의 손엔 1년 전 출간되어 따끈따끈한 그의 여행 사부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완결본이 들려 있었을 것입니다.
멘델스존이 이탈리아 여행 시 그린 피렌체 정경, 1830
이탈리아는 이렇듯 과거 문인, 예술인 등이 꼭 여행하고픈 1순위의 나라였습니다. 과거 천년 넘게 최고의 문명국가였던 로마제국의 본토이니 충분히 그럴만했습니다. 현대에 와서도 이탈리아는 최고의 여행지로 그 장화 모양의 반도 이곳저곳과 도서에 사는 제국의 후손들은 조상을 잘 만난 덕에 앉아서 많은 관광 수입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제국의 심장이었던 수도 로마는 본래도 시끄러운 데다가 사시사철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늘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누군가 유럽 여행을 처음으로 간다고 하면 그 방문지 중 십중팔구까진 아니더라도 십중육팔은 이탈리아의 로마가 들어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마도 이번 코로나 기간이 로마의 역사상 가장 조용한 기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명성의 나라답게 저도 그간 이탈리아는 유럽의 다른 나라와는 달리 수차례 다녀왔습니다. 1990년대 중반 배낭여행으로 유럽을 처음 갔을 때에는 당연스레 그 주요 행선지에 로마가 들어있었습니다. 그리고 업무차 가장 최근에 갔던 2017년엔 밀라노에 머물면서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의 단초를 제공한 베로나를 처음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밀라노에서 2시간이 채 안 걸리는 가까운 곳이니까요. 그때 베로나를 관광하며 그 전엔 몰랐던 로마 시대의 유적지들과 13세기에 태어난 단테의 동상이 피렌체를 벗어난 그곳에 있는 이유도 알게 되었지만 누가 뭐래도 베로나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도시였습니다. 그곳엔 알려진 대로 줄리엣이 살았던 생가도 있으니까요. 그 커플이 처음 만난 캐플릿 가의 무도회가 열리고줄리엣이 나와있던 발코니가 달린 그 집이 베로나에 지금도 있는 것입니다. 하긴 줄리엣 집 근처 에르베 광장엔 지은 지 2천여 년이 지난 로마 시대의 집들도 여전히 줄지어 서있으니 중세 어디쯤 시대에 살던 사람의 집이 아직도 멀쩡히 있다는 것이 그렇게 놀라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 줄리엣의 집엔 로미오와 줄리엣을 꿈꾸는 전 세계의 연인들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물론 엔딩의 어이없고 슬픈 그들의 죽음까지 꿈꾸지는 않겠지요. 연인들은 로마 시대부터 존재해 온 유럽의 고도에 중세 로맨스의 대표 연인인 로미오와 줄리엣이 사랑했던 현장이 있는 베로나를 여행한다는 것만으로도 출발 전부터 매우 설레일 것입니다. 그것은 일반 여행객들도 마찬가지겠지요. 인간에게 있어 사랑과 낭만은 나이와 상관 없이 영원한 테마니까요.
그렇게 그곳에 온 사람들 중에 저를 포함해서 그 집이 진짜 줄리엣의 생가일까를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기는 하겠지만 그것이 그렇게 중요해 보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이탈리아를 방문한 적이 없는 영국의 셰익스피어가 지어낸 허구라는 것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그 집 역시 관광객을 불러 모으기 위해 베로나 시가 상술로 지정한 가짜 집이라는 것도 역시 잘 알지만 아름답고 슬픈 동화 같은 원작의 위대함으로 인해 사람들은 오히려 그것이 실화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곳을 방문할 것입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이 나와있던 발코니 (출처, pixabay)
전 세계 연인들이 몰려와서 붙인 letters to Juliet. 2017년 방문 시 발코니는 공사로 가림막이 쳐있었음
살면서 우리는 전에는 별 관심이 없던 어떤 것에 어느 순간 이상하다는 것을 느껴 그것의 진실성에 의구심을 표하곤 합니다. 이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을 확인 안 해도 사는데 아무 문제가 없으니 귀찮아질지도 모르는 일을 안 만들거나, 그가 아니어도 누군가 그것을 파헤치겠지 하며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의 기대대로 그것에 의구심을 가지고 그 진실성을 끝까지 파헤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도 처음엔 가벼운 의구심으로 시작한 일이지만 어느 순간 그 일은 그의 필생의 사업이거나 미션이 되기도 합니다. 생업까지 포기하면서 말입니다. 물론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은 아예 그것에 의구심 자체를 갖지 않고 본인도 모르게 지나칠 것입니다.
그렇듯 베로나에 와서 줄리엣의 생가를 보는 사람들도 이렇게 크게 세 부류의 사람들로 나뉠 것입니다. 원작자인 셰익스피어는 이탈리아를 단 한 번도 안 왔다는데 그 사실을 의심하며 진위 여부에 관심을 표하는 사람과 그 사실을 의심은 하지만 그냥 넘어가는 사람, 그리고 그 사실 자체를 모르는 사람 등으로 말입니다.
다행히(?) 그들 중에 이 문제를 진지하게 끝까지 파헤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이 세상에서 셰익스피어가 이탈리아를 여행했다고 믿는 사람들 중에 가장 강력한 확신과 근거를 가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리처드 폴 로(Richard Paul Roe)라 불리는 미국인으로 본업은 로스쿨을 나온 변호사였지만 어느 날부터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그는 30여 년 동안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셰익스피어의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셰익스피어가 베로나에 와서 실사와 고증을 통해 <로미오와 줄리엣>을 썼다는 확신에 도달하게 됩니다. 위에 등장한 괴테나 멘델스존과는 달리 그들보다 200여 년 전에 살았던 영국의 셰익스피어는 한 번도 이탈리아 여행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 지금까지 정설로 되어 있는데 그 역사적 정설에 그가 도전장을 내민 것입니다.
이탈리아를 여행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알려진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 영국국립초상화
리처드 폴 로의 반론의 가장 큰 근거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작가가 다른 사람이 아닌 셰익스피어라는 사실에서 출발합니다. 그는 셰익스피어가 그 작품을 포함해서 역시 또 같은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무려 10편의 희곡을 썼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것이 무슨 대수냐고 할 수 있지만 그 모든 작품을 셰익스피어가 상상만으로 꾸며서 썼다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이탈리아 땅을 단 한 번도 밟은 적이 없는 작가가 이탈리아의 한 도시도 아니고 각기 다른 도시들을 배경으로 무려 10편의 희곡을 쓴다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에 그렇습니다.
아무리 그가 천재라 해도 희곡은 소설과 마찬가지로 시대적 인물들과 장소와 미장센 등이 등장하는데 그 모든 것을 자료에 의존하거나 이탈리아를 여행한 누군가에게 구전으로 듣고 쓰기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한 편도 아닌 10편을 말입니다. 더구나 요즘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자료도 빈약했던 셰익스피어의 생존(1564~1616) 시대에 말입니다. 인터넷만으로 실험도 없이 이공대 박사 논문도 가능하다는 요즘도 글을 쓰는 작가는 쓰기 전 작품의 정밀도를 높이기 위해 현지와 시장 조사를 한 후 작품에 돌입합니다.
그래서 리처드 폴 로는 셰익스피어가 진짜로 이탈리아를 여행했다는 것을 밝혀내기 위하여 그 10편의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도시들을 순차적으로 방문하며 작품에 나오는 장소와 당시 제도, 사건, 지명, 호칭, 방언, 건축, 인테리어, 복식, 음식 등이 오롯이 이탈리아적이거나 그 도시적인 것들이라는 사실을 밝혀냅니다. 중세 이탈리아의 정치, 지리, 사회, 문화, 역사 등을 망라하는 방대한 작업을 한 것입니다. 그런 확인을 통해 그는 셰익스피어가 그것들을 직접 와서 보거나 체험하지 않고서는 글을 쓸 수 없다는 것을 입증하였습니다.
아래 목록은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셰익스피어의 10개 작품과 그 작품의 배경지로 리처드 폴 로는 이 모든 작품을 통달한 후 그배경지에 직접 가서 사실 여부를 일일이 확인하였습니다. 셰익스피어가 이탈리아를 여행했다는 것을 밝혀내는 것이 그의 필생의 과업이 된 것입니다. 그는 그렇게 30여 년을 보내고 괴테처럼 죽기 바로 전인 2010년에 <셰익스피어의 이탈리아 기행>이란 책을 완성했습니다. 물론 "셰익스피어는 이탈리아에 갔다"라는 결론을 내리고서 눈을 감았습니다. 이 글을 쓰기 전 제가 읽고, 지금 글에서 인용하고 있는 책입니다.
셰익스피어의 이탈리아 흔적이 가득한 <셰익스피어의 이탈리아 기행>, 리처드 폴 로 지음 / 유향란 옮김 / 오브제 출판
<로미오와 줄리엣>을 예로 들면 리처드 폴 로는 작품에 등장하는 장소에 주목했습니다. 사람들이 셰익스피어가 의미 없이 던진 장소라고 생각한 곳을 그는 주의 깊게 보고 그곳이 실제 베로나에 있는지 확인한 것입니다. 작품에서 로미오의 엄마가 로미오를 찾을 때 유모는 그가 단풍나무 숲에 산책 나갔다고 했는데 그는 실제로 베로나 외곽에서 그 숲을 찾아냈습니다. 줄리엣이 아버지가 정해준 약혼남인 파리스 백작과 결혼할 교회인 성 베드로 교회도 그는 역시 어렵게 찾아냈습니다. 작품에서 그 교회는 세 번이나 언급되지만 아무도 관심이 없는 허구의 교회라 생각했는데 베로나에 있는 4개의 베드로 교회 중 실제 캐플릿 가문의 본당인 그 교회를 지도와 동선을 그려가며 찾아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작품에서 베로나 영주가 재판정으로 지목한 프리타운도 그는 찾아냈습니다. 모두가 셰익스피어가 베로나를 실제로 가지 않았다면 알 수 없는 장소들입니다.
그런 식으로 위의 나머지 9개의 작품들에서도 그는 셰익스피어의 눈과 발이 되어 이탈리아를 누비며 방문하고, 찾아내고, 확인하고, 입증하였습니다. <베로나의 두 신사>에선 지금은 사라진 베로나에서 밀라노까지의 운하 뱃길을 여러 고문서를 통해 끊어진 물길을 찾아내었습니다.
<한 여름밤의 꿈>에선 아테네가 등장해 지금까지는 배경이 그리스로 알려졌지만 그곳이 만토바 근처의 사비오넬라라는 도시임을 밝혀 냈습니다. 그 작품엔 공작이라는 직위가 등장하는데 그리스엔 그런 신분 계급이 없다는 것과 작품에 등장하는 그곳의 떡갈나무와 템플을 찾아내어 셰익스피어가 그곳에 갔었음을 확신한 것입니다.
피렌체가 배경인 <끝이 좋으면 다 좋아>에선 포트(port)라는 항구가 등장하여 사람들이 셰익스피어가 피렌체를 항구 도시로 착각해서 그런 표현을 했다고 야유한 것을 그는 피렌체를 관통하는 아르노 강가 근처의 옛 지명이 포트라는 사실을 고증을 통해 밝혀내었습니다. 고유 지명이기에 그곳 포트를 셰익스피어가 대문자(Port)로 쓴 것을 후대의 사람들이 오자인 줄 알고 소문자로 변경한 것을 질책하면서 말입니다.
<템페스트>에서도 배경이 되는 시칠리아 위 화산섬인 불카노의 지형에 대한 셰익스피어의 상세한 묘사는 가서 직접 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모습들입니다. 등장하는 노란 모래사장, 분기공, 온천, 유황, 흙웅덩이, 소나무, 참나무 등은 그 섬에만 있는 것들이니까요.
<베니스의 상인>에선 셰익스피어가 묘사한 샤일록의 펜트하우스가 달린 집을 작품을 들고 읽어가며 골목을 돌고 돌아 같은 모양의 집을 찾아내었습니다. 그런 식의 대단한 열정으로 리처드 폴 로는 그가 쓴 <셰익스피어의 이탈리아 기행> 책 후반으로 갈수록 확신을 더하며 셰익스피어가 마치 그 옆에 서있는 것처럼 얘기하기도 합니다.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중앙의 펜트하우스가 딸린 샤일록의 실제 집 (출처, <셰익스피어의 이탈리아 기행>)
그런데 셰익스피어는 정작 그의 고국인 영국(잉글랜드)을 배경으로 해서 허구는 딱 한 편만 썼습니다. <윈저의 유쾌한 아낙네들>이라는 작품이 그것입니다. 리처드와 헨리 등 잉글랜드의 왕들을 소재로 쓴 10편의 사극은 역사적 사실이니 허구가 아닙니다. 그리고 <리어왕>은 전설의 고대 브리튼 왕국이고, <멕베스>는 스코틀랜드가 배경이니 그의 고국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래서 간 적이 없다고 하는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무려 10편의 작품을 쓴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햄릿> 등 외국을 배경으로 쓴 작품은 나라별 한 개를 넘지 않습니다. 덴마크를 배경으로 쓴 작품은 <햄릿>이 유일하듯이 말입니다. 리처드 폴 로는 이렇게 외국인 이탈리아에 지나치게치우친 작품 포트폴리오도 셰익스피어가 실제로 그곳을 여행했다고 보는 중요한근거로 주장합니다.
연구 논문과도 같고, 추리 소설과도 같으며, 역사 다큐와도 같은 <셰익스피어의 이탈리아 기행>을 출간한 지 1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가 이탈리아를 여행했다는 사실은 정설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만으론 400여 년 동안 굳어져 온 역사적 사실을 뒤집기 힘들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 작품이 출간된 이후 더 많은 사람들이 셰익스피어가 이탈리아를 갔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확실한 것은 셰익스피어가 이탈리아를 갔든 안 갔든 간에 그는 역사상 그 누구보다도 이탈리아를 좋아하고 동경한 작가였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영국인이고,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한 영문학의 최고봉인 그가 그의 전체 작품 중 1/3을 이탈리아에 할애할 리 없으니까요.
셰익스피어가 이탈리아를 갔다면 그것의 가장 결정적인 증거는 그의 이탈리아 기행문이 될 것입니다. 안 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가장 강력한 근거가 그가 이탈리아에 갔다면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작가가 기행문을 안 썼을 리 없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괴테와 멘델스존이 남긴 작품들처럼 말입니다. 신빙성 있는 주장입니다. 그래서 역사는 기록에만 근거합니다. 아마 리처드 폴 로도 생전에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예수의 성배와도 같은 셰익스피어의 그 글을 찾기 위해 무지 노력을 기울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서 지금도 계속되고 있을 것입니다. "Shakespeare, Englishman in Italy"가 진실이 되는 그날까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