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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하 Jun 24. 2022

임윤찬, 스타 탄생을 들으며

우리 삶에서 몰랐던 어떤 사람을 어떤 연으로 처음 알게 되는 시점이 있듯 그렇게 처음으로 알게 되는 특정 시점의 예술가가 있습니다. 일반인의 경우 일상에서 대면 만남을 통해 형성되는 인지와는 달리 그런 예술가는 뉴스나 광고, 홍보 등을 통한 미디어나 기록물, 또는 구전을 통해 간접적으로 알게 됩니다. 어느 순간 주목할만한 퍼포먼스로 유명인이 된 사람들이니까요. 이때 그 예술가는 이미 작고한 역사 속 인물이 아닌 현재 우리가 사는 동시대의 인물일 확률이 높습니다. 대개 과거의 예술가들이란 우리가 성장해오며 여러 학습과정을 거쳐 이미 익숙한 이름으로 안착되어 있으니까요. 음악가를 예로 들면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처럼 말입니다. 그들은 작품이나 평판은 몰라도 이름이 먼저 들린 사람들입니다. 그래서인가 그들 이름을 최초로 인지한 시점도 그렇게 드라마틱하지는 않습니다. 대개 초등학교 음악 시간에 선생님으로부터 듣게 된 경우가 가장 보편적인 인지 경로겠지요. 아, 요즘은 취학 전 조기 교육으로 그 이전에 알게 될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그런 명망있는 예술가들이 남긴 작품은 사람에 따라 매우 드라마틱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을 것입니다. 영화 <쇼생크의 탈출>에서 주인공 팀 로빈스가 교도소장 방 턴테이블 위에 올린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에 나오는 아리아가 흘러나오는 순간도 바로 그런 시점으로 그때 그는 그런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을 느꼈을 것입니다. 거친 현실에 순하게 작동한 역설적인 음악의 힘이겠지요. 또한 어떤 남자가 어떤 여성과의 결혼을 위해 프러포즈 이벤트 연출 시 그날 그녀의 귀에 들리게 한 그 음악은 평생 잊히지 않는 드라마로 남을 것입니다. 행복한 현실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촉매와 같은 음악의 힘이겠지요.


그래서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지만 이 속담을 기억이라는 측면에서 해석하면 미세한 차이가 있습니다. 호랑이가 사후에 남긴 가죽은 그것이 사람에게 유용해 기억되는 것이지만 그는 생전엔 사람에게 무섭고 해로운 존재였습니다. 생전 가치는 없고 사후 가치로만 기억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사람이 남긴 이름은 그 사람이 생전에 이룩한 치적이나 성과 등의 가치가 사후에도 이어져 그것을 대표하는 그의 짧은 이름이 기억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격언은 그 짧은 인생이 남긴 가치 있는 예술이 세대를 이어서 후대까지 길게 간다는 뜻이겠지요. 그 긴 예술 안에 죽어서 남긴 예술가의 이름도 묻어서 함께 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지금 이 글에서 얘기하는 예술가 그룹에게만 한정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2022년 반 클라이번 국제피아노콩쿠르의 결선 마지막 무대에 선 임윤찬 (출처, 유튜브)


지난주 우리는 아주 드라마틱하게 등장한 한 명의 예술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보다 더 드라마틱할 수가 있을까요? 바로 미국 텍사스주의 반 클라이번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우승한 우리나라의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등장입니다. 세계 클래식 음악계에 새로운 스타가 탄생했습니다. 그의 우승이 신데렐라 뺨치게 더할 나위 없이 드라마틱한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닌 여러 이유에서 그렇습니다.


일단 1962년에 시작된 그 대회 60년 역사상 최연소 우승입니다. 출전 자격 연령 하한선이 18세인데 그는 18세의 나이로 출전해 우승을 거머쥐었습니다. 마치 모든 준비를 마치고 18세가 되기를 손꼽아 기다린 사람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2004년생인 그의 출생 월일까지는 모르겠지만 이 기록은 앞으로도 거의 깨지기 힘든 기록이 될 것입니다. 대회 참여 연령 상한선은 31세라 하니 그는 그보다 피아노를 오래 친 쟁쟁한 선배들을 다 물리쳤습니다. 하한선과 상한선이 13년 차이가 나므로 만약 31세 출전자가 있었다면 초등학교 1학년이 대학교 1학년과 싸워 이긴 격입니다. 직전 대회 우승자인 역시 또 우리나라의 피아니스트인 선우예권의 당시 나이는 28세였습니다. 그 와중에 임윤찬은 피아니스트치곤 늦은 나이인 7세부터 피아노를 시작하였습니다. 또한 이번 대회는 4년마다 개최되는 대회지만 코로나로 인해 5년 만에 개최되어 참가자들이 많이 몰려와 어느 대회보다도 수준이 높았습니다. 그리고 임윤찬 그는 우승인 금메달 이외에 청중상과 신작 최고 연주상 등 2개 부문의 특별상까지 받아 3관왕이 되었습니다. 이 정도면 근래 음악계에서 더 이상의 드라마는 찾아보기 힘든 그의 등장일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참가자였습니다. 알려지기엔 너무나도 어린 나이여서도 그럴 것입니다. 3년 전인 2019년 윤이상 국제음악콩쿠르에서 역시 또 15세의 어린 나이로 최연소 우승을 하는 등 음악계에선 일찍부터 괴물로 알려져 왔다고는 하지만 저와 같은 사람이 사는 일반계에선 금시초문인 무명인이었습니다. 글을 쓰며 저는 저만 그런가 싶어 주변 친구 몇몇에게 임윤찬을 본래 알았느냐고도 물었지만 그렇다고 하는 친구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다행입니다. 제가 지금 언뜻 생각나는 국내의 남자 피아니스트로는 형제인 임동혁, 임동민, 그리고 김선욱, 조성진, 선우예권, 신창용.. 아, 김재원도 있네요. 이 정도면 심한 건가요? 백로는 없고 까마귀만 들끓는 무리에서 사는 어느 한 음악 문외한의 고해성사와 같은 부끄러운 고백을 한 듯합니다. 그래서 지금 기술하고 있는 임윤찬에 대한 내용들은 제가 뉴스나 아티클을 통해 이번에 다 처음 알게 된 사실일 수밖에 없습니다.


반 클라이번의 고향인 텍사스주의 포트워스 오케스트라와 협연 중인 임윤찬의 결선 무대 (출처, 유튜브)


임윤찬의 우승 3일 후인 6월 21일 유럽 대륙 헝가리에선 또 한 명의 한국 소년이 낭보를 전해왔습니다. 이번엔 체육계입니다. 세계수영선수권대회 남자 200m 자유형에서 황선우 선수가 은메달을 딴 것입니다. 그는 임윤찬보다 한 살 많은 19세의 또래아지만 도쿄올림픽 때부터 이름이 알려져 상대적으로 드라마틱한 요소는 덜했습니다. 무엇이든 첫 등장이 가장 강한 법이니까요. 임윤찬은 14세 때인 2018년 클리블랜드 청소년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2위를 했다곤 하지만 본격적인 세계 메이저 무대에서의 등장은 이번이 처음이라 할 것입니다. 그렇게 첫 등장한 2022년 6월 18일, 저는 지금까지는 몰랐던 한 명의 새로운 예술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가 반 클라이번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우승이 결정된 그 특정 시점입니다. 이제부터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그의 이름이 처음처럼 오래오래 끝까지 기억되기를 기원합니다.


그는 대회에서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주었습니다. 유튜브를 통해서 생중계된 그의 파이널 결선 연주에서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신들린 듯이 연주하였습니다. 전 세계의 음악 애호가들은 그렇게 이 시대 새로운 스타의 탄생을 목도할 수 있었습니다. 우린 지금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의 체육대회처럼 클래식 콩쿠르의 대회 현장도 생방송으로 볼 수 있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저의 경우는 피아니스트인 지인이 보라고 톡을 보내왔음에도 다른 일로 그 역사적 현장을 리얼 타임으로 보지는 못했습니다. 사실 그때까진 그가 누군지 몰라서도 그랬습니다.


글을 최종 정리하며 방금(2022. 6. 24. 05:35) 유튜브를 또 열어보니 결선의 라흐마니노프 그 메인 영상은 업로드된 지 3일 만에 조회수 207만 회를 넘어갔고 전 세계에서 그의 팬이 된 많은 사람들이 각기 다른 언어로 달은 댓글도 3천4백여 개를 넘겼습니다. 제가 초고 이후 확인할 때마다 이 숫자는 계속 올라가고 있습니다. 이외에 그가 대회에서 연주했던 다른 곡들과 대회 이전의 연주곡들, 그리고 유튜버들이 그에 대해 제작한 영상의 연주물에 더해진 조회수와 댓글까지 더하면 그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라 하겠습니다.


지휘자인 마린 알솝과 혼연일체가 된 듯한 임윤찬의 강렬한 피니쉬 (출처, 유튜브)


저는 임윤찬과 같은 위대한 피아니스트에게 많은 경의를 표하면서도 그 경의 속에 음악과 상관없는 아주 1차원적으로 신기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어떻게 그 긴 곡을 다 암기해서 연주하는가 하는 부분입니다. 피아노 독주이든 협주이든 피아니스트는 대개 악보 없이 연주를 하곤 합니다. 협주를 진행하는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지휘자는 악보를 보고 하는데 말입니다. 이것은 바이올린 등 다른 악기로 협주하는 솔로 연주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하지만 제 기억의 길이로는 피아노 협주곡이 상대적으로 길게 느껴지고, 보편적으로 많이 보이는 악기이기에 피아니스트의 암기 능력이 가장 커 보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능력입니다. 음악적인 부분이야 저와 비교 자체가 안 되니 논하기 힘들지만 암기는 저도 생활에서 필요로 하는 능력이기에 비교가 가능해서 드는 의문입니다.


임윤찬의 이번 콩쿠르의 경우만 보더라도 그가 선택한 참가곡인 파이널 라운드 2의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은 43분, 파이널 라운드 1의 <베토벤 소나타 3번>은 38분, 그리고 세미파이널 라운드의 <모차르트 협주곡>은 38분, 세미파이널 라운드 리사이틀 곡인 <리스트의 12초절기교>의 연주 시간은 67분에 달했습니다. 모두 유튜브에 녹화된 기준의 시간들입니다. 보시듯 준결승 이후 연주한 이 네 곡을 단순히 합산해도 186분이나 되므로 3시간 여의 긴 연주 시간을 풀로 외워야만 일단 기본적으로 연주가 가능한 것입니다. 악보에 있는 대로 연주했냐 안 했냐의 여부와 곡 해석을 어떻게 했냐 하는 것은 그다음 문제입니다.


이것을 제게 단순하게 액면 그대로 적용하면 제가 쓰는 3시간 분량의 산문을 다 외워서 원문과 똑같이 낭송하는 것과 같은 능력일 것입니다. 제게 아인슈타인의 뇌세포를 분열시켜 만든 초능력 칩을 이식하기 전엔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능력입니다. 물론 피아노 협주곡 중간중간 쉬는 구간도 있으니 꼭 산수적으로 일치하진 않겠지만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쉬는 구간이 있는 것은 오히려 악보의 암기가 더 어려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박자까지 다 외워야 하니까요. 그냥 풀로 끊어지지 않고 이어서 연주하는 것이 오히려 더 쉬울 것입니다.


그가 준결승 이후 외워서 연주했던 전체 3시간 분량의 1/3인 1시간 분량의 강의를 제가 한다 해도 그 내용은 할 때마다 조금씩 차이가 날 것입니다. 이것은 스크립트를 쓰고 외워서 진행했던 현업의 프레젠테이션에서도 많이 경험한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대학 교수가 똑같은 강의안을 가지고 30년을 매번 학기마다 똑같은 강의를 한다 해도 내용은 같을지언정 그가 사용하는 어휘까지 똑같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피아니스트의 암기 능력에 또 감탄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매번 정확히 똑같아야 하니까요. 음악에 문외한인 일반인들은 이렇게 음악 본질적인 문제보다 과외적인 문제에 더 관심을 갖기도 합니다. 결론은 수준급 피아니스트는 암기 능력도 대단하던가, 그렇지 못하면 일반인이 하듯이 똑같이 암기에 대단한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던가, 아니면 일반인은 모르는 그들만의 암기의 세계가 있다고 이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술의 세계는 일반의 영역과는 다르니까요.


스타 탄생! 16회 반 클라이번 국제피아노콩쿠르 우승자 임윤찬 (출처, 연합뉴스)


지난 5월 방탄소년단 BTS는 빌보드뮤직어워즈를 6년 연속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명실공히 세계 대중 음악의 정상에 서있는 그들입니다. 그리고 6월 임윤찬 피아니스트는 역시 또 미국에서 벌어진 세계적인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정상에 우뚝 섰습니다. 한 달 차이로 세계 대중 음악계와 클래식 음악계를 제패한 우리의 젊은 음악인들입니다. 브라보입니다. 21세기에 들어 우리의 젊은 피아니스트들은 임동민, 임동혁부터 조성진, 선우예권으로 이어지며 세계 정상급 콩쿠르를 휩쓸고 있습니다. 서양에서 멀리 떨어진 극동의 조그만 나라에서 서양이 주도하는 클래식 음악계에 이런 스타들을 보유하고 있으니 참으로 대단하다 아니할 수 없습니다. 계속해서 새로운 대한민국의 이름들이 이런저런 장르에서 자꾸자꾸 등장하기를 기대합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을, 아니 세계를 빛내는 별들이 우리의 하늘에 많이많이 떴으면 좋겠습니다. 임윤찬 피아니스트의 우승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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