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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하 Sep 07. 2022

마드리드의 밤거리 - 1

스페인, 그리고 스페인의 음악

다음 국가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영국, 벨기에, 이탈리아, 캐나다, 그리고 스페인.. 딱히 공통점을 찾기 힘들 것입니다. 서방 국가들인데 북미의 캐나다가 껴있어서 더 그럴 것입니다. 이 글에서 원하는 답은 이들은 모두 분리독립과 관련이 있는 국가들이라는 것입니다. 분리독립을 추진한 적이 있거나, 현재도 추진 중이거나, 앞으로도 추진할 가능성이 있는 국가들입니다.


정식 국호만큼이나 복잡한 영국(UK,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의 경우 북아일랜드와 웨일스는 분리독립 가능성이 낮지만 스코틀랜드는 그 가능성을 안고 있습니다. 실제 2014년 정식으로 투표를 하기도 했으니까요. 당시엔 반대가 우세했으나 이후 영국의 EU 탈퇴로 찬성이 높아지는 추세입니다. 코로나가 끝나면 다시 점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벨기에는 네덜란드어를 쓰는 북부의 플랑드르와 프랑스어를 쓰는 남부의 왈롱니아로 분리될 가능성을 안고 있습니다. 영어권 국가인 캐나다는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퀘벡주가 요즘은 잠잠하지만 20세기 말까지 맹렬하게 분리독립운동을 추진하였습니다. 그리고 이탈리아는 상공업이 발달한 밀라노를 중심으로 한 북부와 농업이 주업인 남부 간에 경제적인 이유로 분리의 개연성이 있습니다.


유럽의 분리독립 가능 국가와 그 지역


마지막으로 스페인은 피레네 산맥을 끼고 사는 바스크족과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하는 카탈루냐 지역이 분리독립운동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특히 카탈루냐의 분리독립은 현시점 위의 국가들 중 가장 뜨거운 감자로 지금도 용암을 분출하는 활화산과 같습니다. 최근인 2017년에 실시된 분리독립 희망 투표에서 카탈루냐 주민 90% 이상이 찬성을 하였으니까요. 스페인 중앙 정부는 이를 국가 헌법에 위배되는 불법 투표로 규정하고 이를 저지하는 강력한 행정력을 발동하고 있어 양자 간 갈등은 계속 고조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또 다음 도시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서울, 도쿄, 베이징, 카불, 테헤란, 아테네, 리스본, 그리고 마드리드.. 우선 떠오르는 것은 대도시이며 해당 국가의 수도일 것입니다. 그리고 수도는 수도이되 이 글에서 원하는 답인 우리나라의 수도인 서울과 비슷한 위도(latitude)에 걸쳐있는 도시들입니다. 이들은 지도를 펼쳐 놓고 서울부터 우에서 좌로 주욱 훑어가면 거의 같은 선상에 걸려있는 도시들입니다. 북위 37도인 서울을 기준으로 위아래로 근접한 북위 35도~40도에 위치해있습니다.


동북아 3강인 한중일 3국의 수도는 단순한 우연인지, 아니면 아시아적인 풍수지리가 작용했는지 모두 비슷한 위도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도쿄는 북위 35도, 베이징은 40도로 그 사이에 37도인 서울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와 명나라의 시조인 주원장, 그리고 오늘날 도쿄인 에도에 막부를 연 일본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과거의 수도를 버리고 현재의 자리에 그들 국가의 수도를 정한 것입니다.


서울을 통과하는 북위 37도 선. 늘 우측에 보이던 좌측의 아메리카가 다소 생경


위 전체 수도들 중 서울과 정확히 37도로 일치하는 곳은 그리스의 아테네입니다. 그리고 서울에서 반대로 우로 태평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으로 가면 수도는 아니지만 북미 서부의 샌프란시스코와 동부 뉴욕이 같은 기준의 위도에 놓여있는 미국 내 대도시입니다.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는 베이징, 뉴욕과 마찬가지로 북위 40도에 위치해있습니다. 서울보다 높은 위도임에도 그 도시는 평균적으로 서울보다 기온이 높습니다. 같은 위도에 있으면 지표면에 쏟아지는 일조량이 같으므로 기온이 같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따뜻한 바람과 해류가 작용한 지중해양성 기후가 스페인의 온도를 높인 것입니다. 매해 여름 스페인의 기온이 40도를 훌쩍 넘어갔다는 뉴스를 우린 다반사로 듣곤 합니다. 특히 마드리드 아래 서울과 위도가 37도로 같은 세비야의 더위는 여름 관광객들을 매우 힘들게 하곤 합니다. 하지만 고온건조한 지중해양성 기후의 특징으로 습도가 약해 체감 온도는 그렇게까지 높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람이 살기에 최적의 환경이라는 지중해양성 기후입니다. 그래서 고대부터 지중해를 한 바퀴 빙 둘러 내륙엔 많은 사람들이 다닥다닥 모여 살았습니다.


스페인과 마드리드를 이렇게 퀴즈로 인트로에 내세운 것은 제가 지금 <마드리드의 밤거리>라는 주제로 열리는 음악회의 주제와 같은 글을 쓰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마도 음악회에선 마드리드의 밤거리에서 듣는 것과 같은 음악을 듣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글에선 음악을 들려드릴 수 없으니 저는 이렇게 그곳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있습니다. 일단 마드리드의 밤거리라고 하니까 제가 과거에 신문에서 읽었던 여행 칼럼이 생각납니다. 마드리드의 유명 레스토랑은 새벽 3시에도 사람이 바글바글해 예약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워낙 음식으로 유명한 나라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활달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 그 도시가 마드리드이고 그 나라가 스페인입니다.


태양과 정열의 나라 스페인의 일러스트 지도


그래서인가 스페인을 가리켜 흔히 '정열의 나라'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정열의 원천인 태양이 강해 '태양의 나라'라고도 부릅니다. 지구상에 사시사철 태양이 내려쬐는 나라도 많고, 불 같은 성격의 정열적인 국민을 가진 나라도 많지만 누가 뭐래도 이 두 개의 슬로건을 떠올리게 하는 1순위 국가는 스페인일 것입니다. 자연은 인간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므로 태양이 뜨거우면 인간의 가슴도 뜨거워지나 봅니다. 그래서 그 나라 사람들은 태양의 신 아폴론이 잠들어있는 새벽 3시에도 그렇게 타오르고 있습니다. 스페인 하면 또 떠오르는 시에스타는 이렇게 심야 생활이 발달했기에 모자라는 잠을 낮에 보충하라고 공식적으로 허용한 문화일 것입니다. 물론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의 문제처럼 낮에 더워서도 허용한 시에스타 때문에 스페니쉬들은 야간에 말똥말똥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논란 때문인지 시에스타는 2005년 공공기관에선 폐지되었습니다.


이제 스페니쉬들의 정열이 표출되는 뜨거운 현장으로 가보겠습니다. 역사 이야기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마드리드의 밤거리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엘 클라시코(El Clasico)라 불리는 용어가 있습니다. 축구 이야기입니다. 유럽의 국가들이 다들 그렇지만 가슴이 뜨거운 스페인 사람들의 축구 사랑은 그 이상으로 유별납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국에 세계 최고의 프로축구 리그라는 라리가(Laliga)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과거엔 프리메라리가로 불렸는데 이름을 간단히 줄였습니다. 우리나라 선수로는 현재 이강인이 그 리그의 마요르카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그렇듯 라리가의 1부 리그 20개 팀은 모두 지역을 연고로 하고 있습니다. 이들 팀 중 최고의 팀을 뽑으라면 한 팀이 올라와야 하는데 라리가는 그렇지 않습니다. 마드리드를 연고로 하는 레알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를 연고로 하는 FC바르셀로나, 이 두 팀이 항상 함께 거론됩니다. 막상막하를 넘어 막상막상(?)인 두 팀입니다. 그래서 이 두 팀이 경기를 하는 날이면 어디서 열리든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는 물론 온 스페인 전체가 들썩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소식은 빠르게 전파를 타고 실시간으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지구촌 전체로 중계됩니다. 엘 클라시코는 바로 이 두 팀의 경기를 가리킵니다.


엘 클라시코의 주역인 레알마드리와 FC바르셀로나 축구팀의 엠블럼


스포츠에서 최후의 승자를 가리는 대전을 가리키는 이름들이 많지만 엘 클라시코보다 더 독보적인 이름은 없을 것입니다. 프로야구가 발달한 미국에서 그 해 최후의 승자를 가리는 게임을 가리켜 월드시리즈라 부릅니다. 이 경기에서 이기면 미국의 챔피언이 아니라 세계의 챔피언이 된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만큼 미국 프로야구의 우월성을 이름에 담았습니다. 우리나라 프로야구에선 이것을 코리안시리즈라 부르지요. 그런데 엘 클라시코는 영어로는 더 클래식(The Classic)입니다. 축구 경기에 고전이라니요?


모름지기 클래식이란 고대 그리스 호머의 <일리아드 오디세이> 이래로 플라톤, 미켈란젤로, 셰익스피어, 루소, 베토벤, 고흐 등의 문사철 저서와 예술품처럼 수 세기를 걸쳐 내려와도 변함없는 최고의 가치로 세상에 영향을 끼치는 것들을 가리키는 것인데 단순히 두 구단의 축구 경기에 이런 이름을 붙이는 것은 과장도 보통 과장이 아닐 것입니다. 전체 팀들 중 챔피언을 가리는 것도 아니고 단지 두 팀만의 경기입니다. 축구에서 통상 이런 라이벌전의 경우는 더비(Derby)라는 용어를 씁니다. 그만큼 이들 두 팀의 경기가 예술 이상의 가치와 의미가 있어 이런 용어를 갖다 붙인 것일 텐데 대체 왜 그런 것일까요? 그리고 그들은 왜 그렇게 치열하게 싸울까요?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스페인의 역사를 간략하게나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유라시아 동쪽 끝 한반도가 우리나라의 터인 것처럼 스페인은 데칼코마니처럼 완전히 우리나라 반대편 서쪽 끝에 있는 이베리아 반도에 터를 잡았습니다. 물론 대서양 바닷물까지 닿는 그 반도 서쪽엔 포르투갈도 있습니다. 햇살 좋고 날씨 좋은 이베리아 반도엔 고대로부터 많은 민족들이 앞다투어 들어와 살았습니다. BC 3,000년 경 그 반도의 이름을 딴 주인인 이베리아족이 살았고 이후 BC 1,000년 경엔 북쪽 프랑스로부터 그 땅을 탐낸 켈트족이 밀려 들어왔습니다.


이후 BC 6세기엔 아프리카 북부의 카르타고가 바다 건너 올라와 그 반도에 식민지를 건설했습니다. 유럽 땅에 아프리카인이 들어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은 BC 3세기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이 로마와의 전쟁을 위해 출정했던 땅이 됩니다. 로마와 카르타고 간 포에니 전쟁으로 이제 우리가 아는 로마의 역사 속으로 스페인이 들어온 것입니다. 결국 역사상 가장 긴 3차에 걸친 전쟁(BC 264~146) 끝에 로마의 장군 스키피오는 카르타고를 완전히 제압해 히스파니아라 불린 그 땅은 로마의 속주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부르는 에스파냐의 기원입니다. 스페인은 영어 국가명이지요. 그리고 서기 476년 서로마 멸망 시 남하한 게르만 민족 대이동 시 히스파니아도 예외 없이 그들의 발에 떨어졌습니다. 중세의 상징인 고딕 양식의 어원이 된 고트족 중 동고트는 로마의 본토인 이탈리아 반도를, 서고트는 로마의 속주인 히스파니아가 있던 이베리아 반도를 나눠 가지며 중세 시대를 열었습니다. 물론 기독교 국가로서 말입니다.


카르타고가 지배했던 기원전 3세기 이베리아 반도의 모습
로마제국 시대 히스파니아라 불린 이베리아 반도 지역
5세기 말 게르만 민족 이동 시 이베리아 반도를 차지한 서고트족


그 다음은 유럽 역사에선 찾아보기 힘든 생경한 스페인만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무슬림이 유럽 본토인 이베리아 반도를 침공하고 눌러앉은 것입니다. 711년 옴미아드 왕조는 스페인을 침공해 그들의 나라를 건설하고 무려 800여 년간 그 땅의 주인이 되어 이슬람 문명을 꽃피웠습니다. 유럽 어느 국가에도 없는 이러한 이슬람 문명의 역사로 스페인은 우리 눈에 유럽이지만 다소 별스러운 모습의 유럽 국가가 된 것입니다. 아, 반대편 동쪽 끝 튀르키예도 그들의 조상인 오스만제국이 1453년 비잔틴 제국의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켜 비슷한 문명의 역사가 오늘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튀르키예는 아시아 대륙을 공유하고 있어서인가 스페인의 이국스러움과는 다른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8세기에 이베리아 반도 거의 전역을 차지한 이슬람의 옴미아드 왕조


이렇게 스페인은 유럽의 다른 모든 국가들이 중세 기나 긴 1,000여 년 동안 히브리즘이라는 단일한 기독교 문명으로 일사불란하게 갈 때 그만이 독특한 이슬람 문명 속에, 때론 기독교 문명과 결합되어 역사를 만들어갔습니다. 이슬람의 흔적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그라나다의 알함브라의 궁전이나 지난 7월 내한했던 라리가 세비야FC 축구팀의 본거지인 세비야에 있는 대성당이 대표적일 것입니다. 그 성당은 유럽에서 바티칸의 베드로 대성당 다음으로 큰데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였던 것을 후에 그들을 몰아내고 기독교 성당으로 개축한 것입니다. 이슬람이 들어와 성당을 모스크로 바꾼 이스탄불의 성 소피아 성당과는 반대의 운명을 지닌 것이지요. 이렇듯 스페인의 이슬람 역사는 그 땅의 모습을 이국적으로 바꾸어 주고 결국은 스페인을 선진 국가로까지 만들어주게 됩니다.


스페인 이슬람 문명의 꽃,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 (출처, pixabay)
세비야 대성당, 이슬람 문명 시 모스크였던 것을 기독교 성당으로 개축 (출처, pixabay)



* 다음 2편에서는 스페인의 통일과 음악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 <마드리드의 밤거리> 음악회는 프렌즈오브뮤직이 주관하는 2022년 세 번째 음악회로 9월 17일 오후 5시 서울 푸르지오아트홀에서 열립니다. 위의 글은 그 음악회의 프로그램북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무대에서는 보케리니, 파가니니, 그라나도스, 타레가, 알베니즈 등의 음악이 연주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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