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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하 Oct 13. 2022

불후의 산울림 - 3

피그말리온 vs 김창완

그리스 신화 속에 키프로스, 또는 사이프러스라 불리는 섬에 사는 피그말리온이라는 조각가가 있습니다. 그는 세상의 여자들에게 환멸을 느껴 그의 재능으로 그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여성을 직접 조각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날부터 아름답지만 차가운 조각상인 그녀를 마치 살아있는 여인인 것처럼 진심으로 대했습니다. 그녀와 사랑에 빠진 것입니다. 이것을 올림포스 산 위에서 측은하게 지켜본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아들 에로스를 보내 그녀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사랑은 그녀의 담당이기도 하거니와 그녀가 태어난 곳이 키프로스라 더 애정이 갔던 모양입니다. 이렇게 피그말리온의 기도가 통해 그는 이제 갈라테이아라 불리는 따스해진 그녀를 안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섬 바로 아래 유대 지방의 신인 야훼 하나님은 천지창조 시 흙으로 사람을 빚은 후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영적인 존재로 살아나게 했는데 그리스의 신도 그와 유사한 기술을 썼을 것입니다. 그 후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는 자식까지 낳으며 알콩달콩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이 신화에서 비롯되어 진심으로 강력하게 소망하면 불가능한 것도 가능해진다는 것을 심리학에서 피그말리온 효과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조각 여성을 살아나게만 해준다면야 세상에 피그말리온과 같은 남성은 차고도 넘칠 것입니다. 그 신이 어떤 신이든 간에 간절히 기도하면서 말입니다.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 장 레옹 제롬, 1890


산울림 글이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럴 일이 더 이상 없을 거라고 분명히 생각했는데 저는 지금 그 밴드의 세 번째 글을 쓰고 있습니다. 지난 8월의 어느 날 <불후의 명곡>이라는 KBS TV 음악 프로그램에서 산울림 노래를 오래간만에 듣고 감동을 먹어 <불후의 산울림>이란 글을 썼는데, 그 글로 인연이 이어져 그 밴드의 맏형 김창완 아티스트의 초청을 받아 향연과도 같은 시간을 보낸 후, 그 참을 수 없는 후유증으로 9월의 어느 날 같은 제목으로 두 번째 글까지 썼습니다. 그렇게 끝난 일이었고 그런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거기서 또 싹이 나고 꽃이 펴 이렇게 10월의 어느 날 세 번째 글까지 쓰고 있습니다. 제가 무슨 음악적 지식과 영감으로 가득 찬 가요평론가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래서 보관본이 되었지만 첫 번째 쓴 <불후의 산울림> 글은 제목을 <불후의 산울림 - 1>으로 변경하고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불과 두 편에 불과한 글이기도 해서 굳이 넘버링을 안 하고 놔두었는데 3편까지 이어지니 순서에 따른 넘버링을 정확히 해놓을 필요가 있어 그렇게 하였습니다. 두 번째 글은 처음부터 제목이 <불후의 산울림 - 2>였습니다.


이것은 마치 영국의 왕이 같은 이름을 가진 후대의 왕이 나오기 전까지는 끝에 1세(The First)를 안 붙이다가 후대에 같은 이름의 왕이 나오면 그때 가서야 비로소 족보를 뒤져 그 왕의 이름 끝에 '00 1세'라고 명명하는 것과 같은 네이밍 원리라 하겠습니다. 영국과 결혼했다고 고백한 처녀왕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지난 9월 작고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즉위한 1952년까지는 그냥 엘리자베스 여왕이었습니다. 같은 이유로 19세기 대영제국의 군주였던 빅토리아 여왕은 지금도 꼬리표 없이 빅토리아 여왕이라 불립니다. 하지만 언젠가 빅토리아라는 이름을 쓰는 여왕이 나타나면 그녀의 공식적인 왕명도 빅토리아 1세 여왕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찰스 왕세자는 그의 엄마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사망하자마자 그날로 곧바로 그의 호칭이 찰스 3세 왕으로 바뀌었습니다. 영국사에서 이전에 두 명의 찰스 왕이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는 아직 즉위식을 치르지 않았고 통치도 하지 않는 입헌군주제의 군주지만 왕의 공백을 막기 위해 곧바로 호칭부터 바뀌었습니다.  


불후(不朽)는 썩지 않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3편인 된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산울림이 썩을 일이 더 없어졌기에 그렇습니다. 아마 제가 이 글 시리즈의 최초 제목에 불후라는 말만 안 붙였어도 이 글을 쓰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진짜로 제목에 최상으로 어울릴 만한 사건이 그 밴드에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또 씁니다. 지난 6일 저는 산울림의 한 발표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김창완 아티스트의 자택에서 향연을 벌인 날 또 그다음 초청이 이어져 가게 된 것입니다. 사실 초청은 했다지만 꼭 가야 될 자리까지는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이벤트는 대중음악 관련 기자와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산울림의 리마스터 프로젝트를 발표하는 자리였기에 그렇습니다. 그날 관계자는 산울림 데뷔 45주년 기념으로 1977년 발매된 <아니 벌써>부터 1997년 <무지개>까지 장장 20년 간 발매된 산울림 전작 17장과 김창완 아티스트의 솔로 앨범 3장을 리마스터링을 통해 LP와 디지털 음원으로 재발매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미 언론을 통해 기사화된 내용입니다.


산울림 리마스터 프로젝트 발표회장, 벨로주 망원, 2022. 10. 6


제가 광고대행사 초년병 시절 광고주의 요청에 의해 라디오 광고를 만들 때면 기획이었던 저는 사내 오디오 pd와 함께 녹음실을 가곤 했습니다. 그 방에선 결정된 안에 따라 일반 성우의 목소리, 또는 유명 셀럽의 목소리 연기가 배경 음악이나 음향과 함께 울려 퍼졌습니다. 그런 소리들이 녹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엔 녹음 방법이 디지털화되지 않은 시절이라 그 소리들은 오디오 엔지니어가 거의 수동으로 작업하는 릴 테이프에 담기곤 했습니다. 하지만 녹음이 한 번에 오케이 되는 것이 아니기에 작업이 반복되면서 최상의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그 엔지니어는 계속해서 릴 테이프를 앞뒤로 돌리곤 하였습니다. 그럴 때마다 기기에선 "찌리릭~ 철커덕~"하며 돌아가고 멈추고 하는 릴 테이프의 소음이 들렸습니다. 때론 더 좋은 소리를 연결하기 위해 그 엔지니어는 가위로 릴 테이프를 자르고 이어 붙여서 완성본을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제 기억으론 얇은 투명 스카치테이프로 이어 붙였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최종적으로 만족할만한 20초 라디오 광고가 완성이 되면 그 릴 테이프의 소리는 카세트 테이프로 옮겨졌습니다. 그러면 담당자인 저는 광고주 시사회 시 그 테이프를 들고 가서 카세트 레코더를 통해 녹음된 라디오 광고를 틀곤 하였습니다.


이때 1차로 소리가 담긴 릴 테이프는 원본이 되고 그 소리를 담은 카세트 테이프는 미디어가 됩니다. 그것은 릴에서 LP 판으로 소리가 옮겨져도 마찬가지입니다. 산울림의 이번 리마스터 프로젝트는 과거 산울림 음악의 원본인 그 릴 테이프에서 LP나 디지털로 그 소리를 한층 개선된 방법으로 옮겨 담는 작업입니다. 그러려면 산울림 데뷔 연도가 1977년이니 최장 45년 전에 녹음된 음악들의 릴 테이프까지 모두 보관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 밴드의 심벌이자 우리나라 대중 가요사에 가장 강력한 선을 그은 <아니 벌써>의 최초 릴 테이프도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노래가 빠진다면 이 작업은 앙꼬 없는 찐빵이 될 테니까요. 그런데 다행히 그 장장 20년 간의 20장 앨범의 릴 테이프가 모두 다 있었다고 합니다. 사실 제 상식으론 이 프로젝트에서 그것이 모두 보관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습니다. 그런데 또 저를 더 놀라게 한 것은 그 모든 릴 테이프의 보관자가 당사자인 산울림의 김창완 아티스트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릴 테이프 & 레코더 (출처, 갤러리진)


통상 그것이 무엇이든 45년이나 지난 것을 찾아내기는 매우 힘듭니다. 그는 녹음했던 녹음실들을 다 뒤져서 그것들을 찾아냈을까요? 그 사이 폐업, 이사 등으로 사라진 녹음실이 즐비할 텐데 말입니다. 통상 원본은 그것이 만들어진 곳에서 보관합니다. 사진관에서 돈 내고 사진을 찍어도 우리가 그 원본 필름을 받는데 애를 먹었던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였습니다. 영상물인 경우는 그 원본 테이프를 편집실에서 보관하곤 합니다. 제가 아는 상식에선 그렇습니다. 보통 가수들의 경우 그 원본 릴 테이프를 못 찾아 LP나 CD의 음악을 닦아내는 수준에서 리마스터링 작업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김창완 아티스트는 그 릴 테이프 원본을 모두 소유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과거 그 시절 20년 간 집에서 녹음을 한 것도 아니었을 텐데 말입니다. 그가 어떤 방법으로 그 전부를 소유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역사와 기록을 중시하는 사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사실 녹음실에서 수차례 반복 끝에 오케이가 되어 작업이 끝나고 그 완성본이 상품으로 시장에 LP든 CD로 출시되면 아티스트의 그 프로젝트는 마감이 된 것입니다. 보관한다 해도 그 완성품을 보관하는 것이지요.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 희귀본이 되어 가치와 가격이 상승하기도 합니다. 혹시 김창완 아티스트는 미래에 이런 날이 올 것을 예견하고 원본 릴 테이프 모두를 보관하고 있던 것은 아닐른지요? 제가 지난번 글인 <불후의 산울림 - 2>에서 그를 가리켜 비정형적 천재라고 예찬했는데 가히 그 비정형 항목에 추가할만한 그의 숨겨진 면목 하나를 더 발견했습니다.


이번 발표회는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 아니고 백견불여일문(百見不如一聞)의 시간이었습니다. 발표회에선 리마스터링한 산울림의 노래와 과거 출시되었던 같은 노래를 비교 시연하는 시간도 있었는데 막귀인 저도 듣는 순간 두 곡 간에 차이를 명백하게 느낄 수 있었기에 그렇습니다. 둘 다 똑같이 내 마음에 주단을 깔았지만 리마스터링한 주단이 더욱 선명하고 화려하게 들린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노래의 주단 위로는 그녀가 과거처럼 애태우지 않고 바로 사뿐히 밟으며 올 것만 같았습니다. 한마디로 같은 노래지만 소리가 쨍해졌습니다.   


리마스터 발표회에서 작은 음악회까지 연 김창완 아티스트


그럼 과거 LP나 카세트 테이프도 원본인 릴 테이프에서 받아서 작업을 한 것일 텐데 이번 리마스터 작업의 결과물이 더 좋은 이유는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당연히 들 것입니다. 이유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관계자들의 음악적인 역량과 원본의 소리를 LP나 디지털 음원으로 옮기는 테크놀로지가 과거보다 월등히 좋아져서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산울림이 최초로 녹음한 보컬과 악기 소리를 미디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달라진 사람의 인사이트와 기계의 테크놀로지로 원본 소리의 손실 없이 안전하고 풍부하게 다 담았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번 프로젝트는 에미상 수상 경력의 우리나라 음악감독의 지휘 아래 미국과 일본 등 세계적인 오디오 관련 회사에서 작업이 이루어졌습니다. 이 작업에 플레잉 면에서 산울림 3인이 한 일은 딱히 없습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1977년으로 돌아가지 않는 이상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기도 합니다.


발표회장에서 주인공 김창완 아티스트는 그의 노래 <내가 고백을 하면 깜짝 놀랄 거야>에 등장하는 화자처럼 여전히 놀라움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눈도 커지고 동그래진 것 같았습니다. 사실 그도 음악에 관한 한 끝까지 도달한 천재이지만 안 가본 길이기에 그 결과물의 수준과 정도를 예측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그가 대만족을 했습니다. 그는 이번 작업을 영화 <쥬라기 공원>에 비유했습니다. 그 공원의 공룡들은 모두 송진 속에 갇힌 모기 화석의 피 속 DNA에서 복원되어 살아났습니다. 그도 혹여 산울림의 DNA가 있을까 싶어 그간 어두운 박스 속에 갇아놓은 릴 테이프를 모두 뒤져 그 속에서 공룡처럼 거대한 산울림을 복원해낸 것입니다.


리마스터링으로 재탄생한 그의 과거 음반들 앞에서 만족해하는 김창완 아티스트 (출처, 뮤직버스)


이렇게 기술이 발달하다 보면 언젠가는 쥬라기 공원이 스크린이 아닌 현실 세계에 진짜로 세워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과거 고대 이집트인들은 언젠가의 부활을 대비하여 시체가 손상되지 않게 방부 처리하여 미라로 만들었습니다. 현실 세계에선 아직은 아니지만 이집트의 미라도 영화 속에선 <쥬라기 공원>처럼 되살아 납니다. 영생불사를 꿈꾸는 현대의 인간들도 현재 기술로는 안 되지만 미래의 어느 날 기술로 부활하기 위해 스스로 냉동인간이 되기도 합니다. 미라처럼 튜브 속에 들어가 기나 긴 잠을 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기술력이 실현되는 세상이 오면 유골의 잔재에서도 생명을 복원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예를 들면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를 복원해내는 것입니다. 그의 연주는 들어본 사람은 오늘날 당연히 없고 제자도 한 명도 양성하지 않아 그의 신들린 연주 기법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상상만 할 뿐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많은 음악인들은 그의 실전 연주를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그의 생전 비평가들의 기록으로만 그는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었습니다. 그런 그를 미래의 어느 날  살려낸다면 미래인들은 그의 실제 연주 실력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가 악마인지 사람인지도 확인되겠지요.           


리마스터 작업을 통해 훨씬 더 생음악에 가까워진 김창완 아티스트 본인과 멤버인 동생들의 45년 전 데뷔 시절 목소리와 악기 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 여전히 개구쟁이와도 같은 그의 얼굴 표정은 어떻게 변했을까요? 아마도 다시 태어난 <아니 벌써>를 처음 듣는 순간 그의 시계는 1977년으로 돌아가 흑석동 그의 집 좁은 방에서 동생들과 함께 시끌벅적 연주하는 모습을 떠올렸을지 모릅니다. 이렇게 그가 반세기 가깝게 보관해온 원본 릴 테이프가 빛을 발했습니다. 기록을 중시하는 그의 생각과 행동은 옳았습니다. 그로 인해 산울림의 팬들은 이제 훨씬 더 생명력이 살아 숨쉬는 산울림의 과거 연주를 감상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아니 벌써 45년이 지난 산울림 완전체의 그 시절 모습 (출처, 뮤직버스)


김창완 아티스트는 그리스의 조각가 피그말리온이었고 그의 릴 테이프는 피그말리온이 빚어낸 여성 조각상이었습니다. 그리고 리마스터링 테크놀로지와 그것을 핸들링한 테크니션은 아프로디테 여신입니다. 그 마법의 테크는 어두운 박스 속 릴 테이프에 누워 미라처럼 잠자고 있던 산울림의 음악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어 그의 음악을 인간이 된 여성 갈라테이아처럼 새롭게 재탄생시켰습니다. 피그말리온이든 산울림이든 그들이 만든 원본이 매우 아름답고 뛰어났기에 신을 감동시켰고 리마스터 작업이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이젠 산울림 이름으로 공연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그리고 그 멤버들이 모두 사라지는 미래가 된다 해도 산울림의 소리가 묻히거나 시들해질 일은 없어졌습니다. 과연 진정한 불후의 산울림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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