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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하 Nov 11. 2022

하늘에 하느님/하나님은 하나? - 1

서기 330년 콘스탄티누스 1세가 주도한 천도로 그의 이름을 따서 로마의 새로운 수도가 된 콘스탄티노플은 1453년 콘스탄티누스 11세 때 함락되며 서에서 동으로 이동한 로마 제국의 역사는 완전히 막을 내렸습니다. 오스만 제국의 약관 21세 3년차 술탄인 메흐메드 2세의 거센 침공으로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그 성이 무너져 내린 것입니다. 콘스탄티노플 성이 무너지며 로마도 무너졌고 성으로 상징되던 중세도 함께 무너졌습니다. 서로마와 동로마의 멸망엔 거의 1천 년 가까운 긴 시차가 있지만 묘한 평행 이론이 작용합니다. 비잔틴 문화를 이룩한 동로마 제국이 콘스탄티누스라는 같은 이름의 황제에 의해 시작되고 끝난 것처럼 이탈리아 반도 서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도 그곳에서 기원전 753년 로마를 건국한 로물루스와 같은 이름인 로물루스였기에 그렇습니다.


오늘날 튀르키예의 이스탄불인 콘스탄티노플에 당당히 입성한 승자 메흐메드 2세는 첫날 첫 일정으로 그곳에 있는 사원에 가서 그의 신인 알라에게 엎드려 감사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당시 그가 찾은 사원은 이슬람의 사원인 모스크가 아니었습니다. 313년 기독교를 공인한 황제가 천도한 후 1,123년이나 지난 도시에 이슬람 사원이 있을 턱이 없었으니까요. 더구나 기독교는 392년 그 도시에서 테오도시우스 황제에 의해 로마의 국교가 되어 콘스탄티노플은 그간 이교도인 무슬림을 탄압했던 대표적인 도시였습니다. 그날 메흐메드 2세가 찾은 사원은 동로마 제국 기독교의 랜드마크 격인 성 소피아 대성당이었습니다. 그는 그곳에 가서 알라를 찾고 그에게 경배를 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부터 기독교의 예배당 성 소피아 대성당은 이슬람교의 모스크인 아야 소피아로 바뀌었습니다.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의 성 소피아 대성당 or 아야 소피아 모스크 (출처, pixabay)


신기하지 않습니까? 성당이 모스크가 되다니요? 우리로 치면 어떤 스님이 교회를 접수하여 그곳에서 부처님께 불공을 드리고 바로 절로 간판을 교체한 것과 같은 일입니다. 아마도 그런 일은 일어나기 힘들겠지요. 그런데 서구 역사에선 이런 일은 빈번하게 일어났습니다. 유럽의 성당 중 바티칸의 베드로 대성당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스페인의 세비야 대성당은 그 전엔 이슬람의 사원인 모스크였습니다. 중세 800여 년간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했던 무슬림인 옴미아드 왕조를 원주민인 기독교 국가들이 연합해서 몰아내면서 모스크를 대성당으로 개축한 것입니다. 그렇게 그 성당은 이스탄불의 성 소피아 사원과는 반대의 운명으로 변신했습니다. 1492년 레콩키스타(Reconquista)라 불린 스페인 국권 회복운동의 끝장인 그라나다를 점령해, 이베리아 반도에 남아있던 이슬람교도들을 완전히 몰아내 통일의 대업을 완성한 카스티야의 이사벨 여왕과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 부부는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메흐메트 2세처럼, 아니 그와는 반대로 그곳 알함브라 궁전에 부속한 모스크에 가서 무릎을 꿇고 여호와 하느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을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 일일까요? 오늘날엔 적대적이기도 한 두 종교가 당시엔 그 정도로 사이가 좋았던 것일까요? 아니, 둘 간의 사이가 좋다고 해도 그럴 수는 없는 것이지요? 아니면 기독교와 이슬람 사이에 공통점이 많아서 그것이 가능했던 것이었을까요? 예를 들면 기독교의 유일신인 야훼, 또는 여호와와 이슬람교의 유일신인 알라를 혹시 같은 신으로 생각해서 그런 것은 아닐른지요? 이 글은 종교적인 진위를 가리거나 논쟁을 위한 글이 아님을 먼저 밝힙니다. 종교적인 영성은 조금도 개입 없이 지극히 인간적인 시각에서 다분히 상식적인 글을 쓰고 있습니다.


살면서 종종 기독교에 대한 의미가 오도되는 경우를 주변에서 보거나 듣곤 합니다. 기독교 안에 카톨릭과 개신교가 다 있는데 그것을 오인해서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그런데 이때 특이하게도 개신교 신자들은 대개 본인의 신앙을 개신교라 대답하기보다는 큰 틀인 기독교로 대답하곤 합니다. 반면에 카톨릭 신자들은 대개 큰 틀인 기독교라 하기보다는 콕 집어 카톨릭이라고 대답하곤 합니다. 때론 우리나라이기에 천주교로 대답하기도 하지요. 저는 이 점이 좀 신기합니다. 두 종교 중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에 기독교란 이름으로 먼저 들어온 종교는 카톨릭이었습니다. 조선시대 말 두 차례의 사옥으로 탄압도 세게 받았지요. 그러함에도 오늘날 기독교란 그 이름을 실생활에서 더 많이 점유하고 있는 종교는 개신교입니다. 처음엔 기독교라 하면 천주교 하나밖에 없었을 텐데요. 대개 무엇이든 선점하면 유리하게 지속되는 법인데 기독교의 경우는 좀 다르게 진행된 것 같습니다. 또 하나, 천주교는 원어인 카톨릭과 병행 사용되는데 반하여 개신교도를 뜻하는 프로테스탄트는 그만큼 빈번하게 들리지 않습니다.


세계의 구원자를 듯하는 살바토르 문디(Salvatore Mundi), 기독교의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킴.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


기독교란 이름은 지저스 크리스트(Jesus Christ)의 이름에서 유래합니다. 우리말로 지저스는 예수로, 크리스트는 그리스도로,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가 된 것이지요. 기독교(基督敎)는 그 그리스도의 한자 독음입니다. 즉, 기독교란 크리스트교이니 크리스트란 성인의 종교이고, 그 성인을 믿는 종교라는 뜻입니다. 카톨릭이나 개신교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니 두 종교 다 기독교입니다. 이렇듯 우리 성서에 기록된 인물들의 이름이나 지명들은 기독교가 중국을 통해 들어왔기에 오늘날까지 그 당시 번역된 한자의 독음을 따르고 있습니다. 원어인 히브리어나 헬라어, 또는 그것을 옮긴 영어든 독일어를 번역한 것도 아니고, 한 번 더 옮긴 한문 성경을 번역했기에 용어적인 면에서 이렇듯 때론 생경하게 느껴지는 말과 글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기독교(Christianity)엔 카톨릭(Catholicism)이나 개신교(Protestantism)에 버금가는 체급의 종교가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동방 정교회(Eastern Orthodoxy), 또는 정교회라 불리는 기독교입니다. 우리나라에선 교세가 크지 않아서 그렇지 정교회는 유럽을 양분하고 있는 종교입니다. 위의 메흐메드 2세가 알라를 찬양했던 성 소피아 대성당은 당시 카톨릭 성당이 아니라 정교회의 성당이었습니다. 그 성당은 13세기 초 4차 십자군 원정 시엔 엉뚱하게도 같은 편처럼 보이는 카톨릭 교도인 십자군에게 점령되어 57년 간 카톨릭 성당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1204~1261). 기독교와 이슬람교를 오가며 종교적인 용처로만 운명이 세 번씩이나 바뀐 성소입니다. 그리고 20세기엔 박물관으로도 사용되다가 2년 전인 2020년부터 다시 모스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정교회 성당의 화려한 실내 문양 (출처, pixabay)


이렇듯 로마 제국이 서로마와 동로마로 양분되었듯이 이후 기독교도 서로 침공을 할 정도로 적대적인 카톨릭과 정교회로 나뉘었습니다. 1054년 동서 대분열이라 불리는 사건으로 카톨릭 하나였던 기독교가 둘로 쪼개진 것입니다. 정교회를 동방 정교회로 부르듯이 카톨릭도 역사성과 지역성을 부과할 때에는 서방 카톨릭, 또는 그것의 본산인 로마 카톨릭으로 불립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등장한 개신교는 1517년 독일의 신학자인 마르틴 루터가 로마 카톨릭의 면죄부 판매에 항의, 95개 조에 달하는 반박문을 발표한 것이 계기가 된 종교 개혁으로 새롭게 출현한 기독교입니다. 이후 유럽의 여러 종교 전쟁을 거치며 개신교는 세계 각 나라로 뻗어가 많은 교파를 탄생시켰습니다. 개신교는 이름에서도 보이듯 먼저 일어난 카톨릭과 구분하여서는 그냥 신교(新敎)라고도 불립니다. 이때 카톨릭은 신교와 대비되는 구교(舊敎)로 불립니다. 주로 개신교 측에서 이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이렇듯 가장 먼저 생긴 로마의 카톨릭을 기준으로 볼 때 기독교는 11세기의 분열로 정교회와는 지역적인 구분으로 동서 교회가 되고, 이후 16세기에 반발로 일어난 개신교와는 시대적인 구분으로 신구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서양에서 개신교는 기존 기독교에 항거해서 일어났기에 그것이 그대로 이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프로테스탄티즘(Protestantism)인데 우리는 그렇게 번역하지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종교개혁을 통해 일어난 새로운 종교라는 의미를 더 받아들여 개신교(改新敎)가 되었습니다. 저항교라고 번역하기엔 좀 그랬나 봅니다. 정교회(Orthodoxy)는 이름 그대로 기독교의 정통성을 갖춘 종교라는 뜻입니다. 우리말 번역도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름으로만 보면 후발 주자이니 먼저 일어난 카톨릭과 대비하여 원조를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카톨릭(Catholic)의 어원은 보편성에 기초합니다. 만인을 위한 교회라는 뜻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우리말 번역은 보편교라 하지 않고 천주교로 했습니다. 이렇듯 카톨릭과 정교회는 어원으로만 보면 보편성과 정통성을 각각 이름에 담고 있습니다.


개신교를 출현케 한 마르틴 루터(1483~1546)와 그가 쓴 95개 조 반박문


카톨릭, 정교회, 개신교, 이 3개 종교는 위와 같은 역사성과 큰 교세로 인하여 세계 3대 기독교라 불립니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볼 때 기독교도의 수는 32%에 달하며 그중 카톨릭이 약 13억, 개신교가 6억, 정교회가 3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수치는 이단이 아닌 정상적인 교회의 등록 신도수 기준으로 보입니다. (출처, International Bulletin of Missionary Research, 2021. 1)


기독교의 카톨릭, 정교회, 개신교는 모두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유일신으로 받들고 예수 그리스도를 그의 독생자로 믿는 종교입니다. 경전은 공히 성경(Bible)입니다. 이 성경의 다른 해석으로 기독교가 크게 3개로도 나뉘었지만 그 안에서 또 많은 종파나 교파로 분파되었습니다. 그에 따라 각각의 종교마다 교리와 예식에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성직자의 결혼 유무만 보더라도 카톨릭은 주지하다시피 신부는 미혼만 가능하여 사제 서품을 받고서도 평생 미혼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신부가 결혼을 한다는 것은 교회를 떠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혼 불가는 신도들에게도 엄격히 적용되어 역사적으로 카톨릭 국가였던 영국의 헨리 8세 왕은 이혼을 하고자 로마 바티칸에 저항하여 영국 교회인 성공회(Anglican Church)를 출범시켰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의 뜻을 초과하여 이혼을 거듭한 결과 6명의 왕비를 두었습니다.


개신교는 성직자인 목사의 결혼과 이혼이, 그리고 재혼도 자유롭습니다. 사유재산도 인정하니 가족을 꾸리는 등 인간사의 자연스러운 면을 인정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개신교파에선 여자도 목사가 될 수 있습니다. 3대 기독교 중 가장 나중에 생긴 만큼 가장 진보적인 면을 갖추고 있나 봅니다. 정교회는 또 다릅니다. 정교회의 신부는 사제 서품을 받기 전엔 결혼과 이혼, 재혼 유무가 상관이 없습니다. 결혼한 사람도 신부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서품을 받으면 더 이상 결혼도 안 되고 이혼도 허용하지 않습니다. 즉, 그가 사제로 잘아가는 이상 서품을 받을 때 미혼이면 평생 미혼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고, 기혼이면 평생 기혼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카톨릭, 정교회, 개신교의 경전인 성경(Bible) (출처, pixabay)


조직적인 면에서도 세 종교는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카톨릭은 유일하게 국가나 군대, 기업처럼 확고한 세계적인 조직을 갖추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의 원탑 수장은 로마 바티칸의 교황청에 있는 교황입니다. 교황은 중앙의 그곳에서 전 세계 카톨릭 성직자들의 인사권을 쥐고 카톨릭을 움직입니다. 그 바로 밑으로는 그를 보좌하는 최고 성직자 그룹인 추기경이 있는데 이들은 교황 공석(사망, 퇴위) 시 새로운 교황의 선출권을 가지고 있는 사제들입니다. 그리고 지역적으로는 교황이 임명한 주교들이 세계의 각 지역을 맡아서 담당합니다. 교황도 역시 주교로서 그는 로마 지역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 주교들 밑으로 신자들과의 접점인 각 지역의 성당을 책임지는 신부들이 있습니다.


반면에 정교회는 세계적인 중앙 조직을 갖추고 있지 않습니다. 대신 각 국가를 대표하는 도시에 있는 총대주교가 그 국가의 종교 수장을 맡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교회는 국가마다 독립적인 형태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카톨릭과는 달리 러시아 정교회, 그리스 정교회, 루마니아 정교회 등으로 불리는 이유입니다. 그래도 대외적인 면에서 형식적이긴 해도 정교회의 총본산이 과거 동로마 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이기에 오늘날 이스탄불의 총대주교가 정교회를 대표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정교회 신자가 가장 많고 국력이 센 러시아의 모스크바 총대주교가 실질적으로 정교회 최고의 지도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입김이 센 것이지요. 더구나 튀르키예는 오늘날 전 국민의 99%가 무슬림인 이슬람 국가로 바뀌었기에 이스탄불 총대주교는 상징적인 의미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정교회는 각 국가별 독립적인 조직이기에 이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시 모스크바의 총대주교와 키이우의 총대주교가 강하게 충돌할 수 있는 것입니다.


1965년 바티칸의 교황 바오로 6세와 이스탄불의 총대주교인 아티나고라스는 예루살렘에서 만나 천년의 화해를 하였습니다. 1054년 동서 교회 대분열 시 서로를 파문했던 로마의 교황과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가 동시에 그 파문을 철회한 것입니다. 아마 그때 그 자리에서 교황은 4차 십자군 원정 시 감행했던 십자군의 콘스탄티노플 침공을 사과했을지도 모릅니다. 이어서 지난 2016년 2월엔 프란체스코 교황과 정교회의 실세인 러시아의 키릴 모스크바 총대주교가 만나 또 화해의 악수를 나누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화해를 주선한 인물은 쿠바의 독재자 카스트로였습니다. 만남 장소도 쿠바의 수도 아바나였습니다. 이렇게 큰 일을 주선하고 카스트로는 그 해 11월 사망했는데 이 일로 그는 확실하게 천당을 갔을 것입니다. 지구상 하느님과 가장 가까운 두 분을 천년 만에 만나게 했고, 서방 카톨릭과 동방 정교회의 수장인 그들에게 동시에 축복도 받았을 테니까요.


천년의 화해, 프란체스코 교황과 키릴 총대주교의 만남, 아바나, 2016


개신교는 구심점이라 할 수 있는 단일 조직 체계를 태생부터 갖출 수 없었습니다. 16세기 초 종교개혁을 일으킨 마르틴 루터가 교주 역할을 하며 특정한 종교를 만든 것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래서 각 지역별로, 국가별로 세기가 힘들 만큼 많은 교파로 나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유럽의 각 나라에서는 기득 종교인 카톨릭과 개신교 간에 크고 작은 종교전쟁과 분란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당시 잉글랜드는 다른 개신교와는 뿌리가 다른 성공회가 국교였는데 북부 스코틀랜드는 스위스의 칼뱅이 창립한 장로회가 융성해 국교로까지 지정되었습니다. 세례에 대한 다른 해석으로 존 마이어스가 일으킨 침례회는 유럽에서 미국으로 건너가 개신교 국가인 미국에서 가장 큰 교파가 되었습니다. 영국의 웨슬리가 창립한 감리회는 미국으로 건너가 개화기의 우리나라에 장로회와 함께 일찍이 전파되었습니다. 이렇듯 개신교엔 교파별 그것을 창립한 파운더들이 있다는 점도 카톨릭이나 정교회와는 다른 점이라 하겠습니다.   


주지하고 있듯이 개신교는 이들 이외에도 크고 작은 수많은 교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개신교는 각 교파별 각개적인 조직은 있겠으나 카톨릭이나 정교회처럼 세계적이거나 국가적인 단일 조직을 갖추고 있지 못해 통합적인 한 목소리를 내기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참고적으로 우리나라의 개신교 인구는 전체 인구의 20%로 11%인 천주교를 앞섭니다. 그 사이 불교가 2위로 17%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출처, 한국리서치 정기조사 <여론 속의 여론>, 2021)



이어지는 2편에선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등 서구 사회에 영향을 끼친 3대 종교를 비교해서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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