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지중해가 떠받들고 있는 땅, 남불 프로방스는 예술가들의 영감 샘인가 봅니다. 여기서 예술가는 화가입니다. 발 닿는 몇몇 도시들마다 그곳을 대표하는 터줏대감 미술왕이 어김없이 그 도시를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추석을 낀 2018년도의 가을 여행입니다.
로마 시대 갈리아 속주의 두 번째로 큰 도시인 아를은 누가 뭐래도 고흐로 대표됩니다. 콜로세움을 닮은 그 시대의 건축물인 생생한 원형 경기장보다 죽은 고흐를 보기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고 있습니다. 네덜란드인이지만 그는 그의 예술 인생의 꽃을 이곳 아를에서 피웠습니다. 말이 꽃이지 불행하기 짝이 없던 그의 이곳 생활이었습니다. 그가 가던 카페, 묵었던 하숙집, 치료받던 병원, 쳐다보던 별이 빛나는 론강의 밤하늘 등 그가 거쳐간 아를의 다양한 모습들이 그의 붓을 거쳐 사각 화폭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어김없이 위대한 시대의 예술 유산으로 남겨졌습니다.
아를에서 멀지 않은 엑상프로방스엔 세잔이 대표 선수입니다. 그는 사과를 가지고 놀다가 현대 회화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혁명기 이곳에서 정치 활동을 한 미라보라는 강력한도시의 경쟁자가 있지만 그래도 도시는 온통 세잔입니다. 그의 작업실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것은 물론 오가는 거리와 건물 등의 간판에서 쉽게 세잔이란 이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곳은 그의 활동 터전 이전에 그가 태어났고 대학까지 교육받은 도시이기에 더욱 그럴 것입니다. 물 좋은 온천 도시인 엑상프로방스는 요즘 더 많은 관광객을 끌어 모으려 프랜차이즈 스타인 세잔을 한껏 더 띄우고 있습니다.
엑상프로방스에서 동쪽으로 좀 이동해 니스 근교로 가면 샤갈의 마을인 쌩폴드방스가 있습니다. 그의 대표작 '나와 마을'의 미래적 초현실성과는 거리가 먼 골목 구석구석 모든 곳이 예쁘고 그림같은 동화 속 과거 마을입니다. 북쪽 몽셀미셀이 바다 위에 떠있는 성이라면 남쪽 생폴드방스는 언덕 위에 올려진 성입니다. 적어도 당신이 그 안에 있다면 당신은 지금 중세 프랑스로 시간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일 겁니다. 그 팬시함을 더하려 이곳 거의 모든 옛집은 기프트 샵, 카페, 갤러리이지만 유달리 현역 작가의 아뜰리에가눈에 많이 띕니다. 샤갈의 후예들입니다. 샤갈의 무덤이 있는 마을이니까요. 좁은 성안 개활지 공터 공동묘지에 그의 무덤이 보입니다. 아시다시피 그는 러시안입니다. 그러함에도 이곳 주민들은 98년 그의 인생 중 마지막 20여년을 이곳에서 보낸 외지인 샤갈에게 마을의 한 자리를 아낌없이 내주었습니다. 영원히 쌩폴드방스에 머물라고..
쌩폴드방스 가까운 곳, 니스와 칸느 사이 코트다쥐르 해안가에 위치한 앙띠브는 피카소의 영지입니다. 도시를 지켰던 과거 성주는 그가 살던 성을 외지인 피카소에 내주어 지금은 피카소 미술관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스페인 말라가 출신인 피카소는 이곳 앙띠브에서 60세가 넘어 40여 년 연하인 친구 딸과 6번째로 결혼하고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는 이후 한번 더 결혼하여 럭키 세븐을 달성했습니다. 과연 잘 나갔던 천재 아티스트답게 그는 예술과 세속에서 그가 이루고 싶은 것은 다 이루고 살았습니다. 프로방스에서 피카소의 흔적은 근처 고르드라는 중세 도시의 대형 동굴 채석장에서 펼쳐지는 미디어 파사드 쇼로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프로방스엔 이들 외에도 열거 못한 많은 미술왕들이 그들의 도시를 대표하고 있습니다. 왜 프로방스는 이렇게 많은 거장들을 불러들이고 못 떠나게 했을까요? 일단 사람이 가장 살기 좋은 고온건조의 지중해양성 기후 탓이라 생각됩니다. 지중해는 역사적으로도 로마 제국이 가장 탐낸 지역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유역의 땅을 야금야금 침범해 넓혀가더니 결국은그 큰 바다를 그들의 내해로 삼았습니다. 로마에 둘러싸인 호수같은 바다가 된 것이지요. 당시 프로방스는 갈리아 속주에서 로마의 지배를 받은 첫 번째 지역이었습니다. 그만큼 그들이 탐낸 곳이었습니다.
이렇게 사람이 거주하기 좋은 곳은 역시 사람인 화가들도 거주하기 좋은 곳일 겁니다. 무엇보다도 프로방스는 그들이 작품 활동하기에 좋은 환경을 제공하였습니다. 사시사철 따뜻하니 아무 때나 물감과 캔버스를 들고 밖으로 나가 이젤을 세우면 그곳이 곧 그들의 아뜰리에가 되었을 테니 말입니다. 또한 그들의 작업에 꼭 필요한 빛과 광선을 제공하는 태양이 그 어느 지역보다도 훌륭하니 그들은 프로방스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선가 프로방스엔 같은 예술가임에도 음악가는 그리 눈에 띄지 않습니다. 실내에서 피아노 의자에 앉아 오선지를 앞에 놓고 머리를 쥐어짜며 작업하는 그들의 악상 영감 발현에 굳이 태양, 벌판, 산과 강 등의온화한 자연은 필요치 않아서 그랬을는지 모릅니다. 대신 음악가들은 프로방스 위 북쪽 큰 도시들에서 우리가 딱 그렇게 연상하고있는 모습그대로 찬바람에 검은 망토 위 옷깃을 세우고 이곳 미술가들처럼 한껏 실력 발휘를 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