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엔 포르투갈의 포르투처럼 항구가 그대로 그 지역을 가리키는 고유한 지명이 되는 곳이 많았나 봅니다. 포르투가 자주 나오다 보니 그런 유사한 어떤 항구가 떠올라서 잠깐 그곳을 들렀다가 본론인 포르투갈의 사유(四有) 중 나머지 이유(二有) 기행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제가 일전에 이곳에 쓴 <잉글리시맨 인 이태리> 글에 나오는 일화입니다.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는 이탈리아를 소재로 한 작품을 무려 10편이나 썼는데 놀랍게도 그는 이탈리아를 단 한 번도 간 적이 없습니다. 이에 후대의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품었는데 그들 중 리처드 폴 로라는 미국 변호사는 일생을 바쳐 이탈리아 내 셰익스피어를 추적하고 그것을 <셰익스피어의 이탈리아 기행>이란 책으로 펴냈습니다. 그의 결론은 셰익스피어가 이탈리아에 갔다는 것인데 그 주된 이유로는 그가 직접 방문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듣거나 문서만을 보고서는 작품의 배경이 되는 그 많은 도시들과 당시 이탈리아의 상황을 그렇게
정확히 묘사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널리 알려진 <로미오와 줄리엣>의 경우 배경이 되는 베로나의 작품 속 중세의 도시 모습은 현재 베로나의 도시 곳곳에 그대로 그 흔적이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셰익스피어가 나무 하나, 건물 하나를 상상해서 허투루 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는 나머지 9개 작품들도 그런 식으로 셰익스피어가 생존했던 시기의 지명, 풍습, 의상, 건축, 법률 등을 각각 작품의 배경이 되는 도시에서 추적하고 고증했는데 모두가 작품 속 묘사와 정확히 일치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포르투와 유사한 항구 일화는 17세기 초에 쓰인 희극인 <끝이 좋으면 다 좋아>에서 나옵니다. 피렌체가 배경인 그 작품에는 포트(port)라는 항구가 등장하는데 비평가들은 셰익스피어가 피렌체를 가보지 않아 항구 도시로 착각해서 그렇게 쓴 것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리처드 폴 로는 피렌체를 관통하는 아르노 강가 근처의 옛 지명이 포트라는 사실을 고증을 통해 밝혀냈습니다. 그리고 고유 지명이기에 그곳 포트를 셰익스피어는 작품에서 본래 대문자로 썼었는데 후대의 출판업자들이 그것이 오자인 줄 알고 소문자로 변경했다고 질책까지 했습니다. 만약 그의 말이 사실로 입증된다면 피렌체의 아르노강 주변 항구 도시 포트(Port)는 포르투갈의 도루강 하류 항구 도시인 포르투(Porto)와 같은 지명 표기 사례일 것입니다.
빌라 노바 드 가이아 지역에서 본 포르투 시내 전경. 도루강을 연결하는 철교는 에펠의 제자인 세이리그가 1886년 건축한 동 루이스 다리
타르트의 나라, 포르투갈
원조 맛집이 있습니다. 춘천엔 닭갈비집이 있고 장충동엔 족발집이 있습니다. 그리고 새벽길엔 어딜 달려가도 길가에 원조라고 써붙인 양평해장국집이 보입니다. 그 집에 가서 먹으면 더 맛있을까요? 사실 원조보다 더 맛있는 집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드러난 그 원조를 보고 맛을 업그레이드시키면 되니까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 싸움에서의 승자는 원조집입니다. 실제로 더 맛있기도 하겠지만, 거기에 더 맛있게 느껴지는 심리적 요인이 더해져서 그럴 것입니다. 그 맛 때문에 시간을 들여 먼 길을 돌아왔고, 줄까지 서서 기다렸으니, 그 보상으로 무조건 더 맛있어야 하는 당위성까지도 포함될 것입니다. 원조의 힘입니다. 세상의 모든 상품은 돈을 주고 살 수 있지만 전통과 유산은 아무리 많은 돈을 줘도 살 수 없는 것이니까요.
과거 회사 재직 시 연말에 성과를 달성해 직원들에게 약속한 홍콩과 마카오로 해외 워크숍을 갔습니다. 마카오에 갔을 때 여직원들이 이구동성으로 거길 가야 한다며 들른 집이 있었습니다. 에그 타르트 가게였습니다. 마카오의 랜드마크인 성 바울 성당 아래에 있는 집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줄을 서서 산 에그 타르트를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전 그 집이 에그 타르트의 원조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에그 타르트의 원조는 잘 알려진 대로 포르투갈입니다. 마카오가 오랫동안 포르투갈의 식민지였으니 원조의 맛이 먼바다를 지나 마카오로 전해진 것입니다. 이렇게 원조와 연결되어 있으니 마카오의 에그 타르트가 서울의 그것보다 맛있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입니다.
드디어 에그 타르트의 진짜 원조를 찾아갔고 그 원조의 맛도 보고 왔습니다. 그 집은 수도 리스본의 타구스강을 끼고 있는 벨렘 지구에 있습니다. 근처에 대항해 시대의 역사적 유적지인 벨렘탑과 발견의 탑, 그리고 제로니모스 수도원이 있는 곳으로 그 수도원 길 건너 빠스테이스 드 벨렘(Pastéis de Belém)이 바로 그 원조 에그 타르트집입니다. 과거 제로니모스 수도원의 수녀들이 옷을 빳빳하게 하기 위해 풀을 먹이듯 사용했던 계란의 흰자를 쓰고서 남은 노른자를 가지고 디저트를 만들어 먹었는데 그것이 오늘날 우리나라에까지 퍼진 에그 타르트의 기원이라고 합니다.
리스본에 있는 원조 타르트집 빠스테이스 드 벨렘 since 1837
제로니모스 수도원 근처 그 빵집의 선조는 수녀들에게 그 비법을 전수받아 1837년 에그 타르트원조가 되었습니다. 위치 설정을 잘한 결과입니다. 그 집은 늘 그렇다고 하는데 제가 간 날도 역시 발 디딜 틈이 없었고, 앉아서 먹을 테이블도 없어 그것을 사다 준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수도원과 타르트 집 사이 작은 공원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서 호젓하게 그 맛을 즐겼습니다. 그 맛이 다른 집보다 더 맛있는지 제 혀는 잘 못 느낄 수도 있지만 186년의 시간이 더해진 원조의 힘으로, 원조와 더 진짜 원조의 사이의 공간에서 제 생애 가장 맛있는 에그 타르트를 먹은 것만 같았습니다.
포르투에 가서는 다른 타르트를 맛보았습니다. 바삭하게 부서지는 패스츄리 생지는 같지만 그 위에 에그가 아닌 애플이 올라간 타르트입니다. 역시 그 애플 타르트도 포르투의 원조격인 집에 가서 오래된 맛을 음미하였습니다. 하지만 리스본의 한데서 먹은 에그 타르트와는 애플 타르트는 카페에 앉아 우아하게 커피를 곁들여 여유 있게 즐겼습니다. 포르투 중심가인 산타 카타리나 거리에 100년 전인 1922년 오픈한 마제스틱 카페(Majestic Café)입니다. 그곳도 역시 리스본의 원조 에그 타르트집처럼 줄 서서 기다리다 입장하는 곳이었습니다. 다른 점은 문 안에 있는 격식을 갖춘 웨이터가 자리가 비면 문을 열고 대기자를 들여보내 주었습니다.
포르투에 있는 아르누보 양식의 클래식한 카페 마제스틱 since 1922
마제스틱 카페는 벨 에포크 시대의 아르누보 양식의 노블하고 클래식한 장식으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카페 중의 하나로 꼽히는 핫 플레이스입니다. 그런 인테리어에 그런 평판까지 더해져서인가 그곳은 왠지 복장도 왕궁의 음악회를 갈 때처럼 갖춰 입고 들어가야만 될 것 같았습니다. 전 사실 애플 타르트를 먹고 싶어서 들어간 것이 아닌, 마치 유적지를 답사하듯이 그곳은 들러야 될 것만 같아서 들어갔습니다. 그간 다녔던 포르투갈의 다른 카페에선 아메리카노 한 잔에 1~2유로를 받았는데 마제스틱 카페는 6유로를 받았습니다. 원조와 평판의 힘이고 자신감일 것입니다.
<해리포터>의 작가 조앤 롤링은 무명 시절인 1991년 포르투에 거주하며 영어 교사를 했습니다. 그때 그녀는 이 카페에 앉아 그 소설의 초고를 썼다고 하는데 제가 앉았던 자리에서 그녀가 그 작업을 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그런 심리적인 맛과는 상관없이 마제스틱 카페의 아메리카노와 애플 타르트 맛은 매우 훌륭했습니다. 이렇듯 저는 포르투갈에 가서 원조 타르트를 모두 섭렵하고 왔습니다. 리스본에선 에그 타르트를 먹었고, 포르투에선 애플 타르트를 먹었습니다.
포르투 마제스틱 카페의 맛깔난 애플 타르트와 아메리카노
파두의 나라, 포르투갈
2천년 대 초반 음반 매장에서 파두 CD를 한 장 샀습니다. 이탈리아의 칸초네, 프랑스의 샹송 등의 월드 뮤직이 지금보다 많이 들리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포르투갈의 민요 같기도 하고, 대중가요 같기도 한 파두가 어느 날부터 제 귀에 들리기 시작하더니 꽂히기까지 하여 그 CD를 구입한 것입니다. 파두가 오묘하게 우리의 한이 서린 정서와 꽤나 닮게 느껴져 저의 심정적인 동요를 일으킨 것이었습니다. 베빈다라고 하는 파두 가수의 곡을 샀는데 그녀의 노래를 차에서 들으며 전 깜짝 놀랐습니다. 어떤 노래로 넘어갔는데 그 노래의 가사는 당연히 못 듣지만 그녀 특유의 흐느끼는 듯한 멜로디는 너무나도 제 귀에 익숙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상하다 생각하며 찾아보니 그 노래는 우리나라 가수인 양희은의 노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와 멜로디가 똑같은 파두였습니다. 그래서 처음엔 양희은의 곡이 번안곡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반대였습니다. 베빈다는 2002년에 내한 공연을 왔는데 우리나라에 머무는 동안 파두의 정서와 너무나도 비슷한 양희은의 그 노래를 듣고 반해서 그 곡을 취입해 파두 창법으로 리메이크해 부른 것이었습니다. 포르투갈의 프로페셔널한 파두 가수가 듣기에도 우리의 슬픈 가요는 그 나라의 파두와 비슷하게 느껴졌나 봅니다. 그녀는 그 곡에 <이젠 됐어요(Ja Esta)>란 제목을 붙였습니다.
파두는 이후 2018년 방영된 jtbc TV의 음악 방송인 <비긴어게인 2>에서 김윤아 팀에 이어 박정현 팀까지 두 번이나 연속으로 포르투갈 현지에서 파두 공연을 보여줌으로써 우리나라에 더욱 알려지게 되었습니다.파두의 전설인 아말리아 로드리게스의 여동생이 직접 출연하여 파두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파두는 리스본 항구 구시가지의 노래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포르투갈 전역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유럽 대륙의 서쪽 끝인 그 나라는 남쪽으로는 아프리카의 무어인에게 치이고, 동쪽으로는 대국 스페인에 치이고, 그렇게 역사적으로 억압을 받아와 그들이 나갈 곳은 바다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바다는 돌아오는 것을 기약할 수 없기에 그 땅에 사는 떠나간 자와 남긴 자는 모두 고단하고 고달픈 인생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민초들의 이야기입니다. 포르투기스는 그들의 많고도 깊은 그리움과 슬픔, 사랑과 이별, 그리고 고향을 그리는 향수를 애절한 노래로 표현했습니다. 파두(Fado)라는 이름도 라틴어인 숙명과 운명(Fatum)에서 유래했다고 하니 그 노래엔 한이 서려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파두의 원조 국가에서 파두 공연을 보았습니다. 성모 발현지인 파티마 근처의 레스토랑에서 본 공연이었습니다. 2대의 파두 연주 전용 기타에 맞춰 남녀 가수가 나와 돌아가며 파두를 불렀는데 역시나 저에겐 그 노래가 이질감 없는 우리 노래처럼 들렸습니다. 그리고 막상 가까이서 라이브로 들으니 파두의 힘까지 느껴졌는데 길게 소리를 빼며 힘 있게 소리를 끌어올릴 땐 남녀 가수 모두 온몸을 쓰는 독특한 창법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멜로디 반주를 맡은 잘생긴 포르투갈 청년 기타리스트의 화려하고 현란한 솔로 연주는 파두가 보컬뿐만이 아닌 연주곡으로서도 월드 뮤직이 되기에 손색이 없음을 느끼게 했습니다.
파두 전용 연주 기타에 맞춰 온몸으로 파두를 열창하는 파두 가수. 2023. 3
포르투갈 제 3의 도시인 북부 브라가를 가는 길에 들른 코임브라도 파두를 가지고 있습니다. 코임브라는 과거 포르투갈의 수도로 도시보다 더 유명한 대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1290년에 세워져 세계에서 가장 오랜 대학 중의 하나로 꼽히며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정도로 역사성 있는 캠퍼스를 가진 코임브라 대학입니다. 당시는 귀족의 남자 자제만 입교가 허용된 시대였기에 그 남학생들은 도시에 사는 여자들에게 사랑을 구애하며 달빛 아래 그녀의 집 창문 아래에서 노래를 부르곤 했습니다. 그들이 불렀던 그 노래를 코임브라 파두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코임브라 파두는 슬픈 리스본 파두와는 달리 세레나데처럼 낭만적이면서 남자 가수만 부른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남학생들이 졸업하고 코임브라를 떠나고 나면 도시엔 슬픔으로 가득 찬 많은 코임브라 레이디들만이 남아있었을 것입니다.
코임브라 대학생들은 전통에 따라 주요 행사일엔 지금도 교복인 망토를 입는데, 그 망토는 역시 또 <해리포터>에 등장하는 호그와트 마법학교 교복의 모델이 되었다고 합니다. 위에 등장한 포르투의 마제스틱 카페를 비롯하여, 또 마법학교 기숙사의 모델이 되었다고 하는 포르투의 렐루 서점까지 포함하여 <해리포터>의 흔적이 참으로 많은 포르투갈입니다. <해리포터>까지 넣어서 사유(四有)의 나라가 아닌 오유(五有)의 나라 포르투갈이라고 해도 될 정도입니다.
작가 조앤 롤링은 이렇게 오래된 포르투갈에 살며 그녀의 인생을 바꾼 출세작인 <해리포터>의 많은 영감을 얻었습니다. 조앤 롤링은 포르투갈을 떠나 고국인 영국으로 돌아가 1997년 <해리포터>를 출간했지만 마치 그 소설의 프리퀄과도 같은 포르투갈 스토리로 인하여 많은 관광객들이 그 나라에 줄서서 몰려드니 포르투갈 정부는 그녀에게 감사를 표해야 할 것입니다. 그녀에겐 악연이었지만 그녀를 머물게 한 첫 남편인 포르투기스에게도..
코임브라 파두가 탄생한 1290년 설립된 이베리아 반도의 최고 명문 코임브라 대학교. 동상은 설립자인 디니스 1세. Admire History, Redesign Future!
같은 멜로디의 가요이고 파두이지만 양희은이 부른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와 베빈다의 <이젠 됐어요>의 가사는 사뭇 다릅니다. 마치 같은 타르트이지만 맛은 사뭇 다른 에그 타르트와 애플 타르트처럼 말입니다. 두 나라의 사랑과 이별에 대한 해석이 달라서일까요? 두 곡의 인트로 가사입니다.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양희은)
다시 또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을 하게 될 수 있을까 /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 /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일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 / 사랑이 끝나고 난 뒤에는 이 세상도 끝나고 날 위해 빛나던 모든 것도 그 빛을 잃어버려
이젠 됐어요 (베빈다)
어느 햇빛 쏟아지던 날, 당신은 내 곁을 떠났어요 / 텅 빈 침대를 남겨두고 매정하게 떠났죠 / 나는 몹시 울었어요 / 하지만 이제 됐어요/ 더 이상은 아프고 싶지 않아요 / 당신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 / 사랑은 당신과 함께 떠났어요
* 저의 포르투갈 기행의 길라잡이 역할을 해주신 참좋은여행사의 김현주 가이드와 이혜정 인솔자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