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 빚을 갚다

by 마하

오늘은 도서관에 가는 날입니다. 이른 아침 전 양재천을 따라 그 도서관으로 향했습니다. 저희 집에서 2.7km의 거리이니 산보 겸 도보로 전혀 문제없는 거리입니다. 그 도서관은 일전에 제가 이곳에서 글을 통해 찬사와 애정을 보냈던 서초구립 양재도서관입니다. 2년 전인 2021년 8월 전 그 도서관에 대한 감상을 두 편의 글에 나눠 썼습니다. <감동의 동네 도서관>과 <도서관을 사랑한 사람들>이 그것들로 아름다운 양재도서관에 인문학적 사실을 더해 쓴 글이었습니다.


당시 전 30년 넘게 종사해 온 광고일을 마치고 반백수가 되어 그 도서관 출입을 시작하던 때였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1년 넘게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그 도서관에서 하루를 보내며 <뉴스버스>에 매 주말 연재하는 인문교양 칼럼을 썼습니다. 모양도 이쁜 데다가 제겐 참으로 고마운 도서관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작년 어느 날부터 루틴이 된 저의 양재천 발걸음이 멈추었습니다. 저의 신상에 변화가 생겨서 그런 것이 아니라 도서관 신상에 변화가 생겨서 그런 것이었습니다.


작년 여름 8월에 닥친 수해 때 양재천이 범람하며 양재도서관의 지하가 침수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도서관은 한동안 문을 열지 못했습니다. 지하에 있던 전기실이 파손되어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도서관 기능이 상실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회복되는 데에 생각보다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포스코의 포항제철 공장을 비롯하여 전국에서 그 수해로 많은 전기 복구공사가 일시에 발생하다 보니 전기 엔지니어 과부족으로 일어난 사태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를 넘긴 도서관은 올해 3월이 돼서야 정상적인 개관이 되어 다시 예전과 같이 도서관을 필요로 하는 구민들을 맞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 도서관에 다시 가게 된 것인데 이번엔 앉아서 글을 쓰러 가는 것이 아닌 다른 일로 가게 되었습니다.


작년에 문제의 수해가 나기 전 도서관에서 우연히 관계자와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강연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도서관 문화 강좌의 일환으로 구민을 위한 인문학 강의인데 그것은 재능 기부에 속하는 강연이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그것에 흔쾌히 오케이를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좋아하는 그 도서관을 1년 넘게 무상으로 이용하며 제 글을 생산하고 있었으니 그런 기부쯤은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전까지 회사 생활을 하며 오랜 기간 임대료 걱정을 하며 살아서인지 절반은 오피스로 생각하며 이용하던 도서관이니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고 전 서초구민도 아니고 옆동네 구민이기에 도둑이 안 그래도 되는 제 발 저린다고 더 그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마치 그간 밀린 방세를 낸다는 기분으로 그 강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그렇게 강의가 잡히고, 도서관 이용자들에게 광고가 된 강의날 아침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비가 와서 사람들이 다들 올까 하는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양재천을 우산 쓰고 걷고 있었는데 도서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비 피해로 강의 진행이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위에서 나온 문제의 8월 8일 수해일이 바로 그 강의날이었습니다. 그날 지하에 찬 물은 도서관을 통째로 집어삼켜 그로부터 올해 3월까지 정상 운행이 불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작년 11월부터 부분적으로만 개관을 해왔습니다. 그렇게 그날 도서관을 향해 오다가 양재천 중도에서 뒤로 돌은 저의 발걸음은 8개월이 지난 오늘 아침에야 다시 같은 목적으로 그 도서관을 향하게 되었습니다. 그날 못한 밀린 강연을 하러 가는 날입니다.


가는 길 서초구의 양재천엔 4월 한 달간 벌이는 <양재천 벚꽃 등 축제>로 야외 조각상들이 수변은 물론 수상에까지 전시되어 주변 자연과 어울리며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양재천의 철학자인 칸트가 아직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강남구에서 서초구로 진입하여 주욱 가다 보면 오른편 천 안에 조성된 아주 작은 섬에 그의 동상이 있었는데 그 동상이 아직도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칸트, 그도 작년 8월 그 큰비의 피해자였습니다. 그때부터 그가 사라졌으니까요. 물에 떠내려 갔을 리는 없을 것 같고 아마도 서초구에서 그를 피난시켜 고이 보관하고 있을 텐데 근처의 양재도서관은 정상 오픈됐어도 칸트는 아직도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고향인 동프로이센의 쾨니히스베르크를 떠나 제2의 고향인 양재천에 자리를 잡고 시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던 그였는데 이제 그도 다시 돌아왔으면 합니다. 이미 양재천의 터줏대감이자 랜드마크가 된 그니까요.


오래간만에 온 양재도서관에서 2시간 강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올 때와 똑같은 양재천 길을 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도서관에 오는 길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더욱 가볍기만 합니다. 8개월 전 도서관에 진 빚을 갚고 가는 길이니까요. 갈 때도 또 힐끗 칸트의 동상이 있는지 쳐다봅니다. 그새 그가 돌아오긴 힘들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확인해본 겁니다. 그도 어서 다시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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