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의 나라, 포르투갈 <상>

정어리 / 와인 / 타르트 / 파두

by 마하

오! 포르투


강을 타고 내려온 나룻배엔 으깨진 포도가 잔뜩,

여인네들이 풍작의 계절을 발로 힘차게 밟았으리라.


바다를 헤치고 올라온 돛단배엔 펄떡한 정어리가 가득,

남정네들이 풍어의 시간을 팔로 힘차게 걷어 올렸으리라.


대지도 바다도 풍년이로다..

도루강 상류 대지에서 온 농부

도루강 하류 바다에서 온 어부

항구에서 그들은 하나로 만났고 도시를 이루었다.


집집마다 아이들에겐 갓 구운 타르트 안기고

그 미래의 농부와 어부가 잠든 밤,

포르투의 선술집엔 애달픈 파두가 새벽까지 이어진다.

먼저 와 익은 항구의 와인과 함께..


포르투를 가로지르는 도루강, 하류 대서양 바다 쪽에서 상류를 본 정경


이베리아 반도 스페인의 북부에서 발원하여 카스티야레온 지방을 가로질러 흐르는 도루강은 포르투갈과 국경선이 되어 두 나라가 112km를 함께 달리다가, 이윽고 포르투갈로 넘어와 그 나라의 북부를 관통하여 광활한 대서양으로 뚫고 나갑니다. 897km의 장구한 여정입니다. 그 강물이 그 바닷물을 만나는 그 강 하구에 예로부터 항구가 하나 있었습니다. 항구 아래 바다에서 나오는 수산물과 항구 위 강가에서 나오는 농산물이 모여들고 가공되던 곳입니다. 어느 순간 그 항구(port)는 그곳을 가리키는 지명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에 그의 이름까지 빌려줄 정도로 자라났습니다. 포르투갈의 2대 도시 포르투(Porto)입니다.



정어리의 나라, 포르투갈


전 국토 중 서부와 남부 2면이 대서양과 접한 포르투갈은 그 바다에서 많은 싱싱한 어종들이 포획되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정어리입니다. 그 나라에서 출하되는 물고기의 37%에 이르니까요. 그래서 포르투갈 어디를 가든 그 생선은 쉽게 발견이 됩니다. 그런데 이방인인 제 눈에 그 정어리는 수산 시장이나 어물전에서 펄떡 뛰는 생물의 모습이 아닌 가공된 무생물의 모습으로 더 많이 보였습니다. 그것도 가는 도시마다 다운타운 중심가에 명품숍과도 같은 화려한 인테리어로 치장된 곳에 그 정어리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형형색색으로 아름답게 쌓여있는 캔 속에 고이 갇혀있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참치나 꽁치와도 같은 통조림 정어리입니다.


그런데 캔 속엔 정어리가 들어가 있지만 캔 밖엔 도무지 정어리를 상상할 수 없는 매직이 걸려 있어 저와 같은 관광객의 손이 아니 갈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크리스마스트리 용품과도 같이 각양각색의 컬러도 컬러지만 통조림 표면에 네 자리 숫자로 20세기 이후의 모든 연도가 빠짐없이 각각 표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그랬었지만 상점에 들어온 손님들은 그 정어리를 사가기 위해 가족이나 지인의 출생연도 숫자를 열심히 따지며 손가락을 꼽고 있었습니다. 흡사 그 매대의 정어리는 제게 “너 몇 년도 생이니?”라고 물어보는 것만 같았습니다. 자세히 보니 그 캔 표면의 큼직한 연도 숫자 아래엔 그 해에 탄생한 역사적 인물과, 그 해에 발생한 역사적 사건까지 조그맣게 일일이 인쇄를 해놓았습니다. 안에 들어가 있는 정어리보다도 캔 패키지 제작에 더 돈이 많이 들어갔을 것만 같았습니다.


출생연도에 착안하여 패키지를 구성한 팬시한 정어리 통조림


이렇듯 포르투갈의 바다 특산물인 정어리는 죽어서 멋진 선물용품으로 부활했습니다. 어떤 통조림 표면은 연도가 아닌 아름다운 포르투갈 도시들의 정경이 세트로 프린트되어 있기도 합니다. 금을 좋아하는 중국인 관광객을 위해서는 골드바로 변신한 정어리도 있습니다. 정어리에 마케팅이 결합되어 전 세계에 포르투갈을 알리는 훌륭한 상품이 탄생한 것입니다. 사는 순간 구매자는 비릿한 정어리를 산다는 느낌이 아닌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산뜻한 기념품을 산다고 느낄 것입니다. 귀국해서 뜯을까 말까, 아까워하며 뜯어서 먹어본 그 맛은 올리브유에 정어리를 담가서인지 비릿함은 덜하고 매우 고소하고 담백한 포르투갈의 맛으로 기억되었습니다.


포르투의 렐루 서점에 착안한 오비두스 시내의 화려한 Comur 정어리 숍



와인의 나라, 포르투갈


포르투를 관통하는 도루강 상류에서 강물 따라 도시로 들어오는 배에 실린 농산품들 중에 포도가 있었습니다. 정확히는 와인이고, 더 정확히는 와인이 되기 전의 와인입니다. 포르투에서 만들어졌다고 해서 포르투 와인(Porto wine)으로, 영어로는 포트 와인(Port wine)으로 불리는 포르투갈의 대표 와인입니다. 포르투의 양조업자들은 포트 와인으로 불리는 것을 싫어할 것입니다. 프랑스의 부르고뉴 와인을 아무도 그렇게 부르지 않는 버건디 와인이라고 영어로 부르는 것과 같은 것이니까요. 이렇듯 이베리아 반도의 젖줄인 도루강은 주변의 땅을 비옥하게 만들어 포르투갈도 그 나라를 대표하는 와인이 있는 국가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상하게 생각한 점이 있었습니다. 이번 저의 포르투갈 여행 일정 중에 포르투 와이너리 투어가 있어서 전 응당 포르투 도시 근교의 포도밭(vineyard)을 가는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그렇지가 않은 것이었습니다. 대신 포르투 다운타운에 있는 양조장(winery)을 방문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프랑스도 그렇고, 미국도 그렇고 통상 와이너리 투어라면 각 브랜드마다 농지에 고유한 포도밭이 있고 그 안에 양조장까지 있기에 포르투갈 와이너리도 당연히 그런 구조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포르투 와인을 모르는 저의 무지의 소치였습니다. 팩트는 포르투 와인은 포도밭과 와이너리가 분리되어 있습니다.


빈티지의 끝판왕 포르투 시내 도루강 남쪽 강변에는 창고 모양의 오래된 양조장들이 줄지어 들어서 있습니다. 그 고색창연한 창고 하나하나가 전통적인 포르투 와인 메이커이고 브랜드입니다. 포르투 도시 안에 있지만 이 지역은 정확히 행정적으로는 빌라 노바 드 가이아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포도밭은 도루강 상류 강변의 농지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곳에서 가을에 수확된 포도는 으깨어져 초기 와인이 되지만 그해 겨울이 되면 강을 따라 배로 이곳 포르투로 옮겨져 이들 양조장에서 숙성이 되고 완성품이 되는 것입니다.


이유는 도루강 상류는 포도가 자라기에 적합한 기온이지만 숙성에 적합한 기온과 환경은 강 하구 포르투이기에 그렇게 해온 것입니다. 다른 곳과는 다른 포르투 와인만의 전통과 유산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과연 모든 와인이 그렇지만 포르투 와인도 꽤나 민감한 와인이라 하겠습니다. 그 숙성마저도 같은 포르투 지역 중에서 강 북쪽은 안되고 강 남쪽만 되어서 그곳 빌라 노바 드 가이아 지역에만 양조장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으니 말입니다.


포르투의 도루강변에 있는 칼렘 와이너리의 포르투 와인 저장고


그 민감함 때문에 포르투 와인엔 또 한 가지 차별되는 특성이 있습니다. 발효 시 브랜디를 첨가해 알코올 도수와 당도를 높인 주정 강화 와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와인의 알코올 도수는 다른 와인들보다 높은 18도에서 20도 사이입니다.


그 이유는 영국에 기인합니다. 영국은 프랑스와의 지난했던 백년전쟁이 1453년에 패배로 끝나면서 그들의 프랑스 내 영토이면서 와인 주산지인 보르도를 빼앗겨 와인 수급이 원활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전쟁도 전쟁이지만 와인 애호가인 영국 술꾼들에게 큰일이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대체 지역을 부랴부랴 찾았는데 그때 영국에서 가깝기도 한 포르투갈의 도루강 주변의 와인이 대체재로 부상했습니다. 영국인들은 매우 다행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와인을 포르투에서 수입하면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냉장이 안 되던 시절이라 무더운 여름엔 운송 시 바다에서 와인이 변질되는 것이었습니다. 식초로 변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래서 와인의 알코올 도수를 높여봤더니 일시적으로 발효가 중지되면서 와인이 오래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역사적인 포르투 와인이 탄생한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영국이 맥주를 그들의 식민지였던 인도까지 상하지 않고 운송하기 위해 알코올 도수와 홉의 함량을 높인 IPA(India Pale Ale) 맥주를 개발한 것과 같은 사례입니다. 하지만 이런 유래는 역시 또 포르투 양조업자들이 들으면 기분 나빠할 소지가 있습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그렇게 만들었다고 하니까요. 아무튼 보듯이 인간은 술을 제 맛에 즐기기 위해서 역사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뜻대로 안 될 경우는 하늘에 계긴 주신인 하느님을 잠시 곁으로 밀어 놓고 올림포스산 위에 사는 주신인 디오니소스에게 기도를 드리며 해결책을 강구했을 것입니다.


도루강변에 줄지어 선 양조장들 앞 강물 위엔 지금도 과거 숙성 전 포도를 실어 나르던 검은 배들이 몇 척 떠있습니다. 포르투 시에선 그것도 역사적인 유산이라 그렇게 전시를 하고 있을 것입니다. 기발한 사실은 그 배들이 강 위에 떠있는 광고판이란 사실입니다. 그 앞에 모여 있는 와이너리들이 배마다 자사 브랜드를 새기고 광고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각 양조장들은 방문객들에게 와이너리 투어 시 프레젠테이션과 시음 행사를 하고 그곳 숍에서 자사의 와인을 판매합니다. 저도 시음에 참가했지만 포르투 와인은 역시나 높은 알코올 도수만큼이나 독하고 달콤한 맛이 올라왔습니다. 그래서 그 와인은 식후에 마시는 디저트 와인으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서양인의 미각과 취향은 그런가 봅니다. 포르투갈은 와인 원산지 표기법을 1756년 전 세계에서 최초로 실시한 나라입니다. 와인 최고 선진국인 프랑스는 1935년에야 와인에 그 법인 AOC(Appellation d'Origine Controlee)가 확립되었습니다.


포르투를 관통하는 도루강. 왼편이 와이너리들이 있는 빌라 노바 드 가이아 지역. 그 앞 강에 떠있는 작은 배들은 과거 상류에서 포도를 실어 나르던 배



* 사유의 나라는 네 가지가 있는 나라입니다. 포르투갈의 먹거리, 마실거리, 간식거리, 들을거리에 대해 쓰고 있습니다. 다음 주말 <하>편에선 타르트와 파두에 대해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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