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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하 Jun 17. 2023

기독교가 퇴출시킨 고대 올림픽 <하>

그런데 고대 올림픽은 왜 올림피아라는 도시 한 곳에서만 열렸을까요? 그리스를 하나의 세계인 헬라스라 칭한 그들이었으니 그 세계에 있는 많은 도시 국가들이 돌아가면서 했을 수도 있었는데 말입니다. 정답은 제우스 신 때문이었습니다. 올림피아에 그리스 신화의 주신인 제우스의 신전이 있었기 때문에 그곳에서만 대회가 열린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고대 올림픽은 제우스를 위한 제전(祭典)이었습니다. 제우스를 기리는 제사를 겸한 스포츠 대회였다는 것입니다. 현대에 와서도 올림픽을 가리켜 스포츠 제전이라 불리는 이유이고 유래입니다.


이렇게 천년 넘게 올림피아에서만 올림픽이 열리다 보니 그 도시는 예나 지금이나 올림픽 성지의 지위를 누려오고 있습니다. 근대 올림픽에선 그 도시에서 더 이상 올림픽이 열리지 않는 대신 대회의 시작을 전 세계에 알리는 성화 채화 장소로 스포트 라이트를 받고 있습니다. 그곳에 있는 헤라 신전에서 여 사제들이 자연의 불을 채화하는 의식을 통해 성화봉에 그 불을 옮겨줍니다. 제우스의 제전이지만 생성과 출산은 여신의 몫이기에 제우스의 부인인 헤라가 그것을 담당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태어난 신령한 불은 마치 인간을 사랑하는 프로메테우스가 인간계에 불을 전해주듯이 조심스레 성화 제1 주자에게 전달됩니다. 그리고 지구를 돌아 해당 연도 올림픽 개최 도시까지 이동하며 전 세계인의 환영을 받습니다. 바야흐로 올림픽의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는 것입니다.  


고대 올림픽 개최 시 주신인 제우스를 모신 신전의 잔해, 총 34개의 기둥 중 단 1개만이 남아있음
위의 기둥과 잔해를 근거로 모델링한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전


역시나 고대 올림픽엔 그리스 신화의 영웅이 등장합니다. 기원전 776년 열린 제1회 대회를 천하장사인 헤라클레스가 개최했다는 것입니다. 그의 아버지인 제우스 신이 인간 여자인 알크메네와 바람을 펴서 탄생한 그였기에 평생 제우스의 아내인 헤라의 미움으로 고난의 길을 겪던 그였습니다. 드디어 헤라가 사주한 불가능한 12가지 과제를 모두 완수하고 그 기념으로 아버지인 제우스에게 제사를 드린 것이 고대 올림픽의 효시라는 것입니다. 즉, 근대 올림픽이 쿠베르탱 남작의 작품이라면 고대 올림픽은 헤라클레스의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근거가 없습니다. 인간의 피가 섞인 신화 속 인물들 중 가장 체력과 힘이 뛰어난 헤라클레스였기에 이런 신화가 만들어진 듯합니다.


고대 올림픽은 오늘날 하계 올림픽과 같이 여름에 열렸는데 5일 간 최대 19종목이 열렸습니다. 첫날과 마지막날은 개회식, 선서, 시상식과 함께 신들에게 제사를 드렸습니다. 경기는 2일차와 4일차인 3일 동안 집중되었습니다. 선수들은 당시 그리스의 전역의 모든 폴리스에서 온 시민권을 가진 성인 남자였으며 여자는 참가도, 관람도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참가한 모든 선수들은 발가벗고 경기를 했는데 그래서 여성의 참석이 불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투표권을 비롯하여 당시의 시대상 때문이었겠지요. 이 고대 올림픽의 전통을 이어받아 제1회 아테네 근대 올림픽은 남자 선수만 참가가 허용되었습니다. 이런 발가벗은 운동선수들의 경기 모습은 그리스 유적지의 벽화나 테라코타 항아리 유물의 그림에서 많이 보이곤 합니다. 아마추어의 개념이 없던 시절이었기에 우승자는 월계관과 상금, 그리고 그 올리브유를 잔뜩 채운 그 항아리를 부상으로 받았습니다. 그리고 평생 연금을 받았으며 어디에 가든 귀빈 대우를 받았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올림픽 우승자는 VIP 대우를 받은 것입니다.


고대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들이 경기하는 모습의 그림


하지만 패자는 비참했습니다. 그 불명예로 평생 수치감에 살아야 했으니까요. 그래서 복싱이나 레슬링 참가자들은 목숨을 내놓고 경기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경기 제한 시간도 없었기에 실제 경기 중에 많이 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반칙을 범한 자의 처벌은 매우 엄격해 채찍형을 비롯한 태형을 받았고 심하면 사형까지 당하였습니다. 오늘날 올림픽에서 극도로 강조하는 페어플레이 정신은 이렇게 고대 올림픽 때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또한 올림픽을 이야기할 때 평화가 논의되는 것은 당시 고대 올림픽이 열리는 전후 3개월 간은 모든 폴리스에서 전쟁이 금지된 전통에 기인합니다. 현대의 세계인에게 많은 것을 준 고대 올림픽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올림픽이 4년에 한 번 열린 것은 좀 의외라는 생각이 듭니다. 딱히 다른 이벤트나 오락 등이 많지도 않았던 시절이고, 인간의 평균 수명이 현대보다 훨씬 짧았던 시절인데, 길다면 길 수도 있는 4년에 한 번씩밖에 그 대회가 열리지 않았으니까요.  


당시 열렸던 경기들 중엔 우리에게 익숙한 달리기, 복싱, 레슬링, 투창, 원반과 영화 속에서 보던 전차 경기 등이있었습니다. 그리스 전투에서 유래된 마라톤은 고대 올림픽엔 없었습니다. 스타디온(stadion)이라는 단거리 경주가 있었는데 이것에 재미있는 유래가 있습니다. 192.27m를 달리는 종목인데 이 거리는 헤라클레스의 발 길이의 60배라고 합니다. 그가 숨을 참고 걸을 수 있는 최대 거리라 이 규격이 정해졌고 경기로도 채택되었다는 것입니다. 신화의 영웅이자, 힘이 장사이고, 체력이 최고인 그를 기리기도 하고, 선수들에게 도전성을 부여하기 위해 그 경기가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물론 선수들은 그처럼 숨을 참고 뛰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룰이 그렇다 해도 그 시대엔 그것을 확인할 방법도 없었겠지요. 이 스타디온 경기에서 라틴어로 경기장을 가리키는 스타디움(stadium)이 나왔습니다. 지금 우리는 올림픽의 개폐회식이 열리는 주 경기장을 가리켜 메인 스타디움이라 부릅니다. 그 경기장 어딘가에 죽어서 불사의 신이 된 헤라클레스가 숨어서 그의 올림픽 후예들의 경기를 구경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올림피아의 경기장 터에서 달리기(스타디온?)를 체험하는 관광객들


제우스를 위한 제전인 고대 올림픽엔 운동 경기만 열린 것은 아닙니다. 그 자리엔 그리스 연합의 모든 시인과 철학자, 연극인과 예술인들이 다 모였습니다. 경기는 경기대로 벌이고 그들은 그곳에서 연극제와 시낭송회등을 통해 제우스를 찬미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종합제전인 올림픽에서 축제의 향연을 벌인 것입니다. 5일째 마지막 날엔 시상식 후 연회가 열렸는데 그날은 아마도 술에 취한 그 심포지엄이 절정에 달했을 것입니다. 요즘도 고대 올림픽과 목적성은 다르나 그때와 같이 올림픽 기간 중엔 많은 국제 행사와 예술제가 열리곤 합니다. 개최 도시를 세계에 알리는 다양한 도시 마케팅을 실시하는 것입니다. 그 기간 중엔 고대와 같이 그 향연을 제대로 즐기는 자들로 인해 술의 판매량도 크게 늘어날 것입니다.


고대 올림픽이 기원전 776년에서 서기 393년까지 지속되었다는 것은 그 제전이 그리스 시대에만 한정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로마 시대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지중해의 신흥 강자 로마는 제국을 이루어 도시 국가들의 연합체인 그리스를 하나하나 격파해 나가더니 기원전 142년 그 나라를 정복했습니다. 우리가 역사에서 통상 그리스의 역사 중 고대라는 시기가 끝나는 시점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절정기는 통상 기원전 300년~500년을 가리키는데 이때에 우리가 아는 그리스의 제왕과 영웅, 그리고 철인과 문예인들이 활동을 하였습니다. 아테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있었고, 그리스 연합과 페르시아 제국이 전쟁을 벌여 승리하기도 했으며, 마케도니아의 영웅 알렉산더가 동방 원정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신들도 그 시기엔 왕성하게 활동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 그리스의 중흥기가 끝나가는 시점에 로마가 밀고 들어온 것입니다.


그리스 정복 후 로마인은 그리스의 많은 것들을 그대로 계승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종교였습니다. 그리스의 종교는 신화와 인간이 어우러진 말 그대로 그리스 신화가 경전이었는데 그들은 그 많은 그리스의 신들을 차별대우하지 않고 그대로 고이 모시며 받들었습니다. 로마인의 그리스를 힘으로는 이겼지만 그들의 문화적 열등감으로 인해 그리스의 것인 신화는 그대로 계승한 것입니다. 뿌리가 없는 평민이 귀족의 족보를 돈으로 산 것과 같은 경우일 것입니다. 대신 로마인은 주신인 제우스는 주피터로, 그의 아내 헤라는 주노로, 그의 비서실장인 헤르메스는 머큐리 등으로 모두 개명을 시키고 문패를 새로 달게 했습니다. 로마 시대에도 올림픽이 계속해서 4년마다 열릴 수 있던 것은 나라와 주인은 바뀌었어도 제우스를 비롯한 그 신들은 그대로 존재했기에 존속이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그 신들이 차별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기존 로마의 신에게 밀린 것이 아니라 로마에 없던 새로운 신이 나타나서 그런 것이었습니다. 로마 저 아래 유대라는 지역의 속주에서 태어난 사람아들 예수 그리스도에서 비롯된 신흥 종교가 로마의 탄압 속에서도 굳건히 성장하고 교세를 확장하더니, 서기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 때엔 공인을 받고, 392년 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 때엔 국교로까지 승격된 것입니다. 기독교의 출현입니다. 결국 신들의 전쟁에선 여호와라 불린 하느님과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부자가 그리스와 로마의 그 수많은 신들을 모두 물리쳤습니다. 이제 그간 나라는 바뀌어도 창씨개명을 하며 호강을 누려왔던 그리스와 로마의 신들은 뒷방으로 밀려나 말 그대로 종교가 아닌 신화 속 가십거리로 위치가 격하되었습니다.


고대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들이 연습을 했던 장소인 팔라이스트라(palaistra) 유적지


당연히 그 신들을 찬미하던 제사도 모두 중지되었는데 그 된서리를 올림픽도 맞은 것입니다. 제우스의 제전인 그 대회가 기독교로 인해 존재 가치를 잃은 것입니다. 그래서 고대 올림픽은 로마에서 기독교가 국교로 된지 불과 1년 후인 393년 대회를 마지막으로 그리스와 로마는 물론 지구상에서 사라졌습니다. 매우 신속한 결정이었습니다. 물론 그 이전부터 서커스 정치의 일환으로 콜로세움에서 열린 스펙터클한 전차 경기나 검투사의 결투로 올림픽의 열기는 과거 그리스 때보다는 시들해져 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기독교로 인하여 중단된 올림픽은 영화 속 미라와 같이 깊은 잠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영원히 깨어날 것 같지 않았던 그 대회가 1896년 한 프랑스인에 의해 기적적으로 다시 깨어난 것입니다. 부활하기까지 무려 1,503년이나 걸린 것입니다.  


기독교의 출현으로 고대 올림픽은 대회만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 대회의 흔적과 자취도 사라졌습니다. 기독교를 국교로 선언한 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의 손자인 같은 이름의 2세는 할아버지보다 한 발 더 나아가 426년 이교신전파괴령을 공표해 제국 내 기독교의 유일신인 하느님을 제외한 모든 이교도의 신전을 파괴하였습니다. 십계명에 나오는 대로 우상 숭배를 원천적으로 막는 조치를 취한 것이었습니다. 그 명령은 그리스와 로마의 신전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고대 올림픽이 열렸던 올림피아의 올림픽 신전과 유물 등도 이때 큰 피해를 당하여 상당 부분 훼손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박대를 받았던 올림피아의 그 유적들은 6세기 경에 발생한 지진으로 인해 완전히 붕괴되었습니다. 만약 올림피아가 그런 피해를 당하지 않았다면 우린 지금 고대의 수많은 스포츠 영웅들과 그의 기록들을 역사적 사실로 알거나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시 함께 벌어진 문학과 철학, 예술 행사 기록들도 마찬가지겠지요.


이렇듯 서구 문명의 두 축이라 불리는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의 대립은 올림픽에서도 보인다고 하겠습니다. 헬라스라 불린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되어 주류 문명으로 로마까지 이어져 온 헬레니즘은 기독교가 종교를 넘어선 주류 사상으로 올라서면서 여러 방면에서 존재감을 잃게 됩니다. 대신 그것을 대체한 기독교의 헤브라이즘은 이후 중세 천년 동안 서구 문명의 주도권을 쥐게 되었습니다. 그 기간 동안 올림픽을 비롯한 헬레니즘의 소산인 그리스의 것들은 번뜩한 영감이나 새로운 창조의 능력은 잃고 과거 역사 속 유적과 유물로만 존재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르네상스가 오면서 고대 그리스는 다시 부활하여 화려하게 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이후 근대로 접어들면서 기독교와 그리스 문명은 별 충돌 없이 공존의 시대를 맞게 됩니다. 예술과 문학에선 고대 그리스의 정형을 추구하던 말 그대로 클래식한 고전주의와 중세 기독교 문명과 기사도 정신 같은 신비주의를 추구했던 낭만주의가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말입니다. 이윽고 20세기 코앞인 1896년 고대 올림픽이 근대 올림픽으로 화려하게 부활하면서 서구 문명은 잃었던 고대 그리스의 모든 것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고대 조각상인 미론의 '원반 던지는 사람'을 메인 이미지로 쓴 1948년 14회 런던 올림픽 포스터


내년도인 2024년 파리 올림픽은 근대 올림픽으론 33회 대회이면서 도시 파리로는 세 번째로 개최하는 대회가 됩니다. 앞서 그리스의 아테네는 2004년 28회 올림픽을 개최하며 1회 올림픽 이후 두 번을 개최한 도시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렇듯 올림픽의 개최 장소의 주체는 국가가 아니라 도시이기에 앞에 도시명이 붙습니다. 당연히 1924년부터 별도로 분리되어 시작된 동계올림픽도 마찬가지입니다. 1988년 24회 서울 하계올림픽과 2018년 23회 평창 동계올림픽은 우리나라가 개최한 것이 아니라 지자체인 서울과 평창이 개최한 것입니다. 하지만 개최의 주체는 그렇다 쳐도 올림픽의 유치와 개최엔 해당 국가의 역량이 총동원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마와 프로의 구분이 전혀 없는 올림픽과 쌍벽인 축구의 월드컵은 개최의 주체를 국가로 하고 있습니다.


서울시는 현재 글로벌 도시의 위상에 맞게 올림픽을 두 번 개최한 도시에 이름을 올리려고 2036년 36회 하계올림픽의 개최 후보지로 출사표를 던진 상태입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역시 또 도시가 주체가 되어 진행하는 세계적인 이벤트에 우리나라의 한 도시가 유력 개최 후보지로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요즘 언론과 광고에서 많이 보이는 2030년 부산 엑스포입니다. 그것은 등록박람회라 불리는 엑스포로 올림픽, 월드컵과 함께 세계 3대 이벤트로 분류되는 최상급 엑스포로 우리나라가 최초로 도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후보지는 올해 11월에 발표될 예정입니다. G8을 향해 세계로 도약하는 우리나라의 국운 상승을 위해서도 부산 엑스포 유치가 성공하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그다음은 또 올림픽입니다.


전 세계에 대한민국과 서울을 알린 88 서울올림픽의 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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