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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하 Jun 10. 2023

기독교가 퇴출시킨 고대 올림픽 <상>

1970년대에 유년기를 살짝이라도 걸친 사람이라면 당시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두 명의 스포츠 스타를 기억할 것입니다. 첫 번째는 1974년 아프리카 대륙 최남단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더반에서 날아온 낭보의 주인공입니다. 권투의 홍수환 선수가 그 먼 나라에서 밴텀급 세계 챔피언이 된 것입니다. 지지직 대던 라디오에서 어린 제 귀를 때린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란 그의 인터뷰 음성은 지금도 제 귓전에 남아있습니다.  홍수환 선수가 챔피언이 된 도시, 당시엔 생소할 수밖에 없던 기억 속의 도시 더반은 이후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국내 축구 역사상 최초로 원정 16강을 이루었고, 또 그 이듬 해인 2011년엔 삼수 끝에 유치에 성공한 평창 동계올림픽이 결정된 도시가 되었습니다. 우리와는 스포츠 궁합이 잘 맞는 도시 더반입니다. 아,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5/28) 더반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 대회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이 개인전에서 3개의 메달을 딴 뉴스가 들리네요. 또 낭보입니다. 우리가 개인전에서 3개의 메달을 딴 건 2003년 파리 대회 이후 20년 만의 일이라고 합니다.       


홍수환 선수가 챔피언이 되고 2년 후인 1976년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남아공과는 대각선으로 반대편인 북미 캐나다의 몬트리올에서 또 한 번의 낭보가 울려 퍼졌습니다. 지구촌 최대의 스포츠 제전인 올림픽에서 레슬링의 양정모 선수가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금메달을 딴 것입니다. 역시 어린 나이였지만 당시 TV 속에서 우렁차게 흘러나온 "동해물과 백두산이.." 애국가와 시상대에 게양된 태극기는 지금도 제 눈과 귀에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TV에서 그 경기 장면을 하도 많이 보여줘서인가 우리와는 별 상관도 없는 은메달리스트인 몽고의 오이도프란 이름도 역시 남아 있습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레슬링 자유형 62kg급 금메달리스트 양정모 선수 시상식


가난했던 그 시절 '체력은 국력'이란 슬로건 하에 뛰어난 운동선수가 영웅 대접을 받던 시대였습니다. 지금이야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1등을 하는 브랜드를 여기저기 많이 가지고 있지만 국민소득 1000불도 안되던 그땐 세계에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존재감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런 환경 속에서도 확실하게 세계 1등이 될 수 있는 스포츠 분야에서 우승자나 챔피언이 나오면 무조건 국가 영웅이 되던 시절이었습니다. 위의 두 선수는 국내 귀국 시 모두 카퍼레이드를 벌이며 전 국민의 환영을 받았습니다.


사실 권투에서 챔피언은 미들급의 김기수 선수가 1966년 가장 먼저 세계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홍수환 선수는 두 번째 챔피언이었지만 대중적 인기도에선 이후 페더급 챔피언까지 오르며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에 이은 "4전 5기의 신화"란 슬로건까지 따라다녀 단명한 최초의 세계 챔피언인 김기수 선수에 비해 지금까지 유명세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올림픽에선 양정모 선수 훨씬 이전인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 선수가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최초로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땄지만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 선수로 출전해서 딴 메달이었기에 그 금메달은 일본의 영예가 되었습니다.


스포츠는 돈과 직업이라는 관점에서 프로(페셔널)와 아마(추어)로 구분됩니다. 그래서 위의 권투와 같은 프로 선수는 직업인으로서 돈을 벌기 위해 경기를 하지만, 올림픽에 출전하는 아마 선수는 기록 경신이라는 성취와 메달로 구분되는 명예를 위해 경기를 합니다. 하지만 최근엔 그런 구분이 애매해지고 있습니다. 아마추어리즘의 최고봉인 올림픽에 프로 선수들의 참가 엔트리가 종목마다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으니까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점차 시들어가는 올림픽의 흥행 부진을 막기 위해서라도 부득이 벽을 허문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메달 대신 상금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아마도 올림픽을 시작한 쿠베르탱 남작이 지하에서 이런 사실을 알면 깜짝 놀랄만한 변화일 것입니다.


근대 올림픽의 아버지 쿠베르탱 남작 (1863~1937)


서양의 두 축인 유럽과 북미의 양대 프로 스포츠를 대표하는 영국의 프로축구리그는 1885년에, 미국의 프로야구리그는 1876년에 출범했습니다. 그리고 그보다 조금 늦은 1896년에 제1회 올림픽이 열렸습니다. 이렇게 지구촌에 세계 수준의 프로와 아마의 스포츠 대회가 시기적으로 비슷한 1800년대 말에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새삼 흥미롭습니다. 과연 역사상 100년마다 오는 세기말 중 최고의 세기말인 변화의 시대 19세기말이었습니다.


우리가 올림픽이라 부르는 이 대회는 근대 올림픽(Modern Olympic Games)이란 이름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것과 구분되는 고대 올림픽(Ancient Olympic Games)이 엄연히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주지하듯이 고대 그리스 시대에도 올림픽이 열렸습니다. 근대 올림픽은 그 이름을 그대로 계승한 것입니다. 그런데 근대 올림픽은 단순히 이름만 차용한 것이 아니라 고대 올림픽의 적잖은 시스템과 콘텐츠까지 계승하였습니다. 일단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의 주기부터가 고대 올림픽의 4년 주기를 그대로 따른 것입니다. 이것은 누군가 왜 올림픽 대회의 이름이 올림픽이고, 그 대회가 4년마다 열려야 하냐고 이의를 제기한다면 그 논란을 완벽하게 차단해주는 훌륭한 준거가 되어왔을 것입니다. 과학이나 논리보다 때론 전통과 유산을 더 중시하는 서양인이기에 곧바로 승복할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요. 사실 올림픽이라는 대회명도 작은 지역명에서 유래되었으므로 세계 대회와는 맞지 않습니다. 이것은 뒤에 설명이 됩니다.


이렇게 1896년 시작된 근대 올림픽이 4년마다 열리게 되니 그것이 또 기준이 되어 이후 시작된 국제 스포츠 대회는 모두 4년 주기로 열리게 되었을 것입니다. 월드컵이나 아시안 게임 등이 말입니다. 올림픽과 개최 연도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그들 대회는 그렇게 정해졌을 것입니다. 고대 올림픽을 시작한 그리스인들은 이러한 4년 주기를 올림피아드(Olympiad)라 불렀습니다. 4년 기년법(紀年法)으로 사용한 것입니다. 당시 도시 국가인 폴리스마다 캘린더가 달랐지만 올림픽만큼은 정확히 4년의 시차를 두고 개최하였기에 이 올림피아드는 당시 통일된 기준시로 작용하였습니다.


고대 올림픽이 열렸던 올림픽 경기장 입구


로마의 후예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시작된 르네상스는 그 이전 중세의 신 중심에서 뛰어나와 인간 중심으로 가자는 인본주의 예술운동이었습니다. 그때 그 르네상스의 선구자들이 그것에 부합되는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한 역사상의 시기는 고대 그리스였습니다. 그때 그 사회가 직접 민주정 하에서 이성적으로는 인간을 통찰하고 연구하는 학문인 철학이 융성하고, 감성적으로는 인간의 감정에 호소하는 시와 연극 등의 문학과 예술이 극대화되었다고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부활을 의미하는 르네상스에서 부활의 주체는 고대 그리스였습니다. 한마디로 고대 그리스로 돌아가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그들이 빠트린 것이 하나 있었는데 저는 그것이 올림픽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덕체 합일이라는 완벽한 인간상에서 예술과 사상 등은 15세기부터 시작된 르네상스와 이후 17~18세기의 계몽주의를 통해 부활했으나 인간의 신체 능력을 보여주고 수련하는 체육 활동은 빠져있었다는 것입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 중 인간 신체의 완벽한 비율을 표현한 <비트루비우스적 인간>과 미켈란젤로의 아름다운 <다비드>상에서 보여주듯이 하느님이 그의 모습을 따라 진흙으로 빚은 인간의 신체를 가장 완벽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체육 활동인데 말입니다. 결국 그리스의 체육 활동인 그 고대 올림픽도 뒤늦게 막차를 타고 서구 사회에 소환을 당했는데 그것이 근대 올림픽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서구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올림픽의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20세기가 다 돼서 시작되어서 그렇지 그리스의 부활이라는 측면에선 먼저 시작된 예술 분야의 르네상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련하게 알고 있는 고대 올림픽의 실체를 알면 그 사실은 더욱 분명해질 것입니다. 그 올림픽은 단순한 고대의 이벤트가 아니었습니다.


이상적인 인체 비례도 '비트루비우스적 인간', 레오나르도 다빈치, 1490년대


사실 근대 올림픽의 아버지라 불리는 쿠베르탱 남작이 처음부터 이러한 고대 그리스의 숭고한 이상을 받들어 근대 올림픽을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프랑스의 교육학자였던 그는 당시 유럽의 최강국이었던 그의 조국 프랑스가 나폴레옹 전쟁 이후 영원한 라이벌인 영국에 비해 존재감이 확 떨어지더니 급기야는 신생 독일과의 전쟁인 보불전쟁(1870~1871)에서조차 패하는 것을 보고 그 안타까움에 조국의 부흥을 위하는 애국심으로 체육대회를 구상하였습니다. 나약한 프랑스 청소년들의 체력을 증진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실행해 가는 과정에 그의 생각이 확장되고 판이 커지면서 그 체육대회는 올림픽이 되었습니다. 즉, 우리나라의 소년체전 같은 국내 대회로 시작하려던 것이 커다란 국제 스포츠 대회가 된 것입니다.


그때 그의 머릿속엔 고대 올림픽이 퍼뜩 떠올랐을 것입니다. 서구 사회에서 그때까지 아무도 소환하지 않은 고대 그리스의 것이었습니다. 애국심이 넘쳐난 그였으니 1851년 제1회 만국박람회(엑스포)를 영국의 런던에 빼앗겨 자존심을 구긴 그의 조국 프랑스가 1889년이 돼서야 그에 견줄만한 에펠탑을 파리에 세워 체면치레를 하더니, 이제 올림픽이라는 세계 최대의 스포츠 행사까지 주도한다고 생각하여 꽤나 흥분했을 것입니다. 게다가 그것이 서구인이 문명의 고향이라 생각하는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을 다시 열자는 것이니 그 국제 스포츠 이벤트에 반대 의사는 별로 없어 보였습니다. 1894년 파리의회에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를 창설한지 불과 2년 후인 1896년 제1회 올림픽이 열렸으니까요. 대회는 올림픽의 원조 국가인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열렸고 유럽을 중심으로 전 세계에서 14개 국가가 참가하였습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출전 국가는 없었습니다. 2019년 현재 IOC엔 5대양 6대주의 206개국이 회원국으로 가입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고대 올림픽이라 하면 마치 그 대회가 고대 그리스에서 신화 속의 긴가민가한 체육대회 정도로 알고 있기도 합니다. 그리스의 실제 역사조차 그러하듯이 신화와 얽힌 그 나라의 고대사는 그것이 정사인지 야사인지 구분이 모호하여 그 사실성이 희미해지거나 반감되는 측면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예를 들면 고고학자에 의해 유적까지 발견됐다고 하는 트로이 전쟁 같은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그렇듯이 올림픽도 일단 이름에서부터 신들을 우선적으로 연상하게 합니다. 그리스 신화의 지존인 제우스 신을 비롯하여 그의 핵심 가신인 12신이 살았던 주 거주지가 올림포스산이었으니까요. 아, 지금도 여전히 숨죽이며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고대 올림픽이 화려하게 부활한 제1회 아테네 근대 올림픽, 1896


그런데 고대 올림픽은 기원전 776년부터 기원후 393년까지 무려 1,169년 동안 293회가 열렸습니다. 숫자가 입증하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이렇게 BC에서 AD까지 천년이 넘는 장구한 세월 동안 한 스포츠 대회가 열린 것입니다. 반면에 1896년 시작한 근대 올림픽은 코로나로 인해 1년 미루어진 2021년 32회 도쿄 대회까지 125년 간 열려오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커리어상으론 근대 올림픽은 고대 올림픽에 아직은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그것만으로도 근대 올림픽은 고대 올림픽을 할아버지로 모셔야 할 것입니다. 실제로 1894년 파리의회에서 올림픽을 논의하며 쿠베르탱 남작과 초기 15개국 회원국들이 근대 올림픽 개최의 명분으로 내세운 것은 고대 올림픽의 전통과 이념을 선양하고 세계에 그 아마추어 정신을 떨치자는 것이었습니다.


근대와 고대, 이 두 올림픽은 시대만큼이나 많은 차이가 있지만 가장 큰 차이는 개최 장소일 것입니다. 근대 올림픽은 주지하듯이 사전에 개최지로 선정된 세계의 여러 도시들을 돌아가며 열리지만 고대 올림픽은 오로지 그리스의 한 도시에서만 열렸습니다. 그런데 그 도시는 고대 올림픽의 프리미엄으로 1회 근대 올림픽이 열린 아테네가 아니었습니다. 아테네가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들 중 강국이긴 했지만 그곳과 멀리 떨어진 펠로폰네소스 반도 서편에 위치한 올림피아라는 조그만 도시에서 열렸습니다. 그래서 그 도시명을 따라 대회명이 올림픽이 된 것입니다. 위에 먼저 출현한 올림포스산은 아테네 북쪽에 있어 올림픽의 도시 올림피아와는 꽤나 거리가 떨어져 있습니다.



* 다음 주말 <하>편에선 고대 올림픽의 경기에 대해서 상세하게 알아봅니다. 그리고 천년 넘게 장구하게 이어진 그 올림픽이 사라진 이유에 대해서도 알아봅니다. 제목에서 보이듯 기독교가 올림픽을 몰아내었습니다. 인간들의 경기인 올림픽이 신들의 경기로 번진 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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