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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하 Jul 29. 2023

웰링턴 공작과 TV 시청료

1961년 영국 중북부의 뉴캐슬에 거주하는 60대의 이 남성은 세 자녀를 두었는데 딸은 불행히도 자전거 사고로 죽어 가슴에 품고 삽니다. 두 아들 중 장남은 그 도시의 남부 리즈에 사는데 사는 모습도 시원치 않고 그에게 반항적이기도 해 적당한 거리감을 두고 사는 아들입니다. 어느 날 그 아들이 데려온 여자도 아버지의 눈엔 영 마뜩지 않아 보입니다. 역시나 고등 교육을 받아 보이진 않는 차남은 부모와 함께 살며 나무배를 만드는 조그만 조선소에 근무하는데 다행스럽게도 그는 아버지에겐 매우 순종적인 아들입니다. 어느 날부터 보이기 시작한 그 아들의 여자 친구도 그를 닮아 착해 보입니다.


그 두 아들의 엄마이자 그 남자의 아내는 알뜰한 가정주부입니다. 뒤에 설명이 이어지겠지만 그녀는 돈은 잘 못 벌면서 엉뚱한 사고만 치는 남편을 최대한 이해하는 입장에서 내조를 하며 자식들 부양에 힘을 쏟습니다. 그래서 그 남자에게 있어 그녀는 더없이 좋은 배우자이자 친구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계속 힘을 쓰기엔 그녀의 나이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그러함에도 빈궁한 살림에 보태려고 그녀는 낮엔 부잣집에 나가 가정부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었음에도 솜씨가 좋아 고용주의 눈에 나지 않고 계속해서 해온 일입니다. 일이 끝나면 저녁엔 집에 돌아와 남편과 아이를 위한 밥을 차리고, 식사 후엔 소파에 앉아 그들과 함께 눈으론 TV를 보면서도 무릎 위 손은 뜨개질로 바쁘게 움직입니다. 일상에서 남편과의 가장 큰 충돌은 죽은 딸에 대한 견해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이 또한 엄마로서 다르게 슬픔을 품어온 것으로 나중에 화해가 됩니다.


일과 후 집에서 TV를 즐기는 이 글의 주인공인 잉글리시맨


1960년대 영국의 어느 평범한 가족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팍팍한 생활고로 인해 행복보다는 불행을 더 먼저 떠올릴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이들은 어디에 나오는 가족일까요? 네, 영화에 나오는 가족입니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제목에 끌려 우연히 본 영화에 등장하는 가족의 프로필입니다. 온 가족이 등장하지만 주인공은 첫 줄에 나온 이 가족의 가장인 남자입니다. 그에 대해서는 설명할 내용이 많습니다. 아마 들으면 기가 막힐지도 모를 그의 일상입니다. 그래서 혹여 불행해 보이는 그의 가족이 그로 인해 더 불행해 보일지도 모릅니다.


영화라고 하니 이 글의 제목으로 올라온 <웰링턴 공작과 TV 시청료>가 그 영화의 제목이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문제의 그 남자가 출연한 영화는 <웰링턴 공작의 초상(원제, The Duke)>이라는 영화입니다. 제목이 이렇다 보니 주인공인 그 남자의 이야기에 더해 할 이야기가 더 있어 보입니다. 본격적인 그의 이야기에 제목에 등장한 웰링턴 공작과 TV 시청료, 그리고 초상화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할 테니 말입니다. 혹시 그 남자가 웰링턴 공작일까요? 몰락한 귀족일 수도 있고, 그의 별명일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우리나라 넷플릭스에서 <웰링턴 공작의 초상>이란 제목으로 개봉한 영국 영화 'The Duke', 2020


그 남자의 이름은 켐프턴 번턴입니다. 그는 실존 인물로 이 영화는 실화에 근거합니다. 그는 희곡을 쓰는 사람입니다. 쓰지만 직업 작가는 아닙니다. 돈을 벌지는 못하니까요. 돈을 못 버는 것은 공모해도 매번 낙선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그는 방에 틀어 박혀 구형 타자기로 계속해서 희곡을 써댑니다. 그것들 중엔 자전거 사고로 죽은 딸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희곡을 안 쓰는 시간인 낮엔 일을 합니다. 노령이지만 그래도 돈을 벌어야 하니까요. 하지만 불의와 불법을 보면 참지 못하는 그의 성격 때문에 그의 직장 생활은 늘 단명으로 끝나곤 합니다. 절대 잘리지 않는 그의 아내와는 달리 번번이 잘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감은 떨어지지만 정의감에 불타는 선한 이유로 해고되기 일쑤이기에 그의 아내는 터지는 복창을 쓸어 담고 그런 남편을 품고 보듬어 줍니다. 좋은 아내, 좋은 친구 맞습니다.


아, 지나치게 말이 많아서 잘리기도 합니다. 택시 기사를 할 때엔 승객의 그런 클레임으로 잘리기도 했습니다. 에스페란토어에 대한 장황한 그의 설명에 아무 관심 없는 승객이 그 시끄러움을 참지 못해 택시 회사에 그를 고발한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마이너한 이유였고 그것보다는 운임을 지불할 수 없는 가엾은 승객을 공짜로 태워주다가 잘렸습니다. 한두 번이 아닌 듯했습니다. 매사가 그런 식으로 사는 그입니다. 제 식으로 정의하자면 "박식과 달변으로 무장한 돈키호테식 정의감에 멈추었으면 좋을 빅마우스"가 바로 그입니다.


그런데 잉글리시맨인 그에겐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바로 유머입니다. 그의 유머는 영화 중 몇 번이나 그의 가족이 차가운 물속에 침몰해 가는 것을 쏙 빼내어서 따뜻하게 데워주곤 합니다. 특히 반복되는 해고와 기행으로 속상해하는 그의 아내를 본래의 평정심으로 돌아가게 하는 그의 유머는 정말 대단해 보입니다. 바가지를 긁고, 긁히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그 부부는 주방에서 손을 맞잡고 왈츠를 추고 있으니까요.  저를 비롯한 우리 한국 남자들이 사부로 모셔야 할 그의 유머입니다. 그것이 소위 말하는 영국식 유머인가 봅니다.


생활고와 상관없이 금슬 좋은 번턴 부부의 댄스


물론 부부로 출연한 명배우들의 명연기도 단단히 한몫했습니다. 실제로는 둘 다 모두 70대로 남편 역은 연극과 영화를 오가며 명성을 굳힌 명배우인 짐 브로드벤트가 맡았고, 아내 역은 얼마 전 서거한 엘리자베스 2세를 연기한 <더 퀸>으로 2007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헬렌 미렌이 맡았습니다. 그녀는 그 이전 나온 HBO TV물에선 엘리자베스 1세를 연기하기도 했습니다. 여왕 전문인 그녀가 이 영화에선 가정부 일을 하는 평범한 하층민의 주부로 출연한 것입니다. 그런 이 부부는 이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기쁜 일이 생기면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외식을 하며 즐거워합니다. 그래서 상황은 안타깝고 슬프게 돌아가 보여도 결코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 코믹물인 이 영화입니다. 결국 그 남자의 이러한 "박식과 달변으로 무장한 돈키호테식 정의감에 멈추었으면 좋을 빅마우스에 더해진 대단한 유머 감각"은 진짜 위기에 빠진 그와 그의 가족을 구해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합니다. 위의  ".."은 그에 대한 저의 완벽한 정의입니다.


아들 여자 친구들도 함께 한 번턴 패밀리의 외식 출동


그의 정의감 이야기를 조금만 더 하고 가겠습니다. 정의는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로 바른 뜻이라는 뜻입니다. 불의는 그 반대이겠지요. 그는 그의 재능을 몰라주는 세상으로 인해 쓰는 희곡이 번번이 낙선을 해도, 그리고 가는 회사마다 해고를 당해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굴하지 않고 정의를 추구하며 그 불의함에 저항합니다. 결국 그는 그런 아버지에 대한 연민을 가지고 순종하는 둘째 아들과 거리에 나가 서명받기 운동까지 벌이는데 영화의 이 부분에서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가 벌인 불의에 저항하는 운동이 TV 시청료 거부이기에 그랬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과거부터 꾸준히 논란이 되어온 KBS TV의 시청료 거부와 같은 운동입니다.


그 거부 운동은 국회에서 여야의 정쟁으로 까지 불거져 KBS TV 시청료 분리징수로 이어졌습니다. 결국 최근인 지난 7월 11일 이 분리징수 안은 국무회의에서 통과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최근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이 시청료 거부 이슈가 지루한 장마가 이어지는 어느 여름밤 <웰링턴 공작의 초상>이라는 제목에 낚여 아무 정보 없이 본 TV의 영화에서 나오니 제가 놀라지 않을 수 없던 것이었습니다. 차이는 우리는 그 거부의 대상이 한국방송공사(KBS)이지만 영화는 영국이기에 그 대상이 영국방송공사(BBC)라는 점입니다. 둘 다 모두 똑같이 그 나라의 국영방송국에서 출발한 공영방송국입니다. 물론 여기엔 2023년과 1961년이라는 62년의 시간 차이도 존재합니다.


주인공인 번턴은 BBC TV가 징수하는 시청료를 강력하게 거부합니다. 그가 안 보니 안 내는 게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그는 그의 집 TV의 수상기에서 BBC 수신 장치인 코일을 떼어 내어 그의 집 TV가 원천적으로 BBC TV를 수신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집으로 온 시청료 징수관에게 그것을 증거물로 보여주며 항변합니다. 우리나라도 1994년 한전의 전기료에 시청료가 통합징수 되기 전엔 그렇게 KBS가 직접 시청료를 받으러 가가호호 방문을 하기도 했습니다. BBC TV를 보지 않는 그는 경쟁 채널인 ITV만을 시청합니다. 그 TV는 우리로 치면 SBS TV와 같이 광고 수입으로 운영되기에 시청료와는 상관이 없는 채널입니다.


하지만 TV 수상기가 있는 집은 무조건 시청료를 내야 한다는 법령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그는 13일 동안 감옥까지 다녀옵니다. 우리의 KBS도 같은 내용의 법령에 의거 시청료를 징수하고 있습니다. 즉, 다른 나라들은 모르겠지만 영국과 우리나라의 TV는 가전 메이커에서 집으로 들어오는 순간부터 보든 안보든 세금이 생성되는 것입니다. 영화에서 그는 감옥에 다녀온 후 BBC TV 시청료 거부에 대한 그의 의견을 더 강하게 전달하고자 수도인 런던을 방문해 의회와 언론사 등을 돌며 그 부당함을 호소하지만 일개 소시민에 불과한 그의 말을 들어주는 기관과 사람은 당시 아무도 없었습니다.


시청료 징수의 부당함을 호소하며 거리 캠페인을 벌이는 번턴 부자


사실 그의 근본적인 주장은 BBC TV를 안 보니 시청료를 안 내는 게 맞다는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은퇴자인 노인들에게는 시청료를 받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수입이 떨어져 행동반경이 줄어든 노인들의 유일한 낙은 집에서 TV를 보는 것인데 그들에게 시청료를 걷는 것은 가혹하니 그것을 면제해 달라는 것입니다. 1960년대이니 사실 노인들에겐 TV가 유일한 낙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아직 TV가 대중화되기 전이었습니다. 대중화를 떠나서 한 영국인이 이렇게 BBC TV를 대상으로 열렬하게 시청료 거부 운동을 벌이고 있던 그 1961년, 우리나라의 KBS TV는 개국을 하였습니다. TV 시대의 첫 발을 뗀 것입니다. 그 이전인 1956년 코캐드(KORCAD) TV 방송국이 출범하며 국내 최초로 개국을 했으나 그것은 시험 방송 성격이 강해 금방 문을 닫았고 라디오만을 가지고 있던 국영방송국인 KBS가 그것을 이어받아 본격적인 TV 시대를 연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영화 속 영국의 60년대 초반과 같은 수준의 TV 보급은 컬러 TV 방송이 시작된 80년대 이후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대망의 1980년 컬러 방송을 최초로 송출하며 국내의 TV 보급율이 급격히 늘어 80퍼센트를 넘겼으니까요. 근대적 의미에서 세계 최초의 선진국인 영국과 그렇지 못했던 우리나라의 시차가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그런데 그의 이런 개인적인 TV 시청료 거부 운동은 엉뚱한 사건과 연루되어 영국 전체의 사회적인 이슈로 커집니다. TV 방송으로 치면 뉴캐슬의 어떤 동네(local) 유선방송국의 작은 뉴스가 중앙 런던의 BBC 방송국이 전국으로(nation wide) 송출하는 대사건으로 발화된 것입니다. 이제 드디어 웰링턴 공작이 등장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나폴레옹 전쟁의 그 영웅 웰링턴이 이 사건과 연관되기에 그렇습니다. <웰링턴 공작의 초상> 이 영화 참으로 농밀하고 재미있습니다. 엉뚱해 보이는 한 남자와 그 가족의 신변잡기적인 일상만으로도 흥미 있는 코믹 영화가 되는데 이렇게 온 영국이 주목하는 특별한 사건까지 이어지니 말입니다. 강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인공 가족이 위와 같은 모습으로 엎치락뒤치락 거리며 사는 와중에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에서 희대의 명화 도난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 그림은 스페인 출신의 화가 고야가 그린 <웰링턴 공작의 초상>입니다. 도난 바로 전 그 그림은 당시 본래 주인이 내셔널 갤러리가 아니었는지 정부가 나서서 14만 파운드를 지원해 어떤 미국인에게 경매로 팔려나가는 것을 막은 명화입니다. 그 그림에 등장하는 웰링턴 공작은 누가 뭐래도 영국의 영웅이니까요. 정부와 미술관의 그런 의기양양한 발표 뉴스가 나오자마자 그 그림을 도난당한 것입니다.


지금도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전시 중인 고야의 '웰링턴 공작의 초상', 1814


당연히 BBC TV를 비롯한 온 언론들이 그 사건을 대서특필하고, 관할 관청인 내무부와 경찰청도 난리가 나서 인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 사건을 미술품 절도와 밀수를 전문으로 하는 국제적인 범죄 조직이 가담한 대형 사건으로 분류를 하고 그곳에 수사력을 집중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그림을 훔쳐간 자는 엉뚱하게도 영국의 일개 소시민인 켐프턴 번턴이었습니다. 뉴캐슬에 사는 우리가 아는 그 남자 맞습니다.


그가 그림을 훔친 것을 알게 된 가족들은 난리가 났습니다. 특히 아내의 놀람이 컸습니다. 그래도 수습 가능한 소소한 사고만 쳐오던 그가 드디어 대형 사고를 쳤으니 말입니다. 자기 남편이 정의로운 돈키호테인 것은 알고 있지만 이 건은 그 급이 달랐습니다. 말을 타고 풍차를 향해 돌진한 정도가 아니라 원자력 발전소의 터빈을 향해 돌진한 것입니다. 하지만 어느 시점, 수사가 그를 향해 조여 오는 것도 아님에도 그는 자수를 결심합니다. 본래는 그와 쿵짝이 잘 맞는 둘째 아들만이 그 사실을 알고 공유했는데 다른 가족은 물론 외부인인 큰아들의 탐욕스러운 여자 친구까지 알게 되어 만세를 부른 것입니다. 그는 대체 왜 이런 큰 일을 저질렀을까요?


결국 그는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로 그림을 직접 싸들고 가 반납을 하며 자신이 범인임을 밝힙니다. 그리고 구속이 되고 재판이 이어집니다. 재판정에서 그는 당당히 주장합니다. 사익이 아닌 공익을 위해 그림을 가져갔다고 말입니다. 14만 파운드면 그 돈의 이자만으로도 매년 3,500명이 무료로 TV를 시청할 수 있으니 그 돈을 그 그림의 존치에 들일 것이 아니라 불쌍한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구제해야 한다며 항변을 합니다. 그가 평소 벌여온 시청료 거부 운동의 일환으로 <웰링턴 공작의 초상>에 관한 뉴스를 보고 이런 일을 벌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림은 훔친 것이 아니라 그런 이슈 몰이를 위해 잠시 빌려간 것이고 목표한 시간이 되어 제자리에 갖다 놓았다는 것입니다.


배심원들은 그가 그간 평소에 보여준 언행과 법정에서 보여준 그의 박식함과 유머감이 어우러진 달변의 진술에 선한 일관성이 있음을 보고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듯해 보였습니다. 그는 법정에선 말도 평소와는 달리 그렇게 장황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그가 쓴 희곡에 등장하는 멋진 배우처럼 주어진 대사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기소된 네 가지 죄목 중에서 그림을 훔친 것과, 그 그림을 가지고 언론사에게 자선용 돈을 요구한 것, 그리고 영국의 국민들이 그 명화를 감상할 기회를 박탈한 것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받고, 그 그림을 끼운 80파운드짜리 액자를 훔친 것에 대해서만 유죄 선고를 받게 됩니다. 그 액자는 돌려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니 돌려줄 수 없는 사연이 있었습니다.


명화 도난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번턴이 가족이 있는 방청석을 가리키며 환호하는 모습


완벽한 승리(?)입니다. 도적질을 했지만 마치 정의가 승리한 것과도 같은 의외의 판결이 나왔습니다. 그는 예상보다 훨씬 짧은 3개월만 복역하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갑니다. 아내를 비롯한 그의 가족들이 모두 기뻐한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아슬아슬했지만 다행히 해피엔딩입니다. 하지만, 하지만.. 여기엔 놀라운 반전이 있습니다. 너무나도 큰 반전입니다. 그것까지는 이 글에서 밝히진 못하겠습니다. 너무나도 가정적인 남편이자 아버지인 그가 연출한 반전입니다.


의문의 1패인지, 아니면 의문의 1승인지 판정이 애매하게 이 영화에 등장한 웰링턴 공작은 엘바섬에서 탈출해 재집권에 성공한 나폴레옹과 싸워 이겨 유명해진 장군입니다. 1815년 나폴레옹의 마지막 전투가 된 벨기에의 워털루에서 벌인 전투에서 그는 승리했습니다. 프로이센 연합군과 함께 거둔 승리였습니다. 나폴레옹은 그 패배로 그의 운이 다해 대서양의 고도인 센트헬레나 섬에 유배되어 6년 후인 1821년 쓸쓸한 죽음을 맞게 됩니다. 워털루 전투가 의미 있는 것은 짧게 계산해도 12년간 온 유럽을 들쑤신 나폴레옹 전쟁(1803~1815)을 완전히 끝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웰링턴 공작은 같은 영국인인 바다의 넬슨 제독과 함께 나폴레옹으로부터 그의 조국은 물론 유럽 전체를 구해낸 영웅으로 꼽힙니다.


웰링턴 공작과 화가 고야의 연관성입니다. 나폴레옹은 그의 전성기일 때 스페인을 점령하고 그의 형인 조제프를 그곳의 왕으로 앉혔습니다(1808~1813). 그 시절 스페인은 프랑스군의 약탈과 유린으로 개판이 되고 거덜이 났습니다. 궁정 화가였던 고야는 그런 나폴레옹과 프랑스 군에 대한 분노를 고발성 그림으로 표현하였는데 그것이 그의 대표작인 <1808년 5월 3일의 학살>입니다. 수도인 마드리드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그런 악행을 벌인 프랑스군들을 스페인에서 몰아낸 이가 웰링턴 장군이었습니다. 스페인 국민들 입장에선 그가 영웅이자 구원자로 보였을 것입니다. 아마 고야도 그런 마음으로 그의 초상화를 멋지게 그려줬을 것입니다. 역사에선 나폴레옹 전쟁 중에 일어난 이 전쟁을 가리켜 이베리아 반도 전쟁, 또는 스페인 독립전쟁(1808~1814)이라 부릅니다.


프랑스의 스페인 침공을 그린 '1808년 5월 3일의 학살', 고야, 1814


당시 고야와 유사한 동기로 예술 작품을 만든 이가 있었는데 그는 놀랍게도 악성 베토벤입니다. 베토벤은 스페인에서 승리한 웰링턴 공작을 위해 1813년 <웰링턴의 승리>라는 부제가 붙은 관현악곡을 작곡했습니다. 그는 스페인이 조국인 고야와 같은 애국심이 아닌 다른 이유에서 그 곡을 만들었습니다. 웰링턴이 나폴레옹을 물리쳤기에 만든 것입니다. 그 이전 나폴레옹을 흠모해 그를 위해 <영웅> 교향곡을 작곡한 그였지만 그가 혁명 정신을 잃고 황제로 오르는 것을 보고 실망해 마음을 돌린 그였습니다. 그래서 베토벤의 마음속엔 웰링턴이 최후의 영웅으로 남았을 것입니다.


사실 이베리아 반도에서 웰링턴의 승리는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략하느라 프랑스의 온 화력을 동부 전선에 집중해서 얻어진 측면도 있습니다. 승장인 웰링턴조차 그렇게 인정했던 불세출의 전쟁 영웅 나폴레옹입니다. 그렇게 고야가 그때 그린 <웰링턴 공작의 초상>은 이후 웰링턴 공작과 함께 영국으로 왔을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국립미술관인 내셔널 갤러리에 걸리고 세기의 사건에 휘말려 이렇게 영화에까지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그 사이 그 초상화는 훔친 것이 아니라 빌려간 것이라고 주장한 한 시민의 손에 의해 뉴캐슬까지 잠깐 다녀왔습니다.  


뉴캐슬 번턴의 집에 임대 중인(?) '웰링턴 공작의 초상'


결국 영국은 2000년 75세 노인들에겐 시청료를 받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우리의 주인공인 번턴이 벌인 노령자의 시청료 거부 운동이 뒤늦게나마 결실을 본 것입니다. 하지만 본의 아니게 전국구 스타가 된 그는 이후에도 별다른 삶을 산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 정도면 그 이름값으로 그의 희곡이 채택되어 작가로도 빛을 발했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영국식 유머와는 별개로 평가는 냉정한 영국인인가 봅니다.


영화에서 그는 그의 희곡적인 재능이 셰익스피어보다도, 안톤 체호프보다도 더 뛰어나다고 너스레를 떨곤 합니다. 돈키호테 같은 그 때문에 늘 마음고생하는 아내를 즐겁게 해주기 위함입니다. 그렇게 유머로 무장한 그 남자가 돌아온 집안은 다시 화기애애해졌습니다. 그들은 거실에 모여 맥주병을 부딪치며 축배를 듭니다. 평범한 영국 가정의 평화로운 저녁 모습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손에 들린 맥주에 제 눈이 멈췄습니다. 그 장면 이전 영화 초반에도 한 번 나왔던 같은 맥주입니다. 한때 제가 가장 좋아했던 뉴캐슬 로컬 맥주인 '뉴캐슬 브라운 에일'입니다. 그땐 가격이 수입 맥주 중에 가장 비싸 망설이며 마셔도 딱 한 병에서 멈추곤 했는데 주머니 사정이 나아진 요즘은 그 맥주가 잘 안 보이는 것 같습니다. 브라운 에일이란 에일 맥주 중 에일의 쓴 맛을 제거한 맥주를 가리킵니다. 물론 갈색입니다. 글을 다 쓴 지금 급 그 맥주가 마시고 싶네요.


출소 후 두 아들의 환영을 받는 아버지, 그리고 축배인 뉴캐슬 브라운 에일 맥주

https://www.newsverse.kr/news/articleView.html?idxno=38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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