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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하 Jul 15. 2023

알자스에서의 마지막 수업

썩 좋아하지 않음에도 받으면 기분 좋은 선물이 있습니다. 제겐 와인이 그렇습니다. 전반적으로 술에 대한 선호도가 약한 저임에도 와인은 다른 주종과는 달리 다른 용도로도 저를 끌어당겨서 그렇습니다. 모든 술은 입으로 마시지만 와인은 다른 부위로도 마시는 술이라고도 하는데 제겐 입보다 그 부위에서 느끼는 충족감이 더 커서 그런 것입니다. 바로 머리입니다.


이런 정의는 와인 애호가라면 누구라도 내릴 법하지만 저는 아이와 어른이 함께 본다는 스테디셀러 만화 <먼나라 이웃나라>의 저자인 이원복 작가가 역시 또 만화로 쉽게 그린 와인 입문서 <와인의 세계, 세계의 와인>을 처음 접했을 때 그가 책에서 내린 이 정의를 보고 "아, 내 얘기를 하고 있구나"라고 크게 공감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놀랍게도 덕성여대 총장까지 지낸 시각디자인과 교수 출신으로 일반인들에겐 만화가로 더 알려진 르네상스인입니다.


그의 일침은 "제발 그러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중엔 와인을 그렇게 머리로 마시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말입니다. 좋은 와인이라는 것은 사람마다 그냥 입으로 정직하게 느껴서 본인이 좋으면 되는 것인데 와인의 출신과 배경을 비롯한 외부 요소를 머리로 이해하고 평가한다는 것입니다. 그 머리가 느끼는 맛엔 그 와인의 가격도 상당히 작용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꼭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몸에 술이 덜 맞아 입으로 느끼는 데엔 한계가 있으니 대신 머리로라도 기쁨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은 다행스러운 일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그런 면에서 머리로도 마시고 공부도 하게 하는 와인은 참으로 좋은 술인 것 같습니다.


얼마 전 가까운 친구들 모임에 나갔는데 뜻하지 않게 와인을 한 병 선물 받았습니다. 친구들 간에 흔한 일은 아닌데 그가 과거 해외 출장 시 그곳에서 마셔본 와인으로 맛이 꽤나 훌륭하다고 생각했는데 국내 어떤 와인숍에 갔더니 수입된 그 와인이 보여 반가움에 다량으로 구입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개인인 그 친구 기준에서의 양입니다. 일단 그런 구매 패턴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그는 입으로 와인을 마시는 정통 애호가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선물 패턴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친구임에도 틀림이 없습니다.


구스타브 로렌츠 게뷔르츠트라미너 리저브 2019, 리슬링 화이트, 알자스


그가 준 와인은 날씬하게 빠진 병에 노란 레이블을 가진 화이트 와인이었는데 와인을 머리로 마시는 부류에 가까운 저는 집에 돌아와서 그것을 이리저리 뜯어보았습니다. 뒤의 레이블에 독일어로 쓰여있는 것을 봐서는 독일 와인인가 보다 하고 넘어갔는데 앞 레이블에 쓰인 브랜드를 자세히 보니 제가 아는 지명이 보였습니다. 알자스였습니다. 그 순간 저는 알자스면 로렌과 함께 붙어 다니는 프랑스의 지명인데 "왠 독일 말?"이란 생각이 퍼뜩 들었습니다. 그리고 학창 시절 국어 교과서에 실린 알퐁스 도데의 단편 소설인 <마지막 수업>이 자연스레 떠올랐습니다. 그 수업은 알자스에 사는 주인공 소년이 프랑스어로 받는 마지막 수업이었습니다. 소설에서 선생님은 칠판에 "프랑스 만세"를 프랑스어로 쓰고 그 수업을 마쳤습니다.


알퐁스 도데는 <마지막 수업>을 1871년에 썼습니다. 1870년 프랑스와 독일 간에 벌인 보불전쟁이 독일의 승리로 끝나가는 때였습니다. 2년에 걸친 전쟁으로 보이지만 실제 전쟁은 7월인 여름에 시작해 겨울인 이듬해 1월에 끝났으므로 6개월 정도의 전쟁이었습니다. 그 전쟁에서 조국이 그렇게 패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프랑스의 작가가 <마지막 수업>의 스토리를 그렇게 구성한 것입니다. 언어로 승부하는 작가이기에 그의 조국의 언어가 학교에서 더 이상 사용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고 한스럽게 생각하며 마치 소설 속 선생님이 된 듯한 심경으로 썼을 것입니다.


그 단편이 저를 비롯한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보다 더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우리도 과거 일제강점기 시절 언어를 잃는 똑같은 아픔을 겼었기에 그럴 것입니다. 당시 조선어 말살정책으로 학교에서 일본어로 교육을 실시하고 창씨개명을 통해 이름도 일본어로 바꾸어야 했으니까요. 시대적 동병상련이 발동해서 우리 머리에 더 강하게 남아있는 그의 소설입니다.      


우리에게 <마지막 수업>, <별>로 잘 알려진 프랑스의 작가 알퐁스 도데 (1840~1897)


그런데 당시 그들 프랑스인들 전체가 우리처럼 한글인 조선어를 사용하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 프랑스 영토 중 알자스와 로렌 지역의 주민만이 프랑스어를 더 이상 못쓰게 된 것입니다. 보불전쟁의 결과로 프랑스 전체가 조선(대한제국)처럼 식민지가 된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그 전쟁의 패배로 프랑스는 알자스와 로렌 이 두 지역을 독일에 넘겨야 했습니다. 전후처리를 위한 배상 협상에서 그렇게 결정이 되었습니다.


보불전쟁이 독일 역사에 있어서 의미 있는 것은 이렇게 영토도 늘렸지만 독일 통일의 꿈을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과거 독일의 뿌리인 신성 로마 제국 개국 이후 중부 유럽에서 부침을 거듭했던 독일이 드디어 제대로 된 통일 제국을 건설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신성 로마 제국의 부흥기를 제1제국이라 부르고, 이 시기의 통일 제국을 제2제국이라 불렀습니다. 그리고 한 번 더, 2차 세계대전 시 등장한 히틀러는 발흥하는 나치 독일을 가리켜 제3제국이라 불렀습니다.


전승국 독일의 군주인 빌헬름 1세는 적지인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에서 황제로 즉위하는 대관식을 열고 독일 제국을 선포하였습니다. 자국의 심장인 수도에서 적국의 왕이 황제 대관식을 열다니.. 아마도 프랑스인들은 커다란 굴욕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전까지 그는 1701년 신성 로마 제국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단독 국가를 수립한 프로이센의 군주였습니다. 그의 곁에 철혈재상이라 불린 비스마르크라는 민족의 영웅이 있어서 게르만인들의 숙원인 독일의 통일은 가능했습니다.


베르사유 궁전에서 거행된 빌헬름 황제의 대관식 겸 독일 제국 선포식. 흰색 제복이 비스마르크 수상 (1871. 1. 18)


그런데 독일은 왜 알자스와 로렌 이 두 지역을 콕 집어 자국의 영토로 편입시켰을까요? 여기엔 다소 의외의 이유가 숨겨져 있습니다. 그 땅의 주인이 본래 프랑스가 아닌 독일이라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 알자스와 로렌 지역은 프랑스의 뿌리인 프랑크 왕국이 동서로 분열되며 동프랑크 지역에 속하면서 독일 역사권에 편입되었습니다. 이렇게 결정된 870년의 메르센 조약을 통상 독일 역사의 시작으로 봅니다. 동프랑크는 이후 독일 왕국(911~962)을 거쳐 오토 1세가 신성 로마 제국(962~1806)의 황제로 즉위하며 영토를 중부 유럽 전체로 확장하게 됩니다. 이때 그 제국의 선제후였던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는 독일 왕국의 왕을 겸직하였습니다. 이 제국에서 1701년 위의 보불전쟁의 전승국이 된 프로이센이 독립해서 나간 것입니다.


프로이센(Preußen / Preussen)은 프러시아(Prussia)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는 프로이센의 영어명입니다. 프로이센의 한자 음차어는 보로서(普魯西), 또는 보로사(普魯斯)입니다. 독일의 프로축구 리그인 분데스리가엔 우리의 손흥민 선수가 양봉업자로 불리며 유독 강한 면모를 보이는 명문팀 도르트문트가 있습니다. 그 팀의 풀네임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입니다. 그 리그엔 묀헨글라트바흐를 연고로 하는 보루시아 MG라는 팀도 있습니다. 이 보루시아(Borussia)는 프로이센의 라틴어명입니다. 프로이센을 한자어로 음차 시 이 라틴어를 따라서 불란서라 불린 프랑스와의 전쟁을 보불전쟁((普佛戰爭)이라 우리가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굳이 그렇게 한자로 음차하지 않고 원어로 불렀으면 더 분명했을 수많은 서양사의 사건들은 그렇게 한자어로 바뀌어 오늘날 우리를 더 혼란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범인은 서양사를 먼저 받아들인 일본 아니면 중국일 것입니다. 영어로 통일해 프랑스-프로이센 전쟁(Franco-Prussian War)하면 알기도 쉽고 간단한데 말입니다. 독일에선 독어로 나라 순서를 반대로 하겠지요. 우리가 부르는 보불전쟁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독일이나 프랑스에 가서 보불전쟁이라고 하면 그 국민들은 전쟁의 당사자임에도 아무도 알아듣지 못할 것입니다. 보불전쟁의 '보'가 당최 궁금해서 찾아서 정리한 내용입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런데 16세기 후반 프랑스는 신성로마제국의 로렌 지역을 프랑스의 주교령으로 편입시키더니, 1648년엔 30년 전쟁의 승리로 알자스 일부 지역까지 획득하였습니다. 그리고 1697년 프랑스의 루이 14세가 알자스 지역을 완전히 병합하더니, 주교령이었던 로렌 지역도 1766년 모두 프랑스 영토로 귀속시켰습니다. 즉, 독일 문화권이었던 두 지역이 프랑스로 완전히 편입된 것입니다. 이 지역을 탐을 냈던 프랑스가 그렇게 야금야금 동진을 해 국경선을 라인강까지 확장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탐을 내는 데엔 분명한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주인이 계속해서 바뀐 프랑스와 독일의 접경 지역 알자스. 로렌은 알자스 바로 좌측 지역 (출처, 브리태니커백과사전 2011)


알자스는 예로부터 와인과 농산물, 그리고 풍부한 산림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리고 알자스와 로렌 통합 지역은 광물로는 프랑스 영토로 보면 프랑스 철광석의 90프로가 매장되어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 지역을 독일 영토로 계산하면 독일 전체 철광석의 35프로가 매장된 주요 광물자원 지역이 됩니다. 라인강을 사이에 두고 독일의 루르와 자르 공업 단지와 소위 콤비나트라 불리는 종합 공업단지가 되는 곳이 바로 이 지역입니다. 과거엔 땅 위의 농산물과 임산물로 가치 있는 지역이라면, 산업혁명 이후엔 지하자원으로 인해 공업용 가치까지 올라가 국가 산업에 매우 중요한 지역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프랑스는 알자스와 로렌을 탐을 내어 약 200년에 걸쳐 그들의 영토로 복속시킨 것입니다. 즉, 독일의 입장에서 보면 보불전쟁 당시 역사적으로 600년 넘게 자국 영토였던 알자스와 로렌을 프랑스가 침략해 뺏은 것입니다. 그래서 독일은 그 전쟁의 승리로 빼앗겼던 그 땅을 다시 탈환하여 통일의 대업을 이룬 것입니다.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이 다소 무색해지는 순간입니다.


하지만 20세기 초 발발한 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국이 된 독일은 승전국인 프랑스에 꼼짝마라가 되어 다시 이 지역을 프랑스에 넘기게 됩니다. 프랑스의 입장에서도 그만큼 양보할 수 없는 지역이라 그곳에 사는 주민들의 의견은 무시된 채 알자스와 로렌은 다시 또 프랑스 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940년 5월,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은 서부 전선을 넘어 프랑스를 침공합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이 지역 위쪽인 아르덴 고원을 기습적으로 주파하여 단숨에 수도인 파리를 점령했습니다. 프랑스는 알자스와 로렌을 더 이상 잃지 않기 위해 그곳에 마지노선이라는 철벽 군사 라인까지 구축해 놓았는데 독일은 그곳을 유유히 피해가 프랑스를 항복시킨 것입니다. 보불전쟁은 항복까지 6개월이 걸렸지만 이번엔 불과 6주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1943년 독일의 히틀러는 다시 또 다시 알자스와 로렌을 전쟁 중에 공식적으로 자국의 영토로 합병하였습니다. 남쪽 이탈리아의 무솔리니가 개전 시 승리로 오늘날 크로아티아 지역인 옛 로마 제국의 땅 달마티아를 자국의 영토로 편입시킨 것과 같은 실지를 회복한 것입니다. 하지만 독일의 패배로 대전이 끝난 후 알자스와 로렌은 다시 또 다시 또 프랑스의 영토로 들어가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참으로 기구한 알자스와 로렌의 운명입니다.


역사적으로 이보다 더 자주 나라가 바뀐 지역이 있을까요? 우리 6.25 전쟁 때 주민들이 낮엔 마을에 들어온 국군의 편에 서고, 밤엔 산에서 내려온 인민군과 빨치산의 편에 서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흑역사가 생각나게 하는 그곳입니다. 실제로 두 번의 대전 중에 알자스와 로렌의 주민들은 부역과 징집과 관련하여 그런 고초를 겪었습니다. 참으로 비극적인 일입니다. 프랑스 입장에선 자국의 동쪽 국경선이 라인강까지 가는 것이 여러모로 유용하고 유리하다는 판단이 서서 그곳을 결사적으로 사수하고 있을 것입니다. 라인강이 독일과의 자연스러운 국경의 역할도 하지만 풍부한 농업용수와 공업용수를 제공해 주니까요.


라인강을 끼고 있는 알자스 와인 가도 (출처, Travel notes)


다시 와인으로 옵니다. 그래서 제가 친구로부터 받은 와인에 독일어 지명이 쓰여 있는 것입니다. 프랑스임에도 그곳은 여전히 옛날부터 사용했던 독일어가 통용되기도 하니까요. 라인강의 지류인 모젤강 동쪽 독일엔 모젤 와인이 유명한 것처럼 라인강 서쪽인 이곳 프랑스엔 알자스 와인이 유명한 것입니다. 라인강의 풍부한 수원이 포도가 익어가는 데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해주고 있기에 가능할 것입니다. 그래서인가 알자스엔 와인뿐만이 아닌 맥주도 매우 유명합니다. 바로 프랑스에서 40프로의 마켓 셰어로 넘버 1 맥주인 크로넨버그가 바로 이 지역에 위치한 스트라스부르의 맥주입니다. 와인에 좋은 물은 맥주에도 좋을 것입니다.


과거 우리나라의 축구 국가대표 서정원 선수가 활약했던 스트라스부르(Strasbourg)는 독일어로는 스트라스부르크(Straßburg)인데 이는 함부르크나 아우크스부르크와 같은 독일의 도시들과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길이 있는 도시라는 뜻으로 프랑스 7대 도시일 정도로 큰 스트라스부르는 교통의 요지라는 의미를 도시명에 담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도 수입되는 파란 병의 크로넨버그(Kronenbourg) 맥주도 그 이름에 스트라스부르처럼 맥주 강국인 독일을 담고 있습니다. 그 병 레이블에 박혀있는 1664 숫자는 그 맥주 양조장의 설립년도이니 꽤나 오래된 맥주입니다. 당시는 알자스가 프랑스에 완전히 병합되기 전의 독일 전신인 신성 로마 제국 시절이었습니다. 이런 사실들이 과거 알자스와 로렌이 독일 지역이었다는 것을 더욱 입증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알자스의 스트라스부르에 본사가 위치한 프랑스 1위 맥주 크로넨버그


지금 스트라스부르의 초등학교에선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모두 가르치고 있다고 합니다. 더 이상 언어 문제로 소설 <마지막 수업> 같은 마지막 수업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한 조치일지 모릅니다. 그래도 언젠가 독일과 프랑스가 또 전쟁을 하게 된다면.. 글쎄요.. 아예 그런 상상조차 하지 말아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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