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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하 Aug 12. 2023

뒤늦게 내게 온 첫사랑

<첫사랑>과 <노트북>

그대를 처음 본 순간이여 설레는 내 마음에 빛을 담았네 / 말 못해 애타는 시간이여 나 홀로 저민다 / 그 눈길 마주친 순간이여 내 마음 알릴세라 눈길 돌리네 / 그대와 함께한 시간이여 나 홀로 벅차다 / 내 영혼이여 간절히 기도해 온 세상이여 날 위해 노래해 / 언제나 그대에게 내 마음 전할까 오늘도 그대만 생각하며 살다 / 그 마음 열리던 순간이여 떨리는 내 입술에 꿈을 담았네 / 그토록 짧았던 시간이여 영원히 멈추라 / 내 영혼이여 즐거이 노래해 온 세상이여 우리를 축복해 / 내 마음 빛이 되어 그대를 비추라 오늘도 그대만 생각하며 살다 첫사랑


언제부터인가 우리 귀에 들리기 시작한 가곡 <첫사랑>입니다. 유려한 멜로디도 아름답지만 시와도 같은 아름다운 가사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노래입니다. 저는 이 가곡을 몇 년 전 jtbc의 크로스오버 경연 프로그램인 <팬텀싱어>에서 처음 들었습니다. 찾아보니 3년 전인 2020년 4월의 <팬텀싱어 3>에서였네요. 당시 전 그 곡을 들으며 매우 이상해했습니다. 바로 저를 말입니다. "아니, 이 좋은 가곡을 난 왜 이제서야 처음 들었지?"라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더구나 그때 이 가곡을 부른 가수는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저 멀리 남태평양 멜라네시아의 피지에서 온 소코라는 외국인이기에 제게 그 노래는 더욱 인상적으로 들렸습니다. 그땐 가사까지는 완벽하게 들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오늘 처음 필사를 하며 이 <첫사랑>의 정확한 가사를 접하게 됩니다. 언제 들어도 가슴 설레는 첫사랑의 심경을 절절이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첫사랑을 해본 남녀라면 누구라도 그렇게 느낄 것입니다. 멀리 떨어진 과거의 옛일이라도 말입니다.


첫사랑의 시점은 사람마다 다 다를 것입니다. 같은 연배라도 누군 10대에 하고, 누군 20대에 하기도 하니까요. 물론 40대, 50대에도 첫사랑은 가능하지만 우리 머릿속에 통상적으로 들어와 있는 첫사랑 본연의 감정이 가슴으로부터 이입되기엔 힘들 것입니다. 이렇듯 첫사랑은 그 용어에서 주는 풋풋함에 나이라는 비례 변수도 분명히 작용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그들 커플의 나이가 10대가 아니라 40대에 만나서 그렇게 첫사랑을 나누는 스토리였다면 오늘날처럼, 아니 과거부터 그렇게 전 세계, 전 세대인이 열광하긴 힘들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첫사랑> 이 가곡엔 그 첫사랑의 결실인 첫 키스도 담겨있는 듯합니다. 이 노래에 등장하는 화자인 연인은 그 시간이 너무 짧게 느껴져 그 시간이 영원히 멈추라라고 기원합니다. 남자일까요? 여자일까요? 아무튼 다행입니다. 첫사랑이 짝사랑으로 끝나지 않고 이루어진 것이니까요. 이렇듯 첫 키스는 첫사랑의 성공을 상징하는 수확물과도 같습니다. 이것은 남녀 공히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사랑과 키스에도 떨림이 있지만 거기에 첫이 붙어 첫사랑과 첫 키스가 되면 그것들의 떨림은 더욱 강력해집니다. 그 세기가 선풍기 1단에서 2단은 건너뛰고 3단으로 직행하는 것입니다.


가장 최근에 들은 이 <첫사랑>은 지난 5월 말 친구 영애 결혼식에 참석해서 들은 축가였습니다. 그런데 <첫사랑>을 첫 만남 이후 그간 여러 번 들었음에도 그날 그 노래엔 또 다른 놀라움이 있었습니다. 그 축가를 부른 가수가 그 결혼식의 주인공인 신부였기에 그랬습니다. 그래서 TV 속 외국인을 통해서 들은 첫 감상 이상으로 놀란 것입니다. 그간 많은 결혼식을 가보았지만 신부가 직접 축가를 부른 것은 처음 보았으니까요. 성악을 전공한 친구의 딸이 용감하게도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마이크를 잡고 그렇게 깜짝 무대를 펼쳤습니다. 그녀는 예식장을 순식간에 음악당으로 착각하게 할 만큼 그 <첫사랑>을 능숙하게 잘 불렀습니다. 저를 비롯한 하객들은 브라바를 쏟아내며 무대를 빛낸 소프라노 신부에게 화답을 하였습니다. 예상컨대 그녀는 그 곡 속에 그녀를 결혼까지 이르게 한 그들의 러브 스토리가 담겨 있기에 더욱 잘 불렀을 것입니다. 그 <첫사랑>의 당사자인 신랑의 행복감이 가장 컸음은 당연했을 것입니다.  


계절의 여왕 5월 웨딩 플라자에 유려하게 울려 퍼진 신부의 노래 <첫사랑>


그런데 이렇게 지금은 이곳저곳에서 들리는 <첫사랑>을 제가 3년 전에 처음 듣고 자책한 것이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꼭은 아닐지 몰라도 정상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때 <팬텀싱어>에서 처음 듣자마자 그 가곡의 매력에 빠진 전 바로 그 곡에 대해 찾아보았습니다. 사실 우리가 아는 가곡의 대부분은 학교 때 음악 시간에서 만난 곡들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중고등학교 음악 교과서에서 접한 곡들이지요. 그 시절 제 기억 속의 오선지에 <첫사랑>은 분명히 없었습니다. 당연합니다. 그리고 다행입니다(?). 그 곡은 1985년 태어났으니까요. 그것도 그때엔 단 한 사람만을 위한 피아노 연주곡으로 태어났습니다. 최초에 그 곡의 청중은 딱 한 명이었다는 것입니다. 2011년이 돼서야 그 <첫사랑> 멜로디에 위의 아름다운 가사까지 붙어져 대중들에게 완전체 노래로 선을 뵀습니다. 그러니 <첫사랑> 그 가곡은 이제 갓 10년을 넘긴 아직도 신상입니다.


김효근이라는 다소 엉뚱한 이력을 가진 작곡가가 이 곡을 만들었습니다. 그때 유일했던 단 한 명의 청중은 지금은 그의 아내가 되어있는 그의 첫사랑이었습니다. 그의 개인적인 프러포즈곡으로 만든 노래가 지금은 거의 온 국민이 애청하고 사랑하는 <첫사랑>이 된 것입니다. 그의 이 노래는 우리가 알던 가곡의 편견을 깼습니다. 가곡이라면 성악가가 부르는 노래들로 나름 연식이 되는 20세기의 클래식한 곡으로 대부분 알고 있는데 21세기에 태어난 이 곡은 대중가요 이상으로 히트를 쳐 단기간에 온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으니 말입니다. 지금도 누군가 교향곡을 계속해서 작곡하고 있겠지만 과거의 대가들이 작곡한 교향곡을 뛰어넘는 곡이 없어서 기억을 못 하는 것처럼 가곡도 그런 클래식한 장르의 음악으로 기억되는데 김효근의 <첫사랑>이 그 벽을 깬 것입니다. 물론 음악가들이 활동하는 그 세계에선 그러한 현대적인 클래식 곡들의 명맥이 계속 이어오고 있겠지만 음악적 소양이 약한 일반인인 제가 느끼기엔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제가 이 노래를 대단한 가곡으로 평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김효근 작곡/작사가는 미국 피츠버그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 후 현재 그의 제1 전공에 따라 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 중에 있습니다. 그러면서 틈틈이 지금도 계속해서 음악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대학 재학 시절인 1981년엔 제1회 대학가곡제에서 <눈>이라는 곡으로 대상까지 수상했다 하니 그는 일찍이 두 가지 탤런트를 가진 르네상스형 인재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다분히 팝적인 맛이 묻어나는 그의 신식 가곡들은 이른바 '아트팝 가곡'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그래서인가 그의 곡들은 요즘 유채훈, 길병민 등 주로 크로스오버 성악가들의 연주 리스트에 종종 등장하곤 합니다.


제 주변에선 고향 친구인 김광진 가수가 그와 유사한 인물로 보입니다. 그도 어릴 때부터 공부도 잘했고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습니다. 대신 경영학을 전공한 그는 김효근 교수와는 달리 학계가 아니라 금융업 쪽에 종사하였고, 음악도 역시 또 그와는 달리 클래식이 아닌 대중음악 쪽에 재능이 있어서 싱어송라이터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아마도 그들이 어렸을 때 공부를 그렇게 잘하지 못했다면 처음부터 음악 한 길로 갔을지도 모릅니다. 그 시대엔 음악, 미술을 비롯한 예술 분야와 운동의 재능은 그렇게 공부보다는 후순위로 밀리던 시절이었습니다. 지금은 시대가 바뀌어 반대로 가고 있는 듯합니다. 저부터라도 당장 만약 제 아이가 두 가지를 다 잘했다면 예술과 운동을 우선적으로 강권했을 것입니다.


1985년 작곡, 2011년 작사로 <첫사랑> 가곡을 완성한 김효근 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


첫사랑, 이 단어 참으로 묘합니다. 감정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국어적으로 그렇다는 것입니다. 보시듯 첫사랑은 관형어인 첫을 띄어 쓰지 않고 붙여 써야 합니다. 첫 사랑 이렇게 쓰면 받아쓰기에서 오답으로 처리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같은 원리로 둘째 사랑도 붙여 써야 형평성에 맞을 것입니다. 하지만 끝 사랑도 그렇고 첫사랑을 제외하곤 순서에 맞춰 등장하는 나머지 사랑들은 모두 띄어쓰기를 해야 합니다. 첫이 붙어서 단순한 순서 이상의 새롭고 특별한 의미로 해석될 때만이 한 단어로 붙여 쓰는 게 허용이 되어서 그렇습니다. 첫아이, 첫돌, 첫날, 첫눈 등이 첫사랑과 같이 특별 대우를 받는 단어들입니다. 지금까지의 이 글에서는 유사한 형태인 첫 키스, 첫 만남, 첫 감상 등은 띄어서 썼습니다. 특별 대우를 못 받는 단어들이라서 그렇습니다. 그래도 왠지 화학 작용을 일으켜 전혀 다른 세계로 인도하는 첫 키스는 붙여 쓰는 것을 허용해 주는 것이 맞아 보입니다. 국어연구원의 결정자가 꽤나 보수적이거나, 아직도 첫 키스를 해보지 않았거나, 아니면 해봤지만 기억이 오래되어 그 세계와 의미를 잊어버려 떨어트린 채로 방치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런데 끝 사랑은 안 되지만 옛사랑은 붙여 쓰는 게 인정이 됩니다. 여운이 있고 없음의 차이인가요? 그렇다면 사랑과 이별에서 첫 이별은 어떨까요? 이것은 띄어 써야 합니다. 이별은 바람직하지 않아서 그런가 봅니다. 첫비의 경우는 실생활에선 거의 쓰고 있지 않지만 첫눈과의 형평성을 고려해서인지 붙여 쓰는 것이 허용됩니다. 당장 연인들이 재회를 약속할 때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하고, 아이들은 첫눈이 오면 뛰어 나가지만, 첫비 오는 날 만나자는 연인들과 첫비 온다고 뛰어 나가는 아이들은 찾아보기 힘든데도 말입니다. 참으로 어렵고 만만치 않은 우리 국어의 띄어쓰기입니다.


최근 역시 또 <첫사랑> 노래만큼이나 뒤늦게 첫사랑이 주제인 영화를 한 편 보았습니다. 넷플릭스를 통해서 본 작품인데 그 영화를 보면서도 전 <첫사랑> 가곡을 처음 들었을 때와 비슷한 감정을 또 느꼈습니다. "아니, 이 좋은 영화를 난 왜 이제서야 처음 보았지?"라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2004년 개봉한 <노트북(The Notebook)>이라는 영화입니다. 제가 그렇게 생각한 것은 사람마다 좋아하는 장르의 영화가 있는데 그날 밤 이 영화를 본 후 이 정도 영화라면 제가 모를 리가 없고, 몰라서도 안 되며, TV로 들어오기 전에 반드시 극장에 가서 봤어야 할 영화로 자평을 했기에 그렇습니다. 더구나 <노트북> 영화는 2004년에 이어 2016년, 2020년 등 두 번을 더 재개봉을 했는데 말입니다. 아마도 그때 전 <노트북> 이 영화를 컴퓨터와 관련한 영화로 지레 이해했을지도 모릅니다. 예나 지금이나 기계와 IT엔 젬병인 저이니까요.


첫사랑은 실패한다는 등식을 깬 영화 <노트북> 포스터, 2004 


<노트북> 영화에서 노트북은 여주인공인 앨리가 직접 쓴 일기장입니다. 그녀의 첫사랑인 노아와의 러브 스토리를 그 안에 담았습니다. 앨리는 러블리한 레이철 맥아담스가 맡았고, 노아는 사랑 전문 배우인 라이언 고슬링이 맡았습니다. 배경은 1940년대 미국 남부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찰스턴과 근교인 시부룩이라는 곳입니다. 남북전쟁 이후 시대는 흘렀지만 여전히 보수적인 그 지역의 모습이 영화에서 그려집니다. 특히 배경이 남부를 대표하는 도시 찰스턴이고 조지아주가 바로 옆에 붙어서인가 영화에서 지명이 언급될 때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도 떠올랐습니다. 그 영화에서도 찰스턴이 나오니까요. 남북전쟁의 첫 포성이 울린 찰스턴은 레트 버틀러(클라크 게이블)의 고향으로 그는 스칼렛 오하라(비비안 리)에게 그곳으로 돌아가겠다고 합니다.


남부의 유서 깊은 찰스턴에 사는 앨리는 여름 방학을 맞아 부모와 함께 휴가를 즐기러 시브룩에 있는 별장에 왔습니다. 그곳에서 그녀는 17세 촌뜨기 소년인 노아를 만납니다. 그는 목재소를 다니는 벌목공입니다. 하지만 집요하되 진실한 노아의 대시로 둘은 첫사랑의 연인이 됩니다. 같은 10대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된 것입니다. 하지만 귀족이자 부자인 앨리의 집에서 그 사랑을 허용할 리가 없습니다. 결국 기나 긴 방학이 끝날 즈음 앨리의 부모는 그들이 더 이상 못 만나게 앨리를 멀리 뉴욕에 있는 대학에 진학시킵니다.


17세에 만나 첫사랑을 시작한 노아와 앨리 커플


그들의 첫사랑은 이렇게 깨졌습니다. 상심에 빠진 노아는 우리나라 남자들이 첫사랑에 실패해 실연을 당하면 학업을 전폐하고 군대를 가듯이 당시 발발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합니다. 그전에 그는 그녀에게 1년 내내 매일 편지를 보냈지만 그 편지는 모두 앨리의 엄마에 의해 커트되었습니다. 부잣집 소녀와 가난한 집 아들의 첫사랑과 실연.. 여기까지는 흔히 보이는 클리셰가 그들에게도 일어났습니다. 영화 <시네마 천국>의 첫사랑 커플인 토토와 엘레나도 똑같은 과정을 겪고 토토가 군대에 갔듯이 말입니다. 차이는 엘레나의 편지를 커트한 사람이 여자의 부모가 아닌 토토에겐 아버지와도 같은 알프레도였다는 점입니다. 토토를 사랑한 그의 빅 픽처에 의해 그녀의 편지는 안타깝게도 토토에게 전해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노아의 나이 24세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첫사랑 앨리가 돌아와 그들의 사랑이 다시 이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성인이 된 그들이기에 부모의 반대와 상관없이 둘은 결혼에도 골인합니다. 브라보! 매우 다행스럽고 통쾌한 결과입니다. 수많은 문학과 현실 세계에서 자행되는 비극적인 첫사랑의 클리셰를 <노트북>은 깼습니다. 앨리에겐 찰스턴에 부자인 엘리트 약혼자가 있었음에도 그녀는 다시 첫사랑이 있는 시부룩의 노아에게 돌아온 것입니다. 그들이 재회의 포옹을 할 때 축복이라도 하듯이 거세게 쏟아진 비는 황순원의 '소나기'였으며, 앨리를 다시 돌아오게 하기 위해 노아가 직접 지은 집은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이었습니다. <라라랜드>에서 엠마 스톤과의 사랑에 실패해 상상으로만 결혼했던 라이언 고슬링은 <노트북>에선 이렇게 멋지게 레이철 맥아담스와의 사랑에 성공했습니다.


24세에 재회해 첫사랑을 완성한 앨리와 노아 커플


그러고 나서 둘은 알콩달콩 잘 살았습니다. 더 이상 할 얘기가 없어서인가 중간 사랑은 나오지 않지만 흐름상 그렇게 해석이 됩니다. 애들도 낳아 일가를 이루었으니까요. 그렇게 끄읕!.. 그런데 끝이 아니었습니다. 중간 사랑 건너뛰고 끝 사랑.. 끝 사랑이 나오는 것입니다. 대개의 문학 작품이나 영화에서는 보여주지 않는 끝 사랑이 <노트북>에선 비중 있게 나옵니다. 그리고 그 끝 사랑엔 레이철 맥아담스(앨리)가 라이언 고슬링(노아)과의 첫사랑을 기록한 노트북이 큰 역할을 합니다. 이 글에선 밝힐 수 없는 애절한 이야기입니다.


<노트북> 이 영화는 56주간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니콜라스 스파크스의 소설이 원작으로 작가는 장인과 장모의 실화를 소설로 구성하였다고 합니다. 그 장모도 앨리처럼 노트북을 기록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영화 <노트북>에 나오는 정도의 지고지순한 끝 사랑이라면 이 사랑은 첫사랑과 마찬가지로 한 단어로 붙여 쓰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특별 대우를 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노아와 앨리는 끝까지 붙어 있었습니다. 첫사랑과 조금도 변함없는 끝사랑으로..


https://youtu.be/djn5Mzo6L00




어느 유튜버께서 제가 최근 출간한 책에 대한 소개를 간단한 동영상으로 만들어 주셨네요. 감사를 드리며 아울러 그 사실을 인지한 저로서는 이렇게 브런치에 들고 와 광고하지 않을 수 없어 살짝 올려 봅니다. 그리고 브런처(bruncher)님들께도 역시 또 감사를 드립니다.


https://youtu.be/05lE7gxoNl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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