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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하 Sep 30. 2023

십자군의 기사단

몰타/템플/튜튼 기사단

킹덤 오브 헤븐 예루살렘


영화 <글래디에이터>로 유명한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역사물인 <킹덤 오브 헤븐>은 중세 말 유럽의 중심을 레반트라 불린 동방으로 이동시켰던 십자군 전쟁을 배경으로 예루살렘 왕국을 사수하려는 기독교 세력과 그것을 차지하려는 이슬람교 세력 간의 치고받는 공방전을 다루고 있습니다. 십자군 전쟁은 중세 유럽 최고의 권력자인 교황의 부름으로 전 유럽이 결집해 2세기에 걸쳐 9차례의 원정을 감행했음에도 실패한 전쟁입니다. <킹덤 오브 헤븐>은 이중 1차 원정 후 기독교도가 세운 예루살렘 왕국의 위기를 다루고 있는데 전투 결과 이슬람의 걸출한 술탄인 살라딘의 지도력으로 그곳은 이교도의 수중에 떨어졌습니다. 1187년의 일입니다. 이를 재탈환하기 위해 1190년 곧바로 3차 십자군 원정이 일어나고 이후 크고 작은 전쟁을 계속 이어가지만 1244년 예루살렘은 더 이상 기독교 세력이 넘볼 수 없는 킹덤 오브 크라이스트가 아닌 킹덤 오브 무함마드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후 기독교 세력이 다시 예루살렘을 되찾은 것은 7백 년이 지난 20세기의 1917년이었습니다. 영국이 그곳을 차지하고 있던 오스만 제국을 몰아낸 것입니다. 역시 또 1차 세계대전이라는 전쟁을 통해서 예루살렘 재탈환 작전이 진행되었고 영국의 외무 장관의 서명이 담긴 밸푸어 선언에 의해 그렇게 결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땅엔 그간 디아스포라로 전 세계에 뿔뿔이 흩어져 살던 사람들의 소망을 이룬 이스라엘이 1948년 건국되었습니다. 시오니즘의 꿈을 이룬 킹덤 오브 헤븐이 지상에 건설된 것입니다. 과거 십자군 원정 때와 다른 것은 그 땅을 차지하고 살게 된 새로운 주인이 기독교도가 아닌 기독교도들의 도움을 받은 유대교도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십자군 최후의 전투 아크레 공성전


3차 십자군 원정엔 3개의 주요 기독교 기사단이 참전을 하였습니다. 가장 먼저인 1099년에 창설된 몰타 기사단과 1119년에 창설된 템플 기사단, 그리고 3차 원정 기간인 1190년 창설된 튜튼 기사단이 그들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이 부여한 사역인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해 백방의 노력을 기울였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윽고 1291년 역사적인 전투가 벌어집니다. 올 오어 나씽, 십자군과 무슬림 간에 전면전이 펼쳐진 것입니다. 우리에겐 다소 생소한 도시인 오늘날 이스라엘 북부에 위치한 아크레(아코/아콘)에서 2백 년에 걸쳐 온 유럽을 들썩이게 한 십자군 전쟁의 최후의 격전이 펼쳐졌습니다. 기록으로 볼 때 그 공성전엔 위의 주력 3개 기사단이 모두 참전한 것으로 보입니다. 각각 다른 모양의 십자가를 심벌로 한 3개 기사단의 망토가 아크레 성 이곳저곳에서 휘날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멀리 기독교 대륙인 유럽에 사는 거의 모든 유럽인들은 그 전투의 승리를 위해 매일 동네 성당에 모여서 기도를 드렸을 것입니다.


십자군 최후의 전투인 아크레 공성전에서 성을 방어하는 몰타 기사단 (1291)


하지만 그 해 4월 6일에 시작된 전투는 5월 18일에 십자군의 패배로 끝이 났습니다. 그리고 기나 긴 십자군 전쟁도 함께 끝이 났습니다. 이후 발생한 몇 번의 전투는 산발적이고 패주의 과정에서 이루어졌기에 별 의미가 없는 싸움이었습니다. 결국 기독교도와 함께 예루살렘을 서로 성지라 주장하던 예언자 무함마드의 이슬람교도가 그들의 성지를 지켜낸 것입니다. 패잔병이 된 다국적 연합군인 십자군은 이제 그곳에서 철수해야만 했습니다. 이후에도 십자군은 유럽 내에서 그 땅을 넘보던 오스만 제국과의 전투 등을 위해 또 결성되기도 했지만 예루살렘 성지 탈환이라는 대의가 빠진 십자군은 그 존재 가치가 매우 미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야흐로 십자군 전쟁의 패배로 이제 유럽은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게 됩니다. 중세라는 시기와 세계도 함께 철수하게 된 것입니다. 그 전쟁을 주도한 기독교의 수장인 교황의 권위가 전만 못해지며 기독교가 절대적이었던 중세와 그 가치가 서서히 저물어져 갔습니다. 십자군 최후의 전투인 아크레 공성전은 2017년 미국 히스토리 채널에서 방영되고 국내 TV에서도 시청 가능한 <나이트폴(Knight Fall)>에 생생하게 나옵니다.


이후 십자군의 기사단들은 어떤 길을 걷게 되었을까요? 일단 그들은 실업자와 마찬가지인 신세가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군대로 교황의 명을 받아 예루살렘 성지 순례를 하는 신자들을 안전하게 인도하는 것이 그 기사단의 가장 큰 임무이고,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전투와 의료, 구호 사업을 하던 그들이었는데 그 선한 싸움에서 패배함으로써 이제 그 일을 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더구나 기사단의 충성 대상이며 최고 명령권자인 교황의 힘이 그가 주창한 십자군 전쟁이 실패로 끝나면서 바람 빠지듯 약해졌으니 그들은 매우 난망했을 것입니다. 기업으로 치면 CEO의 경영권은 약해지고 주요 먹거리 사업이 사라진 것입니다.


마치 일본의 근대화를 이룬 메이지유신 시 개혁파와의 싸움에서 패배한 도쿠가와 막부파의 갈 곳 없는 사무라이들과 같은 기사 팔자가 된 것입니다. 주군과 직업을 잃은 사무라이들은 로닌(낭인)으로 전락해 범죄조직을 만들어 야쿠자의 전신이 되기도 했습니다. 1895년 조선의 국모인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그들이 해결사로 동원된 것도 그런 맥락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실제로 십자군 전쟁의 많은 기사들은 철수 후 유럽을 떠돌며 약탈을 일삼거나 바다에서 해적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호구지책 앞에서 우아한 사명은 뒤로 밀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북부 갈릴리 지방 서편 바닷가에 위치한 아름다운 요새 도시 아크레의 오늘날 모습



슬픈 운명의 템플 기사단


위의 3개 정예 기사단은 십자군 전쟁 중엔 하느님의 사명을 받드는 희생만큼이나 많은 권력도 누려 국가 안의 국가와도 같은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특히 템플 기사단은 유럽 전역에 조직을 갖추고 무역과 금융 등의 각종 사업으로 많은 부를 쌓아갔습니다. 성지 순례자들을 인솔하며 유럽의 각 나라와 동방을 자유롭게 오가던 그들이었습니다. 그 과정에 물자와 돈까지 오가며 막대한 이익이 발생한 것입니다. 어두웠던 중세에 생긴 최초의 국제 은행과 다국적 기업과도 같은 역할을 한 그 기사단이었습니다. 그것 아니고도 성지 순례자들의 기부와 기사들의 조건인 독신자 신분으로 인해 그들의 물려줄 대상 없는 상속 재산도 그 기사단의 상당한 원천 재산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모든 기사단이 마찬가지였습니다. 신의 소명을 받드는 기사이기에 사제와도 같은 엄격한 법도 아래에서 움직인 것입니다. 템플 기사단의 경우 그들의 부가 어느 정도였냐면 지중해의 키프로스섬을 매입해서 소유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기사단의 부가 화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들의 막대한 재산을 탐을 내 그것을 빼앗으려는 기독교도 왕이 등장한 것입니다.


프랑스의 필립 4세가 바로 그 악당입니다. 그는 프랑스인이 주축인 템플 기사단이 아크레 전투 후 파리로 돌아오자마자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빚이 많은 그였기에 그 기사단의 재산을 몰수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미 그는 그 기사단의 보스인 교황을 자국인인 보르도 주교 출신인 클레멘트 5세로 앉혀 놓은 상태였습니다. 교황만 앉힌 정도가 아니라 아예 로마에 있던 교황청을 통째로 프랑스의 남부 아비뇽으로 옮겨 놓기까지 한 그였습니다. 아비뇽 유수(1309~1377)라고 불리는 역사를 거스르는 사건을 일으킨 것입니다. 그전에 전임 로마 바티칸의 이탈리안 교황인 보니파시오 8세는 그의 지시로 그의 부하가 감금하고 뺨을 때리는 린치까지 가해 화병으로 죽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필립 4세의 하수인인 아비뇽의 초대 교황 클레멘트 5세가 주관한 종교재판에서 템플 기사단의 단원들은 모두 이단으로 몰려 심한 고문 끝에 산 채로 화형을 당하였습니다. 죄목엔 독신자들로만 구성된 기사단이기에 동성애도 들어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1291년 아크레 공성전이 끝난 지 21년 만인 1312년 템플 기사단은 지구상에서 종적을 감추었습니다. 이후 그들의 잔존 세력은 포르투갈의 토마르에 위치한 그리스도 수도원에서 그리스도 기사단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훗날 대항해 시대를 연 엔리케 왕자는 그 기사단의 단장을 역임하였습니다. 성전 기사단으로도 불리는 템플 기사단에 대한 이야기는 제가 이곳에 일전에 쓴 <올댓 아비뇽 유수>에 상세히 소개되어 있습니다.


템플 기사단의 십자가 표식(상)과 인장(하). 형제애를 강조한 이 인장은 후에 종교 재판에서 동성애 코드로 누명을 씀



독일 민족의 영예 튜튼 기사단


튜튼 기사단은 1190년 아크레에 세워진 야전병원이 기사단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본부를 둔 템플 기사단과는 달리 이들은 아크레에 본부를 두고 활동을 하였습니다. 유럽 민족의 기원 중 하나인 튜튼족은 중부 유럽을 거점으로 뿌리를 내려 오늘날 독일 민족인 게르만족의 전신으로 봅니다. 그래서 튜튼 기사단은 독일 기사단이라고도 불립니다. 아크레 공성전 이후 그들은 오늘날 폴란드의 마르헨부르크, 러시아의 영토가 된 쾨니히스베르크 등 과거 동프로이센 지역으로 본부를 옮겨 주로 중부 유럽과 동부 유럽에서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동구 슬라브인이 믿던 동방정교회와 이교도들의 종교를 개종하는 것을 주요 사업으로 한 것입니다.


튜튼 기사단의 활동은 중부 유럽 독일인이 동부 유럽으로 진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히틀러는 튜튼 기사단을 그들 민족의 정체성으로 삼고 그 기사단의 심벌인 검은 십자가를 표식으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후손인 그 역시 동부 유럽 진출에 많은 애착을 가지고 2차 세계대전 발발 시 가장 먼저 그쪽을 침공하였습니다. 이렇듯 훗날 히틀러가 애착을 보인 튜튼 기사단은 그 이전 1808년 역시 또 유럽의 동쪽을 탐을 낸 나폴레옹에 의해 멸망되고 해체되었습니다. 하지만 1834년 그 기사단은 오스트리아 제국에 의해 부활하여 현재까지도 존속되고 있습니다. 본부는 비엔나입니다. 대신 그 기사단은 활동은 없고 과거 카톨릭 전사로서 선배 기사들이 활동했던 그 정신과 명예만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훗날 나치의 히틀러가 차용한 튜튼 기사단의 문장(상)과 단순화한 십자가 표식(하)



살아있는 역사 몰타 기사단


마지막으로 아크레 공성전 이후 몰타 기사단의 행보입니다. 1099년 1차 십자군원정 시 예루살렘에서 가장 먼저 결성된 기사단답게 그들은 1291년 아크레에서 철수하면서도 예루살렘 왕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키프로스섬을 새로운 본거지로 선택하였습니다. 언젠가 재탈환할 날을 기약하며 그곳에서 가까운 곳에 둥지를 튼 것입니다. 영화 <킹덤 오브 헤븐>에서 예루살렘 왕국의 왕인 보두앵 4세(에드워드 노튼 분)의 군사 고문으로 출연한 제레미 아이언스(티베리아스 역)는 예루살렘이 살라딘에게 넘어가자 키프로스로 떠난다고 하며 기사 발리안(올랜도 블룸 분)에게 "너는 어디로 갈 거냐?"라고 묻는 장면이 나옵니다. 정확한 대사가 아닐 수는 있어도 그 장면과 그가 키프로스로 간다는 것은 이상하게도 오래전 본 영화임에도 제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이러한 상황과 대화는 그 후 1291년 벌어진 아크레 전투에서처럼 1187년 예루살렘 전투에서 패배해 갈 곳 없는 기사들의 반복된 운명으로 보입니다. 제레미 아이언스가 연기한 티베리아스는 키프로스섬의 주인인 템플 기사단이나 나중에 그곳에 둥지를 튼 몰타 기사단 소속으로 보입니다.


몰타 기사단은 본래 십자군 전쟁 이전부터 예루살렘에 설치된 병원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계속해서 의료 지원 활동을 해오던 단체가 전투까지 수행하는 기사단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기사단은 구호 기사단이라고도 불리고 성 요한 기사단으로도 불립니다. 이후 키프로스섬을 거쳐 로도스섬으로도 본부를 옮겼는데 그래서 로도스 기사단으로도 불립니다. 로도스섬에서 오스만 제국에 의해 쫓겨난 기사단은 1530년 스페인 관할의 몰타섬에 정착해 드디어 현재까지도 통용되고 있는 몰타 기사단이 됩니다. 하지만 튜튼 기사단처럼 유럽에 혜성 같이 등장한 나폴레옹에 의해 그들의 운명도 달라졌습니다. 하필이면 그가 이집트를 정벌하러 가는 길에 몰타섬을 중간 기착지로 찍어 1798년 멸망을 당한 것입니다. 아니, 멸망을 당하는 듯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후 몰타 기사단은 1834년 로마로 본부를 옮겨 현재까지도 꿋꿋하게 존속되고 있으니까요.


몰타 기사단의 국기(상)와 그들을 상징하는 표식인 몰타 십자가(하)


템플 기사단은 1291년 아크레 공성전 이후 얼마 안 된 1312년 완전히 사라졌고, 튜튼 기사단은 나폴레옹에 의해 해체된 이후엔 명예와 정신만이 살아있습니다. 물론 그들은 20세기 이후 다시 살아나 <인디아나 존스>나 <다빈치 코드> 등의 영화 등에 등장하고, 21세기에 들어선 아이들의 온라인 게임에 단골 소재로 등장하곤 합니다. 그리고 템플 기사단의 경우는 프리메이슨 조직으로 부활했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몰타 기사단은 그런 신화뿐만이 아닌 아직도 현실에서 살아서 움직이는 기사단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들은 아크레 공성전 이후에 지중해의 여러 섬을 옮겨 가면서도 다른 이교도인 오스만 제국과 같은 기독교도인 나폴레옹에 저항하며 꿋꿋하게 명맥을 이어온 것입니다.


이 글 위에서 기사단을 국가 안의 국가라고 표현했는데 21세기인 현재까지도 몰타 기사단은 정확히 국가 아닌 국가 형태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국기와 국가, 헌법, 화폐, 우표, 자동차 번호판 등을 갖추고 있으며 세계 각국이 인정하는 여권을 발행하여 UN에서 국가에 준하는 대우를 받고 있으니까요. 현재 전 세계 110여 개국에서 몰타 기사단은 국가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영토 없는 국가로 같은 로마에 위치한 바티칸보다도 작은, 세상에서 가장 작은 국가입니다. 십자군 전쟁 시 활동했던 기독교도인 카톨릭교도로서 로마의 바티칸의 교황청 가까운 곳에서 교황을 수호하는 기사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그들의 사업은 전 세계 120여 개국에서 자원 봉사자들이 벌이는 구호와 봉사 활동입니다. 이제 기독교도들이 성지 예루살렘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으니 전투와 가이드 임무는 빼고 구호 기사단이라 불렸던 처음처럼 구호와 봉사 활동에 주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세엔 많은 기사들이 있었고 지금까지도 명맥을 유지하는 그 기사들의 단체인 여러 기사단들이 있습니다. 본래 기사는 영주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그의 신하가 된 봉건 시스템의 한 군사동맹이었습니다. 물론 영주는 그 대가로 기사에게 봉토나 녹봉을 지급하여 그들의 주종 관계는 철저한 계약 관계 하에서 움직였습니다. 기사가 섬기는 영주는 기사의 하이어라키에 따라 때론 군주인 국왕이 되기도 했습니다. 십자군 전쟁에 등장한 기독교의 기사단은 이 글에서 보듯이 속세인이 아닌 교황이나 주교가 그들의 보스였습니다. 기사는 이렇게 국왕과 영주, 종교인 등 권력자들을 지키지만 때론 왕비, 공주, 영주의 부인 등 신분이 높은 레이디들을 지키기도 해 여기서 기사도란 말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외에도 영국엔 재미있게 여성의 속옷인 가터 벨트를 심벌로 차용한 영예로운 가터 기사단도 있고, 프랑스엔 와인으로 유명한 론강 유역의 와인을 지키는 론 기사단이 있기도 합니다. 이렇듯 기사단의 미션에 따라 기사들의 임무가 달랐고 그에 따라 기사들이 추구하는 꿈도 다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낮은 곳에서 아프고 힘들고 배고픈 사람들을 도와주는 기사야말로 21세기인 현시대가 요구하는 진정한 기사라 할 것입니다.    


남프랑스 여행 시 구입한 템플 기사단의 기사 피규어



대한민국의 몰타 기사단


우리나라에도 몰타 기사단이 있습니다. 기사단장도 있고 단원들도 있습니다. 역시 로마의 기사단 본부가 표방하는 구호와 봉사 활동을 자원 봉사자들이 하고 있습니다. 그 기사단원들은 가슴엔 찬란한 몰타 십자가 배지를 달고 독거노인들이 사는 서울의 험준한 달동네에 그들에게 줄 음식을 배달합니다. 돌봄이 필요한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당장의 먹거리일 것입니다. 그런데 음식을 사서 배달하는 것이 아닙니다. 봉사자들이 모여 직접 음식을 조리해서 만들고 그것을 포장해 들고나가서 직접 배달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대한민국의 몰타 기사단원들은 요리사이자 배달부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씩 모여 그 선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 따뜻한 음식을 받는 노인들도 좋아하지만 하늘에서 그 일을 내려다보는 하느님도 좋아할 일입니다. 그 일을 이끄는 몰타 기사단장도 똑같이 음식을 만들고 배달일도 뛰고 있습니다. 요리까지 잘하는 부지런한 기사단장인지라 그부터 솔선수범하며 직접 몸으로 봉사하는 것입니다.   


박용만 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자 전 두산그룹 회장이 그 몰타 기사단장입니다. 그가 사재를 출연해 세운 '같이 걷는 길'의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그곳에서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그가 은퇴 후에 시작한 일이 아닙니다. 그가 기업과 경제 단체의 회장으로 재직할 때인 2015년부터 꾸준하게 해오고 있는 일입니다. 뉴스에서 자주 목도되는 어떤 부류의 사람들의 어느 한 철 한두 번 보여주기 식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젠 그에게 카메라가 예전 회장 시절처럼 따라붙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오늘도 몰타 기사단장의 역할을 묵묵하면서도 발랄하게 수행하고 있습니다. 은빛 찬란한 갑옷과 투구 대신 트레이닝복과 뜨거운 햇빛 가리개 모자를 쓰고 말입니다. 태양 가까운 동네의 계단을 뛰어다니기에 가장 적합한 복장입니다. 그리고 그 기사단장은 출격 시 과거 타고 다니던 갈기 휘날리는 멋진 말 대신 소형 승용차를 타고 이동하곤 합니다. 그 경차는 배달 음식을 큰 차가 갈 수 없는 독거노인들이 사는 동네 좁은 골목 아랫길까지 신속하게 이동시켜 주는 그의 날쌘돌이 준마입니다. 얼마 전 언론에 그런 그의 작업 차량인 기아차 레이가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인 박용만 단장은 몰타 기사단장으로서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2018년 이전 정부의 대통령이 교황청 방문 시 그를 수행하며 프란치스코 교황을 처음으로 알현하였습니다. 교황에겐 과거 세속 군주처럼 비쳤을지도 모를 동방의 국가 대통령도 반가웠겠지만 과거 그의 신하이기도 한 몰타 기사단장도 꽤나 반가웠을 것입니다. 이후 그는 2021년 두 번째 교황 알현 시 DMZ의 녹슨 철조망을 녹여서 만든 철십자가를 가져가 교황에게 선물도 하고 그곳에서 전시도 하였습니다. 해외에서 우리의 분단 상황에 대해 그 어떤 프레젠테이션보다도 강력한 소구를 철조망 십자가들을 통해서 한 것입니다. 그 한 해 전엔 동대문 시장에서 소임을 다한 낡은 구르마를 해체해 나무십자가를 만들기도 했던 그였습니다. 오랜 세월 대대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그 구르마를 십자가로 부활시켜 편히 쉬게 한 것입니다. 지금 은퇴 후 새로 꾸민 그의 사무실엔 그 나무십자가가 걸려있다고 합니다. 그는 매일 그 십자가를 쳐다보며 그 사무실 한편에 있는 작은 기도실에서 기도를 드리고 못다 한 21세기 기사의 꿈을 꾸고 있을 것입니다.


나무십자가로 다시 태어난 동대문 시장의 낡고 오래된 구르마 (2020. 4. 명동성당 전시)
철십자가로 다시 태어나고 있는 DMZ의 녹슨 철조망 (2021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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