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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하 Jun 22. 2024

상식이 이뤄낸 완전한 독립

토머스 페인의 <상식>과 미국의 독립

상식(常識, common sense)은 무엇입니까? 한자로 보면 시간성과 지식이라는 측면이 보이고 영어로 보면 보편성과 감각이라는 측면이 보입니다. 즉, 상식이란 언제나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세상의 이치와 원리로 공통적으로 그렇게 느끼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 난센스성 퀴즈로 "아침에 일어나 이빨 닦고 세수하는 것을 무엇이라 부르나요?"라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답은 상식이었습니다. 누구든지 매일 해야 하는 일로 그것이 자연스러운 보편룰이라 그런 답이 나왔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 문제로만 보면 양치질과 세수를 안 하는 사람은 상식적이지 않은 사람이거나,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개나 고양이가 그것들을 하지는 않으니까요. 아, 요즘은 반려인이 해주니 스스로 한다라는 전제를 달아야겠네요. 이때 중요한 것은 순서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수부터 하고 양치질을 하는 것은 비상식적이라는 것입니다. 이유는 실제로 순서를 바꿔서 해보면 당장 알 것입니다. 일단 수건을 두 번 써야 하니까요.


상식은 이렇게 실험실의 연구보다는 일상의 경험에서 비롯되어 쌓여진 것들이 많습니다. 거창하게는 석기시대부터 문명화 사회를 거쳐오며 인류가 체득한 양식들입니다. 전문성보다는 범용성이 강해 보이는 영역이지만 변함이 없어야 된다는 측면에선 심오한 학문의 영역인 진리와 크게 다름이 없어 보이기까지 합니다. 물론 시대별로 사회마다 상식의 기준이 달라지기도 하고 변하기도 합니다. 인류의 미래에 칫솔과 치약이 사라지고 업그레이드된 다른 방법으로 양치질을 하는 것이 보편적인 시대가 되면 위에서 나온 퀴즈의 답은 더 이상 상식이 아닐 테니까요.


상식을 학문인 철학의 영역으로까지 끌어올린 일단의 학자들이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상식학파(派)라고 불리는 자들로 18세기 계몽주의가 유럽을 휩쓸 때에 스코틀랜드에서 토머스 리드가 창시하고 그곳에서 유행해 스코틀랜드학파라고도 불리는 자들입니다. 당시 그 상식은 스코틀랜드에 위치한 에든버러 대학과 글래스고우 대학에서 주로 연구되었습니다. 이들은 상식에 기반한 믿음을 중시하며 베이컨 이후 성행했던 경험론이 데이비드 흄에 의해 극단적인 회의주의로 빠지는 것을 보고 그것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났습니다. 회의론이 인류 공통의 보편적인 인식이나 의식에 배척된다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경험적 인식의 기저에 있는 근원적 판단 능력, 직관적인 그것을 건전한 상식이라고 보고 그것을 지향한 것입니다.


상식학파를 살펴보니 아침에 일어나서 양치질하고 세수하는 것의 답을 상식이라고 한 것이 꼭 난센스 문제 같지만은 않습니다. 전문가들조차도 일상에서 빈번하게 보이는 경험의 최선을 상식이라 칭했으니까요. 그러니 상식은 우리 주변의 많은 일, 여러 곳에서 발견되곤 합니다. 최근인 2023년 11월 영국에서 어떤 새로운 부처가 출범했는데 그것이 전 세계의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 부처의 이름이 상식부이기 때문입니다. 정부 내각의 그 상식부엔 영국에서 가장 상식적이라 생각되는 인사가 책임자인 장관으로 임명되었을 것입니다. 상식을 지향하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수낵 총리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너무 쉬어 보이지만 어렵기도 하고, 너무 당연해 보이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 상식이라 그런 조직 개편과 인사가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상식은 제가 위에서 열거한 어린 시절의 기억이나, 과거 스코틀랜드의 철학자들에 의해서, 그리고 현재 영국의 현실 정치에 등장하고 있지만 역사상 상식이 가장 빛을 발한 것은 미국의 독립 시기에 등장한 상식일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미국의 독립을 이루어 낸 것이 상식이라고 할 정도로 상식은 당시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바로 토머스 페인이 쓴 <상식(Common Sense)>이라는 저서입니다. 1776년 출간된 그 책은 3개월 만에 10만 부가 팔렸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읽었는데 당시 글을 아는 독립 이전 미국인들은 거의 다 읽었을 정도로 <상식>은 선풍적인 인기를 끈 베스트셀러였습니다. 책이라 하기엔 50페이지 정도로 얇아서 팸플릿이라 불리는 소책자입니다.


미국 독립의 바이블이라 불리는 <상식>의 저자 토머스 페인 (1737~1809)


토머스 페인은 그 책을 1776년 1월 10일 필라델피아에서 출간했고 미국은 그로부터 6개월 후인 7월 4일 필라델피아의 대륙회의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하며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독립을 선언했다는 것은 그때까지 미국의 지위가 식민지였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1620년 종교의 자유를 찾아 순례의 아버지라 불리는 자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매사추세츠주의 플리머스에 첫 도착 후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자들이 주도하여 1776년 독립을 선언하기까지 미국은 156년간 영국의 식민지였습니다. 이후 독립전쟁을 거쳐 미국은 1783년 영국에 승리해 독립을 인정받고, 1789년 정부수립과 함께 조지 워싱턴이 초대 대통령에 선출되었습니다. 왕이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자연스러웠던 시절에 왕이 없는 나라가 탄생한 것입니다.


토머스 페인의 <상식>이 출간되기 전에 미국은 이미 영국과 전쟁에 돌입한 상태였습니다. 그 1년 전인 1775년 봄 보스턴 근교 렉싱턴에서 최초의 전투가 벌어지며 포연에 휩싸였으니까요. 하지만 이때까지의 전쟁은 독립전쟁이 아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미국사에서 독립전쟁의 시작으로 정리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대륙군 총사령관이었던 조지 워싱턴 장군조차 자국의 독립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독립은 일부 급진파들의 주장이었고 대개는 영국의 부당함에 대한 저항으로 투쟁한 것이었습니다. 그 부당함은 바로 무리한 세금이었습니다. 북아메리카에서 거대한 루이지애나를 두고 프랑스와 벌어진 프렌치-인디언전쟁에서 영국과 힘을 합쳐 프랑스를 몰아냈음에도 그들의 지위가 나아지기는커녕 본국인 영국이 그들이 진 국가 빚을 갚기 위해 지속적으로 설탕세, 인지세 등의 세금을 부과하니 그것에 저항하여 좋은 조건을 얻어내기 위한 전쟁이었던 것입니다. 1773년 보스턴에서 일어난 차 사건도 그런 와중에 터진 것이었습니다.


그때 등장한 그 유명한 슬로건이 "대표 없이 과세 없다(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입니다. 이는 1689년 영국에서 발효된 권리장전에 명시된 것으로 국민이 선출한 국회의원의 승인 없이는 정부가 세금을 부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은 당시 영국 의회에 진출한 의원이 한 명도 없던 상태였습니다. 식민지라 의석을 주지 않은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무력시위를 통해 화해와 타협을 이끌어 내어 그들의 권리를 획득하고자 했던 미국이었는데 거기에서 한 발자국, 아니 열 발자국 더 나아가 독립으로까지 방향을 급선회하게 된 것은 토머스 페인의 <상식>이 강하게 작동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정치인이나 군인뿐만이 아니라 전 미국인들의 의식을 개조시킨 선동적인 책이기에 그렇습니다.


<상식>의 초판. 제목과 함께 목차가 보임 (1776. 1. 10)


토머스 페인의 <상식>은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주장했던 천부인권설에 기초합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평등하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지는데 이것은 하늘이 준 자연스러운 권리라는 것입니다. 특히 그는 평등권을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상식>은 왕정의 부당함과 모순을 지적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최초의 왕들은 모두 누군가를 침략한 악당이었으며 당연스럽게 세습으로 이어져 지도자 자격 없는 못난 왕들까지 섬겨야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라고 하였습니다. 영국 왕조의 시작으로 보는 정복왕 윌리암도 프랑스에서 온 침략자로 못박았습니다.


영국에 왕을 견제하는 상원과 하원이 있지만 왕은 그들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기에 왕이 있는 한 그것은 있으나마나라고 했습니다. 과거 유대교도가 이방인의 제도인 왕정을 따른 것은 성서에 반하는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그전엔 여러 지파로 나뉜 부족장들이 연합으로 다스린 공화제였는데 사울을 왕으로 뽑으면서 그때부터 우상과도 같은 왕을 섬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왕정을 비판하면서 책의 부록 부분에선 벌거벗은 아메리카의 인디언도 영국의 왕보다는 덜 야만적이다라는 표현까지 서슴없이 쓴 토머스 페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독교도 국가인 미국은 왕이 없는 공화제로 가야 한다라고 주장합니다.


이어서 그는 미국의 독립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왕이 있는 영국을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영국이 미국을 보호하는 동기는 애정이 아니라 오로지 영국의 이익 때문이라며 영국을 적으로 규정합니다. 식민지로 있으면서 영국과 공존을 주장하는 온건파들을 향해선 "극단의 증오로 생긴 깊은 상처는 진정으로 화해가 될 수 없다"는 밀턴의 말을 인용하며 그것을 경계했습니다. 거대한 아메리카 대륙이 조그만 영국이라는 섬의 지배를 받을 수는 없는 일이라며 미국인의 자존심을 자극하는 말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영국과 싸우는 목표가 그들을 괴롭히는 법안의 철회에 불과하다면 얻는 것에 비해 너무나 값비싼 비용이 드는 일이라며 그럴 바엔 독립을 해야 한다라고 종용합니다. 강경한 발언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그의 <상식>입니다.   


1776년 7월 4일 미국의 <독립 선언>, 존 트럼블 (1819)


토머스 페인은 독립만을 부르짖은 것이 아니라 이후 미국이 실행해야 할 정책적인 대안도 제시했습니다. 공화제 형태의 정부와 상하원의 구조와 의원 수 등 오늘날 미국이 채택하고 있는 것들을 구체적으로 기술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13개에 불과했던 그 시절 주마다 주를 대표하는 상원의원 2명씩을 대륙회의에 진출시키자고 했는데 지금까지도 미국은 주의 크기나 주민의 수에 상관없이 상원의원은 하원의원과는 달리 50개 주 공히 2명씩 선출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민주주의 정부의 지향점은 개인의 행복을 최대화하면서 국가적 비용을 최소화하는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미래를 위해서는 조선업과 해군 양성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그것들에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당시 세계 최강이었던 영국의 해군력을 보여주는 데이터까지 제시하며 자원이 풍부한 미국은 영국을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다는 희망적인 견해를 표명했습니다. 식민지인 미국민에게 영국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세상의 군주제는 인정한다, 하지만 미국에서의 왕은 법이다라는 견해를 표명합니다. 법치국가로서의 미국으로 독립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토머스 페인의 <상식>은 미국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입법, 행정, 사법을 모두 망라하고 있습니다.


토머스 페인은 그가 <상식>을 출간한 1776년 1월 그 시점이 독립을 위한 적기라며 책에서 채근합니다. 그의 눈엔 이미 루비콘 강을 건넌 것으로 본 것입니다. 실제 책에서 그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이 말을 인용했습니다. 1775년 벌어진 렉싱턴 전투의 첫 총성이 울린 순간부터 독립을 고려했어야 했다라며 시간이 지날수록 독립은 요원하니 독립이라는 쇠뿔을 단김에 빼라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의 뜻은 관철되어 미국은 6개월 후에 영국은 물론 세계만방에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상식이 이뤄낸 완전한 독립이었습니다.


독립의 첫 총성, 1775년 미국과 영국의 <렉싱턴 전투>, 존 베이커 (1832)


미국 독립의 1등 공신인 토머스 페인은 미국인이 아니었습니다. 1737년 영국 본토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미국 식민지민의 조상 중 영국인이 아닌 자는 거의 없었겠지만 그는 영국에서 태어나 당대에 미국으로 건너가 큰일을 벌인 것입니다. 그의 조국인 영국이 아니라 식민지를 위해 일을 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그를 도미하게 한 인사는 훗날 미국 건국의 아버지 그룹에 속하게 되는 벤자민 프랭클린이었습니다. 그는 인지세 협상을 위해 영국에 와있다가 토머스 페인의 인물됨을 보고 미국 출판사에 취업을 알선해 주었습니다. 미국을 위해 다방면에 많은 일을 벌인 그의 일들 중에 상위권으로 올려야 될 치적이라 하겠습니다.


벤자민 프랭클린의 추천서를 손에 쥔 토머스 페인은 주저 없이 미국행 배를 탔을 것입니다. 코르셋 제조업자의 아들로 빈곤하게 태어나 13세까지밖에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하고 빈곤한 형편에 처해있던 그였으니까요. 그가 아무리 뛰어났어도 귀족 사회인 영국에서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미국에서 <상식>을 통해 대박을 터트린 그였지만 그곳에서도 생각보다 출세는 하지 못했습니다. 외무부의 서기로 활동했다는 것이 전부였으니까요. 퀘이커교도인 그가 <상식> 책에 쓴 기독교의 비유나 표현 등이 문제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보다는 그가 아메리카 식민지 출신이 아니라는 점이 불이익으로 작용했을 것입니다. 미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그는 외지인이니까요. 아, 아마도 그가 영국 본토 출신이라도 귀족이었다면 온당한 대우를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상식>을 읽으면서 떠올린 인물이 있었는데 그는 일본 메이지유신의 주역인 사카모토 료마였습니다. 그는 일본의 근대화를 이룬 메이지유신의 주체인 조슈번(야마구치현)이나 사쓰마번(가고시마현) 출신이 아닌 변방의 도사번(고치현) 출신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강대 강으로 앙숙 관계였던 위의 두 번을 연합시킨 삿초동맹을 이끌어내 메이지유신을 가능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는 일본 근대화의 관문인 나가사키에 해원대(海援隊)라는 조직을 결성해 근대화된 일본 해군과 민간 기업의 초석을 쌓았습니다. 도쿄로 가는 배 위에서 그가 구상한 선중팔책(船中八策)이라 불리는 8가지 정책은 그의 사후 유신 정부의 주요 정책으로 채택되었습니다.


사카모토 료마가 토머스 페인의 <상식>을 읽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의회 구성이나 해군 양성 등 어딘가 유사성이 보이는 그의 인생과 플랜입니다. 그 책이 나온지 60년 후에 그가 태어났으니 미국에서 들어온 그 책을 읽었을지도 모를 것입니다. 하지만 사카모토 료마는 메이지유신 1년 전인 1867년 암살되었고 토머스 페인은 정부수립 2년 전인 1787년 미국을 떠났습니다. 공통점은 둘 다 모두 그들이 심고 재배한 독립과 유신이라는 혁명의 열매를 따먹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1787년 토머스 페인은 혁명의 불길이 움트는 프랑스로 건너갔습니다. 미국으로 치면 독립 시기와도 같이 급변하는 프랑스로 간 것입니다. 프랑스에서 1789년 대혁명을 목도한 그는 1791년 <인권(Right of Men)> 1부를 출간했습니다. 그리고 그 책의 2부는 1792년 모국인 영국의 런던으로 건너가 출간했는데 반란을 선동한다는 내용으로 인해 추방당해 다시 프랑스로 건너가 국회의원으로 활동했습니다. 그리고 <이성의 시대(The Age of Reason)>를 출간했고, 1797년엔 마지막 저서가 된 <토지 분배의 정의(Agrarian Justice)>를 출간하고, 1802년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토머스 페인입니다. 그 시대에 이렇게 여러 나라를 전전하며 혁명적인 활동을 했던 것을 보면 말입니다. 그런 그의 인생을 보며 사카모토 료마 이외에 또 한 명의 역사적 인물이 떠올랐는데 그는 바로 아르헨티나 출신임에도 혁명을 위해 쿠바, 콩고, 볼리비아 등 대륙을 전전하며 혁명을 주도했던 체 게바라였습니다. 토머스 페인도 그에 못지않은 혁명 유랑자의 삶을 산 것이었으니까요.


번역판 <상식>, 토머스 페인 지음, 남경태 옮김, 효형출판 (2012)


상식, 인권, 이성, 정의.. 토머스 페인이 남긴 저서들의 제목에 올라와 있는 키워드들입니다. 그는 이렇듯 민주주주의 큰 담론을 가진 책들을 썼습니다. 하지만 그는 말년에 미국에서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상식> 책에서부터 그를 괴롭혀 온 무신론자 문제가 발목을 잡은 것입니다. 특히 프랑스에서 쓴 <이성의 시대>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인간의 이성을 강조하다 보면 기독교 신의 신성은 약해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미국은 지금도 대통령 취임 시 성서에 손을 얹고 선서를 할 정도로 엄격한 기독교 국가이므로 당시 그런 그의 글은 그의 몰락을 가속화시켰습니다.


토머스 페인은 1809년 72세의 나이로 빈한하고도 고독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빈곤하게 태어나 유랑자의 삶을 살다가 빈곤하게 죽은 불행한 토머스 페인이었습니다. 아마도 그 이전 독립된 미국에서 제대로 된 대우를 해주었다면 그는 그렇게 떠돌이의 삶을 살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페인의 펜이 없었다면 조지 워싱턴의 칼은 없었을 것이다"라고까지 미국의 칭송을 받았던 그였는데 말입니다. 2대 대통령인 존 아담스가 한 말입니다.


그런데 미국 독립 후 그의 모국인 영국에서 그를 입국하게 해준 것은 조금 의아스럽습니다. 영국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영국의 역대 왕들과 왕정, 식민지 정책을 비난하고, 결국 그 거대 이권이 걸린 식민지 대륙인 미국을 비싼 전쟁까지 치르면서 빼앗기게 만든 매국노인데 그를 받아들인 것이니까요. 그의 생에서 제 상식으론 이해가 안 되는 부분입니다.


보듯이 토머스 페인의 <상식>은 "상식은 이것이다"라는 정의나 담론이 나오는 철학 서적, 또는 인문학 서적이 아닙니다.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인간답게 살아야 하며, 그러려면 인간 위에 군림해 있는 왕이 다스리는 영국의 식민 지배 하에서 미국이 독립해야 한다라는 것을 강력하게 주장한 책입니다. 당시 미국의 상황에서는 그것이 상식이라고 정의하고 강변을 토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상식이 독립이라는 이슈를 가졌던 당시의 미국 사회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세기를 훌쩍 뛰어넘은 오늘날도 비인간적인 처우는 횡행하고 왕은 사라졌어도 제왕적인 권력을 휘두르는 자들과 사회의 계급은 여전히 알게 모르게 존재하니까요. 그리고 이해불가인 비상식적인 뉴스는 연일 계속 쏟아지고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면 굳이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라고 불리는 법이 나서지 않아도 해결될 일들인데 말입니다. 때론 법정에 가서조차도 그런 비상식적인 일들이 일어나곤 합니다. 토머스 페인의 상식이 오늘날에도 필요한 이유입니다. 아마도 그가 살아있다면 영국의 수낵 총리는 그를 상식부 장관으로 임명했을 것입니다. 그는 역사상 상식을 성문화시키고, 그 상식의 힘으로 위대한 승리를 거둔 최고의 상식맨이었으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는 잉글리시맨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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