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회라 하더라도 음향 시설이 잘 갖춰져 있는 콘서트홀에서 격식을 갖춘 옷을 입고 감상하는 것만이 감흥을 최대한 이끌어 내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물론 오롯이 음악이라는 측면만을 보면 내외적으로 음악만을 집중하게 하는 그렇게 갖춰진 음악회가 최선이겠으나 인간의 감흥은 다른 것에서 오기도 하니까요. 음악적인 요소가 덜해도 거기에 매우 인상적인 비음악적인 요소가 채워진다면 그 감흥의 합은 비슷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음악적인 요소가 100에서 70으로 30이 비어도 비음악적인 요소로 30을 채우면 합은 똑같이 100이 되니까요. 이때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음악적으로 비는 것이 연주자의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연주 외적인 무대와 시설, 관람자의 태도 등을 가리킵니다.
지난 주말 저는 아주 독특한 음악회를 다녀왔습니다. 일단 초행인 가는 길부터가 그랬습니다. 서울에서 음악회를 간다면 통상적으로 강남과 강북의 중앙인 예술의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 방향으로 향하는데 반대로 중앙에서 벗어나 외곽 쪽인 북서울 방향으로 내비게이션이 안내를 해서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음악회가 열린 장소는 강북구에 위치한 북서울 꿈의숲아트센터였습니다. 과거 그곳엔 드림랜드라는 놀이공원이 있었는데 그것이 폐장되면서 그 넓은 자리엔 서울시가 조성한 문화 공간인 아트센터와 휴식 공간인 공원이 들어섰습니다. 그곳 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음악회였습니다.
가서 보니 그곳의 이름을 왜 꿈의숲으로 정했는지 바로 파악될 정도로 푸르른 넓은 공간에 쾌적한 여러 복합 시설들이 들어서 있었습니다. 드림랜드에 숲을 입혀 드림우드가 된 것입니다. 다운타운이 아니더라도 복잡다단한 서울에 이런 힐링의 장소가 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그런데 제가 가야 할 음악회는 아트센터 내의 훌륭한 시설을 갖춘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은 텅 비어 있었고 그곳에 부착된 안내에 따라 비탈을 따라 더 올라가야 했습니다. 꿈의숲아트센터에서 가장 높은 고지대, 그곳엔 타워 형태로 만들어진 아찔한 전망대가 있는데 그곳이 음악회의 연주장이었습니다. "오호라, 이런 음악회가?" 저는 등산하듯 계단을 따라 그곳으로 향했습니다.
북서울 꿈의숲아트센터의 가파른 전망대
그런데 그 전망대를 올라가는 방법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오후 3시에 시작하는 음악회에 맞춰왔지만 전망대 이동 시간은 계산에 넣지 않아 서둘러 전망대 입구까지 도착했는데 그곳에 독특한 형태의 엘리베이터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수직형이 아닌 사선형으로 산악 열차인 푸니쿨라와도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거 재미있습니다. 그 엘리베이터는 마치 투명 박스가 에스컬레이터에 얹혀져 부드럽게 올라가듯이 사선으로 위로 향했는데 도착해 내려서도 그곳에서 정상 전망대까지는 또 수직형 좁은 엘리베이터를 타야 했습니다. 그리고 더 좁은 계단을 걸어서 한 번 더 올라가야 했습니다. 이렇게 마치 유럽 고도 대성당의 종탑을 오르는 것과도 같은 이동을 거치니 비로소 4면이 탁 트인 정상의 전망대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 전망대 앞쪽에 그렇게 올라온 열정적인 관객을 기다리는 네 대의 첼로와 그것들을 품고 있는 연주자가 보였습니다. 지각입니다.
첼로 콰르텟, 저는 처음이었습니다. 여성과 남성 각각 두 명씩 구성된 연주자들이었습니다. 한 대도 그럴진대 네 대가 모여서 더 그렇게 느껴졌을까요? 연주자들이 움직이는 활은 마치 목선 함대의 노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고, 그 악기들이 내는 소리는 그 배들이 바다 물살을 헤치고 가르며 나가는 소리처럼 들렸습니다. 그들은 때론 네 대가 아닌 두 대의 듀엣 연주로 헤치고 모이고를 반복하며 육중하지만 부드럽고 유려하게 미끄러지듯 관객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렇게 바다 위에 떠있는 목선 함대로 보여서인가 4첼로 중에선 우드의 재질이 유독 오래되어 보이는 첼로가 제 눈엔 더 들어왔습니다. 물론 바이올린이 내야 하는 고음 멜로디 역할을 맡은 첼로도 있어서 잔망스러움도 있었지만 유려한 중저음을 가진 첼로의 매력을 겹겹이 느낀 연주회가 되었습니다. 오케스트라에서는 느끼지 못한, 그리고 독주나 협연에서도 못 느낀, 남성 아카펠라 4중창과도 같은 첼로만의 매력을 흠뻑 느낀 4첼로의 연주가 그 높은 전망대에 울려 퍼졌습니다.
저는 한때 4명의 기타리스트가 4대의 기타를 가지고 연주하는 '40 Fingers'란 그룹의 연주를 유튜브에서 찾아 듣곤 했었는데 그 전망대에서 4대의 첼로를 보니 그 그룹이 떠올랐습니다. 첼로 콰르텟은 처음이라 유명 첼로 콰르텟 그룹을 모르는 제가 대타로 그들을 떠올렸나 봅니다. 첼로 그룹 중에선 '2Cellos'의 연주도 아울러 즐겨 찾아 듣곤 했었는데 이번 연주회를 보고 첼로 콰르텟 그룹을 찾아보니 '프라하 첼로 콰르텟'이란 그룹이 가장 눈에 띄게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꿈의숲아트센터 전망대에서 본 4첼로는 이번 연주회를 위해 국내의 역량 있는 첼리스트로 구성된 이벤트성 그룹이었습니다.
늦게 도착한지라 연주회가 끝나고 나서야 주변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었습니다. 장관이었습니다. 서울의 4대 명산이 모두 보이는 높은 전망대에서 진행된 연주회였으니까요. 연주회 정식 타이틀은 '숲속의 4첼로'라지만 그 숲 위에 떠있는 '구름 위의 4첼로'라 해도 될 정도로 구름 위에서 신선놀음하듯이 즐긴 연주회였습니다. 도심 쪽으로 눈을 돌리니 북서울에서 바라본 거대 서울의 모습이 저 멀리까지 보였습니다. 고개를 빼고 우리집 위치도 한번 가늠해 보았습니다.
이 글 서두에서 언급한 비음악적인 요소 30은 바로 이런 요소들을 이야기합니다. 전망대의 음악회는 그 자체로도 색다르지만 그곳에 도달하는 방법까지도 색다른 재미를 주었습니다. 직접 오지 않고는 모르는 즐거움을 준 것입니다. 연주회장도 따로 무대가 만들어진 것도 아니었고 관객석이 제대로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4첼로가 있는 그 1시간을 제외하곤 연주회장이 아닌 사시사철 전망대로 사용되는 공간이니까요.
연주자들은 아무 음향 시설이 없는 그곳에서 허공에 뜬 하늘을 배경으로 관객과 같은 눈높이의 플로어 위에서 연주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관객들은 그 플로어 위에 의자 대신 방석을 깔고 앉아 자세를 바꿔가며 릴랙스 하게 연주를 감상했습니다. 하지만 저를 비롯한 관객들은 모두 행복해했습니다. 관객의 반응이 대단했으니까요. 음악적으로 청각의 집중력은 좀 떨어졌을지 모르나 그 빈 것을 채워준 비음악적인 시각의 기쁨이 컸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음악 감상에 더해 그곳 아니고선 할 수 없는 체험을 한 것입니다.
무대와 객석이 따로 없었던 전망대의 4첼로 공연 모습
최근 전통적인 음악당을 벗어난 이러한 아웃도어 음악회가 많은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연주자가 도심 내에 사람이 많이 모인 곳으로 찾아가는 음악회나 깜짝 버스킹도 늘어나지만 오히려 사람이 없는 곳에서 음악회를 개최하여 그곳으로 사람들이 찾아가게 만드는 음악회도 많아지는 것입니다. 민간인 출입이 금지된 비무장지대 음악회나 사람이 살지 않는 고택 음악회 등이 그것입니다. 피아니스트 백건우 씨는 최근 바다 건너 음악의 볼모지대인 섬마을에서 콘서트를 개최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세계로 가도 그런 음악회는 즐비합니다. 아름다운 보덴 호수와 알프스산맥을 배경으로 열리는 오스트리아의 브레겐츠 오페라 축제는 그 배경과 톡톡한 무대 세트로 유명세를 치르고 있습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도시인 이탈리아 북부 베로나에서 열리는 오페라 축제는 과거 로마시대 검투사들이 생사를 걸고 경기를 펼쳤던 콜로세움과도 같이 생긴 아레나에서 매년 여름 열리고 있습니다. 또한 명문 베를린 필하모닉은 매년 6월 베를린의 원형극장인 발트뷔네에서 정기 야외 공연을 치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티켓 값보다 훨씬 비싼 항공료와 숙박비를 지불하며 이런 음악회를 보러 멀리 그곳까지 일부러 시간을 내어 가는 것입니다. 비음악적인 요소가 주는 보너스 기쁨까지 있어서 그렇게 움직일 것입니다.
브레겐츠 오페라 축제의 무대와 공연 모습. 2022-23 풋치니의 <나비부인> (출처, 홈페이지)
그날 전망대의 4첼로는 전통적인 클래식만을 연주하지 않았습니다. 하이든이나 다비드 포퍼의 첼로곡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우리 귀에 익숙한 영화 음악을 메인으로 연주를 했습니다. 연주 환경과 분위기를 고려한 레퍼토리로 애당초 구성했을 것입니다. 프렌드리한 음악으로 말입니다.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오드리 헵번이 부른 <문 리버>가 노래하듯이 흘러나왔고, <쉰들러 리스트>의 무거운 OST도 첼로의 음색에 맞게 비장하게 연주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디즈니 영화 OST 메들리가 경쾌하게 연주될 때 그곳 전망대는 엄마빠의 손을 잡고 온 아이들을 위한 디즈니랜드가 되었고, <라라랜드>가 연주될 때 그곳은 연인들을 위한 꿈의 도시 라라랜드로 바뀌었습니다. 전망대에 뜬 4첼로가 만든 음악의 힘입니다. 저처럼 좀 떨어진 곳에서 간 관객들도 있지만 그곳 지역 주민을 위한 축제와도 같은 음악회가 된 것입니다. 그 음악회를 주관한 프렌즈오브뮤직(FoM)의 이름에 걸맞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