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하 Jul 20. 2024

화장실에서 찾은 '퍼펙트 데이즈'

화장실은 문화와 문명의 척도가 됩니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3요소를 뽑으라면 그것은 의식주()인데 그 의식주 중 주에서 인류가 가장 마지막에 완성한 것이 화장실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과거 그 화려하고 웅장한 베르사유 궁전에조차 화장실이 없었다고 하니 당시 일반인이 사는 집은 말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본래 왕실의 사냥용 별장이었던 그곳은 1677년 본인이 곧 국가라고 선언한 루이 14세가 왕궁으로 삼겠다고 공표한 후 전면 확장 공사를 통해 완성된 것입니다. 절대 왕정의 정점을 보여준 그 궁전에 화장실이 없던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증손자인 후임 루이 15세는 그것을 참을 수 없었는지 1738년 영국에서 수세식 화장실을 수입해 궁전 안에 정식으로 화장실을 설치했습니다. 결국 화장실이 베르사유 궁전 건축의 화룡점정이 된 것입니다. 그전까진 방 안에서 요강과 같은 일회용 변기로 해결을 했고 배설물은 창밖 정원으로 투척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정원을 넓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화장실로 몸살을 앓는 국가 중 대표적인 인도는 모디 총리가 '클린 인도'를 표방하며 화장실 건설을 5년 역점 사업으로 지정해 2019년 9,160만 개의 화장실을 건설하고 사업을 완료하였습니다. 인도 역사상 대단한 변화를 꾀한 것입니다. 인도는 이 사실을 지금 저도 알고 있듯이 전 세계에 공표를 하였습니다. 국민의 위생 환경 개선은 물론 국제적으로 화장실 없는 나라, 야외 배뇨 국가의 오명에서 벗어나려는 강력한 의지와 실천으로 보입니다. 중국의 경우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베이징 시내 문이 없던 공중 화장실에 문짝을 다는 공사를 대대적으로 시행하였습니다. 중국의 공중 화장실은 그전엔 문이 없는 것으로 유명했었으니까요. 당시 그렇게 문짝을 달아도 떼어가는 사람들이 많아 골치 아프다는 관계자의 인터뷰 보도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그렇게 화장실에 문짝을 달음으로써 중국은 중국 역사의 장기간에 걸친 화장실 공사를 완료하였습니다. 우리가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기점으로 많은 사회적 변화를 꾀했듯이 중국도 그렇게 한 것입니다.


우리의 그 올림픽 전 이야기입니다. 저의 세대 초중고 재학시절엔 방과후 청소를 직접 했고 그 청소엔 등급이 있었습니다. 크게 보면 교실, 복도, 유리창 청소가 있었고, 그리고 화장실 청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들 중 화장실은 정상적인 룰이나 로테이션에 의한 청소가 아니라 체벌의 하나로 그곳을 청소하게 하였습니다. 즉, 무언가 잘못한 급우에게 화장실 청소를 맡긴 것입니다. 급우들과 싸웠거나, 숙제를 안 해왔거나, 수업 태도가 불량한 경우 등입니다. 물론 중고교 시절엔 담배를 소지하거나 흡연을 들킨 친구가 향한 곳도 화장실이었습니다. 군대에선 학교와는 달리 죄(?)의 경중과 상관없이 내무반의 막내인 최저 졸병이 화장실 청소를 담당했습니다. 선생님이나 고참에게 화장실 청소 명령이 떨어지면 그들은 마치 귀양지로 유배를 떠나듯 화장실을 향해 청소 도구를 들고 떠나갔습니다. 그 시절 화장실은 교실이나 내무반과는 떨어져 있었으니까요.


당시는 양변기로 개량화되기 전이라 속칭 푸세식이라 불리는 화장실이 주류를 이룬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더럽고 냄새나는 곳이라 본채와는 따로 떨어져 있었고, 청소 난이도와 상관없이 모두가 화장실 청소를 꺼린 것입니다. 이것은 공동 주택인 아파트가 보편화되기 전이라 일반 가정의 단독 주택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좌식 양변기로 바뀌고 화장실이 실내로 들어온 지금도 그곳 청소를 꺼리기는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화장실의 환경이 나아졌다고는 하나 화장실의 본질이 달라진 것은 아니니까요. 그래서 화장실 청소는 지금도 난제입니다. 그곳에 있는 양변기보다 몸에 달고 사는 핸드폰에 세균이 더 많다고 아무리 고지해도 말입니다. 이렇듯 우리에게 화장실은 그런 곳이고 화장실 청소는 그런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일찍이 화장실에 관한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국가가 있습니다. 물론 위와 같은 시설과 위생을 이야기합니다. 바로 일본입니다. 이것은 일본을 방문해서 화장실을 방문해 본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실내든 실외든 그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우리나라도 지금은 화장실 환경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었지만 일본은 그전부터 그래왔습니다. 제가 일본을 첫 방문한 1992년 그곳 화장실의 청결 상태를 보고 감탄했었으니까요. 1964년 도쿄 올림픽을 치르면서 그들은 그렇게 변한 것일까요? 아니면 그 이전에도 그랬을까요? 물론 꼭 화장실이 아니더라도 일본의 청결에 대해서만큼은 의심을 품는 사람들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일본 전역 어디를 가든 그곳에서 무엇을 먹고, 무엇을 사용해도 적어도 불안해하지는 않으니까요. 이런 안심은 현지인은 물론 외지인에게도 대단한 믿음일 것입니다.


일본의 화장실이 왜 그렇게 깨끗한지를 확실히 알게 해주는 영화가 잔잔하지만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상영 시간인 124분 내내 도쿄 시내 시부야의 다양한 화장실을 보여줍니다. 그 여러 화장실에서 주인공인 화장실 청소부가 청소하는 장면을 세세히 반복해서 보여주기에 일본의 화장실들이 깨끗한 이유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군대에서 조교가 시범을 보여주듯이 영화의 주인공은 화장실 청소의 에프엠(field manual)을 관객들에게 시전합니다. 어느 정도까지 보여주냐 하면 일본은 비데 보급율이 80%가 넘을 정도로 세계 최고의 비데 국가라 공중 화장실도 모두 비데가 설치되어 있는데 그 비데의 물 배출 심지까지 솔로 비누 거품을 내며 세세히 닦아내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반사경을 사용하여 변기 뒷면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세밀하게 살펴보고 그곳까지 걸레질을 합니다. 실제로 영화 촬영 중 화장실 청소를 지도한 진짜 청소부가 그 주인공 배우에게 내일부터 출근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을 정도로 완벽한 청소 장면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무려 1,400만 달러(195억)를 들여 찍은 이 영화의 카메라는 2시간 내내 주인공과 함께 화장실을 순례합니다.


화장실 청소부 직업을 가진 한 남자의 잔잔한 일상을 그린 영화 <퍼펙트 데이즈> 포스터


영화의 제목은 <퍼펙트 데이즈>이고, 영화의 주인공인 남자 배우는 야쿠쇼 코지(68세, 히라야마 역)이며, 영화의 감독은 뜻밖에도 독일의 명감독인 빔 벤더스입니다. 며칠 전 저는 이 영화를 보며 지독할 정도로 열심히 화장실 청소를 하는 야쿠쇼 코지를 보며 그 연기를 지시하는 감독이 그것을 과연 제대로 이해하고 연출을 했을까 하는 의심을 했습니다. 일본과 일본인을 알지 못하면 이해하기 힘든 모습이니까요. 그의 고국 독일의 화장실은 그 정도로 깨끗하지 않으니까요. 영화에서 도쿄 토일렛 서비스(Tokyo Toilet Service) 소속인 주인공은 마치 도공이 도자기를 애지중지하며 다루듯이 변기를 다룹니다. 구도자처럼 정진하는 모습으로 화장실을 청소하는 것입니다. 변기와 도기는 같은 과정을 거치며 가마에서 태어나지만 애프터 밸류는 천양지차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화장실 청소를 한 덕으로 야쿠쇼 코지는 상까지 받았는데 지난 해인 2023년 76회 칸느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화장실 청소부 직업을 가진, 주인공 남자 배우와 진짜 같은 나이대일 것만 같은 60대 중후반 독신 남자의 일상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지극히 평범하고 단조로운 영화입니다. 매일 아침 동네를 쓰는 어느 할머니의 빗자루 소리에 깨어나 화초에 물을 주고, 면도하고, 양치질하고, 집 앞 자판기에서 커피 한 캔을 빼서 작업 차에 올라타 카세트테이프의 올드 팝송을 들으며 출근하고, 첫 번째 일터인 화장실에 도착하면 청소 도구를 차에서 빼내어 청소하고, 끝나면 또 다른 화장실로 이동하고, 점심엔 시내의 신사에 들어가 벤치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으며 휴대한 작은 올림포스 카메라를 꺼내어 나뭇잎이 일렁거리는 하늘을 향해 흑백 사진을 찍고, 다시 오후 화장실을 순회하며 청소를 마친 후 퇴근하면 자전거를 타고 동네 목욕탕에 가서 노동으로 쌓인 하루의 때와 피로를 닦아내고, 동네 허름한 식당으로 가 묽게 탄 소주 한 잔과 저녁밥을 먹고는 집으로 귀가하여 이불을 펴고 책을 읽으며 잠자리에 들고, 그리고 빗자루 소리에 다음날 또 일어나 어제와 똑같은 방법으로 이불을 개며 어제와 똑같은 하루를 시작합니다. 평일마다 반복되는 그의 하루입니다.


쉬는 주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일주일간 쌓인 빨래를 싸들고 동네 빨래방에 들러 세탁을 하고, 사진관에 들러 1주일간 찍은 사진의 필름을 맡기면서 지난 주말에 맡긴 필름의 인화 사진을 찾고, 서점에 들러 그다음 주에 읽을 책을 한 권 사고, 저녁엔 선술집에 가서 마담과 인사를 나누고 제대로 된 안주에 술 한 잔을 마시며 한 주간의 일정을 마감합니다. 주말마다 반복되는 그의 하루입니다.


매일 도쿄 시부야의 공중 화장실을 순회하며 청소하는 히라야마(야쿠쇼 코지 분)


평일은 평일대로, 주말은 주말대로 지독한 루틴의 반복입니다. 다른 것이라곤 출근 시 야쿠쇼 코지(히라야마 역)가 차에서 카세트테이프로 듣는 아날로그한 올드 팝송뿐입니다. 그로 인해 영화관의 관객은 매일 아침 그가 선곡한 다양한 팝송을 듣게 됩니다. 9개의 팝송과 1개의 일본 포크송 여가수가 부르는 노래를 듣게 됩니다. 실제로는 빔 벤더스 감독이 직접 선곡한 곡이라고 합니다. 그 곡들 중엔 영화 제목과 동명인 1972년 발표된 루 리드의 <Perfect day>도 있습니다. 과연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을 연출한 감독답게 빼어난 선곡 솜씨를 보여주어 관객에게 보너스 즐거움까지 주는 영화 <퍼펙트 데이즈>입니다. 특히 그 시대에 그 팝송들을 애청했던 노년의 남자들에겐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제가 영화 속 야쿠쇼 코지의 하루 일과를 영화를 본 지 4일이 지난 이 시점에도 위와 같이 줄줄이 열거할 수 있는 것은 위의 일상을 반복해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겐 한없이 지루해 보일 수도 있는 그의 루틴이고, 화장실 청소라는 험블한 그의 일이지만 영화 속 남자인 야쿠쇼 코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합니다. 그러한 그의 일상이, 매일 화장실을 열심히 청소하는 그의 날들이 그에겐 퍼펙트 데이즈로 여겨지는 듯해서입니다. 완벽한 그의 날들이 반복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퍼펙트를 행복이라 칭한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 맞습니다. 사람마다 행복의 정의가 다를 수밖에 없는데 그의 행복은 그런 그의 평범한 일상에서 오는 것처럼 보이기에 그렇습니다.


니체는 그의 명저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남자의 행복을 가리켜 "Ich will"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영어로는 "I will"이겠지요. 내 의지대로, 누가 뭐라 해도, 내가 하고픈대로 하는 것이 남자의 행복이라고 한 것입니다. 영화 속 야쿠쇼 코지는 화장실 청소를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마지못해 하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그냥 그가 선택한 일이기에, 그리고 그가 선택한 인생이기에 그렇게 일하며 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가 행복해 보이고 행복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가 매일 아침 선곡하여 듣는 팝송은 대체로 밝게 들립니다. 실제 가사들은 모두 어떤지 모르겠지만 10개의 ost가 전반적으로 그렇게 들린다는 것입니다. 야쿠쇼 코지는 그 노래들을 들으며 출근합니다. 그의 손을 기다리는 화장실을 향해 가는 것입니다.


삼촌 따라쟁이인 조카의 방문으로 루틴이 깨진 히라야마(야쿠쇼 코지 분)


화장실에서 시작해 대성공을 거둔 일본의 영웅이 있습니다. 바로 전국시대인 1590년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입니다. 그는 사무라이 계급 사회인 당시 완전 흙수저로 태어나 대업을 이룬 입지전적인 인물입니다. 그의 첫 직업이 화장실에서 변을 푸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일을 누구보다도 잘했을 것입니다. 출세라는 목적성이 있었기에 그날을 꿈꾸며 그 거친 일을 묵묵히 수행했을 것입니다. 이후 그는 당시 실력자인 오다 노부나가의 성 주방으로 스카우트되어 그곳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발휘합니다. 별것 없어 보이는 주방이지만 주방에 창을 내어 밝게 만드는 등 당시로는 획기적으로 주방 환경을 개선한 것입니다. 그래서 진급을 해 다음으로는 오다 노부나가의 말을 담당하는 책임자가 되며 그에게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갑니다. 마구간에서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또 달랐습니다. 오다 노부나가의 4마리 말을 담당하며 그 말들의 특성과 컨디션을 정확히 파악하여 주군의 그날 목적지에 맞춰 말을 대령한 것입니다. 그렇게 일을 함으로써 주군의 전적인 신임을 얻게 되어 그의 가장 가까운 자리인 2인자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오다 노부나가 이어 1인자에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화장실에서 시작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퍼펙트 데이즈가 완성이 된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야쿠쇼 코지(히라야마 역)에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화장실과 같은 그런 목적성이 보이지 않습니다. 입신양명을 위한 와신상담의 공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의 화장실은 그 자체로 퍼펙트 데이즈를 만들어주는 공간으로 보입니다. 내일이 온다고 해서 그가 주방으로, 마구간으로 옮겨갈 것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그가 초지일관 말수도 워낙 없고, 무념무상한 상태로 일을 하는 모습으로 나와 도무지 그의 목적성을 찾기 힘들어서도 그렇게 느껴집니다.


이 시점 그에 대해 궁금해집니다. 그는 하필 왜 수많은 직업 중에서 화장실 청소부가 되었을까요? 영화에선 그것에 대한 답을 어렴풋이나마 알려줍니다. 일단 그가 매일 밤 잠들기 전에 읽는 책들이 범상치가 않습니다. 그가 서점에서 주말마다 사들이는 일본 작가의 책들은 모르겠으나 윌리암 포크너의 <야생 종려나무>는 유일하게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책이기에 그렇습니다. 화장실 청소부라고 해서 그런 소설을 읽지 말란 법은 없지만 그가 지식인임을 보여주는 단면입니다. 물론 말수는 없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페이스를 잃지 않는 그의 기품 있는 태도를 통해서도 그가 어떤 인격을 가진 인물임은 영화 초반부터 가늠이 됩니다.


히라야마(야쿠쇼 코지 분)의 퍼펙트 데이즈의 마지막 일정인 독서


그런데 끝끝내 그렇지 않을 것 같은 이 영화에 파동이 일어납니다. 그의 여동생의 등장입니다. 저는 그녀의 등장이 바람 한점 없어 잔물결조차도 허용하지 않고 지루하게 같은 모습으로 흘러가는 이 영화의 가장 큰 반전이라고 생각합니다. 귀부인인 그녀는 운전사가 딸린 대형 세단을 타고 나타나 아버지가 아프니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와 화해를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오빠인 그에게 간곡히 권유합니다.


그의 배경과 가족사 등 숨겨진 그의 사연을 여러 방향, 여러 가지로 유추하게 하는 장면입니다. 혹시 마블이나 디씨의 영화 제작자가 이 영화를 봤다면 이 장면에서 <퍼펙트 데이즈>의 프리퀄이나 시퀄을 만들고픈 욕망을 느꼈을지 모릅니다. 프리퀄로 젊은 시절의 야쿠쇼 코지(히라야마 역)가 화장실에 들어와 청소부가 된 배경이나 이유가 스토리인 영화를 만들고, 시퀄로는 그가 이후 화장실에서 하산해 세상에 나가 그와 주변의 숙제를 푸는 스토리의 영화를 그 즉시 구상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만든 빔 벤더스 감독이나 제작에도 참여한 주인공 야쿠쇼 코지가 그럴 일은 전혀 없어 보입니다. 이 영화는 거듭 이야기한 대로 이 자체로, 이 한 편으로 퍼펙트 데이즈가 완성이 된 것으로 보이니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엔딩 장면에선 사뭇 갸우뚱하게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출근 시 운전대를 잡은 그의 얼굴을 가까이 잡아 4분간 롱테이크로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이때 화면 가득한 그의 얼굴에선 복잡 미묘한 그의 감정이 계속해서 나타납니다. 어제까지 매일 출근길 차 안에서 보여준 무표정하지만 평온한 그의 모습과는 다른 얼굴이 보이는 것입니다.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 평온함과 노여움, 눈물과 웃음 등 세상 모든 희로애락의 모습이 그의 표정을 통해서 나옵니다.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인가요? 그 4분은 영화상에선 긴 시간이지만 그것도 짧게 느껴질 정도로 히라야마에게 이입되어 동화된 야쿠쇼 코지의 68년 인생이 주마등과도 같이 빠르게 스쳐가는 장면으로 보입니다. 그가 왜 칸느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명배우인지를 보여주는 명품과도 같은 얼굴 연기 장면입니다.


야쿠쇼 코지(히라야마 역), 그 남자의 지나간 모든 삶을 보여주는 것만 같은 엔딩 4분의 얼굴 장면


철부지 동료의 어린 여자 친구에게 기습 볼 키스를 받고, 삼촌을 좋아하는 똑 부러지는 조카가 찾아와 며칠을 함께 보내고, 그녀를 찾아온 엄마인 여동생이 방문해 아버지 소식을 전하고, 그의 일터인 화장실에서 모르는 누군가와 낙서 게임을 하고, 어느 날부터인가 신사 안 옆 벤치에서 어떤 여자도 매일 와서 점심을 먹기 시작하고, 그가 좋아하는 애니멀즈 밴드의 <The house of the rising sun> 팝송을 일본말로 그윽하게 부르는 5~6년간 출입한 선술집의 마담의 삶에 그가 연루되고, 아니 그녀의 그 노래를 듣고 감동해 그가 그 카세트테이프를 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최근 들어 그의 루틴을 흔든 일련의 사건들이 그를 움찔하게 만든 것일까요?


하지만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지는 않아 보입니다. 그가 반복되어 온 그의 루틴을 깰 것 같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그 사건들은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고 나오는 쿠키 영상의 코모레비(木漏れ日)와 같아 보입니다. 그가 매일 신사의 벤치에 앉아 카메라로 찍곤 하는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잠깐 어른거리다가 사라지는 빛과 그림자가 만든 희미한 일렁거림(코모레비)"과도 같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것들은 밝음이든 어두움이든 코모레비처럼 그렇게 일회성으로 사라질 것입니다. 그 전에 야쿠쇼 코지는 그림자가 겹쳐지면 더 어두울까라는 가벼운 논쟁을 벌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 어둠이 변함이 없는 것처럼 그 그림자를 만든 빛에 다른 빛을 더해도 밝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렇듯 야쿠쇼 코지의 그날도 그렇게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잠깐의 일렁거림일 것입니다. 그 장면에서 그가 선곡한 팝송이 니나 시몬의 <Feeling good>이라는 사실도 그것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도 새로운 날(It's a new day)이고 새로운 인생(It's a new life for me)이라는 가사처럼 그의 퍼펙트 데이즈는 변함없이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다른 길로 가지 않고 어제와 같이 그의 일터인 화장실을 향해 갑니다.


야쿠쇼 코지(히라야마 역)가 촬영한 코모레비에 설명을 붙인 쿠키 영상
그림자가 겹쳐지면 더 어두워지는지를 즉시 확인하는 야쿠쇼 코지(히라야마 역)와 그날 처음 만난 남자


마지막 4분의 얼굴 연기를 묻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2024. 7. 1)에서 야쿠쇼 코지는 “사람은 슬플 때 울기만 하는 게 아니고 기쁠 때 웃기만 하는 게 아니지 않으냐”며 “모든 감정이 스며든 듯 느끼는 대로 표현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왠지 오늘 이 글에선 그가 반대로 우리에게 묻고 바로 이렇게 답해줄 것만 같습니다. "당신의 퍼펙트 데이즈는 언제인가요? 바로 오늘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