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파리 올림픽의 개막식 베일이 벗겨졌습니다. 개막식을 중계한 KBS TV의 진행자가 사전에 받은 정보가 없어서 파리에서 현장 분위기와 올림픽 메인 방송사의 중계를 보며 중계를 한다고 방송 중 고백했을 정도로 그간 파리는 그 큰 도시가 통째로 커다란 베일에 쌓여 있었습니다. 단지 센강에서 개막식을 이채롭게 한다는 것이 우리가 아는 사전 정보의 전부였습니다.
새벽 2시 30분부터 아침 6시 30분까지 꼬박 4시간 동안 진행된 개막식을 보았습니다. 볼 수밖에 없어서 끝까지 본 것입니다. 물론 우리나라 시간입니다. 처음엔 좀 보다가 다시 자려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어서 끝까지 봤고, 보고 나서는 또 바로 잘 수가 없어 이렇게 간략 소감을 남깁니다.
이제 그간 33번 개최된 근대 올림픽의 개막식은 이번 파리와 나머지 32개 도시의 개막식으로 나뉠 것입니다. 그 안엔 1900년과 1924년의 파리도 포함됩니다. 시간적으로 가장 문명화된 올해, 아니 오늘 개최된 개막식이라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간 벌어졌던 스타디엄 내에서의 개막식과 그것을 벗어난 유일한 아웃도어 개막식이라서 하는 말 또한아닙니다. 물론 센강이 주는 이색적인 맛이 있었지만 만약 그 강에서 1차적으로 했던 예상들처럼 순차적으로 참가국들을 보트에 태워 입장시키는 것에서 끝났다면 저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을 것입니다. 하선후 에펠탑 앞 광장에서 벌어질 식후 행사는 그간 보아왔던 스타디엄 내 행사와 별반 차이가 없었을 테니까요.
뚜껑이 열리니 파리 올림픽의 진정한 개막식은 센강 위가 아니가 센강 주변에서 이루어졌습니다.선수단이 탄 보트가 아니라 주변 요소들이 메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곳에 눈이 더 많이 가서 그렇게 느낀 것입니다. 강변 곳곳에서 계속해서 예상치 못한 쇼들이 튀어나왔으니까요. 매우 크리에이티브하고 화려한 쇼였습니다. 과연 패션과 예술의 수도 파리이고 문화강국 프랑스라는 감탄이 절로 드는 쇼들이 입장하는 배들만큼이나 강가의 숨은 장소에서 줄줄이 쏟아졌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 많은 출연진 중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기존 개막식의 단골 메뉴였던 그 흔한 매스게임도 없었습니다. 저는 최근 파리를 배경으로 한 빅토르 위고의<레미제라블>뮤지컬을 제대로 봤는데 그것을 능가하는 고품격 뮤지컬 쇼가 강가가 무대가 되어 펼쳐진 것입니다. 아마도 오늘 파리를 보며 차기 개최지인 2028 로스앤젤레스와 2032 브리즈번 올림픽조직위 담당자들은 심히 걱정이 앞섰을 것입니다.
오늘 개막식엔 팬시한 쇼만 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불행한 약자인 난민 참가자들을 위해서도 별도의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올림픽의 기치가 남녀평등인 만큼 프랑스혁명을 통해 여성 인권의 선구자가 된 올랭프 드 구즈 등 많은 여성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간 봐온 올림픽 개막식에서 볼 수 없었던 쿠베르탱 남작의 늠름한 모습도 크게 볼 수 있었습니다. 그가 프렌치인 만큼 프랑스를 최대한 부각한 것입니다.
사실 오늘 파리의 개막식에서도 보았듯이 올림픽은 이제 더 이상 도시 행사가 아닐 것입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국가 행사로 바뀐 것입니다. 경기장만 보더라도 이번 올림픽의 서핑 경기는 파리에서 15,700km 떨어진 남태평양의 타이티에서 열립니다. 프랑스령으로 우리에겐 고갱으로 인해 잘 알려진 섬입니다. 우리 서울 올림픽의 경우도 요트 경기는 부산에서 열렸습니다. 아마도 전통을 고수하느라 IOC는 계속해서 도시 주최로가는 것 같습니다.
개막식의 모든 쇼가 훌륭했습니다. 대표적인 노래로만 보면 앞부분엔 깃털에 휩싸인 레이디 가가가 핑크 빛의 화려한 가무로 쇼문을 열었고, 중간엔 센강 위에 뜬 불타는 피아노에서 연주된 존 레넌의 <이매진>이 그 강물을 따라 평화롭게 흘러갔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엔 에펠탑의 가설무대에서 부른 <사랑의 찬가>가 전 세계를 향해 울려 퍼졌습니다. 그 노래를 부른 가수는 투병 중인 퀘벡 출신의 셀린 디옹이었습니다. 검은 드레스를 입진 않았지만 그녀가 병약해진 얼굴로 그 노래를 부를 땐 에디트 피아프가 현생한 것만 같았습니다. 이어서 제 눈엔 살짝 이슬이 깃들기도 했습니다. 한마디로 모든 것을 다 보여준 파리 올림픽의 개막식이었습니다.
그런데 개막식 내내 성화를 들고뛴 미스터리한 남자는 누구일까요? 그리고 마지막에 센강을 헤치며 말 타고 달려온 여전사는 또 누구일까요. 저는 루팡과 잔다르크를 떠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