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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하 Aug 17. 2024

유니언 잭에 담긴 영국 통일의 역사 <상>

스코틀랜드/잉글랜드/아일랜드/북아일랜드/웨일스/콘월

영국의 국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숨은 그림 찾기나 매직 아이처럼 많은 것들이 튀어나옵니다. 유나이티드 킹덤(UK)이 되기까지 그들의 지나온 통일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유니언 잭이라 불리는 그 국기는 세계에서 가장 오랜 시간에 걸쳐 결정된 국기입니다. 무려 수백 년이나 걸려서 완성된 디자인이니까요. 그런데 그 안엔 아무리 자세히 봐도 보이지 않는 그들의 역사까지 들어있습니다. 유니언 잭에 들어있는 영국의 보이는 역사, 보이지 않는 역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먼저 보이는 역사입니다.     



켈트족 vs 라틴족


7월 하순,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 누가 스코틀랜드의 날씨를 우울하다 했습니까? 한여름 더없이 청명하고 시원한 날이 이어집니다. 기원전 라틴족은 브리튼섬에 들어와 본래부터 살고 있던 켈트족을 북쪽 하이랜드로 몰아냈습니다. 그리고 그곳 경계지에 우리 휴전선에 철조망을 치듯이 방벽을 굳게 쌓았습니다. 그곳이 경계선이니 켈트족에게 그 밑으로는 내려오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122년에 축조된 그 방벽은 당시 로마 황제의 이름을 딴 하드리아누스의 방벽이라 불립니다. 그 유적지는 로마인이 410년 그 땅에서 모두 철수하고 1600년이 지난 지금도 남아있습니다. 그 방벽을 쌓고 국경을 결정함으로써 로마인은 기원전 55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그 섬을 상륙한 이후 약 200년에 걸친 브리타니아 속주 건설을 완료하였습니다.


당시 로마인이 브리튼섬 북쪽 끝까지 깨끗하게 정복을 하지 않은 것은 그곳이 척박해 탐을 내지 않은 것도 있다고 하지만 켈트족의 저항이 워낙 거세어서도 그랬습니다. 세계 어딜 가서 누굴 만나도 패배를 모르는 로마 제국이었지만 그곳으로 쫓겨 간 켈트족은 달랐습니다. 최북단 차가운 바다까지 밀려갈 수 없다는 위기감이 작동했나 봅니다. 그렇게 아무리 때려도 쓰러지지 않고 계속해서 일어나니 지긋지긋해서 아예 꼴도 보기 싫어 담을 쌓아버린 것입니다. 그러니 그 방벽은 로마도 그 위쪽으로는 넘보지 않겠다는 징표와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로마 제국이 이렇게 이민족과의 국경선에 방벽을 세운 예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들도 그만큼 그곳 켈트족을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그때 로마가 포기했던 방벽 북쪽의 땅은 스코틀랜드가 되었고 라틴족에 저항했던 켈트족은 스코트족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의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은 지금도 변함없이 아름답게 스코틀랜드의 공중을 빛내고 있습니다.


122년 로마인이 설치한 하드리아누스 방벽. 오늘날 스코틀랜드의 국경에 근접한 잉글랜드 북단 브램턴에 위치 (출처, pixabay)



스코틀랜드 vs 잉글랜드


라틴족과 맞서 싸웠던 스코트족은 그들이 물러간 후 중세기 그 땅의 새로운 주인이 된 앵글로색슨족과 맞서 또 싸우게 됩니다.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 때 대륙에서 건너와 남부를 통일한 잉글랜드가 그들의 새로운 적이 된 것입니다. 잉글랜드는 끊임없이 그들을 공격해 브리튼섬의 완전 통일을 원했습니다. 스코틀랜드는 그들과 맞서 자유와 독립을 위해 싸웠습니다. 과거 로마 제국과 싸웠던 켈트족의 후예답게 용감하고 질기게 저항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멜 깁슨 주연의 영화 <브레이브 하트>는 바로 이런 독립전쟁의 실제 역사입니다. 호주 출신의 그 배우는 1300년 전후 스코틀랜드의 독립 영웅인 윌리엄 월레스를 훌륭하게 연기하였습니다.


영화에서 그는 전투 시 얼굴에 문신을 새기고 등장합니다. 파란 바탕에 하얀 선.. 마치 스코틀랜드의 파란 하늘에 떠있는 하얀 구름처럼 보이는 그 문신은 스코틀랜드의 국기를 본뜬 것입니다. 그 국기는 지금도 윌리엄 월레스의 동상이 수문장으로 지키고 있는 에든버러 성을 비롯한 스코틀랜드 곳곳에서 펄럭이고 있습니다. 그의 꿈처럼 그의 조국 스코틀랜드가 완전한 독립을 이루지 못한 채 영국(UK,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을 구성하는 한 나라로 통일되었지만 말입니다.


에든버러 성벽 위로 펄럭이는 스코틀랜드 국기



스코틀랜드의 국기


파란 하늘의 하얀 십자가, 그 문양은 '성 앤드루기'라 불리는 스코틀랜드의 국기입니다. 영어 이름 앤드루는 예수의 12사도 중 한 명으로 수제자인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 또는 안드레아, 안드레아스를 가리킵니다. 예수 죽음과 부활 승천 후 베드로는 그의 복음을 전하다 십자가형으로 처형될 시 스승인 예수와 똑같이 죽을 수 없다며 거꾸로 매달려 순교하였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의 십자가는 정상적인 십자가를 뒤집은 형태입니다. 안드레는 순교 시 그 역시 형처럼 스승인 예수와 똑같이 죽을 수 없다며 X자 형 십자가에 매달려 순교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X자 모양의 십자가를 가리켜 '성 앤드루 십자가(St Andrew's Cross)'라 부릅니다. 스코틀랜드의 이곳저곳에 많이 등장하는 그의 이름입니다.


정말 대단한 형제입니다. 한낱 물고기를 잡던 어부였던 그들이 변하여 사람을 낚는 위대한 사도가 되어 초인적인 순교를 한 것입니다. 그 공으로 새벽닭이 울기 전 예수를 세 번이나 부인했음에도 베드로는 훗날 서방 로마 카톨릭 교회의 초대 교황이 되었고, 안드레는 동방정교회의 본산인 콘스탄티노플 초대 총대주교가 되었습니다. 형제가 모두 유럽의 서방과 동방을 이끈 양대 기독교의 초대 수장으로 추대된 것입니다. 스코틀랜드는 열세로 몰린 어떤 전쟁에서 이 앤드루의 X자 형 십자가가 하늘에 구름 모양으로 나타나 승리한 것을 기념해 그 모양을 국기로 삼았습니다.


성 앤드루 십자가가 들어있는 스코틀랜드의 성 앤드루기



잉글랜드의 국기


잉글랜드 국기에도 역시 십자가 문양이 들어가 있습니다. 우리가 잉글랜드 대표팀의 축구나 골프 경기에서 많이 보아오던 십자가입니다. 가로가 세로보다 긴 붉은 그 십자가는 '성 조지 십자가(St George's Cross)'라 불리고, 그 십자가를 하얀 바탕에 앉힌 잉글랜드의 국기는 '성 조지기'라 불립니다. 성 조지는 흔치 않게 군인 출신으로 성인의 반열에 오른 인물입니다. 로마 시대 때 용과 싸워 이겼다는 전설의 군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십자가는 전쟁이 많았던 중세에 승리와 용맹성을 상징하는 깃발로 잉글랜드를 비롯한 여러 곳에 등장했습니다. 잉글랜드는 1188년 헨리 2세 때 십자군 전쟁에 출정하며 성 조지기를 최초로 사용한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성 조지 십자가는 역시 그 전쟁에 출정해서 맹활약을 펼친 템플 기사단에서도 보입니다. 모양은 조금 다르나 그  붉은 십자가는 템플 기사들의 하얀 망토와 방패에 선명하게 새겨 있었습니다. 템플 기사단은 프랑스인이 주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예 국호도 조지아인 조지아 국기에서도 그 십자가는 보입니다. 그래서 잉글랜드 국기와 유사해 보이는 조지아 국기입니다. 유럽엔 이렇게 우리가 여러 나라의 국기에서 보듯이 다양한 십자가를 국기 문양으로 쓰고 있습니다. 바이킹 국가였던 북유럽의 덴마크를 비롯한 스칸디나비아 3국은 모두 동일한 모양의 십자가를 국기에 넣고 있습니다. 가로 세로가 중앙에 위치한 성 조지 십자가와는 달리 세로가 왼편에 가있는 십자가입니다. 지금은 사라진 템플 기사단과는 달리 오늘날까지 활동 중인 몰타 기사단의 경우는 가로 세로의 길이가 동일한 별 모양의 짧은 십자가를 표식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성 조지 십자가가 들어있는 잉글랜드의 성 조지기



잉글랜드 + 스코틀랜드의 국기


결국 잉글랜드는 스코틀랜드를 완전정복하는 대신에 평화적으로 통일하는데 합의에 이르렀습니다. 이 역시 과거 로마인들처럼 포기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800년 동안 잉글랜드가 지속적으로 전쟁을 비롯한 많은 당근과 채찍을 가했음에도 굴복을 하지 않자 1707년 연합법(Acts of Union)이라는 법령을 통해 통합을 한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스코틀랜드도 동의했기에 이루어진 통일이었습니다. 서로가 그렇게 안 하는 것보다는 하는 것이 이익이 된다고 생각해서 이루어진 통일이었습니다. 이미 100년 전인 1603년 스코틀랜드의 왕이었던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의 왕인 제임스 1세로 등극하여 1왕 2국가 시스템으로 운영해오던 두 나라였습니다. 튜더 왕조의 버진 퀸 엘리자베스가 후사가 없자 손자뻘인 그가 잉글랜드의 왕이 되면서 스튜어트 왕조를 시작한 것입니다. 그때부터 브리튼섬의 왕은 1명이지만 그 왕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두 나라의 의회를 상대해야 했습니다. 그런 모드 속에서 앤 여왕 때 결국 그 두 의회는 통합에 이른 것입니다.


1707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통합은 그레이트 브리튼 왕국(GB, Kingdom of Great Britain)이 탄생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브리튼섬에서 이루어진 대통합인 것입니다. 영국은 올림픽에선 지금도 UK 대신 이때 만들어진 GB라는 국명으로 출전을 하고 있습니다. 일전에 이곳에 쓴 <올림픽 때만 나타나는 나라 GB> 글에서 그 역사와 사연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제 두 나라가 그레이트 브리튼으로 통일이 되었으니 그것을 상징하는 국기도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때 두 나라는 새로운 국기를 디자인하지 않고 각국이 써왔던 잉글랜드의 성 조지기와 스코틀랜드의 성 앤드루기를 1대 1로 그대로 합쳐 한 국기에 담았습니다. 초등학생도 생각할 수 있고 그릴 수 있는 참 쉬운 디자인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렇게 오늘날 영국(UK) 국기인 '유니언 잭'의 기본형이 만들어졌습니다.


1707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통합으로 탄생한 그레이트 브리튼 왕국의 국기



아일랜드 vs 잉글랜드


영국(UK)은 주지하듯이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등 네 나라의 연합 국가입니다. 그러면 위와 같은 원칙으로 유니언 잭엔 이 네 나라의 국기가 다 들어가야 합니다. 1707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합쳐졌고 그다음 순서는 북아일랜드였습니다. 북아일랜드 역시 스코틀랜드와 똑같은 원칙으로 영국(GB)의 국기 안에 표현되었습니다. 그런데 북아일랜드가 아니고 전체 아일랜드가 그 국기 안에 들어왔습니다. 역사상 아일랜드부터 통합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주지하듯이 지금은 독립을 쟁취해 유럽의 중심 국가로 부상한 아일랜드이지만 과거엔 잉글랜드로부터 스코틀랜드 이상 가는 침략과 탄압, 그리고 기아까지 겪은 비극의 역사를 가진 아일랜드였습니다.


로마인에게 아일랜드로 쫓겨가 정착한 켈트족은 이후 게일인이라 불리는 아일랜드 고유의 정체성을 갖춘 토착민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쓰는 언어가 켈트족의 후예들이 사용하는 게일어입니다. 잉글랜드가 아일랜드를 침공했을 때엔 영토 이상으로 종교 문제도 크게 작용을 하였습니다. 1534년 헨리 8세가 발동한 수장령으로 개신교인 성공회 국가가 된 영국이 카톨릭을 믿는 아일랜드인을 개종시키기 위해 압박을 가한 것입니다. 그곳도 자기 땅이라 여겨 만만하게 보고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잉글랜드는 아예 성공회를 믿는 자국민들을 아일랜드로 이주시키기도 했습니다. 당연히 이주민인 소수의 성공회교도가 다수인 본토민인 카톨릭교도를 다스리는 형태의 차별이 행해졌습니다. 일종의 총독 통치를 한 것입니다. 결국 잉글랜드는 1801년 아일랜드를 통합해 버렸습니다. 스코틀랜드와 같이 연합법을 적용한 법적 통일이었지만 분위기는 스코틀랜드 때와는 달랐습니다.   



잉글랜드 + 스코틀랜드 + 아일랜드의 국기


아일랜드는 정통 카톨릭 국가입니다. 5세기 중엽 아일랜드에 카톨릭을 전파한 성 패트릭을 수호성인으로 추앙하여 그가 죽은 3월 17일은 아일랜드 최대의 축일로 지금도 아일랜드는 물론 전 세계에 사는 아이리쉬 타운을 초록 물결로 물들이고 있습니다. 아일랜드의 심벌인 초록 세잎 토끼풀은 성 패트릭이 포교 시 삼위일체를 쉽게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것에서 유래합니다. 이 아일랜드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처럼 그들만의 십자가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수호성인의 이름을 딴 '성 패트릭 십자가(St Patrick's Cross)'입니다. 그 십자가는 스코틀랜드의 성 앤드루 십자가처럼 X자 형 십자가이지만 디자인은 다릅니다. 그 십자가 역시 과거엔 아일랜드의 국기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국기를 '성 패트릭기'라 부릅니다.


성 패트릭 십자가가 들어있는 과거 아일랜드의 성 패트릭기


아일랜드를 통합한 영국은 자국 국기 안에 이 성 패트릭기를 넣었습니다. 방법은 스코틀랜드 통합 때와 같은 디자인 폴리시를 적용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국기가 바로 유니언 잭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영국의 국기입니다. GB였던 통합 국가명도 비로소 오늘날과 같은 UK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UK는 오늘날과는 달리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Ireland였습니다. 당시 국명에 들어간 그 Ireland가 남쪽이 독립하며 북아일랜드만 남아 오늘날과 같은 Northern Ireland로 바뀐 것입니다. 자꾸만 길어지는 영국의 국가명입니다.


1801년 GB와 아일랜드의 통합으로 만들어진 UK의 유니언 잭 국기



* 다음 주말엔 유니언 잭과 일치하지 않는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국기에 대해 쓰겠습니다. 그리고 유니언 잭에는 보이지 않는 UK를 구성하는 다른 나라에 대해서도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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