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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하 Nov 09. 2024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팬텀싱어들

일 몬도와 박회림(림팍)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는 이른 월요일 아침 침대에 몸을 전적으로 의탁한 채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며 유튜브의 어떤 노래를 들었습니다. 지난 주말 토요일 공연에서 들었던 노래가 새벽부터 귀에서 앵앵 거려 결국 기상 음악으로 튼 것입니다. 실제 그 노래는 그렇게 기상나팔 뺨치게 우렁찬 하이라이트가 있는 입니다. 더구나 그 노래를 부른 가수 역시 성량으로 치면 제 귀엔 국내 성악가들 중에선 최고로 치는 테너였기에 기상곡으로 들릴 수밖에 없는 노래였습니다. 그의 노래로 힘차게 이번 주가 시작된 것입니다.


우린 왜 월요일을 한 주의 시작이라고 하면서 정작 우리가 만든 달력엔 일요일을 한 주의 시작으로 표기하고 있을까요? 이상한 일입니다. 그런데 전 세계 모든 국가가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영국, 프랑스, 독일을 비롯한 유럽 대다수 국가들의 달력은 월요일부터 한 주가 시작되는 것으로 나오니까요. 반면에 미국은 우리처럼 일요일부터 시작됩니다. 아니 정확히는 미국이 그렇게 시작했고, 그것을 일본이 따라서 했을 것이고, 우리 역시 그레고리력을 받아들인 갑오경장 때부터 일본의 영향으로 그렇게 해오고 있을 것입니다. 세 국가 모두 한 주의 시작은 월요일이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최초 시점 종교적인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굳었을 것이라 추정되지만 실제와 동떨어진 그것을 지금까지 따를 이유는 없다고 니다. 관습의 무서운 힘입니다. 현재 통용되고 있는 그레고리력의 미완성된 한 가지로 보입니다.


사실 그렇게 따지자면 초까지 정밀하게 쪼개는 현대의 그 그레고리력엔 더 크게 잘못된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유럽과 미국은 물론 전 세계 달력이 공히 그렇습니다. 9월부터 12월의 서양 월명은 아예 말이 안 되니까요. Septem, Octo, Novem, Decem은 라틴어로 9~12가 아니라 7~10이니까요. 7월이라 쓰고 9월이라 말하는 격입니다. 최고의 로마인인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그의 후계자인 존엄한 자라 불리는 아우구스투스가 멀쩡히 제 자리에 있던 7~10월을 그렇게 옮겨놔서 엉망이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곳에 제가 전에 쓴 <율리우스력과 동방정교회>에서도 설명이 됩니다.


두 단락 다른 곳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돌고 돈다는 인생이니 제 글도 그런가 봅니다. 지난 월요일 이른 아침 제가 들었다는 노래도 그런 내용을 담은 노래였습니다. <일 몬도(Il Mondo)>란 곡입니다. 이탈리아어로 <이 세상>이란 뜻입니다. 가사엔 지구가 돌듯이 세상은 언제나 돌아가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들국화 밴드의 싱어 전인권이 부른 <돌고 돌고 돌고>와 같은 의미입니다. 하지만 그런 세상 안에 사랑이 있다는, 결국은 사랑으로 끝나는 노래입니다. 그런 노래답게 <일 몬도>는 사랑스러운 여배우 레이첼 맥아담스가 빨강 웨딩드레스를 입고 주연으로 나온 영화 <어바웃 타임>을 통해 전 세계적인 노래가 되었습니다. 영화에선 영국의 남서쪽 끝 콘월 공국의 아름다운 교회에서 주인공 커플이 결혼식을 올릴 때 이 노래가 잔잔히 시작됩니다. 그러다가 식이 끝나고 피로연장으로 이동 시 세찬 비바람이 몰아치며 노래도 그에 맞춰 격정적인 하이라이트를 향해 달려갑니다.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 '일 몬도' 노래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행해진 빗속의 결혼식 (출처, 네이버영화)


웨딩과 템페스트, 세상은 그렇게 돌아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의도된 연출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삶의 철학까지 닮긴 <일 몬도>는 그래서 세계인의 사랑곡도 되고 인생곡도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선 기아자동차의 K8 승용차의 CF의 배경 음악으로 나와 우리 귀에 자주 들리고 있습니다. 원곡은 1965년 이탈리아의 지미 폰타나에 의해 만들어졌으니 햇수로 치면 환갑이 다 된 노래입니다.


일 디보(Il Divo)란 그룹이 있습니다. 남성 4명으로 이루어진 중창 그룹입니다. 크로스오버란 말이 익숙하지 않은 2003년에 결성된 세계 최초의 크로스오버 그룹입니다. 오디션을 통해 데뷔해 지금은 전 세계적인 그룹이 되었습니다. 영국 그룹이지만 잉글리시맨은 단 한 명도 없는 다국적 그룹입니다. 여기서 크로스오버란 팝송과 오페라가 결합된 팝페라 장르를 가리킵니다. 원년 멤버 중 맏형 격인 카를로스 마틴이 2021년 코로나로 사망해 최근 공연엔 객원 보컬을 참여시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인기가 많아 2007년부터 작년인 2023년까지 5회에 걸쳐 내한공연을 하였습니다. 중후하고 잘생긴 남성적인 외모에 옷도 근사하게 빼입은 그들 젠틀맨 4인이 팀명처럼 천상의 클래식 화음을 제공하기에 전 세계에 중년의 많은 여성팬들을 확보한 일 디보입니다.


일 디보가 클래식에 가까운 크로스오버라면 팝에 가까운 크로스오버 그룹으론 일 볼로(Il Volo)가 있습니다. 일 몬도, 일 디보, 일 볼로.. 혼선을 주는 이탈리아 이름들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일 디보의 디보(divo)는 디바(diva)의 남성형입니다. 그러니 신의 경지에 오를 정도로 노래를 잘하는 남자란 뜻입니다. 볼로(volo)는 날아간다는 비상(flight)이란 뜻입니다. 일 볼로는 4인조가 아닌 3인조로 2010년에 데뷔했고 일 디보 대비 어린 연령으로 거의 아이돌에 가깝게 스스로 포지셔닝을 하는 크로스오버 트리오입니다. 그간 리메이크 된 수많은 <일 몬도> 중에서 이들의 노래가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합니다. 유튜브에서 4천4백만 회에 근접해 <일 몬도> 곡으론 조회수 1위를 기록하고 있으니까요. 같은 이탈리아의 선배 가수인 원곡자 지미 폰타나의 혼이 그들에게 옮겨갔나 봅니다.


영화 '어바웃 타임'에도 나오는 1965년 발매된 지미 폰타나의 '일 몬도' 오리지널 음반


보듯이 <일 몬도>는 그간 많은 가수들이 불렀고 여러 장면과 방면에서도 숱하게 나왔지만 윗 단락에 소개한 크로스오버 그룹 일 디보는 한 번쯤은 불렀을 법한 이 노래를 부르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유튜브에 아무리 조회해도 뜨지 않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대신 일 디보는 <아다지오>, <어메이징 그레이스> 등 우아하고 아름다운 노래들을 위주로 부르고 있습니다. 같은 크로스오버 팝페라 그룹이라 하더라도 클래식과 대중음악 사이에서 영역이 세분화되어 있는 것입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우리나라 성악가들도 <일 몬도>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정통 오페라의 아리아나 국내의 가곡을 부르던 성악가들이 크로스오버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기존엔 없던 새로운 음악 시장이 형성되면서부터입니다. 시초는 8년 전인 2016년 jtbc TV가 기획하고 방송한 <팬텀싱어>였습니다. 제 기억엔 일 디보가 우리나라를 오가며 화제가 되기 시작할 즈음이었습니다. 일 디보가 오디션 프로를 통해 탄생한 것처럼 그것을 벤치마킹한 것으로 보입니다. 흡사 마스크 뒤에 얼굴을 가리고 지하에서 살아온 뮤지컬 <팬텀 오브 오페라>의 팬텀싱어처럼 기량에 비해 평가를 받지 못하거나, 그 기량을 펼칠 무대가 좁아서 그의 모습을 대중들에게 보여주지 못했던 무명의 성악가들에게 공개적으로 열린 큰 무대를 제공한 것입니다. 아, 물론 크로스오버이니 꼭 성악 전공자만 그 무대에 오른 것은 아닙니다. 크로스오버는 말 그대로 영역 초월에 장르 통합이니 대중음악 쪽의 가수들도 참가를 했습니다.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론칭한 <팬텀싱어>는 제작진의 의도대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로부터 작년인 2023년까지 4회에 걸쳐 방송이 되었으니까요. 물론 그간 이 글의 ost(?)인 <일 몬도>도 꽤나 여러 번 팬텀싱어들의 경연곡과 공연곡으로 등장했습니다. 그 결과 그간 우승한 4팀을 비롯해 많은 팬텀싱어들이 탄생했습니다. 마스크를 벗고 세상에 나온 것입니다. 그들 중 최근 들어 가장 많이 보이는 팀이 3회 우승자인 라포엠과 2회 우승자인 포레스텔라입니다. 원년 우승자인 포르테디콰트로가 안 보이는 것은 좀 아습니다. 가장 최근인 2023년 4회 우승자인 리베란테도 종종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젊은 성악가들이기에 이들에겐 군 문제도 활동에 변수가 되고 있습니다.


jtbc의 크로스오버 경연 프로그램인 '팬텀싱어' 시즌 4의 포스터 (2023)


이렇게 <팬텀싱어>는 회를 거듭할수록 인기가 더해져 전 세계 곳곳에서 이미 설 무대가 정해져 있는 알려진 성악가들까지 그 오디션에 참가해오고 있습니다. 매스 미디어인 방송의 힙입니다. 물론 수상자에게 주는 혜택도 그들의 참여와 경쟁 욕구를 자극할 것입니다. 그렇게 매회 최선을 다하는 그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음악을 듣는 팬들은 좋아하는 가수나 팀에게 강한 팬덤을 형성하며 그들이 펼치는 새로운 음악의 세계에 행복해오고 있습니다. 역시나 중년의 여성 팬들이 주축입니다. 아마도 jtbc는 지금 5회 차 <팬텀싱어>를 준비하고 있을 것입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결승전을 앞두고 수도 로마에선 세기의 콘서트가 열렸습니다. 고대 유적지인 카라칼라 욕장에서 세계 3대 테너라고 불리는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의 첫 합동 공연이 열린 것입니다. 이 공연은 클래식 역사상 가장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해 이후 월드컵을 비롯한 올림픽 등 국제적인 이벤트가 열릴 때마다 그들 쓰리 테너의 공연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그 공연은 TV에서 중계를 하고 기록물로도 제작이 되어 공연장 안은 물론 공연장 밖의 수많은 사람들도 보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더 이상 그들의 위대한 공연을 볼 수 없습니다. 파바로티가 2007년 사망했기 때문입니다.


클래식의 저변을 넓혀준 이 쓰리 테너의 공연은 지금 이 글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크로스오버의 시작일 것입니다. 오페라나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등을 통해 정통 클래식 무대에만 섰던 그들이 대중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다양한 레퍼토리로 공연을 펼쳤으니까요.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경건한 성가와 함께 경쾌한 캐럴로도 즐거움을 줬던 그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들 베테랑 트리오의 남성 중창의 매력에 흠뻑 빠졌습니다. 아마도 최초의 크로스오버 그룹인 일 디보를 결성한 프로듀서 사이먼 코웰도 이들에게서 영감을 받고 오디션 프로를 기획했을 것입니다. 그런즉 파바로티, 도밍고, 카레라스 세기의 이 쓰리 테너는 음악의 영토를 넓힌 크로스오버 측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결승전 전야제로 열린 쓰리 테너의 공연 실황 음반. 우측 두 번째는 지휘자인 주빈 메타


이제 또 돌고 돌아 다시 제 이야기로 옵니다. 지난 월요일 이른 아침 저는 <일 몬도>를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때 제가 들은 그 노래를 부른 성악가는 박회림이라는 테너였습니다. 그는 림팍이라는 예명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를 처음 알게 된 jtbc의 <팬텀싱어>에서도 그 이름으로 출전을 했습니다. <팬텀싱어>를 좋아해 거의 전 시리즈를 다 시청한 저로서는 결승전에 진출하지 못한 아까운 가수로 두 명을 꼽는데 그중 한 명이 림팍이었습니다. 그의 시원한 고음과 폭발적인 성량을 따를 자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또 한 명은 조민웅이라는 테너입니다. 그처럼 미성의 테너 보컬을 가진 출연자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둘은 중간에 탈락했습니다. 심사위원들의 귀와 제 귀가 다르니 그랬을 것입니다. 그들은 프로이고 저는 아마추어이니까요. 아니면 제가 모르는 무대 뒤의 어떤 특별한 사정이 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 중 조민웅은 최근 불귀의 객이 되어 안타까움을 더했습니다.


지난주 금요일 그 림팍, 박회림의 공연이 제 눈에 띄었습니다. 포탈 서핑 중에 별생각 없이 그 친구가 활동을 하고 있는지를 보기 위해 무심코 이름을 쳐봤는데 바로 그다음 날인 지난 토요일 공연이 뜬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공연이 좀 의아했습니다. '수도토요음악회'란 타이틀로 음악당이 아닌 강북구 4.19 민주묘지 근처의 교회에서 열리고, 그것을 서울시가 후원하기에 그랬습니다. 게다가 공연료도 무료라 의아함은 더해졌습니다. 그 공연엔 박회림 이외에도 <팬텀싱어 2>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4인조 그룹 미라클래스의 김주택 바리톤도 나온다는말입니다. 또 한 명의 제가 몰랐던 조병익 바리톤도 검색해 보니 유명세가 높은 성악가였습니다.


서울시와 지역 교회가 시민을 위해 열린 수도토요음악회의 포스터


박회림, 김주택, 조병익 이 3인은 모두가 오페라 고향 중의 고향인 밀라노에서 유학한 쟁쟁한 음악 영재들입니다. 그런즉 그들의 자리를 무료로 마련해 준 서울시와 그 교회는 음악 애호가들에게 좋은 일을 한 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전날까지도 빈자리가 남아 있었습니다. 수도 서울 중앙의 음악당이 아닌 외진 강북구의 수도중앙교회에서 펼치는 공연이라 그런가란 생각이 일순 들었습니다. 팬클럽의 팬만으로도 많은 자리를 채울 것이라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토요일에 약속이 없던 저는 집에서 좀 멀긴 하지만 주저 없이 그 공연을 예약했습니다.


이제 저는 <팬텀싱어 4>의 첫 무대에서 남부 이탈리아의 자유로움이 엿보이는 오픈된 깃 넓은 화이트 셔츠에, 나폴리의 소렌토 앞바다를 연상하게 하는 아주로(azzurro) 컬러의 품이 넉넉한 스트라이프 수트를 입고 <돌아오라 소렌토>를 열창해 저를 심쿵하게 만든 림팍(박회림)을 보러 갑니다.


가서 보니 그 공연장은 <일 몬도>가 울려 퍼지며 주인공 커플의 결혼식이 열린 영화 <어바웃 타임>의 교회와도 같은 주택가의 아담한 교회였습니다. 서울시가 후원하고 인기 성악가들이 출연하는 공연이라 대형 교회를 연상했는데 그렇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아, 그래서 저는 좋았습니다. 그래도 파이프 오르간 등을 비롯해 음악적으로 갖출 것은 다 갖춘 품위 있으면서 코지한 교회였습니다.


오후 4시, 드디어 그들 3인이 무대에 섰습니다. 그리고 첫 곡으로 <일 몬도>가 트리오로 그 교회에 울려 퍼졌습니다. 물론 두 명의 바리톤 사이에서 부르는 테너 박회림이기에 그의 몫은 일 몬~도란 가사가 나오는 후렴부의 고음에서 제대로 빛을 발했습니다. 마치 누에에서 명주 실이 미끄러져 나오듯 그의 일 몬~도는 위를 향해 뻗어나갔습니다. 무대 아래에서 출발해 그 성전 위 하늘 위로 올라가는 듯했습니다. 감탄했고 감동했습니다. TV에서 보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팬텀싱어>를 통해 방송에서 검증된, 비로소 마스크를 벗고 세상에 나온 프로 팬텀싱어들의 크로스오버 송을 처음으로 라이브로 들은 것입니다.  


크로스오버 가수들의 열창 모습. 우로부터 박회림(림팍), 조병익, 김주택 (2024. 11. 2. 수도중앙교회)

  

박회림이 솔로로 부른 <네순 도르마>도 제겐 감동이었습니다. 그 이전인 10월 중순 저는 내한 공연한 아레나 디 베로나의 오리지널 <투란도트>를 보고 그 공연 후기를 이곳에 썼는데 딱 20일 만에 그 오페라의 그 아리아를 또 들은 것입니다. 제 평생에 이런 일도 생기는군요. 세상은 이렇게 돌아가니 투란도트 공주가 <투란도트>에서 절대 잠들지 말라고 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전날인 금요일 오후 제가 낮잠이라도 잤다면 이날 공연은 아예 몰랐을 테니까요. 물론 각자의 곡들을 기량껏 소화한 김주택과 조병익 바리톤의 솔로도 대단했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그냥 가기엔 무언가 아쉬워서 무대에서 내려온 박회림을 찾아가 잠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전 그에게 오늘 공연에서 들은 그의 <네순 도르마>가 20일 전 올림픽공원의 대형 공연장에서 펼친 오페라 <투란도트>에서 칼라프 왕자로 분한 테너 마틴 뮐레가 부른 <네순 도르마>보다 더 대단하게 들렸다고 얘기해 주었습니다. 역시 또 전문가의 평가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아마추어인 전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제 귀엔 그렇게 들렸고 음악은 객관식이 아니니까요. 그래도 팬텀싱어의 마스크를 벗은지 얼마 안 된 그가 그런 제 말을 듣고 함빡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저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부디 젊은 그가 크게 성장해 크로스오버 음악계를 빛내는 큰 별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아직도 무대 아래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는 많은 무명의 팬텀싱어들도 밝고 넓은 무대 위로 올라와 마스크를 벗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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