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여, 때가 왔습니다 /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드리우시고 / 들판에 많은 바람을 풀어놓아 주소서 // 마지막 열매를 알차게 익게 하시고 / 이틀만 더 남녘의 햇볕을 주시어 / 그들을 완성시켜 마지막 단맛이 /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소서 //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더는 짓지 않습니다 / 지금 외로운 사람은 이후에도 그렇게 남아 / 밤새워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 그러다 바람에 나뭇잎이 떨어질 때면 / 불안스레 이리저리 가로수 길을 헤맬 것입니다"
가을은 대개 위와 같이 시작했습니다. 이름마저도 가을스러운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올해 우리의 가을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지나치게 여름이 길어 평년보다 훨씬 더 위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고도와도 같이 끝내 안 올 것 같던 가을이 뒤늦게 찾아왔습니다. 그런 가을은 시인으로 하여금 많은 시를 양산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다른 계절에 비해 짧은 기간임에도 계절이 주는 시상이 어느 계절보다도 다양하고 풍부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시인을 위해 가을은 아무리 짧아도 케이크 조각 마냥 또 셋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초추(初秋), 중추(仲秋), 만추(晩秋), 이렇게 말입니다. 봄, 여름, 겨울도 그렇게 부를 수 있고 부르기도 하지만 실생활에선 가을만큼 들리지는 않습니다. 동지섣달 겨울이 아무리 길어도 초동, 중동, 만동이란 말은 왠지 생경스러우니까요.
단풍이 한껏 물든 양재천의 가을
과거 교과서에도 실린 안톤 슈낙의 수필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을 기억해 보면 거기엔 '초추의 양광(陽光)'이란 표현이 나옵니다. "정원 한 모퉁이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추의 양광이 떨어질 때 대체로 우린 슬퍼한다"는 구절입니다. 이렇듯 작가인 안톤 슈낙은 그냥 가을이라고 하지 않고 콕 집어서 초가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아마도 그 새가 이어서 바로 올 중추의 결실을 누리지 못하고 그렇게 작은 모습으로 초추에 죽은 것이 작가 눈엔 더 슬퍼 보였나 봅니다.
"가을 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 /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일세". 우리 <애국가>의 3절에도 이렇게 가을이 등장합니다. <애국가>의 가을은 안톤 슈낙의 그 작은 새가 보지 못한 중추일 것입니다. 중추는 가을의 정점으로 모든 것이 풍요로운 천고마비의 계절입니다. 그 시기엔 추수와 수확이 이루어집니다. 릴케의 마지막 열매가 알차게 익어 짙은 포도주 속에 단맛이 스미는 계절입니다. 그래서 중추엔 중추절이라 불리는 추석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애국가>의 가사도 시(lyric)일진대 현재 그 시를 쓴 작사가는 공식적으로 없습니다. 민족주의자이자 항일운동가인 안창호 선생과 민족주의자이지만 친일파로도 분류되는 윤치호 선생이 썼다는 설이 유력한데 실상이 정확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가 누구이든 정확히 밝혀졌으면 좋겠습니다. <아리랑> 같이 자생적으로 발생한 민요라면 모를까 근대 이후 작사, 작곡을 통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국가의 노래가 작곡가는 있고 작사가는 없다는 것이 정상적이지 않아 보여서입니다. 현재 행안부 홈페이지에 <애국가>는 작곡가는 안익태로 되어있고 작사가는 공란으로 비어있습니다.
가을이 오면 그의 '가을날'을 떠오르게 하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 (1875~1926)
릴케의 위의 시 제목은 <가을날>입니다. 독일어인 원제(Herbsttag)로도 정확히 그렇습니다. 그러나 쓴 시점은 내용으로 보아 가을 초입인 초추가 분명해 보입니다. 방금 마감한 여름을 과거분사형으로 찬미했으니까요. 릴케의 가을은 이제 수확의 계절인 중추를 향해 가고 있어 보입니다. 시의 중간부에서 위에 언급한 다디단 마지막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 이틀만 더 따스한 햇볕을 달라고 주님께 기도까지 하니까요. 맛난 와인도 등장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줄 알았던 그의 가을날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시의 끝부분에 등장한 외로운 사람이 밤새 긴 편지만을 쓰고 읽고 하다가, 바람에 나뭇잎이 떨어질 때 불안스러운 모습으로 이리저리 길가를 헤매니 말입니다. 그것은 만추의 정경일 것입니다.
이렇듯 세 단락으로 나뉜 릴케의 <가을날>은 가을을 시간에 따라 초추, 중추, 만추로 3등분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기별로 다른 그의 서정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저의 해석이 그렇다는 것이지 외국인인 그가 그렇게 생각하고 쓴 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체코, 독일, 프랑스, 스위스 등을 전전하며 살던 그였기에 세기말과 20세기 초 유럽의 가을날도 우리나라처럼 이렇게 구분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장미를 꺾다가 파상풍으로 죽은 낭만적인 시인으로 한동안 우리에게 알려졌습니다. 그것이 원인이 되어 51세의 나이에 패혈증으로 죽은 그였지만 근자까지 우리도 혼선을 빚었듯이 그는 그의 병명을 모르고 죽었을 것입니다.
만추인 오늘 11월 23일은 역시 가을 시로 유명한 우리의 김광균 시인이 타계한 날입니다. 1914년에 태어난 그는 1993년에 사망을 하였습니다. 그러함에도 우린 그가 일제강점기에만 활동한 시인으로 주로 알고 있습니다. 광복 이후에도 비교적 오랜 기간 생존했음에도 그렇게 생각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가 시인 이외의 직업이 하나 더 있어서도 그랬습니다. 그는 동생의 변고로 인해 1950년부터 건설실업이라는 무역 회사의 대표를 맡으며 그로부터 약 30년 동안 시를 멀리 했습니다. 시인이 기업인으로 변신한 것입니다. 한국경제인협회 이사, 무역협회 부회장을 맡을 정도로 그는 사업에 열중했으니까요. 포탈에서 김광균을 검색해봐도 그는 프로필에 시인과 기업인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추일서정(秋日抒情)>, <와사등(瓦斯燈)>, <설야(雪夜)> 등 제목만 들어도 그 낭만성으로 가슴 한 구석을 울렁거리게 하는 시인이 이질적인 기업 경영인이라는 사실은 그의 <설야> 속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만큼이나 멀게 느껴집니다. 1982년 그는 다시 시인으로 돌아왔습니다.
가을날이 되면 '추일서정'으로 인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시인 김광균 (1914~1993)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 / 포화에 이지러진 / 도룬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게 한다 / 길은 한 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 일광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 새로 두 시의 급행열차가 들을 달린다 / 포플러 나무의 근골 사이로 / 공장의 지붕은 흰 이빨을 드러내인 채 / 한 가닥 구부린 철책이 바람에 나부끼고 / 그 위에 셀로판지로 만든 구름이 하나 / 자욱한 풀벌레 소리 발길로 차며 / 호올로 황량한 생각 버릴 곳 없어 / 허공에 띄우는 돌팔매 하나 / 기울어진 풍경의 장막 저 쪽에 / 고독한 반원을 긋고 잠기어 간다"
김광균 시인의 대표작인 <추일서정>입니다. 그가 타계한 오늘 같은 가을날에 참으로 어울리는 시입니다. 어쩌면 이 시는 우리국민이가을 하면 떠올리는 첫 번째 시일지도 모릅니다. 일단 교과서에 나와서도 그렇고 도입부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가 워낙 강한 시구여서도 그럴 것입니다. 가을을 시로 쏟아내는 시인들이 많다고 했지만 그들이 그려내는 가을 중 가장 많은 시기는 만추일 것입니다. 이유는 그때가 되면 등장하는 낙엽이라는 오브제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낙엽은 시인, 아니 확장해서 장르를 막론하고 문인들에겐 강하고 매력적인 글감으로 사용되어 왔으니까요. 문학이라는 것이 인간의 마음에 호소하는 것인데 그 심상에 낙엽을 올리면 비유할 것이 참으로 많아서 그럴 것입니다. 위의 시도 제목은 전체 가을을 나타내는 <추일서정>이지만 시에서는 낙엽이 있는 만추의 서정만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러함에도 시인은 '만추일서정', 이렇게 제목을 달지 않았습니다. 시인에게 가을은 곧 만추였기에 그랬을 것입니다.
김광균 시인은 일제강점기인 1940년 이 시를 발표했습니다. 일본이 우리는 물론 아시아 전체를 유린해가던 서슬 퍼런 시기에 그와 우리 민족의 운명을 낙엽에 비유해 시를 쓴 것입니다. <추일서정>에 폴란드를 등장시킨 것은 바로 전 해인 1939년 폴란드가 독일에 침공당했기 때문입니다. 2차 세계대전의 시작입니다. 일본은 2년 후인 1941년 그 전쟁에 추축국으로 참전했습니다. 현실에 민감했던 시인은 세계사의 시류를 시에 넣은 것입니다. 당시 무너진 폴란드의 정부는 국외로 도피해 파리에 망명 정부를 두고 있었습니다. 그 망명 정부가 발행한 화폐는 당연히 아무 가치가 없었을 것입니다. 시인은 그것을 낙엽에 비유한 것입니다. 그만큼 낙엽은 덧없고 쓸모없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겠지요.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로 비유된 김광균 시인의 낙엽
낙엽이 못 쓰는 지폐가 되었듯이 비유는 계속 등장합니다. 구름은 셀로판지로, 길은 구겨진 넥타이로, 기차의 매연은 담배 연기가 되었습니다. 시에서 등장하는 도룬시는 폴란드의 중공업 도시인 토룬(Torun)입니다. 코페르니쿠스가 태어난 곳으로 과거 한자동맹 때부터 발달한 유서 깊은 도시인데 그곳에 독일군의 포탄이 날아갔으니 그 가을 하늘은 낙엽처럼 볼품이 없어졌을 것입니다. 김광균 시인에겐 나라를 빼앗긴 우리나라의 가을 하늘도 그렇게 보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애국가>를 작사했다고 알려진 안창호와 윤치호의 공활한 가을 하늘도 당시엔 그렇게 보였을 것입니다. 그 기울어진 풍경에서 시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허공에 돌 하나 던지는 것뿐이라고 자조하는 것만 같습니다. 고독할 수밖에 없는 그의 <추일서정>입니다.
김광균 시인은 김기림, 정지용 등과 함께 모더니즘의 선봉에 선 깬 시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시는 도시적인 감성과 세련된 기교가 더해져 마치 어떤 이미지를 보는 듯합니다. 그에게 추일(秋日)보다 먼저 온 설야(雪夜)에선 밖에서 눈 내리는 소리를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로 비유했습니다. <설야>는 <추일서정>을 발표하기 2년 전인 1938년에 쓴 시라 하니 그 시절 여인들의 옷이라곤 모두 한복이었을 것입니다. 여인의 한복은 벗을 때엔 무어라 딱히 의성어로 규정하기 힘든 소리가 납니다. 요즘은 한복을 거의 입지 않으니 머언 어린 시절 엄마의 한복에 귀를 기울여 봅니다. 시인은 그렇게 겨울밤 눈 내리는 소리를 여인의 한복 벗는 소리에 비유했습니다. 멋지지 않습니까? 시는 곧 회화라고 하는 모더니즘이 식민지 시절 한 젊은 시인에 의해 마음껏 구현되었습니다. 시대의 아픔을 초월해 그렇게 역설적으로 표현했을 것입니다.
낙엽은 김광균 시인이 그러했듯 대개 절망의 오브제로 묘사되곤 합니다. 인간의 삶이 희극과 비극으로 절반씩 나눠져 있다고 할 때 변하고, 늙고, 생명을 다하고, 떨어져 나가고, 나뒹굴고, 버려지고, 쓸리고, 태워지고, 썩는 낙엽만큼 비극적인 자연 소재는 많지 않기에 그럴 것입니다. 그래서 오 헨리의 단편 <마지막 잎새>의 등장인물은 그렇게까지 마지막 잎새를 낙엽으로 만들지 않으려고 끝까지 사수한 것입니다.
낙엽이 쌓여가는 양재천 둑방
하지만 김광균 시인과 같은 일제강점기 말기에 함께 활동을 했지만 그 시절 낙엽을 다르게 본 작가도 있었습니다. 시인은 아니지만 그 역시 모더니즘의 일선에 선 작가로 우리에게 소설 <메밀꽃 필 무렵>으로 잘 알려진 이효석입니다. 그는 김광균 시인이 <추일서정>에서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라며 한탄할 때 그 낙엽을 쓸고 태우면서 수필 <낙엽을 태우면서>를 썼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낙엽은 절망의 오브제가 아니었습니다. (계속)
* 위의 글은 2년 전인 2022년 이맘때 이곳에 길게 쓴 <추일서정 123>을 풀어서 두 편의 글로 나눠 리뉴얼한 에세이입니다. 낙엽을 주연으로 내세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