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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하 Jul 09. 2020

엔니오 모리꼬네의 부고를 접하고..

엔니오 모리꼬네는 탁월했습니다. 영화가 1차적으로 인체를 반응케 하는 시각과 청각 요소 중, 그 청각 중에서 음악의 효과 포션을 그보다 많이 끌어올린 영화음악 제작자가 세상에 또 있었던가요? 시네마 천국,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미션, 황야의 무법자 등 그가 음악한 영화의 줄거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가물가물 잊힐지언정 그 OST들은 지금도 귀에 생생하고 들을 때마다 감성 작용 또한 최초 관람 시의 그것과 다를 바 아닙니다. 청각은 사람이 죽은 후에도 일정 시간 살아있을 정도로 강하다 하니 과연 그런가 봅니다. 물론 당연하게 청각을 자극하는 그의 음악이 그만큼 심금을 울리고 인상적이기에 더욱 그럴 것입니다.

20세기 이후 클래식 분야에서의 작곡가는 딱히 떠오르지 않지만 그 대체재로서 영화음악에서의 그의 역할은 그 이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제 그의 부고를 접하며 크게 아쉬워할 수밖에 없는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가히 마에스트로!

게 그의 마지막 영화는 2015년 압구정cgv에서 본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였습니다. 139분으로 개봉한 최초 극장 영화가 비디오로는 229분으로 출시되더니 마침내 디렉터스 컷으로는 상영 시간이 무려 251분으로 늘어났습니다. 밤 10시 30분경 시작된 영화는 인터미션까지 있어 새벽 3시가 넘은 시간에 종료되었습니다. 새벽 늦은, 아니 이른 귀갓길, 긴 시간 쌓여진 포만감을 잔뜩 품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중 내게 압권은 바로 아래 장면였습니다.

훔쳐보기입니다. 늙어서 돌아온 주인공 누들스(로버트 드니로)가 어린 시절 짝사랑했던 데보라(제니퍼 코넬리)를 회상하며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벽돌 구멍 틈새로 안을 쳐다보는 장면입니다. 놀랍게도 시간은 과거로 달려가 장면은 그들의 어린 시절로 바뀝니다. 이 훔쳐보기를 통해 연결된 둘은 평생 서로를 사랑하지만 이런 류의 영화가 대개 그러하듯 둘의 사랑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나이 든 누들스가 데보라를 훔쳐본 그 구멍은 단순한 구멍이 아니라 그들의 현재와 과거를 이어주는 블랙홀과 같은 틈일 것입니다. 마치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미래로 간 주인공 아버지(매튜 맥커니히)가 5차원의 공간 책장 뒤 틈 사이로 현재의 딸을 바라볼 때 그 틈이 그들의 미래와 현재를 연결해준 것처럼 말입니다.

아래 영상 속 어린 데보라의 발레를 둥실 띄워주는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라모폰을 통해서 흘러나오는 클라리넷의 주 저음과 그 멜로디를 방해하지 않고 다소곳이 뒤에 조용히 따라만 가는 트롬본.. 춤추는 데보라가 클라리넷이라면 훔쳐보는 누들스는 트롬본입니다. 보고 듣는 우리도 따라 과거로 갑니다. 혹여나 있었을지 모를 훔쳐보기의 과거로.. 우리들의 원스어폰어타임인 어딘가로..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이 인도합니다.

https://youtu.be/guquk30ju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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