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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ost Wonderful Tonight

by 마하

두보는 인생 70을 고희(古稀)라 부르며 옛날엔 아주 드문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공자는 종심(從心)이라 가리키며 마음이 가는 대로 따라 행동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70이란 나이는 인생에 대해 도가 터서 신선 경지에 올랐다는 것일 것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70이란 나이가 드문 일도 아닐 뿐더러 그 나이가 되어도 마음대로 하기도 힘들 것입니다. 평균 연령이 84세에 다다르는 시대이니 70이 되어도 집 안팎으로 많은 윗분들이 줄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70이란 연령이 흔해지면서 과거와 같은 성대한 고희연은 드문 시대가 되었습니다.


어제 토요일밤 저는 아주 진기한 고희연을 보고 왔습니다. 집안으로 치면 큰형님뻘 되는 존경하는 선배님의 70 생일 파티였습니다. 저는 아직 그 나이가 멀었음을 큰형님이란 칭호에서 살짝 강조합니다. 선배님의 그 파티는 아래의 사진에서 보듯이 그의 음악회였습니다. 그런데 통상 그럴 것이라 예측되는 클래식 음악회가 아닌 라이브 밴드 음악회였습니다. '음악 50년 리사이틀'이란 부제가 붙은 음악회였습니다. 그 얘기인즉슨 50년 동안 음악을 했다는 것인데 이쯤 되면 그 선배는 연령이나 경력상 산울림의 김창완님 정도 되는 유명 뮤지션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는 대중 음악인이 아닙니다. 변호사입니다. 아직도 현역에서 활동하고 계십니다. 음악은 그의 취미이자 부캐입니다.


그 선배는 그가 살아온 인생 70년을 기념하여 그의 음악 인생 50년을 결산하는 파티를 기획하고 연 것입니다. 숫자에 맞춰 가족, 친지, 친구, 선후배 등 70명을 청중으로 초청하고 그들 앞에서 밴드 공연을 펼쳤습니다. 생일축하송과 케이크 커팅에 이어 바로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음악 실력과 애정이 평균을 넘어서니 이런 이벤트를 강행한 것이었습니다. 그를 따르며 평소 합을 맞춰온 후배 뮤지션들이 함께 무대에 섰습니다. 아, 그들도 모두 본업이 있는 친구들입니다. 그 선배처럼 음악이 좋아서 취미로 밴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배가 연주하는 악기는 드럼입니다. 가장 연장자이지만 가장 많은 체력을 요하는 드럼을 소화하고 있습니다. 세러데이 나잇 그들은 앙코르를 포함해서 16곡을 쉬지 않고 불렀습니다. 그중에서 선배는 11곡을 불렀습니다. 그날은 그의 날이었으니까요. 사이사이 그가 살아온 이야기와 음악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가 50년 전 음악을 처음 접했을 때부터 좋아했던 비틀스와 C.C.R 이야기가 많이 나왔고 그들의 노래를 주로 불렀습니다. 사실 사지를 다 움직이는 드럼을 치며 싱어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프로 밴드에서도 쉽게 보기 힘든 이유이기도 합니다. 더구나 그 선배가 노래한 곡들은 주로 롹킹한 팝송들이었습니다. He is seventy.. 정말 음악성을 떠나 체력면에서도 감탄을 주는 그의 무대였습니다.


공연 중에 확실한 하이라이트가 있었습니다. 중간에 묘령의 여인이 화면에 뜬 것입니다. 그가 사랑했던 여인입니다. 그는 1977년에 미국으로 유학을 가며 그가 직접 연주하고 노래를 부른 12곡을 카세트테이프에 담아 그녀에게 전해주었다고 합니다. 모두가 그녀를 생각하며 부른 노래일 것입니다. 어제 그는 그 곡들 중 링고 스타의 <You are sixteen>을 비롯하여 세 곡을 불렀습니다. 48년 전 녹음했던 그 카세트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20대 때의 보컬에 라이브 보컬을 교차시키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TV 음악 프로그램에서 세대를 잇는 기법으로 가끔 나오곤 하는 장면을 연출한 것입니다. 그렇게 70 생일날에 드럼을 치며 열정적으로 노래를 부르는 한 남자의 모습 뒤로 핑크빛 리즈 시절의 그녀가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습니다.



글을 쓰기 전 링고 스타의 <You are sixteen> 가사를 찾아봤는데 천상 사랑 노래입니다. 나이로 미루어 아마도 첫사랑일 것입니다. "당신은 꿈처럼 다가왔죠, 복숭아와 크림 같았죠. 입술은 딸기 와인 같았죠. 당신은 열여섯 살, 아름다운 당신은 나의 여자입니다. (온전히, 모두 다). 당신은 리본과 곱슬머리를 했죠, 오 멋진 소녀. 눈은 반짝반짝 빛났고요. 당신은 열여섯 살, 아름다운 당신은 나의 여자입니다. (온전히 나의)... " 뒤로 갈수록 가사가 야해져 생략합니다. 선배가 이 노래를 그 옛날 그녀에게 주었고, 48년 후인 어젯밤 그때의 그녀를 띄워놓고 이 노래를 부른 이유가 가사에 담겨있습니다. 그렇듯 제가 아는 한 그녀는 그때나 지금이나 그의 뮤즈입니다. 물론 그 선배가 유학을 다녀온 후 두 분은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가 그녀에게 카세트테이프를 전달한 1977년은 산울림의 <아니 벌써>가 세상에 나온 해입니다. 그 해가 1977년이라 하니 떠오른 생각입니다.


앙코르곡으로는 모두에게 익숙한 에릭 클랩톤의 <Wonderful Tonight>을 들려주었습니다. 파티는 끝나가고 집에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으니까요. 어렸을 때부터 보아오던 16세의 소녀는 뷰티풀 레이디가 되어있고 그들은 함께 집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렇게 그 선배의 인생 70년과 음악 50년 공연은 막을 내렸습니다.


세상에 이런 고희연을 맞는 사람이 있을까요? 어젯밤은 그에겐 the most wonderful tonight이었을 것입니다. 아, 그리고 이 파티를 주최해준 그의 그녀에게도 말입니다. 두 분 덕분에 정말 옛날은 물론 오늘날까지도 아주아주 드문 고희연을 감상하고 왔습니다. 70명의 지인들은 선배 부부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지만 저를 비롯한 그들은 아름다운 추억을 선물로 받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 공연의 메인타이틀이 <어제 오늘 그리고>인 것을 보니 이게 끝이 아닌 듯합니다. 80 생일에도 90 생일에도 음악 60년, 70년 공연을 계획하고 있는 것일까요? 꼭 그렇게 계속해서 삶과 음악의 신화를 써나가기를 기원합니다. 조문현 선배님과 사모님, 어젯밤 멋진 공연과 파티 감사했습니다. 내내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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