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배를 저어가자 희망의 나라로, 대항해시대

by 마하

콜럼버스는 투자를 받기 위해 8년간 영국 프랑스 등 유럽을 돌며 백방으로 뛰어다녔습니다. 포르투갈의 주앙 2세에겐 두 번이나 거절을 당했고 카스티야의 이사벨 여왕에게도 처음엔 거절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그가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을 찾아가지 않은 것은 좀 의문스럽습니다. 메디치는 당시 유럽 최고의 은행과 상사를 보유했던 가문이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 시기 메디치는 메디치 중에서도 가장 강성했던 위대한 자 로렌초 메디치의 시대였습니다. 그는 동양에 관심이 많아 가문이 보유한 라우렌치아나 도서관엔 동양과 관련된 많은 문서와 서적이 쌓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1502년 아메리카를 탐사해 콜럼버스가 발견한 곳이 인도가 아닌 신세계라고 발표한 아메리고 베스푸치도 메디치 은행의 세비야 지점장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투자자가 급한 콜럼버스가 같은 이탈리안인 메디치를 찾아가지 않은 것이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그는 제노바 출신입니다. 물론 이탈리아가 통일되기 전이긴 했습니다.


혹시 콜럼버스가 이탈리아를 가지 못한 말 못할 사연이 있던 것은 아니었는지요? 그의 어린 시절 제노바에서의 행적은 묘연합니다. 태어난 기록만 있고 성장 기록은 전혀 없습니다. 20대 때 어느 날 갑자기 포르투갈에 나타나 지도 제작업에 종사하면서부터 그의 정상적인 기록은 시작됩니다.


콜럼버스는 1492년 그가 발견한 그곳을 1506년 죽을 때까지 인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죽자마자 1507년 독일의 지도 제작업자인 발트제 뮐러는 그곳을 아메리카 대륙으로 명명했습니다. 콜럼버스의 위대한 성과가 가로채져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만약 그가 그곳이 인도가 아닌 것을 인정했다면 오늘날 아메리카 대륙은 콜럼비아 대륙으로 불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미국의 국명도 USA가 아니고 USC가 되었을 것입니다. United States of Columbia로 말입니다.


숙제 하나 끝냈습니다. 그런 홀가분함으로 학창 시절 여름방학을 떠오르게 한 바로 어제 7월 24일이었습니다. 그땐 8월을 한 주 앞둔 꼭 이맘때쯤 여름방학을 했었습니다. 어제 숙제는 서양사에서 근대의 포문을 연 대항해시대의 첫 강의였습니다. <배를 저어가자 희망의 나라로, 대항해시대>란 제목이었습니다. 다행히 주어진 2시간에 맞춰 남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딱 마쳤습니다. 폭염 속에서도 높은 향학열로 무지크바움을 채워주신 청중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강의 후 다음엔 <십자가로 살펴본 영국사>에 대해서 강의하겠다고 예고를 했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윈저의 과부 빅토리아 여왕, 그리고 알버트 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