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 오브 킹스 / 위대한 유산 / 영국사 산책 / 셰익스피어..
지난 6월 미국의 뉴욕에서 한 낭보가 들려왔습니다. 우리나라의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토니상 시상식에서 최고상이라 할 수 있는 작품상을 비롯하여 6개 부분을 석권했다는 뉴스였습니다. 영화로 치면 2020년에 오스카상을 수상한 <기생충>에 버금가는 쾌거를 이룬 것입니다. 그 시점 미국에선 강한 돌풍을 일으킨 우리나라 영화가 있었는데 그것은 실사가 아닌 애니메이션 영화였습니다. 지난 4월 개봉하여 7월인 지금까지 누적 매출 6000만 달러를 돌파한 장성호 감독의 <킹 오브 킹스>입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기록한 5300만 달러를 훌쩍 뛰어넘은 것입니다. 이것은 헨델의 <메시아> 합창에서 '킹 오브 킹스'라는 가사에 뒤따라 나오는 '할렐루야'급 성과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해외, 그것도 영화의 본고장인 할리우드에서 대박을 터트린 <킹 오브 킹스>는 이 글을 처음 쓰는 오늘(7. 16) 국내에서도 개봉을 했습니다. 국내가 아닌 북미에서 먼저 개봉을 했기 때문입니다. 금의환향, 여러모로 대단한 영화이고 기록입니다.
<킹 오브 킹스>와 관련된 놀라운 여러 뉴스가 있지만 그것들 중 그 애니메이션 영화의 원작자가 찰스 디킨스라는 사실도 저에겐 꽤나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최근 영국과 관련하여 여러 편의 글을 쓰며 찰스 디킨스란 이름이 제 눈에 몇 번이나 스쳐 지나갔는데 오늘 아침 배달된 신문의 <킹 오브 킹스>의 개봉 기사에도 그의 이름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제가 느끼는 놀람과 신선은 <크리스마스 캐럴>과 <올리버 트위스트>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하는 찰스 디킨스가 이런 류의 신성하고 은혜로운 책도 썼다는 사실과, 그것을 몰랐던 저의 무지에도 기인할 것입니다. 얼마 전 예상치 못한 그의 어떤 작품을 보고 놀랐었고, 또 그보다 더 오랜 과거에 접촉했던 그의 어떤 작품을 보고서도 놀랐었는데, 오늘 아침 또 저를 놀라게 한 찰스 디킨스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그에 대한 글까지 비로소 씁니다.
비가 쏟아졌지만 후다닥 동네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고 왔습니다. 애니메이션 영화이고 소재와 주인공으로 인해 아이들과 손잡고 온 엄마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킹 오브 킹스>의 원제는 <우리 주님의 생애(The Life of Our Lord)>입니다. 찰스 디킨스가 그의 자녀들에게 크리스마스 때마다 트리 아래에서 교육용으로 읽어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그의 후손들이 그가 사망한 지 64년 후인 1934년에 출간한 책입니다. 영화도 그런 아빠와 자녀의 줄거리를 그대로 채택했습니다. 찰스 디킨스가 화자로 등장해 그의 아들 중 한 명에게 예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입니다. 그것도 더 선명하게 시대 속으로 들어가 실제 예수의 동선을 따라가며 그 부자는 그의 생애를 곁에서 직접 지켜봅니다. 영화이니까 가능한 기법일 것입니다.
영화 <킹 오브 킹스>의 비주얼과 특수효과는 애니메이션과 CG의 강국인 우리나라답게 매우 훌륭했습니다. 하지만 줄거리는 아이든 어른이든 기독교 신자가 아니라면 바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일부 있었습니다. 설명이 덜 정교한 장면과 스토리 진행이 빠른 장면 등이 그래 보였습니다. 특히 예수 생애의 대위기인 본디오 빌라도의 재판 부분이 제겐 더 그렇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예수의 음성도 좀 얇게 들려 덜 성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모르지요 실제로 그분은 그랬는지요. 그래도 <킹 오브 킹스>는 33년에 걸친 예수의 생애를 단 100분에 압축하여 잘 담았습니다. 북미 시장의 대성공으로 입증된 작품답게 말입니다. 아빠로 등장하는 찰스 디킨스의 국내판 보이스는 배우 이병헌이, 예수의 보이스는 배우 진선규가 담당했습니다. 연기력이 출중한 명배우들입니다.
이렇게 19세기 중엽에 10남매의 아빠가 된 찰스 디킨스가 그의 10명의 자녀들에게 들려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는 21세기 들어서 동방의 한 열정적인 코리안에 의해 애니메이션으로 멋지게 부활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만든 이 작품은 국내는 물론 전 세계의 어린이들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찰스 디킨스의 대표작인 <올리버 트위스트>에서도 보이듯이 어린이 문제에 관심이 많은 그였기에 지하에서 이 소식을 듣게 된다면 그는 매우 기뻐할 것입니다. 어쩌면 올 크리스마스 캐럴이 고요하고 어두운 밤에 울려 퍼질 때 장성호 감독의 침실에 찰스 디킨스의 유령이 나타날지도 모르겠습니다. 감사 인사를 전하러 말입니다.
할리우드의 인기 여우 기네스 팰트로를 좋아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때만큼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마블의 <아이언맨> 시리즈에서 종종 보이는 그녀는 과거 제가 좋아했던 리즈 시절의 그녀를 상실한 것으로 보이기에 그렇습니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그녀는 저를 전혀 모르고 천만에 하나 저를 안다 해도 제가 그러든 말든 전혀 상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녀를 좋아하게 된 것은 영화 <위대한 유산>을 보고서였습니다. 그 영화에서 그녀는 단아하고 아름다웠습니다. 특히 뉴욕에서 돌아온 기네스 팰트로가 초록색 도나 카렌의 투피스를 입고 남자 주인공인 에단 호크 앞에 나타났을 때의 모습은 가히 절정이었습니다. 영화 줄거리도 그녀만큼이나 무척이나 흥미로워 그 커플에게 더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세상엔 많은 위대한 유산이 있지만 1998년에 개봉한 영화 <위대한 유산>은 미국 플로리다주의 바닷가를 배경으로 합니다. 그 2년 전인 1996년 회사 연수로 그곳 코코아비치 근처의 멜버른이라는 소도시에 2개월간 머물러서인지 영화 속 바다는 제 눈에 익숙하게 들어왔습니다. 영화는 그 바닷가에 사는 가난한 시골 남자의 성장 스토리로 그는 모르는 후원자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뉴욕의 화단에 입성해 화가로 큰 성공을 거둡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영화의 원작자가 찰스 디킨스였습니다. 원제도 똑같은 <위대한 유산(The Great Expectation)>이었습니다. 그의 영국 소설을 배경과 시대, 그리고 줄거리까지 완벽하게 미국적인 스토리로 각색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원작자는 찰스 디킨스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구성과 내용은 원작을 닮았습니다. 당연히 찰스 디킨스의 원작에선 뉴욕이 아니고 런던에 입성해서 성공하는 시골뜨기가 나옵니다.
그렇게 <위대한 유산>으로 저를 놀라게 한 적이 있던 찰스 디킨스였는데, 오늘 <킹 오브 킹스>에서도 또 저를 놀라게 한 그입니다. 사후 후대에 이렇게 세계 각국에서 다른 장르로도 다양하게 부활하는 소설을 쓴 위대한 작가, 가히 그는 소설의 왕이라 할 것입니다. 영문학으로 그 앞에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있었지만 그가 쓴 작품은 소설이 아니고 희곡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두 작가는 모두 여왕의 시대에 살며 작품을 쓰고 명성을 얻었습니다. 셰익스피어는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시대에, 디킨스는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그 시대를 풍미한 작가가 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위대함은 이렇게 소설가에만 국한하지 않습니다. 그의 변신, 그는 역사학자이기도 했습니다.
영국의 최고 전성기는 대영제국(British Empire)으로 불리며 전 세계의 바다와 육지를 호령했던 19세기를 가리킵니다. 그런 화려했던 시대의 군주가 빅토리아 여왕이었기에 그녀의 이름을 따 빅토리아 시대라고도 불리는 시대입니다. 찰스 디킨스는 그 여왕과 그의 입신양명을 함께 했습니다. 빅토리아 여왕이 즉위한 1837년 그가 소설가로서 이름을 알렸기 때문입니다. 그의 대표작 <올리버 트위스트>가 그해 출간되었습니다. 약관 25세에 이미 인기작가의 반열에 선 것입니다. 이후 그가 사망한 1870년까지 그는 많은 작품들을 발표하며 빅토리아 시대와 영국을 대표하는 소설가가 되었습니다. 그의 소설은 일반 독자는 물론 지체 높은 빅토리아 여왕도 애타게 만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작품들이 대개 신문이나 잡지에 연재되었기에 그랬습니다. 마케팅에도 능한 찰스 디킨스였습니다.
빅토리아 시대는 동전의 양면처럼 부강했던 만큼 그늘도 많은 시대였습니다. 산업혁명으로 나라는 부자가 되고 세계 최고의 선진국으로 치고 나갔지만 그 이면엔 도시 노동자로 전락한 많은 사람들의 어려움이 함께 했습니다. 그들 중엔 어린이들도 많았습니다. 가난한 집의 아이들, 고아들은 여지없이 공장이나 탄광으로 끌려가 일을 해야 했습니다. 인구는 그대로인 상태에서 노동력이 필요했던 시대이니 노동 연령이 갈수록 낮아진 것입니다. 아이들은 같은 가난이라도 추억이 있던 과거 시대처럼 농사를 짓거나 들판에서 양을 치고 소떼를 모는 삶을 살 수 없었습니다. 찰스 디킨스는 그런 아이문제와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소설로 쓴 것입니다. 그간 단순히 인기에 영합해서 독자가 좋아하는 글을 쓴 작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일단 그부터도 그런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12세 때 런던의 구두약 공장에 나가 하루 10시간씩 일을 했으니까요. 하지만 그는 주경야독으로 공부를 해 변호사의 사환이 되고, 기자가 되면서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작가가 되었습니다.
찰스 디킨스는 그의 자녀를 위한 <우리 주님의 생애(영화 킹 오브 킹스)>(1846~1849)를 쓴 후 역시 또 아이들을 위해 영국의 역사에도 관심을 갖게 됩니다. 역사서는 많았지만 아이들을 위한 역사책이 없어서였습니다. 마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을 했다고 알려진 우리의 신채호 선생과도 같은 심경을 품었었나 봅니다. 그래서 그는 아이들을 위한 전문 영국사 책인 <A Child's History of England>(1851~1853)를 집필했습니다. 그가 창간한 주간지인 <Household Words>에 3년간 연재한 작품을 세 권의 책으로 낸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염원대로 이 책은 20세기 말까지 영국의 초등학교 국사 교과서로 채택이 되었었습니다. 그만큼 알기 쉽게 쓴 것입니다.
<A Child's History of England>는 우리나라에서 <찰스 디킨스의 영국사 산책>(민청기, 김희주 옮김, 옥당 출판)이란 제목의 책으로 번역되어 출간되고 있습니다. 650페이지에 달하는 한 권의 벽돌책입니다. 제목을 원작자가 정한 '어린이를 위한 영국사'로 직역하지 않은 것은 책이 너무 두꺼워 우리나라 어린이가 읽기에는 적합하지 않아서일 것입니다. 그래서 영국사에 관심 있는 전 독자층을 타깃으로 출간한 것으로 보입니다. 당연히 책 내용이 어른이 읽기에도 문제가 없으니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위의 영화 <킹 오브 킹스>가 어린이용 원작이지만 어른들도 영화관을 찾게 만들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실제 책 내용을 봐도 그렇습니다. 어린이, 아니 어른이, 아니 어른인 저는 재미있게 읽었으니까요.
<A Child's History of England>는 제목대로 잉글랜드의 국사책입니다. 영국(UK)의 일원으로 들어온 웨일스,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는 잉글랜드가 그들을 통합해 가는 과정을 통해서 보여집니다. 지금은 아일랜드 중 북아일랜드만 영국에 속해 있지만 찰스 디킨스가 살았던 19세기엔 그 섬 전체가 영국 땅이었습니다. 진정한 유나이티드 킹덤(UK)의 시대였던 것입니다. 책의 맨 앞장엔 브리튼인, 켈트족, 로마인부터 등장합니다. 브리튼섬을 두 차례나 침공했던 로마인 율리우스 카이사르도 나옵니다. 잉글랜드의 탄생 과정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잉글랜드가 형성된 중세부터는 충실하게 각 왕조별로 왕을 중심으로 전개해 나갑니다. 그렇게 기전체를 택했지만 시대순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정리하였기에 편년체도 혼합한 역사책입니다. 잉글랜드 2천년 역사의 기록입니다.
<A Child's History of England>가 일반 역사책과 가장 다른 점은 정통 역사학자나 역사 교사가 쓰지 않고 소설가가 썼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찰스 디킨스의 상상력과 필력이 발휘되어 등장인물의 대사가 나오는 등 매우 흥미진진하고 생생한 부분들도 많습니다. 특히 전투 부분은 더 리얼하게 표현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시쳇말로 그 멋대로 소설을 쓰지는 않았습니다. 영국의 미래를 책임질 아이들이 읽을 책이니 역사적인 팩트에 근거해 정확히 썼습니다. 그들을 가장 쉽게 이해시키는 방법으로 그가 가장 잘하는 소설식 작법을 넣은 것입니다. 많은 자료 수집과 오랜 공부의 산물로 보입니다.
찰스 디킨스가 쓴 영국사는 빅토리아 시대 앞에서 끝이 납니다. 그 이전 빅토리아 여왕이 속한 하노버 왕가부터는 진도가 빠르게 나갑니다. 그가 살고 있던 시대이니 그의 현대사를 넣기는 애매했었나 봅니다. 그가 1870년 사망한 후 빅토리아 시대는 31년을 더 갔습니다. 20세기가 밝은 1901년, 그녀가 82세로 사망하며 끝이 났습니다. 그는 여왕의 충성스러운 신하답게, 그리고 그의 찐 독자인 여왕을 위해서 그 책의 마지막을 "신이시여 여왕을 보호하소서"란 문장으로 맺었습니다. <A Child's History of England>를 탈고한 1853년이었을 것입니다.
영국 역사상 최고의 작가는 셰익스피어입니다. 부동의 원톱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다음으로는 아마도 찰스 디킨스가 가장 많이 나올 것입니다. 하지만 셰익스피어는 2백년 후배인 디킨스에게 고마워해야 합니다. 잊혀져 가던 그의 유적을 복원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셰익스피어는 손녀에서 그의 대가 끊겼습니다. 그래서 그가 태어나고, 결혼하고, 귀향해서 사망한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에 있던 그의 생가를 비롯한 유적지들은 사라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세월이 흐르며 관리가 안 되고 주인이 바뀌면서 경매 등 일반 매매용 부동산이 되어간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위기에 처한 셰익스피어의 유적을 살려낸 것이 찰스 디킨스였습니다. 결국 그의 노력으로 셰익스피어의 생가는 1847년 국가기념관으로 지정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그의 영향력으로 그가 죽은지 6년 후인 1876년 셰익스피어재단이 출범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에 가면 볼 수 있는 셰익스피어의 모든 유적을 관리하는 재단입니다.
이렇듯 찰스 디킨스는 참으로 여러 방면에서 영국을 빛낸 작가였습니다. 인기 높은 대중 소설가로서 그 역할만 수행한 것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는 물론 문화 문제까지 관심을 갖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주도적으로 앞장선 것입니다. 가장 훌륭한 도구이자 무기는 그의 천직인 소설이었습니다. 소설이라는 미디어를 통해 강자와 약자, 부자와 빈자, 가해자와 피해자 문제를 이슈화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계몽해 나간 것입니다. 특히 아이 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그들이 좋은 환경에서 올바로 자라기를 염원했습니다. 그 어떤 지도자나 정치가도 해내기 힘든 많 일을 한 것입니다. 이렇듯 그를 단순한 소설가로 보기엔 그가 한 일이 다 담아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 만큼은 소설가(小說家)가 아닌 대설가(大說家)라고 부르고 싶은 찰스 디킨스입니다.
맨 꼭대기 여왕부터 맨 아래 하층민까지 모든 잉글리시맨이 좋아했던 찰스 디킨스는 58세에 사망했습니다.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혔고 그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그의 삶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그는 가난하고 고통받고 억압받는 자들과 진심으로 함께 했습니다. 그의 죽음으로 세상은 가장 위대한 영국 작가 중 하나를 잃게 되었습니다. - He was a sympathiser to the poor, the suffering, and the oppressed; and by his death, one of England's greatest writers is lost to the world."
위의 <킹 오브 킹스> 영화로 각색된 찰스 디킨스의 <우리 주님의 생애> 책은 아래와 같이 시작됩니다. 그가 자녀들에게 들려주는 말입니다. 묘비명에 쓰인 찰스 디킨스의 생애와 비교해보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처럼 살려고 애를 쓴 것으로 보입니다. 무더운 이 한여름에도 크리스마스를 떠올리게 하는 그입니다.
"얘들아, 아빠는 너희들이 예수님의 생애에 대해 중요하게 여기기를 바래. 사람이라면 그분의 삶에 대해 알아야 하기 때문이지. 지금까지 세상에 그분처럼 선하고, 인자하며, 온유한 사람은, 그리고 잘못하거나, 병들거나, 비참한 자들에게 진심으로 애통해한 사람은 없었단다. - My Dear Children, I am very anxious that you should know something about the History of Jesus Christ. For everybody ought to know about Him. No one ever lived who was so good, so kind, so gentle, and so sorry for all people who did wrong, or were in any way ill or miserable, as He w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