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경연장 시칠리아

by 마하

헬라스에서 확장된 고대 그리스의 영역을 가리키는 대그리스(Magna Graecia)의 서쪽 끝에 시칠리아가 있었습니다. 물론 오늘날 이탈리아의 그 시칠리아섬입니다. 그곳은 사시사철 따뜻한 날씨에 비옥한 땅으로 농사가 잘 되어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탐을 내던 곳이었습니다. 더구나 정확히 지중해의 정중앙에 위치한 관계로 동서남북 전방향에서 그 섬을 노리고 많은 침략을 해왔습니다. 북쪽과 서쪽의 유럽 기독교 국가들은 물론 남쪽 아프리카와 동쪽 소아시아의 이슬람 국가들도 침략을 해와 그들의 흔적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시칠리아는 인간 이전 시대의 신들도 그렇게나 탐을 내던 땅이었습니다. 인간의 모습을 한 신이라서인가 그들도 살기 좋은 시칠리아를 좋아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로마신화에서 시칠리아는 꽤나 빈번하게 등장합니다. 물론 신들도 많은 흔적을 남겼습니다. 신전이나 터전으로 말입니다.


시칠리아는 우리나라의 1/4 크기의 섬입니다. 주도인 가장 큰 도시인 팔레르모를 비롯해 섬 전역에 약 5백만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습니다. 지중해에서 가장 큰 섬이지만 어떻게 보면 그렇게까지 큰 섬은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신화시대엔 신들이 섬 전역 이곳저곳을 거의 점령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시칠리안들이 그렇게 흩어져 사는 것처럼 입니다. 한마디로 신들로 바글바글했던 것입니다. 대저 신화 속 신들은 동물이 영역을 표시해놓고 그 안에서 여유 있게 살듯이 특정 지역의 주신 역할을 하며 인간에게 섬김과 대우를 받고 살았지만 시칠리아엔 유독 많은 신들이 입도해서 비좁게 살았다는 것입니다. 인구밀도가 높다고 표현하듯이 신구밀도가 높은 시칠리아였다는 것입니다. 언급했듯이 살기 좋아서 그랬을 것입니다. 아니 지금도 살고 있을 테니 그럴 것입니다.


지중해에서 가장 큰 삼각형 모양의 섬 시칠리아

섬의 서남부에 아그리젠토라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가 있습니다. 특히나 신들이 집중해서 살았던 곳입니다. 마치 고급 빌라촌에 거주하듯이 신전의 계곡으로 불리는 곳엔 신전이 4채나 모여 있습니다. 계곡이라지만 능선이 완만한 언덕 지대로 가까이 바다가 접한 비교적 높은 곳입니다. 그래서 시칠리아에서 지중해의 일몰이 가장 아름다운 절경으로 꼽히는 곳입니다. 그 방향으로 바다를 계속 따라가다 보면 아프리카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가 나옵니다. 즉, 고대 카르타고를 바라보는 곳입니다. 카르타고인들은 일찍이 지중해 해상권을 장악하기 위해 시칠리아를 탐냈습니다. 하지만 이탈리아 반도에서 세력을 굳힌 로마와의 전쟁에서 패함으로써 그들은 시칠리아에서 물러나야 했습니다. 기원전 3세기 1차 포에니전쟁에서 패한 결과였습니다. 이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로마는 시칠리아를 첫 번째 해외 식민지로 삼으며 제국의 신화를 써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3차까지 이어진 그 전쟁에서 한니발은 2차전에 등판했습니다.


완벽한 기단과 기둥 일부와 보가 남아있는 헤라 신전


아그리젠토의 그 계곡엔 신화의 대장신인 제우스도 있고 질투심 많은 부인 헤라도 가까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우스 신전은 터와 잔해만 남아있습니다. 그리스 전역에서 가장 컸던 신전이었다고 합니다. 동쪽의 헤라 신전은 34개 기둥 중 일부와 그 기둥을 떠받드는 보도 하나 남아있습니다. 상태가 아주 나쁜 것은 아닙니다. 서쪽에는 헤라클레스의 신전이 있습니다. 그의 기운이 느껴지는 웅장한 기둥만 8개 나란히 서있는 신전입니다. 헤라클레스는 제우스가 인간인 알크메네와 바람을 펴서 난 반신반인이었습니다. 제우스가 그녀 남편의 모습으로 변신해서 접근해 낳은 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헤라는 헤라클레스를 미워해 수행불가한 12가지 과업을 숙제로 내주었습니다. 물론 천하장사 헤라클레스는 모두 다 해결했습니다. 그리고 죽어서는 하늘에 올라가 완전한 신이 되었습니다.


8개의 기둥이 남아있는 웅장한 헤라클레스 신전


그래서인지 신전의 계곡 중앙엔 조화, 화합, 평화의 여신인 콩코르디아 신전이 있습니다. 그리스 이름으로 하르모니아라 불리는 여신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보존 상태가 완벽합니다. 마치 과장을 보태서 20세기에 지었다고 해도 믿을만한 보존 상태입니다. 현존하는 그리스로마신화 신전들 중 최고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신전이라고 합니다. 평화롭게 화합을 하면 상처나 무너짐이 없다는 가르침을 주고 있나 싶을 정도로 콩코르디아의 신전은 멀쩡하게 모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 양쪽으로 맨날 부부싸움을 일삼은 제우스나 헤라의 신전은 망가져 있는데 말입니다. 특히 외도로 바람 잘 날 없던 제우스의 신전은 다 파괴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그의 고향인 그리스의 올림피아에도 제우스 신전은 딱 기둥 하나만 남아있습니다.


지구에서 가장 완벽한 모습으로 남아있는 아름다운 콩코르디아 신전


시칠리아에 그리스인들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6세기경부터입니다. 해외 식민지 개척 사업의 일환으로 이곳으로 이주해 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렇게 그들의 종교를 숭상했고 문명을 남겼습니다. 대부분 가장 웅장하고 단순한 도리아식 양식입니다. 제가 신전의 계곡을 방문했던 시간은 낮이 짧은 저녁이라 모두 야경으로만 그 모습을 보았습니다. 12월임에도 포근했고 우기임에도 청명해 하늘엔 달까지 하나 걸려 있었습니다. 아마도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가 아버지인 제우스 신전을 환하게 비쳐주고 있는 듯싶었습니다. 그녀도 엄마는 헤라가 아니었습니다.


시칠리아의 서북쪽 끝단 산꼭대기엔 작지만 매우 아름다운 중세 도시가 하나 있습니다. 우리의 말티고개처럼 꼬불꼬불한 산길을 가슴 조이며 차로 올라가면 나오는 에리체란 곳입니다. 이곳엔 신전은 아니지만 신의 이름을 딴 성이 하나 있습니다. 미의 여신인 비너스의 성으로 이탈리어명으로는 베네레의 성(Castello di Venere)입니다. 해발 750m인 그곳에 과거엔 그녀의 신전이 있었습니다. 에리체란 도시의 이름이 된 그녀 아들 에릭스가 엄마인 비너스를 기리기 위해 세운 신전입니다. 그것이 이후 노르만족이 시칠리아로 들어오며 요새로 바뀐 것입니다. 물론 고지대에 있어 그곳에 서면 저 아래로 멀리까지 광활한 지중해가 눈에 크게 들어옵니다.


에리체 비너스의 성에서 바라본 지중해


아르키메데스의 폴리스로 유명한 시라쿠사에도 신들은 거주하고 있습니다. 그 도시엔 태양의 신인 아폴로와 앞에서 언급한 달의 여신이 있습니다. 아폴론 신전은 세월이 흐르고 그 도시의 주인이 바뀔 때마다 변신을 거듭했습니다. 기독교의 성당에서 이슬람교의 모스크로 되었다가 다시 성당으로, 그리고 스페인이 들어왔을 때엔 병영으로도 활용되어 지금은 흔적 일부만 보존되고 있습니다. 도시 한가운데에 있어 누구든지 지나가며 볼 수 있습니다. 달의 여신은 아르키메데스 광장에서 도시를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분수에 사는데 아르테미스라는 그리스명이 아닌 다이애나 분수(Fontana di Diana)라는 로마명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시라쿠사의 도심에 위치한 아폴로 신전 잔해


시라쿠사 중심 광장에 분수로 남아있는 다이애나 여신


트로이전쟁의 영웅으로 10년의 긴 전쟁을 끝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오디세이는 그의 고국인 이타카로 가는데 또 10년의 긴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당시 뱃길로도 3일이면 갈 짧은 거리였지만 그리스연합군 반대편에 선 신들의 저주로 그렇게 오랜 고초를 겪게 된 것입니다. 이때 그가 귀향길에서 만나게 되는 외눈박이 거인 퀴클롭스나 매력적인 노래로 선원들을 유혹한 사이렌 요정은 시칠리아와 상관이 있습니다. 퀴클롭스는 시칠리아의 동굴에 살았고 사이렌은 장화 모양의 이탈리아 본토와 시칠리아섬 사이 좁은 메시나해협에서 오디세이 일행을 유혹했습니다. 그리고 태양의 신 헬리오스가 키우는 신성한 소가 사는 신화 속 트리나키아섬도 삼각형 모양의 시칠리아가 유력합니다. 배가 고팠던 오디세이의 부하들은 그 소를 잡아먹어 신의 보복으로 난파되어 모두 죽게 됩니다. 오디세이 항해의 가장 큰 고초는 이렇게 풍요의 땅 시칠리아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그의 귀향기는 그리스의 시성 호머로스에 의해 인류의 고전 <일리아드>와 짝을 이룬 <오디세이>로 탄생되었습니다.


한편 오디세이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불타는 트로이 목마와 성을 뒤로하고 유민들을 이끌고 유랑을 떠난 아이네이아스도 최종적으로 로마까지 가는 여정 속에서 시칠리아를 들르게 됩니다. 아버지의 장례 때문에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들렀습니다. 그는 엄마인 비너스 여신이 빼내어 그 엄혹한 트로이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유민들을 이끌고 시칠리아와 카르타고를 비롯해 지중해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녔습니다. 결국 로마에 정착한 그는 기원전 753년 로마를 건국한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의 시조가 되었습니다. 트로이전쟁은 기원전 12~13세기에 일어난 것으로 추정됩니다. 물론 신화 속 연대기입니다. 이런 아이네이아스의 항해는 훗날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명을 받은 로마의 시성 베르질리우스에 의해 건국신화인 <아이네이아스>로 탄생되었습니다.


이렇듯 시칠리아는 신화 속 전지전능한 신과 인간 영웅들의 섬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런 시칠리아엔 유적지도 아니면서 독특한 여행지가 하나 있는데 바로 자연인 화산입니다. 그런데 그 화산도 신화와 연계되어 있습니다. 지금도 활동 중인 에트나화산입니다. 올해 6월에도 그 산은 화산재를 분출했습니다. 그 화산 속엔 대장장이신으로 유명한 헤파이스토스의 작업장인 대장간이 있습니다. 로마명으로는 화산의 유래가 되는 불칸입니다. 그곳에서 그는 제우스의 초강력 무기인 번개를 만들어냈고 비서실장인 헤르메스의 날개 달린 신발도 제작했습니다. 트로이전쟁의 최고 전사인 아킬레우스 엄마인 테티스 여신의 요청으로 뚫리지 않는 갑옷도 그가 만들어 줬습니다. 그렇게 신들이 주문을 넣을 때마다 그의 대장간엔 불꽃이 튀었습니다. 에트나 화산이 용암과 재를 분출하며 폭발한 것입니다.


불칸의 작업장인 대장간이 들어있는 에트나화산 해발 2,100미터 지점


하지만 시칠리아 동쪽 끝에 위치한 에트나화산은 그때에만 폭발한 것이 아닙니다. 불칸의 부인이 바람을 피울 때에도 폭발했습니다. 질투와 분노로 인해 격정에 휩싸인 그의 망치질과 모루질이 화산 밖으로 불꽃을 펑펑 토해낸다 것입니다. 그의 부인은 앞에서 등장한 신화 속 최고 미녀인 비너스입니다. 섬의 반대편 서쪽 끝 에리체에 그녀의 신전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 남편인 불칸은 남신들 중 최고 추남입니다. 게다가 절름발이입니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가장 드라마틱하고 아이러니한 커플인 그들입니다.


에트나화산은 작년인 2024년 여름에도 폭발했습니다. 산 아래 시칠리아 2대 도시인 카타니아 공항이 폐쇄될 정도로 강도가 센 폭발이었습니다. 연이은 분출.. 신화 속 신들의 무기나 장비가 업그레이드됐다는 얘기는 못 들었으니 비너스 여신이 계속해서 바람을 피워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시칠리아 정부와 카타니아 시민들은 기도할 것입니다. 비너스 여신의 바람기가 멈춰지기만을 말입니다. 앞에서 등장한 비너스 신전을 세운 에릭스나 로마의 시조인 아이네이아스의 아버지는 모두 그녀 남편인 불칸이 아니었습니다.


에트나화산은 3,400여 미터로 알프스 아래 이탈리아의 최고봉이지만 화산재와 용암 퇴적의 변화로 정확히 고정된 높이로 기록되지 못합니다. 사진에서 보듯 에트나화산은 한라산, 후지산과는 달리 분화구가 산 여러 곳에 위치합니다. 불칸 마음대로 아무 데서나 솟구쳐 오르는 것입니다. 비너스여.. 불칸에게 평화를!


윗 사진 지점에서 내려다본 에트나화산의 분화구


이렇게 신들이 즐비했던 시칠리아는 역사 시대에 들어서며 인간들이 몰려와 여러 민족의 여러 왕조들이 들어서게 됩니다. 그리스로마신화의 시대는 끝나고 기독교왕국의 시대에 접어든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에도 시칠리아는 다른 유럽의 기독교 국가들과는 다른 신화적인 요소를 안고 가게 됩니다. 가장 상징성이 강한 국기에서 그 증거를 찾을 수 있습니다. 지금도 사용되는 시칠리아 국기는 매우 독특합니다. 그리고 그 국기 문양은 시칠리아 어디를 가도 가장 많이 보입니다. 특히 외지에서 온 여행자나 관광객의 눈엔 더욱 그렇게 보입니다. 상점에 들르면 각종 기념품에 그 문양이 새겨져 있으니까요.


아, 그 문양은 한때는 왕국기였지만 지금은 시칠리아가 이탈리아의 자치주이니 주기 또는 지역기의 문양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편의상 계속해서 국기로 부르겠습니다. 관공서엔 어딜 가도 이 시칠리아기와 이탈리아기, EU기가 3종 세트로 나란히 걸려있습니다. 하지만 시칠리아에서 이탈리아기를 볼 수 있는 곳은 그곳뿐입니다. 그만큼 시칠리안에게 그들 자치주의 국기는 독립적인 자부심과 연대감을 주는 상징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진에서 보듯이 시칠리아 국기는 독특함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합니다. 바탕 컬러야 일반 국기와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중앙의 문양이 그로테스크해 보여서 그렇습니다. 그리스로마신화 속 고르곤족 여신인 메두사의 머리가 똬리를 틀 듯이 자리를 잡고 정면을 주시하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메두사 머리는 역시나 또 그로테스크해 보이는 다리 세 개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래서 트리나크리아(Trinacria)라 불리는 시칠리아 국기입니다.


시칠리아의 심벌 트리나크리아가 들어간 국기


모두가 끔찍하게 생각하는 그 메두사 머리는 뚜렷한 기원을 찾기 힘들지만 두려움의 요소로 넣은 것으로 보입니다. 역사적으로 워낙 이민족의 침입이 많았던 시칠리아인지라 용맹의 상징으로 메두사를 초빙한 것입니다. 영국기의 사자나 로마제국의 독수리처럼 말입니다. 무시무시한 메두사가 정면을 주시하고 있으니 누구든 시칠리아를 쳐다만 봐도 꽁꽁 굳어버리게 된다는 경고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단 한 명, 그녀를 물리친 신화 속 전사인 페르세우스를 빼고는 말입니다. 과연 신화의 땅 시칠리아다운 발상입니다.


시칠리아 국기 내 메두사 주변의 날개는 도약과 상승을, 그녀의 머리카락이 변해서 된 뱀들은 지혜를, 노란 밀 이삭은 풍요를 상징합니다. 시칠리아는 예나 지금이나 밀과 올리브를 비롯한 농사가 잘되는 옥토 지대입니다. 에트나산에서 불칸이 만들어내는 화산재도 땅을 비옥하게 만드는 큰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로마시대에 시칠리아는 이집트와 함께 제국의 식량 공급원 역할을 했습니다. 메두사를 둘러싼 3개의 다리는 삼각형 모양 시칠리아섬의 꼭짓점을 상징합니다. 또는 무한 전진을 상징하는 신화 속 트리스켈리온(Triskelion)으로 봐도 무방합니다. 영국과 아일랜드 사이에 있는 영국 왕실령 국가인 맨섬의 국기는 이 세 개의 다리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시칠리아를 여행하며 독특한 이 국기 문양을 하나 가지고 싶었습니다. 1주일이 채 안 되는 짧은 체류 기간이었지만 하도 봐서인지 미스 메두사에게 정이 들었나 봅니다. 그런데 어느 도시, 어느 상점을 가도 딱히 제 눈에 들어온 그 문양이 적용된 기념품이나 굿즈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발견을 했습니다. 그것도 그 섬을 떠나기 전 마지막 방문지인 시라쿠사의 한 골목에서 제 눈에 쏙 들어오는 그녀가 보인 것입니다.


시라쿠사 골목 아틀리에에서 발견한 트리나크리아 유화 작품


상점을 겸한 개인 아틀리에 창 안쪽에 전시된 그녀 메두사가 흡사 저를 쳐다보는 듯했습니다. 다행히 제 몸이 굳지는 않았지만 저도 모르게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엽서 두 장 크기의 유화 작품이었습니다. 사진에서 보듯이 화가의 변형이 가미된 작품입니다. 생각보다 가격도 너무 착해 흥정은 1초도 없이 바로 산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로부터 보너스까지 하나 더 챙겼습니다. 유명 사진작가였던 그녀(할머니) 아버지의 사진 카피본도 한 장 받은 것입니다. 저는 사진에 대해선 역시나 문외한인지라 그가 누구인지 모르고 검색에도 실패했지만 그녀가 아버지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것으로 보아 시칠리안 포토그래퍼 중에선 꽤나 지명도가 높은 작가였나 봅니다.


시라쿠사에서 이 글 주제와는 별개로 획득한 소말리아 배경의 사진 작품


위의 사진이 화가인 그녀 아버지의 작품입니다. 문외한인 제가 봐도 시대와 소재, 메시지와 연출로 볼 때 그의 딸이 그린 시칠리아 문양만큼이나 꽤나 독특한 작품으로 보입니다. 1930년대 이탈리아가 소말리아를 식민 통치하던 시절에 찍은 아방가르도한 사진입니다. 그날 이 두 점의 작품을 챙기며 아틀리에를 나온 저는 매우 기분이 좋았습니다. 디데이 마지막 날 숙제를 마친 기분이었으니까요. 바다와 맞닿은 고대 항구 도시의 좁은 골목 안에서 제가 원하는 것을 발견했고 보너스까지 손에 넣었습니다. 유레카! 과연 아르키메데스의 도시임에 틀림이 없는 시칠리아의 시라쿠사였습니다. 아, 그 도시엔 아폴로와 다이애나도 산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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