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취리히 근교 시골의 별 볼일 없던 백작 가문이었던 합스부르크는 1273년 루돌프 1세가 신성로마제국의 공석이었던 왕으로 운 좋게 선출되며 유럽 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하였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1278년 비엔나를 침공해 그때부터 오스트리아는 합스부르크 세계화의 전초 기지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오스트리아 군주는 물론 신성로마제국의 단골 황제로, 독일연방의 의장국으로 제국보다 큰 가문의 역사를 이어오던 합스부르크는 그들의 의도와는 상관없는 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주범이 되며 그 장구한 역사를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1914년 세르비아의 사라예보에서 울린 한 발의 총성이 촉발한 새드엔딩이었습니다.
대전이 끝난 1918년 출범한 오스트리아 공화국 정부는 패전의 책임을 물어 합스부르크 왕가의 모든 재산을 몰수했습니다. 그리고 왕족은 모두 국외로 추방시켰습니다. 1273년 이후 645년간 장구한 세월을 이어온 합스부르크를 오스트리아 역사에서 사라지게 한 것입니다.
대전 중 불과 2년 집권하고 추방된 마지막 합스부르크 황제였던 카를 1세는 오스트리아에서 매우 멀리 떨어진 유럽 서편 끝 포르투갈의 마데이라섬에서 망명생활을 이어갔습니다. 그 고도에서 그는 왕족이라 하기 힘들 정도로 궁핍한 생활을 하다 34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그의 아들인 마지막 황태자 오토 폰 합스부르크는 1966년 황위계승권 포기 각서와 공화국에 충성 맹세를 하고나서야 비로소 조국인 오스트리아에 입국이 허용되었습니다. 그는 반나치 운동 등 유럽 평화운동을 하다 2011년 죽었습니다. 그의 아들은 유럽의회에서 정치활동을 이어가며 지금도 가문의 명목상의 수장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오스트리아 국기엔 한 가문의 역사가 스며있습니다. 하지만 그 가문은 장기간 오스트리아를 유럽 최강으로 만들어 준 합스부르크가 아닙니다. 1278년 합스부르크의 비엔나 입성 이전인 976년 오스트리아를 건국한 바벤베르크 가문입니다. 국기의 문양은 그 가문의 수장이었던 레오폴드 5세가 참전했던 십자군 전쟁에서 유래했습니다. 1191년 벌어진 아크레 공성전에서 그가 전투를 마치고 갑옷의 벨트를 풀었더니 나온 옷의 모양입니다. 벨트로 조인 중앙 부분만 하얗고 위아래로는 핏물이 잔뜩 고여 있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영예롭게 생각하고 그 옷을 고스란히 사각으로 절취해 가문의 문장으로 삼았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오스트리아의 국기가 된 것입니다. 그만큼 용맹성과 애국심, 깊은 신앙심을 상징하고 있을 것입니다. 국기가 제정된 20세기 초 새로운 공화국 정부에선 합스부르크 가문을 오스트리아의 침략자로 규정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