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세의 경연장 시칠리아

시칠리아를 통해 본 이탈리아 통일

by 마하

기원전 3세기 시칠리아에선 당장은 그 섬뿐이었지만 결국은 지중해 전체의 패권을 결정지은 로마와 카르타고 간에 일전이 벌어졌습니다. 내분이 일어난 시칠리아가 그들의 안위를 위해 두 강대국을 끌어들여 일어난 전쟁이었습니다. 흡사 우리 조선에서 1894년에 벌어진 청일전쟁과도 같은 타국 간의 전쟁이 시칠리아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포에니전쟁, 그중에서 1차전(264~241 BC)인 그 싸움의 승자는 로마였습니다. 패자인 카르타고는 그들이 출발한 북아프리카로 돌아갔습니다. 오늘날 튀니지입니다. 이 승리로 시칠리아를 첫 해외 식민지로 삼은 로마는 사르데냐, 코르시카섬도 연속해서 정복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이후 카르타고와의 리턴매치인 2차 포에니전쟁(218~201 BC)에서도 한니발을 꺾음으로써 오늘날 스페인인 히스파니아도 식민지로 삼았습니다. 카르타고는 그 전쟁의 최종전인 3차전(149~146 BC)에서 아예 흔적도 없이 지도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렇게 지중해는 로마제국의 호수가 되었습니다.


시칠리아.. 역사상 그렇게나 다양하고 많은 외세의 침공을 당한 나라가 지구상에 또 있을까요? 시칠리아가 지중해 중앙에 위치한 데다가 지중해에서 가장 큰 섬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유럽 중앙으로 들어가는 최단거리에 놓인 징검다리 섬이기에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섬이 땅까지 비옥해 밀과 올리브 등 농산물까지 풍부하니 주변에서 힘 좀 세어졌다 하면 그 섬을 안 노린 세력이 없던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고온건조한 지중해양성 기후로 살기에도 최적의 입지환경이기에 일찍이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몰려온 것입니다. 로마제국도 그 점을 잘 알기에 이탈리아 반도를 장악한 후 첫 해외 식민지로 시칠리아를 찍었을 것입니다. 이후 로마의 빵 공장 역할을 한 시칠리아였습니다. 이집트보다 훨씬 가까워 효용도가 매우 컸을 것입니다.


1차 포에니전쟁 후 고대 지중해 세력권과 그 중앙의 시칠리아


로마 이전, 카르타고 이전에도 시칠리아엔 많은 외지인이 들락거렸습니다. 가장 먼저 고대 문명세계의 맹주인 그리스가 시칠리아를 노렸습니다. 본래 그리스는 지중해 내 이오니아해와 에게해를 기반으로 헬라스(Hellas)라고 칭하며 그들만의 민족 공동체 영역을 확실히 하며 살았는데 어느 날부터 대그리스주의인 마그나 그라키아(Magna Graecia)를 표방하며 주변으로 세력을 확장해 나갔습니다. 그렇게 기원전 8세기경 그리스인은 시칠리아에 들어왔습니다. 그로 인해 시칠리아는 로마제국의 본토인 이탈리아 반도보다 훨씬 빨리 문명화가 이루어졌습니다. 로마는 그 무렵인 753년 테베레 강가의 일곱 언덕에서 이제 겨우 나라가 건국되었으니까요.


그리스신화에서 시칠리아가 많이 언급되는 것은 이렇게 일찍이 그리스 영역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트로이전쟁을 끝낸 오디세이도 다녀갔고, 로마제국의 시조인 아이네이아스도 시칠리아에 머물다 갔습니다. 그리스인이 시칠리아에 남긴 흔적은 제가 일전에 이곳에 쓴 <신들의 경연장 시칠리아> 글에 비교적 상세히 소개되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그리스 식민 도시 아그리젠토엔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보다 상태가 훨씬 좋은 콩코르디아 신전이 신들의 언덕 위에 우뚝 서있습니다. 주변으론 제우스, 헤라, 헤라클레스의 신전들도 놓여 있습니다.


완벽한 모습, 아그리젠토의 콩코르디아 신전


그리스, 카르타고가 물러가고, 로마마저도 476년 서로마제국이 멸망하면서 시칠리아는 남하한 게르만 민족이 차지하게 됩니다. 이탈리아 반도를 장악한 동고트족과 돌아서 북에서 내려온 반달족이 그 섬을 공유한 것입니다. 하지만 6세기 들어 동로마제국의 중흥기를 이끈 유스티니아누스대제는 과거 서로마제국의 땅을 대거 수복하면서 시칠리아도 제국의 영토에 편입시켰습니다. 그로 인해 동로마가 꽃피운 비잔틴 문명이 시칠리아에 들어왔습니다. 당시 동로마제국은 히스파니아까지 진격을 했습니다. 난립했던 서유럽에 강력한 기독교 군주와 제국의 재출현, 아마도 로마에 있던 교황이 가장 좋아했을 것입니다.


이어서 시칠리아엔 이슬람교도인 무어인이 들어왔습니다. 시리아에서 세워진 우마이야왕조는 이베리아반도를 가던 길에 시칠리아를 공략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고, 이어서 과거 북아프리카의 옛 카르타고에 세워진 아랍계인 아글로브왕조가 827년 시칠리아를 정복한 것입니다. 기독교왕국이 물러나고 이슬람왕국이 세워진 것입니다. 당연히 시칠리아는 이슬람화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몇 번의 이슬람왕조가 교체되며 그들도 기력이 다했는지 이번엔 북에서 내려온 새로운 기독교 세력이 또 시칠리아를 장악했습니다. 바이킹의 후예인 노르만족입니다. 마치 스페인의 레콩키스타를 연상시키는 기독교도의 승리가 시칠리아에서 먼저 일어났습니다.


노르만족은 프랑스의 노르망디에 정착한 북방 바이킹의 일파입니다. 하도 프랑스를 못살게 굴어 서프랑크왕국의 샤를 3세는 그들에게 충성맹세를 조건으로 땅을 떼어주고 나라를 세워주었습니다. 911년 노르만공국의 탄생입니다. 그들의 후예인 정복왕 윌리엄 1세는 1066년 잉글랜드를 정복해 오늘날 영국 왕가의 시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점인 1071년 일단의 노르만 기사단이 시칠리아로 내려와 이슬람왕조를 폐하고 기독교왕국을 세운 것입니다. 그로부터 노르만인이 경영한 123년간(1071~1194)은 어떻게 보면 시칠리아의 최전성기라 할 수 있는 기간이었습니다. 그 시점 영토도 확장해 나폴리가 있는 남부 이탈리아도 시칠리아왕국에 편입되었습니다.


화려한 몬레알레 대성당의 예수그리스도 초상


시칠리아왕국의 수도 팔레르모엔 당시 노르만왕조가 남긴 문명이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특히 성당 안팎의 장식에서 그것이 확인이 됩니다. 산 위에 세워져 왕의 산을 뜻하는 몬레알레 대성당엔 금이 대량으로 투입된 화려한 예수 그리스도의 성화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참으로 신비롭게 보입니다. 그리스, 로마, 비잔틴, 아랍, 노르만 등 모든 문명이 결합된 양식이라 그런 것일까요? 지금까지 봐오던 그리스도상과는 다른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산 아래 시내의 팔레르모 대성당은 일단 그 크기에 압도됩니다. 시칠리아라는 지역을 고려할 때 너무나도 큰 성당이라서 그렇습니다. 본래는 거대한 모스크였습니다. 그것을 노르만인이 들어와 성당으로 개축한 것인데 놀라운 것은 아직까지도 모스크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외벽 파사드도 그렇지만 코란의 문구가 남아있는 기둥들도 있습니다. 당시 노르만왕조가 무슬림을 탄압하지 않고 그들 기술자를 중용해서 쓸 정도로 개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1492년 통일 후 쫓겨 간 마지막 술탄과의 약속을 어기고 남아있던 무슬림을 탄압한 스페인과는 다른 행보를 보인 시칠리아였습니다.


이슬람 양식과 기독교 양식이 공존하고 있는 팔레르모 대성당


중세가 끝나기도 전 벌써 시칠리아엔 이렇듯 많은 외지인들이 출입하고 섞여 그들만의 고유한 문명을 꽃피웠습니다. 하지만 외세의 침략은 계속해서 이어졌습니다. 노르만왕조의 세습에 문제가 생기면서 독일계 호엔슈타우펜가문과 프랑스계 앙주가문이 격돌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수탈에 지친 시칠리아는 이베리아 반도의 아라곤왕국에 도움을 요청해 그들이 시칠리아에 들어와 새로운 지배자가 되었습니다. 그 후 아라곤이 1492년 스페인 통일왕국의 일원이 되면서 그때부터 시칠리아는 스페인의 식민지로 그 역사를 함께 해나갔습니다. 스페인과 한 배를 탄 것입니다. 스페인이 합스부르크왕가와 결혼동맹으로 하나가 되었을 때인 스페인 압스부르고의 지배를 받았고, 압스부르고가 끝나고 스페인이 프랑스의 부르봉왕가의 왕정으로 바뀐 1700년부터는 스페인계 부르봉왕가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그것은 시칠리아와 하나가 된 나폴리왕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두 국가를 합쳐서 양시칠리아왕국(1816~1861)으로 불렸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세상은 점점 변해갔습니다. 19세기 들어 마차의 시대는 가고 이탈리아 본토엔 철도가 깔리기 시작했습니다. 변혁의 시점 이탈리아 북부에선 독립과 통일의 움직임이 격렬하게 일기 시작했습니다. 시칠리아를 비롯한 남부 이탈리아가 스페인의 영역이라면 밀라노, 베네치아의 북부는 오스트리아의 영역이었습니다. 나폴레옹전쟁 후 1815년 그 지역엔 롬바르디아-베네치아왕국이라는 오스트리아의 괴뢰 국가가 세워졌습니다. 곧바로 이탈리아에선 독립운동과, 그런 김에 이탈리아 반도 전체에 단일한 국가를 만들자는 통일운동이 한꺼번에 일어났습니다. 부활이라는 뜻을 지닌 리소르지멘토(Risorgimento)의 시작입니다. 역사상 라틴족의 최고 전성기였던 로마제국의 부활을 꿈꾸며 붙여진 이름일 것입니다.


이탈리아 통일기 지도. 롬바르디아는 수복한 상태 (출처, 더 타임즈 세계사)

마침내 1861년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는 토리노를 수도로 한 이탈리아왕국의 출범을 선포했습니다. 수상인 카부르가 통일의 로드맵을 작성하고 실행해 나갔습니다. 그 결과 오스트리아의 식민지였던 롬바르디아-베네치아왕국은 1866년 완전한 독립을 이루었습니다. 프랑스 원군의 도움으로 가능했던 독립이었습니다. 대신 이탈리아는 니스와 사보이아를 프랑스에게 내주었습니다. 값비싼 통일의 대가를 치른 것입니다. 훗날 2차 세계대전 시 무솔리니 총통은 그곳을 이탈리아 영토로 재편입시켰습니다. 하지만 패전으로 전후 니스는 다시 넘겨져 오늘날 프랑스 최고의 휴양지로 이름을 날리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이탈리아 남부의 통일은 달랐습니다. 한마디로 거저로 어느 날 갑자기 한 영웅의 출현으로 통일이 이루어졌습니다. 붉은 혁명가, 가리발디가 혼자 그것을 해내었습니다. 물론 그의 민병대인 붉은 셔츠단이 그와 함께 했습니다. 가리발디는 나폴리를 접수하고 이어서 시칠리아까지 상륙해 간단히 그곳을 정복했습니다. 그런 후 가리발디는 깨끗이 그 양시칠리아를 북부를 통일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이탈리아왕국에 헌납했습니다. 가리발디가 마음만 먹으면 남부 이탈리아의 왕이 될 수도 있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체 게바라가 최고로 존경했던 진정한 독립운동가요 혁명가인 그였습니다. 1861년 이탈리아는 그렇게 남과 북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시칠리아에 상륙한 가리발디와 그의 붉은 셔츠단 민병대 (출처, 넷플릭스)


하지만 완전한 통일이 되기엔 마지막 관문이 하나 더 남아 있었습니다. 로마입니다. 로마는 성 베드로의 땅으로 교황이 다스리는 교황령이었습니다. 통일 세력은 1871년이 돼서야 비로소 로마를 접수해 완전한 통일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476년 서로마제국 멸망 이후 1396년 만에 이탈리아 반도에 통일 국가가 수립된 것입니다. 로마 점령은 통일 세력의 침공을 두려워한 로마의 지배자 교황 비오 9세의 요청으로 도시를 방어하던 프랑스군이 물러나며 가능해졌습니다. 자국에서 일어난 보불전쟁(1870~1871)으로 인해 병력을 철수시킨 것입니다. 이렇게 이탈리아의 통일엔 프랑스가 변수로 크게 작용했습니다. 로마 점령 이듬해인 1872년 로마는 명실상부한 이탈리아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이탈리아 통일에 관한 세세한 이야기는 일전에 이곳에 게재한 <'레오파드'와 이탈리아의 통일> 글에 비교적 상세히 나옵니다. 통일기 음악으로도 대전을 벌인 베르디와 요한슈트라우스 1세도 등장합니다. 오페라 <나부코>와 행진곡 <라데츠키>와의 격돌입니다.


시칠리아의 통일기를 이야기하려니 위의 <레오파드>도 다시 인용합니다. 레오파드, 표범 맞습니다. 우리나라엔 그렇게 원작대로 제목을 달고 번역이 된 소설입니다. 1956년 시칠리아의 마지막 공작인 람페두사가 쓴 소설입니다. 시칠리아에서 가문 대대로 살아온 스페인계 부르봉왕가의 후손인 살리나대공(Prince)이 주인공으로 나옵니다. 가상의 인물이지만 작가인 람페두사의 증조부를 모델로 한 캐릭터라 <레오파드>는 논픽션이 강한 역사 소설입니다. 그는 시칠리아왕국의 수도인 팔레르모 근교의 대농장에 저택을 짓고 왕비 같은 부인과 왕자와 공주 같은 자녀들과 함께 무엇 하나 부족함 없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자동으로 세습되는 작위와 토지를 기반으로 한 부는 그들이 사는 성과도 같은 저택만큼이나 견고해 그 삶은 영원불멸해 보였습니다.


괴테가 2년 간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쓴 <이탈리아 기행>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 칭한 팔레르모에선 화려한 무도회가 열리고, 그 무도회가 열릴 때마다 살리나 대공 집안의 레이디스 앤 젠틀맨은 입고 갈 멋진 드레스와 턱시도를 맞추었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식사 시간 때에도 그들 가족은 예의가 갖춰진 복장을 입고 길고도 큰 식탁에 둘러앉아 버틀러가 서빙하는 음식을 나누고 실버 세트를 달그락 거리며 살아왔습니다. 아, 이 묘사는 소설이 아니고 드라마입니다. 저는 소설은 아니고 넷플릭스에서 그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동명의 드라마 <레오파드>를 봤습니다. 저에게 시칠리아 여행을 강력하게 촉구한 드라마였습니다. 물론 소설에서도 그런 삶이 묘사될 것입니다.


이탈리아 통일기 시칠리아 대공 가문의 역사를 소재로 한 <레오파드>, 원작은 람페두사의 소설


살리나대공은 위의 시대적인 변화를 모두 목도합니다. 시칠리아에 상륙한 가리발디의 의용군을 맞이하고, 이탈리아왕국과의 합병에 찬성하는 시칠리아 민중들의 투표에 그도 한 표를 행사합니다. 그리고 1861년 이탈리아 왕국이 수립된 후 토리노로 가서 베르디의 <나부코>도 감상합니다. 화려하고 클래식한 오페라 극장이 나오고 멋진 공연이 화면을 가득 채웁니다. 이렇게 이탈리아 통일을 위한 변화의 물결에 그도 올라탄 것입니다. 통일 이탈리아왕국은 그에게 상원의원이 되어줄 것을 제안합니다. 전통 있는 시칠리아의 귀족인 데다가 유능하고 평판도 좋은 인물이니 신정부에서 그런 제안을 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 제안을 거절합니다. 아주 멋있는 반전 연설을 하며 거절을 합니다. 저는 그 연설이 <레오파드> 드라마의 백미라 생각했습니다. 이 글 주제와 잘 어울리는 연설이었습니다.


살리나대공은 2천5백년 넘게 외세로부터 셀 수 없이 많은 침략을 받아온 시칠리아의 역사부터 이야기합니다. 앞에서 제가 순차적으로 설명한 그 침략자들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시칠리아는 외세가 가져온 문명의 영향으로 개조도 되고 발전도 했다고 합니다. 나쁜 침략이지지만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다는 것을 인정한 것입니다. 하지만 시칠리안이 정작 바라는 것은 그냥 알아서 살게 내버려 달라는 것이라고 강변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그냥 시칠리아에서 잠들고 싶다고 합니다. 그러니 아무리 문명화가 좋다고 해도 그를 깨우지 말라고 합니다. 그렇게 그는 통일 정부의 상원의원직을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뼛속까지 시칠리안이라 밝힌 그는 이탈리안으로 불리며 사는 것을 원치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의 눈엔 변혁기 북부 이탈리아의 통일 세력도 그 이전에 왔었던 시칠리아의 또 다른 침략자로 보인 것입니다. 당시엔 남북이 그만큼 다른 나라였으니까요.


살리나대공의 위의 연설은 어쩌면 모든 시칠리안의 의견을 대변하는 것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내가 잘 살든, 못 살든 내 뜻대로 살겠으니 "그냥 냅둬!(Let it be!)"라는 것입니다. 긴 역사에서 얻은 교훈일 것입니다. 시칠리아 하면 우선 떠오르는 마피아는 본래 자경단 성격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하도 외세의 침략이 많은데 국가가 제대로 보호해주지 않으니 그들 스스로 시칠리아를 지키자고 결성한 것입니다. 그리고 주민들도 공권력을 믿느니 차라리 마피아에게 돈을 주고 보호를 받는 것이 안전하다고 해서 활성화된 것으로 알려집니다. 물론 어느 시점부터는 변질이 되어 우리가 아는 잔인하고 나쁜 마피아가 되었습니다. 영화 <대부>에서 나오는 그 마피아로 말입니다. 현재 시칠리아는 이탈리아의 20개 주중에서 가장 독립성이 강한 특별 자치주로 되어있습니다.


펄럭이는 시칠리아 깃발. 크리나트리아라 부름


이렇듯 이탈리아의 통일은 남부와 역사적 배경이 전혀 다른 북부의 주도로 이루어졌습니다. 북부는 외세인 프랑스를 끌어들여 통일이 되었지만 남부는 가리발디의 주도로 자체적으로 통일을 이룬 것입니다. 그런 연유로 이탈리아 북부와 남부는 갈등이 심합니다. 교육 수준이 높고 잘 사는 북부와 교육 수준이 낮고 못 사는 남부의 갈등입니다. 북부는 상공업이 메인이고 남부는 예나 지금이나 농업이 주산업이라 경제적 격차는 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북부인은 시칠리아를 비롯한 남부인을 멸시조로 "로마 아래는 다 아프리카"라는 말을 할 정도입니다. 그래서 남과 북의 분리독립까지 이야기되고 있는 이탈리아입니다. 물론 당장의 현실성은 없습니다.


시칠리아왕국의 국기였던 시칠리아 주기는 오묘하고 그로테스크하기까지 합니다. 국기 안에 여신이 들어가 있는 것도 특이한데 그 여신이 괴물인 고르곤족의 메두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변한 뱀도 국기 안에 들어가 있습니다. 풍요로운 땅을 상징하는 밀이삭도 있고, 시칠리아 모양의 삼각형을 드러내는 3개의 발도 달려있는 메두사입니다. 아마 역사적으로 워낙 침략이 많았던 시칠리아라 신화 속 메두사를 국기에 소환한 것으로 보입니다. 쳐다만 봐도 꽁꽁 굳어버리니 아예 쳐다볼 생각도 말라고 말입니다. 그녀의 모습은 시칠리아 어디를 가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어느 상점을 가도 기념품이나 패션 아이템에 그녀가 심벌로 프린트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탈리아 국기의 문양은 시칠리아에선 찾아보기 힘듭니다. 제 기억으론 오로지 공공장소에서만 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것도 시칠리아기, 이탈리아기, EU기 이렇게 3개의 기가 함께 펄럭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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