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더 시칠리아입니다. 이 글이 끝이길 바랍니다. 암튼 저는 기억의 미로에서 계속해서 지중해의 그 섬을 돌고 있습니다. 그러다 어떤 지점에서 저도 모르게 속으로 "유레카!"를 외쳤습니다. 그 말이 흔하게 들리는 유레카의 원조 시라쿠사에서 있던 일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시라쿠사에선 그런 속외침이 한 번 더 있었네요. 일전에 소개했던 시칠리아 국기 문양의 기념품을 발견한 곳도 그 도시의 한 골목이었으니까요. 오늘은 스페인 국기입니다. 시칠리아에서 스페인 국기라니요?
시칠리아의 시라쿠사는 기원전 8세기 고대 그리스 때부터 번성했던 고도 중의 고도입니다. 에게해와 이오니아해 사이에서 헬라스를 표방하며 한통속으로 살았던 그리스인들은 어느 순간부터 대그리스주의(Magna Graecia)를 표방하며 적극적으로 식민지 건설에 뛰어들었습니다. 시칠리아는 그 시대에 그리스인들이 입도한 것이었습니다. 시라쿠사를 유명하게 만든 유레카의 저작권자 아르키메데스는 기원전 3세기에 그 도시에 살았습니다. 그리스 끝물입니다. 그리스는 최종적으로 기원전 142년에 로마에 의해 멸망했으니까요. 시라쿠사는 과연 아르키메데스의 도시답게 조그만 다리로 연결된 구시가지인 오르티지아섬 입구에 그의 동상을 세웠습니다. 지금도 유레카를 외치고 있는지 그가 외친 'EUREKA'도 바닥에 그림자처럼 박제되어 있습니다.
아르키메데스는 시칠리아섬에서 외지인인 로마와 카르타고 간에 벌어진 1차 포에니전쟁 중인 기원전 212년쯤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전투가 벌어졌음에도 해변에서 기하학 문제에 심취해 있다가 로마 군인의 말을 듣지 않아 죽은 유명한 일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동행을 요구한 로마 군인에게 "난 지금 문제를 풀어야 하니 당신의 그림자 좀 비켜주게" 했다가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그렇게 수학에 살고 수학에 죽은 그였습니다. 당시 아르키메데스의 천재성을 높이 사 그를 데려오라고 한 로마군의 사령관 마르첼루스는 그 병사를 처벌했습니다.
2천5백 년 전 인물인 아르키메데스의 동상이 오르티지아섬 입구에 있다면 그 반대 바다 쪽 끝엔 시라쿠사를 지키는 성채가 서있습니다. 배의 이물처럼 뾰족한 이등변 삼각형 모양의 마니아체성(Castello Maniace)입니다. 과연 아르키메데스의 도시답게 성 모양도 기하학적으로 독특하고 아름답게 생겼습니다. 독일계인 호엔슈타우펜가문인 신성로마제국의 프리드리히 2세(1194~1250) 때 지어진 성입니다.
이후 시칠리아는 스페인 통일의 한 축인 아라곤왕국으로 넘어갔고 스페인이 통일된 1492년부터는 스페인 역사를 따라서 함께 움직였습니다. 제가 시라쿠사에서 유레카를 외친 것은 그 스페인왕국의 어떤 표식을 발견해서였습니다. 알량하나마 알고 있던 것이 의외의 장소에 있어서 "아니, 그것이 어떻게 이곳에?"라는 반응이 일은 것이었습니다.
그 표식은 신성로마제국과 스페인왕국의 국가 문장이 결합된 모양입니다. 오늘날 스페인 국기에도 상당 부분 들어가 있는 그 문양이 마니아체성 안 궁전 문 위에 새겨져 있었습니다. 안내문의 내용을 보니 합스부르크왕가와의 결혼으로 스페인 역사상 최고로 넓은 영토를 자랑했던 신성로마제국의 카를 5세(스페인에선 카를로스 1세) 때인 1545년 그 돌판 문양이 붙여진 것으로 쓰여 있었습니다. 시라쿠사, 아니 나아가 시칠리아가 스페인 & 신성로마제국 & 합스부르크왕가의 영토임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당시 스페인은 합스부르크와 결혼 동맹으로 스페인 압스부르고라 불리던 시대였습니다. 카를 5세는 태어나면서부터 합스부르크왕가인 아버지 펠리페 1세로부터는 오스트리아와 독일, 보헤미아, 헝가리를 포함한 신성로마제국과 부르고뉴를, 스페인의 후아나 여왕인 어머니로부터는 스페인과 이탈리아 남부, 신대륙을 물려받았습니다. 역사상 최고의 금수저인 그였습니다.
지금은 표식인 돌판이 세월의 풍상으로 절반이 깎여나갔지만 그 문장 안엔 스페인의 통일기 역사가 다 담겨있고 국가 슬로건도 들어있습니다. 보듯이 머리가 좌우로 2개 달린 쌍두독수리는 신성로마제국의 문장이자 합스부르크가문의 심벌입니다. 오늘날 스페인 국기엔 그 자리에 왕정을 뜻하는 왕관이 올려져 있습니다. 현재 스페인은 합스부르크가 아닌 프랑스계 부르봉왕가의 왕정국가이니까요. 독수리 아래 깎여서 해독이 불가한 방패형 돌판엔 레콩키스타 시기 스페인 통일을 주도했던 4개의 동맹국들이 새겨져 있었을 것입니다.
아래 스페인 국기로 보면 좌상부터 시계 방향으로 카스티야, 레온, 나바라, 아라곤을 가리킵니다. 아래 석류꽃은 통일의 땅인 산타페가 있는 그라나다 지역을 상징하는 꽃입니다. 그리고 중앙의 백합은 부르봉왕가를 상징하는데 시라쿠사 성채의 돌판엔 그것은 들어가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스페인을 그 왕가가 다스리기 시작한 것은 스페인 압스부르고가 끝난 1700년부터이니까요.
돌판 양옆에 있는 두 세트의 기둥은 헤라클레스의 기둥을 나타냅니다. 스페인 남단 아프리카와 거의 붙어있는 지브롤터는 그리스 신화에선 세상의 서쪽 끝이었습니다. 반대편 세상의 동쪽 끝은 오늘날 조지아의 코카서스(카프카스) 산맥이었습니다. 그런데 신화 속에서 아프리카와 유럽은 본래 붙어있었습니다. 그것을 제우스의 아내 헤라가 낸 미션을 완수하는 과정에서 헤라클레스가 바위틈을 벌려 물길을 내서 지브롤터 해협이 된 것입니다. 지중해와 대서양을 연결한 것입니다. 과연 천하장사 헤라클레스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떠받들기 위해 2개의 기둥을 세웠습니다. 시라쿠사 성채와 스페인 국기에 있는 그 기둥입니다.
그 기둥엔 스페인의 국가 슬로건인 ‘PLUS ULTRA’가 쓰여있습니다. 국기에서도 보이는 슬로건입니다. 그래서 그곳을 넘어가면 세상의 끝이라 바다 절벽으로 떨어져 죽는다고 믿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선 더 이상 갈 수 없다는 뜻인 NON PLUS ULTRA 지역이었지만 카를 5세는 보다 더 멀리 간다는 의미인 PLUS ULTRA로 문장과 의미를 바꾸었습니다. 스페인이 통일을 하고, 합스부르크와 결혼을 하며 그만큼 강해졌다는 것을 표방한 것입니다. 이런 스페인 국기의 유래가 시라쿠사의 성문 위에도 새겨져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16세기의 스페인은 시라쿠사, 시칠리아까지 접수한 지중해의 최강자요, 유럽 최강으로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습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