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떨결에 대답해놓고 따라간 음악회였지만 저의 행복감은 그 어느 때보다도 컸습니다. 게다가 그날은 낮 일정이 매우 피곤했기에 파김치가 되어서 간 음악회였습니다. 지난 목요일인 1월 29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대원문화재단의 신년음악회를 말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차이코프스키의 밤'이라는 타이틀로 KBS교향악단이 연주를 맡았습니다. 지휘는 2023년 '카라얀 젊은 지휘자상'에 빛나는 윤한결이, 레퍼토리는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와 <교향곡 제4번 F단조>였습니다. 바이올린 협주곡은 귀에 익숙한 곡이었지만 교향곡 4번은 처음 듣는 곡이었습니다. 1877년 차이코프스키가 후원자인 폰 메크 부인에게 헌정한 곡이라고 합니다. 3악장에서 모든 현악기가 활을 전혀 쓰지 않고 끝까지 피치카토로만 연주하는 것이 인상적인 곡이었습니다.
그날 떠오르는 신성 젊은 윤한결 지휘자의 퍼포먼스도, 풀 멤버가 출동한 KBS교향악단의 연주도 피곤했던 저를 청랑하게 깨웠지만 그날 저를 가장 행복하게 강타한 것은 협주곡 연주자인 바이올리니스트 김서현이었습니다. 그 길고 어려운 곡을, 그 어리고 여린 연주자가, 그렇게나 많은 청중들 앞에서 완벽하게 해낸 것에서 일단 감탄하고, 이단 행복했던 것입니다.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는 35분 길이로 1878년 발표 당시 너무 난해해 연주가 불가능한 곡이라 할 정도였습니다. 그날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엔 2천5백석의 빈자리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꽉 들어찼습니다. 그 앞에서 연주한 바이올리니스트 김서현은 2008년생으로 우리 학제로 치면 아직 고등학교 2학년 학생입니다. 예원을 졸업하고 해외에서 수학 중입니다. 국제 콩쿠르에서 많은 최연소 수상과 국내외 오케스트라에서 많은 협연 기록을 가지고 있는 검증된 연주자입니다. 당연한 기록일 것입니다.
제가 그날 유독 더 행복할 수밖에 없던 것은 그간 미디어나 기기로만 숱하게 들어온 그 명곡의 첫 라이브를 이토록 가장 완벽한 컨디션에서 감상했다는 사실에서도 기인할 것입니다. 그 곡은 차이코프스키가 남긴 유일한 바이올린 협주곡입니다. 그가 쓴 단 한 곡이 불멸의 대곡이 된 것입니다. 고로 그날은 제 생애 최고로 행복한 신년음악회였습니다.
그러고보니 저는 지난 12월 송년음악회에서도 비슷한 행복감을 느꼈습니다. 그날은 작은 살롱음악회였지만 연주자만 떼어내면 예술의전당에서 본 김서현과 비슷한 바이올리니스트에게 제가 홀릭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곳에도 올린 제가 관여하는 인문학교실의 송년음악회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날 송년음악회는 'Viva Jeunesse'란 타이틀에서 보듯이 어린 학생들이 꾸민 실내악 음악회였습니다. 그 글에서 저는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그들의 연주 실력에 놀랐다고 했습니다.
그날 출연한 4인 멤버 모두가 훌륭했지만 바이올리니스트 이현정은 더욱 돋보였습니다. 2010년 생으로 예원 3학년인 그녀가 가장 어려서 더 그렇게 느낀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날 그녀가 솔로로 연주한 곡은 모리스 라벨의 <치간느>였습니다. 역시나 온갖 기교가 동원되는 어려운 곡입니다. 하지만 그녀 역시 능숙하게 그 곡을 완벽하게 소화했습니다. 벌써 각종 국제 콩쿠르에서 최연소 수상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그녀답게 말입니다. 최근 제가 아는 어느 예원 학부모로부터 바이올리니스트 이현정은 예원의 에이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날은 사실 몰라봤었습니다. 과연 우리나라 음악 영재의 산실 예원입니다. 2년 선배인 김서현의 길을 따라서 걷고 있는 이현정입니다.
이렇듯 저는 연이어 간 2025년 송년음악회와 2026년 신년음악회에서 두 어린 음악 영재에게 흠뻑 빠졌습니다. 모두 바이올리니스트입니다. 김서현과 이현정, 그들은 모두 그들의 탁월한 재능을 일찍이 인정한 글로벌 후원사로부터 명기 과다니니를 후원 받고 있습니다. 그날 대원문화재단의 신년음악회에 저를 데리고 간 분은 이제 우리나라는 바이올린은 여자, 피아노는 남자로 가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클래식 음악강국으로도 가고 있는 행복한 대한민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