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리우스 카이사르(BC 100~44)는 기원전 58년 원정을 떠납니다. 오늘날 스페인인 히스파니아 총독을 마치고 돌아와 집정관까지 지냈지만 그는 또 로마를 떠나야 했습니다. 민중파이기에 로마 시민들에게 인기가 높고, 특히 댄디한 패션과 외모로 여자들에게 더 인기가 많았던 그였지만 그런 그의 유지 비용으로 진 막대한 빚이 그를 놓아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면책 특권을 사용하기 위해서라도 그는 총독을 계속해야만 했습니다. 또한 폼페이우스와 크라수스와 함께 한 삼두정치에서 독보적인 우위를 보이기 위해서도 로마 시민들에게 무언가 보여주어야만 했습니다. 그가 향한 목적지는 당시 로마 북부 국경선인 루비콘강 너머 야만인들이 사는 넓은 땅이었습니다. 로마인은 그곳을 갈리아(Gallia)라 불렀고 그곳에 사는 켈트족을 갈리(Gallia)라 불렀습니다. 영어로는 골(Gaul)과 골스(Gauls)입니다. 우리는 통상 지역은 갈리아, 사람은 골족으로 섞어서 부르고 있습니다.
7년의 정복사업 끝에 기원전 51년 카이사르는 대업을 완수했습니다. 그는 후세에 그의 공을 알리기 위해 <갈리아전쟁사>라는 책도 펴냈습니다. 정복사업 중 카이사르는 갈리아 동쪽, 오늘날 독일인 게르마니아도 다녀왔습니다. 로마 역사상 최고의 영웅답게 당시 경계선인 물살 센 라인강을 건너기 위해 10일 만에 다리를 건설했다는 전설적인 일화도 남긴 원정이었습니다. 하지만 게르마니아의 완전정복은 훗날을 위해 남겨두었습니다. 그에겐 더 큰 야심이 있기에 계속 외유를 할 수 없기에 그랬습니다. 마찬가지로 북쪽 바다 건너 오늘날 영국인 브리타니아도 두 번 다녀왔지만 역시나 같은 이유로 더 이상 정복까지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야심의 끝, 로마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기원전 49년 루비콘강을 반대로 건너 로마로 진격했습니다. 그의 돈줄인 크라수스가 죽은 상태에서 정적인 폼페이우스를 제거하고 제국의 1인자가 되기 위함이었습니다. 황금의 땅 갈리아에서 돌아오며 카이사르는 떠나기 전 지고 있던 막대한 빚을 전리품으로 모두 청산했습니다.
이것은 책에 나오는 역사입니다. 하지만 어느 책에서 갈리아는 영원히 정복되지 않는 곳으로 나옵니다. 왜냐하면 그 넓은 갈리아의 한 마을을 카이사르가 끝내 정복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책에서 카이사르는 로마의 원로원에 갈리아를 정복했다고 알리지도 못합니다. 오늘날 브르타뉴 지방인 아르모리카의 해안가 울창한 숲에 둘러싸인 마을입니다. 그 마을엔 아스테릭스와 오벨릭스라고 불리는 영혼마저도 공유하는 단짝 친구와 많은 골족이 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프랑스의 국민만화로 불리는 <아스테릭스>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로마에게 정복당했다. 하지만 전부 다는 아니다." <아스테릭스> 만화는 항상 이렇게 시작합니다. 물론 만화적인 상상력입니다. <아스테릭스>는 두 프랑스 만화가에 의해 1959년 탄생했습니다. 스토리와 글을 담당한 르네 고시니와 캐릭터와 그림을 담당한 알베르 우데조 두 콤비가 만화의 천국인 벨기에에서 만나서 출간했습니다. 갈리아는 오늘날 프랑스이고 골족은 프랑스인의 조상이기에 그들 민족과 국민의 정체성을 담은 캐릭터와 스토리가 있는 만화를 제작한 것입니다. 그들 조국 프랑스에 대한 애국심과 악한 강자는 선한 약자를 이길 수 없다는 세계관을 담은 것으로 보입니다. 거기에 만화적인 비틀기와 재미를 담아 <아스테릭스>는 110국에서 4억부 가까이 판매가 되었습니다. 그 정도 인기물이니 영화와 캐릭터 사업 등으로의 확장은 당연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중앙일보에서 연재했었고 여러 출판사에서 단행본으로 나왔습니다.
<아스테릭스>에서 주인공은 아스테릭스와 오벨릭스입니다. 마치 그들을 창조한 만화가처럼 역할 분담이 분명한 친구들입니다. 아스테릭스는 작은 체구이지만 명석한 두뇌로, 오벨릭스는 아둔해 보이지만 큰 덩치답게 힘으로 로마군을 제압합니다. 이때 그들 힘의 원천은 신비의 물약입니다. 오벨릭스는 어린 시절 그 물약통에 빠져 장사가 됐지만 아스테릭스와 마을 사람들은 그 물약을 먹고 초인적인 힘을 얻어 많은 로마군에게 승리합니다.
골 마을엔 그 마법의 물약을 제조해서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드루이드 사제 파노라믹스란 노인이 살고 있습니다. 파노라믹스는 황금의 낫을 사용해 마법의 물약 재료인 겨우살이 풀을 캡니다. 드루이드는 켈트족의 지배계급으로 영험한 능력을 지닌 종교 사제 집단입니다. 그래서 <아스테릭스>의 만화가는 사제의 이름도 그렇게 모든 것을 볼 수 있다는 의미로 지은 듯싶습니다. 드루이드는 바다 건너 브리타니아로도 건너가 브리튼족의 지배 계급이 되기도 했습니다. 아스테릭스 마을 사람들은 로마군을 물리치면 성대한 멧돼지 파티를 엽니다. 갈리아인의 축제로 그렇게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대신 카이사르는 만화답게 코믹한 정복자로 나옵니다. 하지만 승부와 상관없이 품격을 지키며 때론 공생하는 존재로 나옵니다.
기원전 50년대 갈리아엔 아스테릭스 마을에 사는 드루이드 말고도 당연히 많은 드루이드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스테릭스>에선 전국에 있는 드루이드들이 카르누테스에서 모여 연례 회의를 여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 숲은 카이사르가 쓴 <갈리아전쟁사>에서도 언급되는 드루이드의 성소와도 같은 곳입니다. 오늘날 샤르트르와 오를레앙 사이의 숲지대입니다. 그런데 이 카르누테스숲에 사는 것으로 추정되는 드루이드 사제를 소재로 한 유명 오페라가 있습니다. <아스테릭스>와 시대 배경이 같은 기원전 50년대 로마 침공을 받은 갈리아의 골족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은 여자로 드루이드 여사제입니다. 벨칸토 오페라를 꽃피운 벨리니의 <노르마>가 바로 그 오페라입니다. 노르마는 주인공인 여사제의 이름입니다. 원작은 프랑스인인 알렉상드르 슈메가 쓴 희곡입니다. 만화 <아스테릭스>는 희극적이지만 오페라 <노르마>는 비극적입니다.
빈센초 벨리니(1801~1835)는 이탈리아 통일기 시칠리아의 제2 도시인 카타니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1831년에 작곡하고 밀라노의 라스칼라 극장에서 초연한 2막 오페라 <노르마>엔 대표적인 아리아로 <정결한 여신>이 나옵니다. 아름다운 플루트의 전주에 이어 누에에서 비단 실이 나오듯 끊이지 않는 아리아가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곡입니다. <정결한 여신>은 달의 여신 다이애나를 가리킵니다. 드루이드 여사제인 노르마는 황금의 낫으로 겨우살이를 캐며 그 아리아를 부릅니다. 우리에겐 최고의 프리마돈나로 기억되는 마리아 칼라스가 취입한 노래로 알려질 정도로 그녀 하면 딱 떠오르는 노래입니다.
<노르마>의 노르마는 당시 갈리아를 침공한 총독 폴리오네와 사랑에 빠집니다. 아이도 둘 낳았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갈리아 드루이드의 수장 오로베소입니다. 즉, 갈리아 골족의 영적 지도자의 딸이 그곳을 침공한 적국의 수장과 사랑에 빠진 것입니다. 우리 역사의 낙랑공주와 호동왕자가 연상되는 스토리입니다. 여기서 총독 폴리오네는 어쩌면 갈리아를 정복한 율리우스 카이사르일 것입니다. 딱 그 시절 그가 갈리아를 정복한 총독이었으니까요. 희곡이든 오페라이든 창작극이니 다른 이름으로 등장시켰을 개연성이 충분히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르마가 사랑하는 남자는 카이사르이거나 최소한 그의 부하입니다. 하지만 연인인 그를 위해 동족인 골족의 봉기를 막아달라고 달의 여신에게 기도까지 드리는 노르마를 배신하고 폴리오네는 젊은 여사제인 아달지자와 사랑에 빠집니다. 그래야 오페라이든 희곡이 되니까요.
최종적으로 노르마는 연인과 아이까지 포기하고 - 정확히는 양보하고 - 드루이드 사제로서 정결 서약을 어기고 적국인 로마를 이롭게 한 그의 죄를 마을 사람 앞에서 고백하고 불속으로 뛰어듭니다. 그런데 변심했던 폴리오네 총독도 노르마의 사랑과 희생정신에 감동해 그녀를 따라 불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영원히 하나가 되었습니다. 로마와 갈리아의 행복한 결합이 아니라 비극적인 종말로 끝이 난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폴리오네 총독이 카이사르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가 당시 드루이드 여사제를 사랑하고 애를 낳았을 수는 있어도 갈리아에서 죽지는 않았으니까요. 물론 창작물이니 엔딩만 바꿀 수는 있을 것입니다. 카이사르는 이후 루비콘강을 건너 원로원을 제압하고 정적인 폼페이우스를 추격해 이집트까지 가 클레오파트라를 만나고, 그녀와 연인관계를 맺고 아들인 카이사리온을 낳았습니다. 이집트판 <노르마>의 남자 주인공이 된 것입니다.
기원전 50년대 갈리아를 배경으로 한 창작물은 또 있습니다. 이번엔 그림입니다. 프랑스 역사물을 주로 그린 리오넬 노엘 로이어(1852~1956)가 그린 <카이사르에게 항복하는 베르생제토릭스>입니다. 베르생제토릭스는 카이사르에게 맞서 가열차게 싸운 갈리아 부족 연맹의 지도자입니다. 특이한 이름부터가 역사엔 존재하지 않는 이름으로 갈리아어로 '위대한 전사의 왕'이라는 뜻입니다. 본명은 따로 있지만 그는 그 이름으로 더 익숙하게 알려져 있습니다. 침략자와 맞서 싸운 골족 전체의 영웅이니 오늘날 프랑스에서 영웅으로 대접받고 있습니다.
그림의 항복 장면은 기원전 52년의 모습입니다. 거센 저항 후 결전인 알레시아 전투에서 패하고 정복자인 카이사르 앞에서 항복하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도무지 항복하는 모습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언뜻 봐서는 누가 카이사르이고 누가 베르생제토릭스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오른쪽 무릎 꿇은 이가 그일까요? 그림 제목도 독특합니다. 불어인 원 제목은 영어로는 <Vercingetorix throws down his arms at the feet of Julius Caesar>입니다. 그러니 정확한 긴 제목은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발아래 무기를 집어던지는 갈리아의 왕>입니다. 이렇게 보니 갈리아의 왕은 말을 타고 항복을 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붉은 옷을 입은 이가 카이사르입니다. 로마에서 붉은 옷은 권력과 승리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전쟁의 신 마르스의 색이기에 로마군단의 유니폼 컬러가 되었습니다.
프랑스의 화가인 로이어가 이렇게 정복자와 피정복자를 애매하게 표현한 것은 갈리아가 프랑스이고, 베르생제토릭스가 그들 민족의 조상이어서 그렇게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패장이지만 선조의 자존심을 세워준 것입니다. 베르생제토릭스는 카이사르의 개선식을 위해 로마로 압송되어 비참하게 수감되었다가 기원전 46년 처형되었습니다. 관례를 깨고 적국 수장치고는 예우를 받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게 역사 속에서 까맣게 묻혀있던 그는 19세기 중반 나폴레옹 3세에 의해 민족영웅으로 다시 부활했습니다. 프랑스의 뿌리, 제1호 민족영웅이 된 것입니다.
보듯이 갈리아 띄우기는 <아스테릭스>와 <노르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만화에서 갈리아는 끝까지 정복되지 않았고, 오페라에서 여사제는 죽음으로 그녀의 자존심을 지켰습니다. <아스테릭스>에선 로이어의 명화도 희극적인 소재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만화에선 베르생제토릭스가 바닥에 무기를 내려놓을 때 그 창과 칼이 카이사르의 발등을 찧습니다. 비명을 지르는 카이사르.. 항복할 때조차 적에게 아픔을 주게 한 것입니다. 비장한 항복 장면임에도 만화가 고시니와 우데조의 기발한 재기가 발동했습니다.
벨리니가 쓴 오페라가 아닌 원작자인 알렉상드르 슈메가 쓴 <노르마>에선 그녀가 그토록 사랑했음에도 그녀 몰래 바람을 피운 로마인 총독 폴리오네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을 죽이기까지 합니다. 원작의 제목인 <노르마, 또는 유아 살해>에서 보듯이 말입니다. 각색된 <노르마>의 오페라 대본은 벨리니와 같은 이탈리안인 펠리체 로마니가 썼습니다. 갈리아의 노르마는 그렇게 죽음과 죽임으로 명예와 자존심을 지킨 골족의 여전사, 아니 여사제였습니다.
이렇듯 기원전 50년대 로마인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갈리아를 정복했을 때를 배경으로 한 세 개의 창작물에서 보이는 갈리아인의 모습은 꽤나 닮아보입니다. 정복되어도 정복을 인정하지 않거나, 죽어도 서서 죽는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여러 공통점이 있지만 장르가 다른 이 작품들의 작가는 모두 프랑스인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프랑스인들이 그렇게 콧대가 높고 자존심이 센가 봅니다.
19세기말 보불전쟁(1870~1871)에서 패하고 당시 프랑스 초등학교에서는 "우리의 조상은 갈리아인이다"라고 가르쳤다고 합니다. 프랑스인을 하나로 뭉치게 하기 위해 민족정신을 강조한 것입니다. 물론 이후 게르만민족 대이동 시 그 땅의 새로운 주인이 된 프랑크족과 골족이 섞였기에 오늘날엔 우리나라 한민족처럼 그렇게 프랑스인의 정체성으로 골족 한 민족만을 가르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뿌리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갈리아가 나오는 것은 분명합니다. 신기하게 많은 민족의 이합집산과 민족의 이동에 따라 국경선과 지도가 변한 유럽이지만 오늘날 프랑스의 영토와 고대 갈리아의 영토는 판박이로 거의 똑같습니다. 나폴레옹이 태어난 코르시카섬만 빼면 말입니다.
(별개로 다시 역사..)
프랑스 역사책에 최초로 등장하는 프랑스의 도시는 프로방스 남단 지중해 연안의 마르세유입니다. 그곳은 기원전 7세기 고대 그리스인이 개척한 식민 도시로 마살리아로 불렸습니다. 이후 내륙으로 론강과 연결되는 해상무역의 중심지로 성장했습니다. 로마는 갈리아를 정복하기 전부터 마살리아와 동맹관계를 맺었습니다. 로마의 동맹도시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기원전 3세기 카르타고와 지중해 패권을 놓고 벌인 포에니전쟁 시 로마는 그곳에 군대를 주둔시켰습니다. 마르세유가 된 마살리아는 한니발이 등장하는 포에니전쟁의 최대 격전인 2차전(BC 218~202)에 등장합니다. 역사적인 등장입니다.
2차 포에니전쟁 시 한니발은 역시나 로마의 동맹도시였던 히스파니아의 사군툼을 격파하고 코끼리를 타고 육로로 로마 본토로 향했습니다. 로마군은 당연히 마르세유를 통과할 줄 알고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니발은 마르세유를 돌아서 알프스를 넘어 로마로 전진했습니다. 그렇게 로마 본토는 큰 피해를 입었지만 로마는 그 전쟁에서 승리하고 갈리아 남단인 마르세유 주변에 제국의 첫 번째 속주인 프로빈키아를 건설했습니다. 그것이 지방을 뜻하는 오늘날 프로방스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기원전 50년대 카이사르가 갈리아 전체를 완전정복한 것입니다. 이후 로마는 제국으로 팽창하며 많은 속주를 건설했지만 프로방스만은 첫 번째 상징성이 있어 고유명사화 되어 오늘날까지도 같은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