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인데 영국이 아닌 나라, 왕실령

by 마하

영국엔 영국인데 영국이 아닌 나라가 있습니다. 무려 3개나 있습니다. 왕실령(Crown Dependency) 국가입니다. 영국과 프랑스 사이 채널제도의 저지섬과 건지섬, 그리고 영국과 아일랜드 사이에 있는 맨섬이 그들입니다. 이 3개 섬은 말 그대로 영국 왕실에 소속된 나라이지 영국이라는 나라에 속해 있지 않습니다. UK의 영토가 아니라 윈저왕가의 영토라는 것입니다. 왕가의 이름은 바뀌어도 대대로 상속되어 왔습니다. 반면에 이들 섬들보다 훨씬 더 멀리 떨어진 지브롤터, 케이맨제도, 버진아일랜드, 포클랜드는 영국 영토인데 말입니다. 과거 제국주의 시절 아프리카의 콩고가 벨기에 레오폴드 2세의 사유지였던 것과 유사한 성격의 국가들입니다.


이들 3개 섬은 역사상 어느 시점 영국 왕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대신 보호를 받는 계약관계를 맺었습니다. 프랑스에 가까운 저지섬과 건지섬의 경우 과거 그 섬들은 노르망디에 있는 노르만공국의 영토였습니다. 프랑스의 땅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 공국의 공작이 1066년 잉글랜드를 침공해 윌리엄 1세가 되면서 노르만왕가를 열고, 오늘날까지 이어 내려오는 영국왕가의 시조가 된 것인데, 그때의 군신 관계를 지금도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프랑스로 남지 않고 계속해서 영국 왕에게 충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위치가 다른 맨섬도 유사한 배경과 이유입니다. 왕실령은 자치 의회를 운영해 영국 의회나 정부의 간섭을 전혀 받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그들의 군주인 찰스 3세의 말엔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영국은 대신 그 왕실령 국가들의 국방과 외교를 담당해 줍니다. 왕가에선 부총독급 인사를 그 섬들에 파견합니다. 영국 입장에선 정복하지 않는 것이, 왕실령 국가 입장에선 독립하지 않는 것이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기에 이런 독특한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가장 큰 양자의 이익 관계는 왕실령이 조세회피처라는 것입니다. 그 국가들은 저세금이나 무세금으로 전 세계의 돈을 유치하고 그 돈을 런던의 금융가로 보냅니다. 즉 왕실령이 영국 금융 산업의 게이트웨이 역할을 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외국계 보험을 들면 어느 날 갑자기 이 섬들에서 발송한 우편물을 받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왕실령 국가는 올림픽 조직위원회가 없기에 올림픽에는 영국 대표로 출전을 합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포인트는 그 영국이 UK가 아니고 GB라서 가능한 것입니다. 영국은 올림픽에서는 국명을 UK가 아니라 GB(Great Britain)로 출전하니까요. 하지만 왕실령도 영연방 국가들끼리의 대회에는 자국 국기를 들고 개별 국가로 출전을 합니다. 아래 사진에 있는 국기들입니다.



참 복잡하고 이야깃거리 많은 나라 영국입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영국은 왜 올림픽에선 엄연한 UK라는 공식 국호가 있음에도 GB라는 국호로 출전을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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