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니카공화국 & WBC 8강전

by 마하

지난 월요일엔 천국을, 오늘 토요일엔 지옥을 맛보았습니다. 극단적인 표현입니다만 한 주간에 이렇게 극단적인 우리나라 선수단의 운동 경기를 보게 되다니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회에서 8강전을 끝낸, 아니 끝냄을 당한 우리나라 야구 국가대표의 지난 두 경기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실제 선수들은 그렇게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밤잠을 설치며 설레는 마음으로 아침을 기다린 야구팬들도 그에 못지않은 충격 속에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국가대표 야구 선수들이 국제대회에 나가서 저렇게 질 수도 있구나라는 것을 목도했으니까요.


도미니카에게 7회 10대 0 콜드게임패를 당했고, 그 콜드게임패도 3점 홈런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도미니카의 아웃카운트가 남은 상태에서 9회말 끝내기 홈런과도 같은 7회말 끝내기 홈런 콜드게임패를 당한 것입니다. 그리고 보듯이 우리나라는 단 1점도 내지 못하고 영봉패를 당했습니다. 예선도 아닌 본선인 8강전에서 이런 게임을 했으니 대회의 수준을 떨어트린 경기였습니다. 국내 3사 공중파 방송사들은 11시까지 편성된 게임을 서둘러 10시도 안 되어 종료시켰습니다. 김이 샌 것입니다.


도미니카는 우승후보로 꼽히는 최강팀입니다. 제가 야구 경기를 보며 이렇게 상대팀 선수들에게 흥미를 가지고 경기 전부터 설렘을 가진 경기는 처음이었습니다. 내로라하는 슈퍼스타급 메이저리거들이 꽉 차있는 선수단이기에 그렇습니다. 일본엔 오타니와 야마모토 두 선수만이 있지만 도미니카는 차고도 넘칩니다. 블게주라 불리는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 후안 소토, 타티스 주니어, 마차도를 비롯해 감독도 메이저리그의 전설인 알버트 푸홀스이니 화려하기가 그지없는 팀이기에 그랬습니다. 메이저리그 올스타 선수단이라 불러도 손색없는 국가대표 팀입니다. 역시나 그들은 예외없이 그들 몸값에 걸맞은 플레이를 보여주었습니다. 우리 선수단의 각오와 결심이 무색할 정도로 게임을 리드하며 화려한 쇼를 펼쳤으니까요.


보듯이 실제 전력도 그렇고, 신뢰감이 높아진 AI도 우리나라의 승리 확률을 25% 정도로 보았으니 우리가 도미니카에게 패하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이기길 기대했다면 그것은 운이 작용해야 하는데 운은 엇비슷한 전력에서나 작용할 것입니다. 우리와 전력이 비등한 호주와 치른 8강 결정전 같은 경기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날 어이없는 호주 유격수의 병살 플레이 실패는 우리에게 분명한 운으로 작용했으니까요. 그렇듯 경우의 수를 따져서 올라가는 팀들끼리에서나 운이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수준이 현격히 다른 한수 위의 팀이라면 거의 운이 개입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오늘 경기는 매우 실망스러웠습니다. 결과와 상관없이 경기 내용이 그랬습니다.


야구가 투수놀음이라는 것은 오늘 게임에서도 여실히 증명되었습니다. 이번 대회처럼 선수 보호차 투구수를 크게 제한해도 투수, 특히 선발투수의 역할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니까요. 우리는 그 싸움에서부터 확실히 졌습니다. 초반부터 기가 꺾여 들어간 것입니다. 반면에 도미니카의 투수는 사이영상 2위 레벨의 매우 우수한 투수였습니다. 그렇다면 야수가 공격은 시원찮아도 수비라도 잘해야 실점을 최소화할 수 있는데 오늘은 전혀 그렇지도 못했습니다. 포수의 플레이는 엉성했고, 내야수의 수비는 미숙했습니다. 다 보이지 않는 실책들이었습니다. 그런 수준 차이 나는 미세한 것들이 대량실점으로 이어져 치욕의 콜드게임패를 당한 것입니다.


경기를 보며 저는 우리의 한 선수가 빠진 것을 매우 아쉬워했습니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김하성입니다. 그는 수비 시 상대팀 공격 주자를 잡으러 송구할 때면 겁이 날 정도로 무섭고 빠르게 야수의 미트에 공을 꽂아 넣습니다. 전광석화와도 같이 말입니다. 그렇게 간발의 차로 상대팀 공격수를 잡아내곤 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런 플레이는 보기에도 시원하고 통쾌합니다. 파이팅 넘치는 그의 수비는 투수를 비롯해 다른 야수들에게도 힘이 될 것입니다. 그가 공격 능력은 떨어져도 메이저리그 골든글러브로 뽑힌 이유입니다. 오늘 우린 그런 플레이는 볼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상대한 도미니카공화국은 카리브해의 히스파니올라섬에 위치한 나라입니다. 섬 서쪽에는 아이티가 있어 그 한 섬을 두 나라가 양분하고 있습니다. 히스파니올라섬(76,192km2)의 2/3 정도가 도미니카(48,670km2)로 우리나라 절반 정도의 크기입니다. 인구는 천만이 조금 넘는데 그런 나라가 미국 메이저리그를 호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그 나라에선 메이저리그 선수가 온 가족을 먹여 살리는 최고 인기 직업으로 선망이자 목표일 것입니다. 그런 헝그리 정신이 오늘 우리가 본 선수들을 강하게 키워냈을 것입니다.


히스파니올라는 작은 스페인이란 뜻으로 1492년 그 지역을 발견한 콜럼버스가 지은 이름입니다. 그는 통일 스페인왕국의 이사벨 여왕의 투자로 그곳에 간 것이었으니까요. 그래서 당시 그곳을 발견한 그의 공식 직함은 히스파니올라 총독이었습니다. 1506년 그가 죽으며 스페인과의 관계가 틀어져 스페인에 묻히길 원치 않는다는 그의 유언에 따라 그의 무덤은 도미니카에 조성되었습니다. 훗날 유해를 옮겨 지금은 스페인의 세비야 대성당에 콜럼버스의 묘가 있지만 도미니카인들은 지금도 자국에 있는 무덤이 진짜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역사적 실체도 그렇지만 관광자원 차원에서라도 그렇게 주장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카리브해엔 도미니카라 불리는 국가가 하나 더 있습니다. 카리브해 동쪽 끝에 위치한 아주 조그만 섬나라인 도미니카연방입니다. 그곳은 영국의 식민지였습니다.


아래 사진은 작년 가을부터 올초까지 동대문 DDP에서 전시한 장미셸 바스키아의 그림입니다. 야구를 소재로 한 그림이라 이 글에 올려봅니다. 아버지는 아이티 출신이고 엄마는 푸에르토리코 혈통인 바스키아가 그린 인물은 메이저리그 최초의 흑인 선수인 재키 로빈슨입니다. 억압과 불의한 관습을 타파하고 메이저리거가 된 그에게 바스키아는 그림에서 최고 흑인의 영예를 상징하는 왕관을 선사했습니다. 재키 로빈슨의 등 번호 42는 현재 메이저리그 전 구단에서 영구 결번으로 처리해 영원한 그의 넘버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