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바도르 달리
지난 15일 성료한 국립중앙박물관의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소위 리먼 컬렉션을 막차를 타고 다녀왔습니다. 마지막 날 빛을 타고 어디선가 날아온 티켓을 들고 급히 전시장으로 향한 것입니다. 4장이나 티켓이 생겼지만 지인을 부를 시간도 안 되어 혼자서 달려갔습니다. 남은 3장의 티켓은 현장 매표소에서 줄 서있는 대학생처럼 보이는 커플과 솔로남에게 주었습니다. 당혹해하는 그들에게 그냥 운이 좋은 날이라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어차피 그 3장의 티켓은 그로부터 5시간 후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휴지가 되는데 유용하게 장학표(?)로 사용된 것입니다. 전시장은 역시나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피날레!
독일계인 리먼 가문의 브라더스는 1844년 미국 남부로 이주해 면화중개업으로 큰돈을 벌었습니다. 그 돈으로 금융업에 진출해 세계적인 투자은행이 된 것입니다. 리먼 컬렉션은 가문의 전성기인 로버트 리먼(1891~1969) 때 집중적으로 사들인 2,600점에 달하는 미술품입니다. 그는 죽으며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그 작품들을 기증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그가 살던 집과 같은 분위기의 전시실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미술관측은 유언과도 같은 그의 말을 듣고 별도의 전시관을 건립했습니다. 1975년에 오픈한 미술관 내 로버트 리먼 윙(Robert Lehman Wing)입니다. 인산인해에 밀려 발꿈치를 들고 뒤편에서 고개를 들고빼고 겨우 감상한 저와는 달리 리먼 윙의 관객들은 마치 그의 저택에 초대받아서 그림을 보듯 안락하고 우아하게 감상을 할 것입니다. 언젠가 뉴욕에 가서 그렇게 볼 날이 있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리먼 윙 오픈 1년 전인 1974년 뉴욕의 반대편인 서부 LA에도 역사적인 미술관이 세워졌습니다. 그곳에선 기업인이 아예 그가 수집한 미술품 전시를 위해 직접 미술관까지 건립했습니다. 석유로 큰돈을 번 폴 게티(1892~1976)가 자택에 있던 미술관을 확장해서 집 근처에 정식으로 미술관을 세운 것입니다. 말리부에 위치한 게티 빌라입니다. 그 미술관은 게티 사후 근처에 더 큰 규모의 게티 센터로까지 확장되었습니다.
리먼 컬렉션은 전시회를 다녀온 많은 분들이 감상문과 그림 사진도 올렸기에 저는 생략하겠습니다. 다만 저는 그날 본 81점의 작품들 중 제 흥미를 촉발한 작품이 있어 그에 대해 간략 서술하고자 합니다. 바로 전시실의 첫 번째 그림인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레이스를 뜨는 여인>입니다. 그런데.. 그런데 아닙니다. 그의 작품이 아니었습니다. 제목은 모른다 해도 페르메이르의 그림을 본 사람이라면 그 인상적이고 유니크한 터치감과 색상으로 누구라도 그의 작품이라 할 그 그림이 다른 사람이 그린 작품이었습니다. 그것도 그 유명한 특급 화가 살바도르 달리(1904~1989)가 그린 작품이었습니다. 그래서 놀람과 함께 흥미가 발동한 것입니다.
흔히 모사품, 카피작, 레플리카, 더 가면 짝퉁이라 불리는 작품들은 대개 작자 미상으로 무명인 작가들이 제작하곤 합니다. 그런데 천하의 달리가 페르메이르의 원작을 똑같이 모사해서 그린 것입니다. 이유는 그 작품을 너무나도 소장하고 싶은 리먼이 억만금을 줘도 돈으로는 살 수 없기에 달리에게 의뢰한 것으로 보입니다. 페르메이르의 <레이스를 뜨는 여인>이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인가 달리는 이 그림에 누가 봐도 알 수 있게 그림 상단에 그의 사인을 큼지막하게 남겼습니다.
더치맨인 페르메이르(1632~1675)의 현존하는 작품은 총 37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른 화가와 비교할 때 현저하게 적은 작품수입니다. 이유는 그가 <레이스를 뜨는 여인>의 여인처럼 정말 한 땀 한 땀 정성을 기울여 집중해서 그렸기 때문입니다. 제작 시간이 오래 걸린 것입니다. 게다가 전업 화가도 아니었으며 젊은 나이라 할 수 있는 43세에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리먼이 그의 작품을 매입하기가 힘들었던 것입니다. 대신 페르메이르를 존중하는 마음을 담아 모작을 해도 현존하는 최고의 화가에게 의뢰한 것으로 보입니다. 달리도 페르메이르를 오마주하는 마음으로 작업에 임했을 것입니다.
제가 리먼 컬렉션에서 달리에 집중한 또 다른 이유로는 그 전시회 바로 전에 다녀온 전시회에서 그의 작품들을 집중적으로 감상했기 때문입니다. 올초인 1월말에 코엑스에선 '월드아트페스타 2026'이 열렸는데 그 페어엔 조직위가 '올해의 얼굴'로 선정한 달리의 특별전이 동시에 열렸습니다. 80여점에 달하는 달리의 드로잉, 판화 등의 작품이 전시장 중앙의 메인 부스를 넓게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나라에 온 달리의 작품들 중에서 제가 흥미롭게 본 것은 그의 '신화 시리즈'였습니다. 그리스신화에 그의 초현실적인 해석을 가미하여 신화를 더욱 신비롭고 몽롱하게 만든 작품들이었습니다. 위의 페르메이르의 그림과는 달리 누가 봐도 달리스럽게 말입니다.
우연적 객관성(Objective Chance)이라는 기법으로 얼룩, 번짐, 투사 등에서 출발해 세밀함을 더하는 달리만의 방식으로 제작된 시리즈였습니다. 그러니 달리의 <비너스의 탄생>은 보티첼리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아래 그림에서 보듯이 아름다운 여신을 그리는데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못처럼 보이는 날카롭고 뾰족한 물품을 지속적으로 배치했습니다. 에로티시즘과 사디즘, 기독교와 신화, 초현실과 현실을 표한 것입니다. 그 못은 그 아래 그의 다른 작품인 마릴린먼로에서도 발견이 됩니다.
이렇듯 달리는 현실과 초현실 또는 비현실, 과거와 현재, 또는 미래를 오갔습니다. 하지만 그의 작품에선 아트와 커머셜이란 또 하나의 대립각도 보입니다. 위의 페르메이르 작품의 경우도 그에게 그 작업은 작가에 대한 오마주도 들어있지만 상업적인 이익도 작용했을 것입니다. 클라이언트인 리먼의 의뢰에 따라 모작을 그렸을 테니까요. 그렇게 아트와 커머셜도 오간 달리였습니다.
달리는 스페인의 예술 수도 바르셀로나 근교 출신입니다. 같은 지역에서 론칭한 세계적인 캔디 회사의 창업자와 친구 관계였습니다. 1969년 어느 날 달리는 그 캔디의 로고를 고민하고 있는 친구에게 즉석에서 쓱싹 로고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노란 바탕에 새빨간 이름의 그 강렬한 츄파춥스가 57년 전 그렇게 달리에 의해 탄생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