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 시집가는 여인들 2

by 마하

어제 경상북도 상주의 상가를 다녀왔습니다. 매형이 상주 분인데 누나의 시숙이 상을 당해서 다녀온 것입니다. 근자에 한 가장 장거리 운전으로 온전히 하루가 소요되었습니다. 상주 시내의 장례식장에서 조문을 하고 매형을 비롯해 사돈분들과 인사를 마친 저는 누나의 묘가 있는 근교 누나 시댁의 가족묘로 향했습니다. 저와 나이 차가 적잖이 나는 하나뿐인 누나는 3년 전 60대 후반의 이른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렇게 누나가 있는 상주를 갔으니 당연히 누나에게 들른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올해 3주기 기일에는 무조건 가려던 터였습니다.


생전에 인천에 살던 누나는 상주의 시집을 과연 몇 번이나 갔을까요? 거리가 있어 건강했던 시절에도 바쁜 생업으로 인해 명절이나 주요 경조사 발생 시에만 간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누나는 죽어서는 이제 그 시집에 영원히 눌러앉았습니다. 누나가 있는 가족묘 단지엔 먼저 고인이 되신 시부모와 그 윗대의 시집 어른들이 상단에 모셔져 있고, 하단 누나가 자리 잡은 곳엔 아직은 비어있지만 매형의 친형제들과 사촌, 육촌 형제들, 그리고 그 배우자들의 묘들까지 조성되어 있으니까요. 그리고 누나의 시집이자 매형의 고향집도 그 묘지와는 불과 200미터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으니 누나는 이제야 온전하게 시집의 식구가 된 것입니다. 현재 그 집엔 장자인 매형의 큰형 식구가 살고 있습니다. 이번에 돌아가신 분입니다.


그런데 사후 이렇게 시집을 가는 여인이 비단 저의 누나뿐일까요?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된 우리 전후 세대에 결혼한 여인들 중에선 꽤나 많을 것입니다. 그녀들과 결혼한 남편들의 상당수가 농어촌을 떠나, 또는 지방 도시를 떠나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에 경제적인 기반을 잡고 살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니 그 여인들은 시집을 갔다고는 하나 과거처럼 시집이나 그 동네에 살지 않고 시집과는 먼 도회지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요즘은 시집이라는 말도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 과거엔 "얘야~ 시집가거라"란 가요가 대놓고 유행할 정도로 과년한 여자에게 시집을 가라고 부추겼지만 지금은 웬만한 용기(?)가 없으면 시집을 가라는 말은 하기 힘든 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시집이란 용어 자체도 대신 성(性)이 드러나지 않는 결혼이란 말로 바뀌어서 통용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남자들에게 하는 장가라는 말도 전보다는 덜 들리고 있습니다.


과거 큰아들이 결혼을 하면 그 신혼부부는 아버지가 살던 집에서 사는 것이 보편적이었습니다. 시집온 새색시는 그렇게 시집에 들어와 살림을 차린 것입니다. 그리고 장남은 그 집을 아버지에게 물려받았습니다. 그 시점에 시집 곳간의 열쇠도 그 집에 함께 산 맏며느리에게로 넘어갔을 것입니다. 유교의 룰대로 제사를 책임지는 장남의 비중이 컸던 시대였습니다. 차남들은 결혼을 하면 아버지의 집에서 나가 그 동네에 새 보금자리를 차리곤 했습니다. 그러면서 동족촌이 형성된 것입니다. 그러니 여자가 결혼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시집을 가는 것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장가는 장인의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모두 우리 옛날 결혼제도에서 유래합니다.


하지만 이제 사후 시집가는 여인들은 저의 누나와 같이 가족묘가 조성된 집으로 한정될 것입니다. 당연히 그 숫자는 장례 문화의 변화로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과거엔 대개 선산에 온 가족을 모셨지만 지금은 공원묘지가 늘어가고, 매장보다는 납골당이 보편화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묘의 위치가 연고지와는 상관없이 자손이 찾아가기 쉬운 곳으로 변해가기에도 그렇습니다. 과거엔 윗대의 조상 중심으로 묘가 조성되었다면 지금은 아랫대의 자녀 중심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의 누나의 경우는 사후 시집을 가는 세대의 거의 막차를 탔다고 생각합니다. 빠르게 바뀌는 장례 문화로 그런 장례 조건을 충족하는 가문이나 가족이 점점 줄어들고 있으니까요.


어제 3년 만에 누나를 만났습니다. 남매의 가장 오래된 헤어짐이었습니다. 여전히 "누나가 왜 이곳에.."라는 생경함이 있었지만 처음 조성되었을 때보다는 많이 편안해 보였습니다. 누나도 시간만큼이나 그곳을 익숙해 할 것입니다. 그 동네에서 겨우 찾은 꽃집에서 들고 간 안개꽃에 묻힌 노란 유채꽃을 놓아주고 왔습니다. 전 이제 언제 또 상주에 오게 될까요?



올라갈 때 보니 가족묘지 어귀에 3년 전엔 없었던 큰 비석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이곳이 누나의 사후 시집임을 알리는 표식입니다. 저는 한 일이 하나도 없는 저의 누나의 묘를 아름답고 근사하게 조성해준 상주의 순천 김씨 시집분들께 진심으로 또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이 시간 그곳에선 제가 어제 문상을 드린 누나 시숙의 하관식이 진행되고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