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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하 Jan 09. 2021

춥지만 더 추운 것은..

2021년 1월 8일 오늘은 올해 들어 최고의 한파, 아니 작년부터 이어지는 올 겨울 최고로 추운 날이라고 합니다. 점심시간 저는 지인과의 약속된 식당으로 가기 위해 도산 4거리 신호등에 서있었습니다. 그제 내린 폭설에 추위가 더해 아직도 녹지 않은 내리막 보도를 조심스레 긴장하며 걸어 내려온 터였습니다. 역방향 차로 오르막 갓길엔 그젯밤 누군가 버리고 간 차가 아직도 눈을 뒤집어쓰고 있는 게 보였습니다. 추웠습니다. 추워도 고통스러울 정도로 추웠습니다. 올 겨울 느껴지는 가장 매서운 한기, 움직이지 않고 건널목 신호등 파란불을 기다리는 그 시간이 왜 렇게 길게만 느껴지는지요? 그곳 오늘 정오의 온도영하 13도였습니다.


이 정도 추위 속에서도 인간은 이렇게 고통스러워합니다. 제가 살면서 경험했던 최고의 추위는 바로 군 복무 시절이었습니다. 철원 산속에서 보냈던 20대 초반의 제 젊은 날의 살벌했던 겨울.. 막사 마당 끝 비닐하우스 세면장에서 페치카 위에 얹어 덥혀진 양동이 물로 머리를 감고 수건으로 물기를 턴 후 전속력으로 막사를 향해 달려가 문을 열고 온기 있는 실내로 들어오면 그 짧은 순간 짧은 군인의 머리는 밤송이처럼 빳빳하고 날카롭게 서있었습니다. 불과 10여 미터밖에 안 되는 거리였는데 말입니다. 그 겨울 철원최저 온도는 영하 27도였습니다.


그런데  정도 추위는 추위도 아니라고 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며칠 전 뉴스에 극한의 추위를 뚫고 등교하는 러시아 초등학생들의 모습이 소개되었습니다. 뉴스 영상 속 희뿌연 눈보라 속 어린아이들은 그 추위 속에서도 재잘거리며 등교합니다. 날씨와 상관없이 이렇게 친구들과 떠들면서 학교 가는 모습은 세계 공통일 것입니다. 그런데 춥고 시야가 가려서 그런지 그들의 재잘거리는 목소리 톤이 꽤나 높게 들렸습니다. 다른 나라 뉴스에도 소개될 정도이얼마나 춥기에 그랬을까요? 그날 러시아 동부 동토 사하 공화국 소도시 오이먀거리 온도계에 찍힌 온도는 영하 50도였습니다.



영하 52도가 돼야 학교가 문을 닫는데 거기에 2도 모자라니 아이들은 여느 때와 같이 학교를 가야 했습니다. 최저 온도 최기록으로 영하 71.2도를 기록한 적도 있다고 하니 대단한 추위이고 대단한 주민들입니다. 그곳 오이먀콘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TV에서 본 적이 있었는데 화창한 햇살 아래 웃통을 벗고 일광욕을 하는 중년 남자의 모습이 나왔습니다. 인터뷰에서 그 남자는 겨울치곤 따뜻한 날이라 그러고 있다고 했는데 그날 온도는 영하 25도였습니다. 제가 철원에서 하도 추워 이런 날이면 얼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까지 들던 날에 그는 일광욕을 즐기는 것이었습니다. 반면에 겨울에도 온화 난방 시설이 필요 없는 남중국 광동이나 홍콩에선 간혹 기록적인 한파로 동사하는 사람이 나오는데 들은 바 그날 온도는 영상 4도쯤 되는 날이었습니다.


과연 인간은 환경의 동물인가 봅니다. 위와 같이 기온과 한파 하나만 보더라겉모습은 같을지언정 그가 사는 자연환경에 맞춰 다르게 적응하며 살고 있으니 말입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그런 적응 과정을 거치며 어느 순간 세팅 완료, 지금  각자의 삶으로 정착된 것이겠지요. 다시 또 환경이 변하면 또 그 환경에 맞춰 생존에 적합한 마이크로한 진화를 계속하게 될 것입니다. 모습과 구조가 달라지는 거창한 진화만이 진화는 아니겠지. 그리고 인간뿐만이 아니라 지구 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도 생존을 위해 이렇게 계속 진화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자연환경에 유리한 쪽으로 선택되는 과정, '종의 기원'을 쓴 다윈 진화론의 핵심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진화는 진보이고 변화이고 발전일 것입니다. 좋아지기 위해, 또는 더 나빠지지 않기 위해 가장 좋은 방향으로 이루어질 테니까요. 인간은 환경의 동물 맞습니다.


새해가 밝았음에도 여전히 코로나가 기승을 부려 장기화되어가고 있는 이 시기는 인류가 이전에 겪은 적 없는 새로운 환경니다. 우리 인간은 이것을 극복하고자 크게 보면 두 가지 노력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하나는 이것을 비정상으로 보고 비정상적인 이 환경을 본래의 정상적인 환경으로 돌리려는 적극적인 노력입니다. 면역을 위한 백신 개발과 접종이 이에 해당될 것입니다. 코로나가 없는 이전 세상을 꿈꾸며 기울이는 노력입니다. 또 하나는 지금 이 환경이 비정상적이지만 어쩔 수 없이 이 환경을 받아들이고 적응하고자 기울이는 다소 소극적인 노력입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대표되는 언택트 시대, 거기에 맞춘 인간의 변화된 라이프 스타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실천하며 살고 있기에 내용은 설명 안 해도 잘 아실 것입니다.


지난 12월 8일 수도권 방역 지침 2.5 단계가 발효된 이후 지금까지 한 달여간 저의 저녁 모임은 단 한 건도 없었습니다. 지난 연말 송년회와도 겹치는 기간이니 그 이전에 잡아 놓은 약속들은 모두 취소되었고 이후 새로운 약속은 전혀 잡지 고 있습니다. 평일 일과 후 칼퇴 후 집안에서만 노는 완벽한 집돌이, 주말은 삼시세끼 집밥만 먹는 삼식이 딱 그 모습으로 거의 집안에서만 살고 있습니다. 과거엔 이상하거나 특별했을지도 모르는 이 모습은 이제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저 부류의 남자들 모습이 되었습니다. 


런데 러면 갑자기 닥친 오늘 한파처럼 괴로워야 하는데 꼭 그렇지 않다는 게 사뭇 신기합니다. 사람을 못 만나도, 운동을 못 해도, 영화관과 공연장을 못 가도 그렇게 불편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1년이 넘어간 코로나 환경 속제가 서서히 그렇게 적응된 것이겠지요. 과거 저희 기호나 성향, 행동반경으론 상상할 수 없는 삶이지만 저는 지금 그렇게 진화되어 살고 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저와 지난 12월 송년회에서 만나기로 했던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살고 있을 것입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하더라도 이것은  비정상의 정상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 것입니다. 진화, 아니고 퇴화입니다. 돌아가야 합니다.



코로나를 극복하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하고 있는 국가이제 각 개인의 삶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되었습니다. 백신이 없는 상태에서 확진자를 위한 신속한 치료 조처와 염 예상자의 감염을 막기 위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왕왕 사생활 침해로 이어지곤 합니다. 란이 많았던 지난 8.15 광화문 집회에서 보았듯이 통신사의 기지국을 통해 정부는 출석을 안 부르고도 손쉽게 그 많은 사람들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프랑스의 선각자 미셀 푸코가 50여 년 전 '감시와 처벌'에서 얘기한 국가는 거대한 감옥이 될 수 있음을 체감케하는 시대입니다. 그 책의 부제는 '감옥의 탄생'입니다. 갇힌 죄수들은 감시자를 볼 수 없지만 감시자는 그들 모두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 있는 구조의 감옥, 그들 모두를 내려다 볼 수 있는 '판옵티콘(pan-opticon)'이 정당화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감시받는 것보다 두려운 것은 감시받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입니다. 사실 이전에도 그랬었고, 그럴 수도 있었지만 민주 국가의 법령 하에 조심스레 접근됐던 개인의 사생활이 코로나 세상에선 공공의 이익이란 미명 하에 과도하게 통제되고 감시당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어쩔 수 없는 조치라 하더라도  또한 비정상의 정상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보, 아니고 퇴보입니다. 아가야 합니다.



코로나만 없다면야 그럴 필요 없는 일, 안 해도 될 일, 해서는 안될 일들이 개인도 사회도 국가도 하고 있는 불행한 시기입니다. 큰 손실이고 낭비입니다. 오늘 백신 접종에 따른 온 국민 집단 면역화 목표 시점을 올해 11월로 예상한다는 정부 발표가 나왔습니다. 목표라지만 처음으로 끝 시점을 얘기하니 일단 반갑습니다. 작년 이맘때 초기엔 메르스처럼 좀 지나면 사라지겠지 하며 가볍게 치부되던 코로나가 1년이 지난 지금은 또 1년 여가 지나야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예상에도 반가움을 표하게 니다. 환경의 동물 인간의 역설적인 적응의 힘인가 봅니다. 


오늘 우리를 더 움추리게한 매서운 추위는 이번 주말만 지나면 정상 온도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이건 확실한 뉴스입니다. 주말 따뜻하게 쉬시고 오는 월요일 아침 다소 가벼워진 차림으로 힘차게 집을 나서시기 바랍니다. 



* 그런데 스마트폰이나 개인 컴퓨터 없던 시절에 이런 역병이 돌면 그땐 집에 갇혀 무엇을 하며 소통했을까요? 지금은 카톡이나 문자에 페북도 있고 한데.. 여기저기 집전화 걸었을까요? 아님 편지를 썼으려나요? 갑자기..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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