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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하 Dec 30. 2020

경자신축

끝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업이 끝난 아이들은

기쁨에 교문을 뛰쳐나가지만

방학이 끝난 아이들은

슬픔에 방문을 걸어 잠급니다

사랑이 끝난 연인들은

이별의 슬픔에 가슴이 아프지만

이별이 끝난 연인들은

재회의 기쁨에 가슴이 설렙니다

업무가 끝난 직장인들의

귀가 발걸음은 가볍지만

휴가가 끝난 그들의

귀사 발걸음은 무겁기만 합니다


적금 납입이 끝난 어머니는

목돈 수령으로 기뻐하시지만

월급 수령이 끝난 아버지는

퇴직으로 불안해하십니다

이처럼 끝은 대개의 경우 극단적인 모양새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언가 딱 부러지는 결론을 요구하곤 합니다. Happy Ending과 Sad Ending은 많이 들어 봤어도 So-So Ending이 흔치 않은 이유입니다. 있다 하더라도 그렇지 않게 흑백으로 결론짓고 싶어 하는 인간의 심리도 작용할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이 없는 끝, 끝이니까요.


하루를 남긴 2020년이 끝이라 해도 예년과 달리 끝처럼 보이지 않는 것은 올해 내내 우리를 괴롭혀온 코로나가 끝나지 않아서일 것입니다. 그 역병이 2021년으로 그대로 이어서 가기에 끝이 끝스럽지 않은 것이지요. 좋든 나쁘든 뭔가의 매조지되는 마침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세밑입니다. 결코 Happy Ending이기 힘든 올해 2020년의 종말입니다.


끝은 대개 따라오는 시작과 붙어 있습니다. 내년의 시작이  올해의 끝과 붙어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1월은 그래서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Janus), 재뉴어리가 되었죠. 통상적으로 끝이 좋으면 이어지는 시작은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설사 끝이 나쁘더라도 시작은 좋아진 끝을 기대하게 합니다. 새, 새로운의 힘입니다. 그래서 내년 2021년 새해가 희망차기도 하지만 더 기대를 갖게 하는 것은 올해 Happy Ending을 가로막은 주범 코로나의 백신 개발 성공으로 비로소 접종이 실행되기에 그렇습니다. 지금까지처럼 예방이 우선된 정치와 사회 총화의 힘이 아닌  치료가 전제된 과학과 의학 힘이 발동되기에 2021년 이맘때는 Happy Ending을 노래할 수 있게 되기를 거듭 희망합니다.


아래 글은 제가 올해 4월 1일 저희 회사 식구들에게 보낸 글입니다. 인류가 지난 수 세기 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위기라지만 21세기 AI까지 판치는 세상이라 세밑인 오늘까지 이 위기가 진행될 거란 생각까지는 못한 시각에서 당시 쓴 글이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민족 시인 이상화님이 그토록 열망했던 빼앗긴 들의 봄은 결국 찾아왔습니다. 1926년 그 시를 발표하였으니 19년 걸린 일입니다. 2020년 코로나로 인해 빼앗긴 우리의 생활, 경제, 사람, 스킨쉽.. 부디 새해 2021년엔 꼭 찾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Goodbye 경자년!

Welcome 신축년!




코로나 20200401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100여 년 전 민족 시인 이상화님이 나라를 빼앗겼으니 봄조차 빼앗기겠네.. 라며 망국의 한을 통탄해했던 것처럼 2020년 지금 우리의 봄이 그러합니다. 봄은 왔으되 봄을 노래하지 못하니 빼앗긴 들에 서있는 시인의 봄 신세와 다름 아닙니다. 무망하게 코로나에게 우리의 봄을 빼앗겨서 그렇습니다. 지난 겨우내 그토록 기다렸던 봄인데 말입니다.

춘삼월 시작과 동시에 일제히 열었던 학교 문은 아직도 굳게 닫혀 있습니다. 새봄과 함께 뛰쳐나와 무리 지어 뛰놀던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합창 소리도 아직 들리지 않습니다. 봄햇살 봄꽃 봄시내 봄아지랑이 봄나물을 즐기러 산과 들로 봄나들이 가곤 했던 사람들은 여전히 그들 집 울타리 안에서만 맴맴 돌고 있습니다. 새봄을 걸고 펼쳐졌던 다운타운의 각종 봄맞이 이벤트와 축제의 현수막은 어딜 가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춘삼월이 31 날이나 지나갔지만 정지와 연기는 계속 되풀이되어 세상의 모든 일정은 막연한 추후만을 기약 아닌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오늘 4월의 문턱까지 넘어섰습니다. 노벨상 수상자 T. S. 엘리엇이 잔인하다고 한 그 4월입니다. 그를 안 이후 왜 4월이 잔인할까라고 의혹의 시선과 함께 천재 시인의 난해한 역설로만 치부하곤 했지만 올해는 직격탄으로 딱 들어맞는 바로 그 4월입니다.

그래도 세상은 계속 기다리기만 할 수도 없고, 더 이상 멈출 수도 없습니다. 잔인한 인간의 봄과 상관없이 변치 않는 자연의 봄은 여지없이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니까요. 그에 맞춰 며칠 후 청명이면 농부들은 그간 광에 묵혀둔 연장을 챙겨 논밭으로 나가야만 합니다. 큰 호흡 한번 하고 대지에 첫 삽을 푹 담그며 올 농사를 본격 시작하겠지요. 인간은 매번 그렇게 자연의 주기에 맞춰 순응하며 살아왔습니다. 그것이 말 그대로 가장 자연스러우며 탈이 없기도 했습니다.

이번 코로나 사태는 그 자연의 법칙과 순리를 따르지 않은 언밸런싱 크랙으로부터 시작된 탈입니다. 과거 유럽을 초토화시킨 페스트가 그러했고, 남미 원주민을 몰살시킨 천연두도 그러했습니다. 어느 한 지점 예상치 않게 발생한 조그만 금이 나비효과가 되어 엄청난 재앙으로 인간을 파괴하곤 했습니다. 더구나 이번 일은 글로벌화된 21세기에 발생했기에 이제 우리가 정말 지구라는 한 마을에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음을 실감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 폭넓고 신속한 전염력으로 말입니다.

이 사태를 통해 인간은 멈추거나 퇴행하는 것 같지만 결국은 한 발자국 더 도약할 것입니다. 빌 게이츠를 비롯한 세계의 여러 선각자들이 코로나를 통해 그동안 못 보아왔거나 알면서도 외면했던 인간사의 불완전한 점을 지적하고 개선을 촉구하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보이는 질병을 치유하는 것만이 극복해야 할 과제가 아니라 인간사 내면의 과제까지 치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회고와 자성을 통해 시대에 부합하는 인간 사회와 인간관계로 리셋하자는 것입니다. 이참에 그렇게 미래를 준비하자는 것입니다. 부정 속에서 피어나는 긍정의 시도입니다.

이상화님의 빼앗긴 들은 결국엔 찾아왔고, 엘리엇 님의 잔인한 황무지에서도 라일락은 피어났습니다. 봄은.. 봄입니다. 봄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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