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하 Aug 28. 2021

올댓 아비뇽 유수 - 2

All That Avignonese Captivity

<2> 서방교회 대분열 / 동서교회 대분열 / 성전 기사단 해체



아비뇽 유수 7대 교황의 시대가 끝나고 교황은 본래 자기의 의자가 있던 로마의 자리로 돌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곧바로 모든 일이 원상복귀 되지는 않았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조그만 일을 겪어도 후유증이 수반되는데 하물며 이런 엄청난 역사적 사건의 후유증은 만만치 않았을 것입니다. 역시나 정상화가 되기까지는 또 많은 진통과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예상보다 큰 역사적 사건이 또 발생합니다. 아비뇽의 유수가 끝나기가 무섭게 착 붙어서 그 다음 해부터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리고 이 사건 말고도 유수 전후좌우로 다른 주목할만한 일들도 아비뇽에서 발생하게 됩니다.


아비뇽 유수를 바라보는 로마 바티칸과 휘하 교구들, 그리고 주변 국가들의 심경은 매우 복잡했을 것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러한 심경은 더 큰 반발로 이어졌겠지요. 당연한 일입니다. 신성불가침한 사건이 그 신의 대리인과 거주소를 상대로 일어난 것이니까요. 이제 이 사건을 주도한 필립 4세도 죽었습니다. 결국 로마는 1378년 교황의 권력을 아비뇽으로부터 다시 찾아오고 다시 이탈리아인이 교황이 됩니다. 하지만 이번엔 뺏기는 입장이 돼버린 아비뇽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비뇽에서도 교황을 세웁니다. 이렇게 교황이 2명이 있게 되니 그들의 인사권 남발로 추기경, 주교 등 모든 교회 조직이 2개가 되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들을 섬기는 국가들도 각각 지지하는 교황이 달라 14세기 말 유럽은 같은 기독교 하에 2개로 분열된 것입니다. 혼란의 시대입니다.


이를 수습하기 위해 이탈리아 피사에서 공의회(1409)가 소집됩니다. 다 무효화하고 공신력 있는 종교 회의를 통해 적통의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기 위함인데 엉뚱하게 이제 교황은 3명으로까지 늘어났습니다. 왜냐하면 기존 로마와 아비뇽의 교황이 이 결과를 인정하고 내려와야 하는데 나 몰라라 안 내려오니 그렇게 된 것입니다. 결국 이후 독일 콘스탄츠에서 열린 4년에 걸친 또 한 번의 긴 공의회(1414~1418)에서 마르티누스 5세 교황이 선출됨으로써 이 혼란은 마감이 됩니다.


짧지만 교황이 4명까지도 있던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기존 3명의 교황 중 우여곡절 끝에 로마의 교황만이 결과를 받아들여 자진 사퇴했고 피사의 교황은 감금, 아비뇽의 교황은 폐위되었기에 그렇습니다. 이렇게 적통에서 벗어나 난립했던 교황들을 대립교황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이 시기를 역사에서는 '서방교회 대분열(1378~1417)'이라 부릅니다. 서방교회를 굳이 앞에 붙인 것은 이전에도 이와 버금가는, 아니 더 큰 교회의 분열이 있었기에 그것과 구분하기 위함입니다.



'동서 대분열(1054)'이라 불리는 사건입니다. 로마 제국이 동서 로마로 갈라선 이후 교회는 서로마와 비잔틴 제국으로 바뀐 동로마 간에 서로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게르만족의 남하로 서로마 제국은 멸망했지만 그래도 오리지널이라는 자존심을 가진 정통 로마 교회와 점점 더 세계정세와 교회를 움직이게 된 실세 동로마 교회와의 마찰입니다. 그런 와중에 동서의 교회들은 성상 숭배의 교리 차이로 시작된 대립으로 갈라서 끝내 서로를 파문하며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됩니다. 로마 카톨릭과 동방 정교회로의 분열입니다.


각각의 수장인 로마의 교황과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는 이후 서로 안 보고 살다가 20세기인 1963년이 돼서야 비로소 다시 만나 세계의 화제가 되었습니다. 대분열 후 900년이나 넘게 걸린 일입니다. 이어서 21세기 들어선 2016년 정교회의 실세인 러시아 정교회 키릴 총대주교와 프란체스코 교황이 천년 만에 만나는 밀레니엄 이벤트를 갖게 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천년 견원지간이었던 이 두 수장을 연결해준 사람은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 카스트로였습니다. 만남 장소도 카리브해 쿠바의 수도 아바나였습니다. 카스트로는 2월에 이 역사적인 화해를 주선하고 얼마 안 있어 그해 11월 사망합니다. 아마도 그는 마지막에 한 이 좋은 일로 그의 평생 죄를 다 사함 받고 천당에 갔을지도 모릅니다. 끝이 중요한 사람의 일생입니다.  동로마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은 현재 99%의 국민이 이슬람교를 믿는 터키의 수도이기에 신자가 별로 없는 그곳 총대주교는 상징성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교회는 동서 대분열, 서방교회 대분열까지 마치고 나서 한 번 더 큰 분열을 맞게 되는데 그것은 16세기에 마르틴 루터가 주도한 '종교개혁'으로 출현한 '개신교와의 분열'입니다. 이로써 예수의 죽음과 부활 이후 하나로 출발한 기독교는 로마 카톨릭, 동방 정교회, 개신교 등 3개로 분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21세기인 오늘에 와서도 그 분열에는 못 미치지만 유사한 사건은 일어나고 있습니다. 바로 중국의 주교 임명권에 따른 바티칸과의 대립입니다. 주교는 전 세계의 교구를 관할하는 책임자로 주교 임명은 교황의 고유 인사권입니다. 하지만 중국만은 예외였습니다. 그간 중국은 자국 내 7명의 주교를 중국 정부가 임명했습니다. 종교의 자유를 표면상으로는 인정하기에 공식적인 주교는 그렇게 했습니다. 그래서 국가로서 양자는 1951년 이후 외교가 단절된 상태입니다. 물론 중국에도 바티칸에서 임명하는 주교가 지역별로 있기는 합니다만 이들은 지하교회의 주교로 정상적인 활동이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이에 중국 정부와 바티칸은 2013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즉위하면서 대화의 물꼬를 터 상호 협정을 통해 절충안을 마련했는데 그것은 중국 정부가 임명한 주교를 바티칸이 승인하는 형태로 교황 인사권을 보전하기로 한 것입니다. 물론 교황이 중국이 임명한 인사를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이 협정을 두고 교황이 시황제라 불리는 시진핑 주석에게 굴복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만 바티칸은 15억 인구 대국인 중국의 포교와 기존 신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점진적인 개선을 선택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아울러 그간 단교 상태의 양국 간의 관계도 수교가 임박했다는 전망입니다. 이 경우 바티칸은 수교 국가인 대만과 단교해야 합니다. 하나의 중국을 고수하는 중국이기에 중국과의 수교는 곧 대만과의 단교를 의미하니까요.


아비뇽 우수 시 생긴 피해자는 또 있습니다. 예상치 못한 큰 화를 입은 그들은 아예 역사에서 사라졌습니다. 바로 '성전 기사단(Templar Order)'입니다. 붉은 십자가가 크게 새겨진 하얀 망토를 두르고 멋지게 말 달리는 중세 영화 속 그 기사들입니다. 이 사건 역시 아비뇽 유수의 주역 필립 4세의 탐욕으로부터 시작되는데 이유는 그들이 돈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기사단은 십자군 전쟁을 통해 막대한 부를 쌓았습니다. 예루살렘 성지 순례자를 보호하는 일이 주요 미션인 그들이었기에 순례자의 기부금이 쌓였고, 또 동서를 오가다 보니 동방과의 중개무역을 통해, 그리고 결혼을 금지했기에 입회 기사들의 상속받은 재산이 고스란히 봉헌되었기에 그렇습니다.



이것을 놓칠 필립 4세가 아니었습니다. 사람은 역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빚이 많으면 사고를 치게 돼있나 봅니다. 성직자 과세로 촉발된 교황의 아비뇽 유수에 이어 그의 나라에서 창설된 신의 사도인 성전 기사단까지 해체하였으니 말입니다. 아비뇽 유수의 악역은 가신 노가레가 담당했다면 기사단 해체는 그가 임명한 아비뇽의 교황 클레멘스 5세가 담당하였습니다. 제거 방법은 역시 이단으로 모는 것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그들은 종교 재판을 받고 기사단장을 비롯해 모두 화형을 당했습니다.


이 사건을 소재로 한 최근에 나온 미드 '나이트폴(Knightfall)'에서는 필립 4세가 성전 기사단 해체를 강행한 보다 더 강력한 이유를 보여줍니다. 성전 기사단의 파리 지부 단장이 그 시리즈의 주인공인데 왕의 친구이기도 한 그는 필립 4세의 부인인 왕비와 불륜을 맺고 딸까지 낳게 됩니다. 그래서 왕비를 사랑했던 필립 4세는 눈엣가시 같던 교황 보니파시오 8세의 신하이기도 한 그 기사단과 아울러 교황을 함께 제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역사 기록상 훤칠한 키에 수려한 외모로 미남왕으로까지 불렸던 필립 4세였기에 그로 인한 모멸감과 질투심은 하늘을 찌르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통상 여자의 한을 오뉴월 서릿발에 비유하지만 속 좁은 남자의 질투심은 때론 그것을 능가한다는 것을 그는 몸소 보여주었습니다.


이것은 정사가 아니고 야사입니다. 그러나 저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딱히 드러내지 않으면 안 드러나서 그렇지 남녀문제보다 인간의 행동을 좌우하는 더 강력한 동기부여는 없으니까요. 그로 인해 어떤 남자는 간당간당한 실력임에도 의대도 진학하고 사법고시도 붙고 합니다. 그리고 위대한 츠비와 같은 사회적 성공을 거두기도 합니다. 그리고 혹자는 여자는 별 관심도 없는데 기사도를 내세워 그녀를 위해 목숨까지 바치기도 합니다.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고현정 여왕을 지키는 이정재 기사 같은 역할 말입니다. 기사단 얘기를 하고 있어서인가 매우 적절한 비유이고 클리셰라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이것은 필립 4세의 입장과 반대인 남자 심리와 현상을 예로 든 것이지만 본디 애증은 한 동네에 살기에 왕비의 마음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야 필립 4세도 똑같이 행동했을 것입니다. 아무튼 이렇게 성전기사단은 지구 상에서 억울하게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현세에 부활하여 '인디아나 존스', '다빈치 코드' 등의 많은 영화나 요즘 아이들이 주야로 매진하는 판타지 배틀 게임의 기사 캐릭터로 등장하여 지금도 그들에게 부여된 신의 사명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때 생존한 기사 단원이 지하로 숨어 들어가 프리메이슨의 원조가 되었다고도 하니까요.


(다음 마지막 3편엔 아비뇽 유수 끝자락에 등장한 어떤 남자의 반전 스토리와  유수 보너스 스토리로 끝을 맺도록 하겠습니다.)


윗 글은 2021 0828 0856 뉴스버스에도 게재된 글입니다.

http://www.newsverse.kr/news/articleView.html?idxno=398






작가의 이전글 올댓 아비뇽 유수 -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